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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의 역사 (2) - 두 개의 태양

삶은계-란 2025. 2. 2. 09:13

 

0. 세가는 과거나 지금이나 오락실의 강자였다. 세가의 아케이드 게임들은 오락실을 점령했고 오락실에서의 위상을 보면 닌텐도보다도 더 높았다. 그런 세가는 가정용 게임 시장이 돈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패미컴 시대부터 가정용 게임에 투자를 시작했다. 다만 당시 세가는 자신의 아케이드 게임에 대한 과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고 실제로 그런 오만 때문에 패미컴에게 완전히 밀려버리고 말았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세가는 다른 방식으로 가정용 게임 시장에 접근했고 그들은 닌텐도와 대적할 수 있는 게임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메가 드라이브', 이것이 닌텐도의 상대였다.

 

1. 메가 드라이브를 본 닌텐도가 만든 것은 바로 '슈퍼 패밀리 컴퓨터(슈퍼 패미컴)'이었다. 닌텐도가 슈퍼 패미컴 개발 당시에 설정한 목표는 명확했다. 패미컴의 성공을 계승하면서도, 더욱 강력한 성능, 진보된 그래픽과 사운드, 그리고 풍부하고 다채로운 게임 라인업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닌텐도는 단순한 스펙 경쟁에 매몰되지 않고, “재미”라는 핵심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기술적인 진보를 이루어내고자 했다.

 

슈퍼 패미컴은 16비트 시대를 대표하는 게임기답게 당시 최고 수준의 기술을 집약했다. CPU의 경우, 슈퍼 패미컴은 16비트 리코 5A22 프로세서를 탑재하여, 패미컴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연산 능력을 자랑했다. 이러한 강력한 연산 능력은 더욱 복잡하고 정교한 게임 로직 구현을 가능하게 했으며, 이는 게임 개발의 자유도를 크게 확장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개발자들은 복잡한 알고리즘과 다양한 게임 메커니즘을 이전보다 훨씬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게 되면서, 게임 디자인의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래픽도 마찬가지로 뛰어 났다. 특히 'Mode 7'이라 불리는 특수 기능은, 2D 그래픽을 3D처럼 보이게 하는 놀라운 효과를 구현했다. 이는 레이싱 게임이나 횡스크롤 액션 게임에 깊이감을 더하며, 시각적인 즐거움을 극대화했다. 사운드 역시 채널의 소니 SPC700 사운드 칩을 탑재하여, 샘플링 음원을 활용한 풍부하고 입체적인 사운드를 구현했다. 이는 게임 음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으며, 게임의 몰입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슈퍼 패미컴의 하드웨어의 백미는 역시 컨트롤러다. 기존 패미컴 컨트롤러의 2버튼에서, 4개의 액션 버튼(A, B, X, Y)과 십자 버튼, 그리고 L/R 숄더 버튼을 추가하여, 더욱 다양하고 복잡한 조작을 가능하게 했다. 특히 숄더 버튼은 이후 게임 컨트롤러 디자인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슈퍼 패미컴 컨트롤러는 뛰어난 조작감으로 많은 게이머들에게 사랑받았다. 이러한 혁신적인 컨트롤러 디자인은 더욱 복잡하고 정밀한 조작을 요구하는 게임들을 가능하게 했으며, 게임 플레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다만 이런 특징들을 감안하더라도 메가 드라이브는 특히 CPU의 속도 측면에서 패미컴을 앞섰고 '소닉 더 헤지혹'이라는 킬러 타이틀도 있었다. 그러나 슈퍼 패미컴의 게임들은 소닉 하나만으로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슈퍼 패미컴의 런칭 타이틀이자 플랫포머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슈퍼 마리오 월드', 2D 젤다를 완성시킨 '젤다의 전설 신들의 트라이포스', 메트로배니아라는 장르를 창립시킨 '슈퍼 메트로이드', 지금까지도 닌텐도의 연금이 되어주는 마리오 카트의 시작, '슈퍼 마리오 카트'까지, 게임 하나하나가 거를 타선이 없었다.

 

 서드 파티의 지원들도 역시 충실했는데 당시 양대 JRPG로 불린 드래곤 퀘스트와 파이널 판타지의 게임들이 꾸준히 슈퍼 패미컴으로 나왔다. 또 그 외에도 '크로노 트리거', '스트리트 파이터 2', '록맨 X', '뿌요뿌요' 등 양질의 게임들이 나와 슈퍼 패미컴의 게임 풀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런 게임들의 차이는 슈퍼 패미컴이 메가 드라이브에게 승리를 거두게 했다.

 

 슈퍼 패미컴은 전 세계적으로 약 4900만대가 팔렸다. 패미컴보다는 판매량이 적었지만 메가 드라이브라는 경쟁자가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마찬가지로 큰 성공이었다. 거기에 닌텐도는 가정용 게임 시장에서만 성공을 거둔 것이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 휴대용 게임 시장에서도 닌텐도는 승승장구를 거듭한다.

 

2. 가정용 게임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을 때, 요코이 군페이는 '게임 & 워치'의 후속 기기를 구상하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세가 역시 '세가 게임 기어'라는 새로운 휴대용 게임기를 통해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세가 게임 기어'는 고성능 컬러 화면과 화려한 그래픽을 전면에 내세우며, 휴대용 게임 시장을 석권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요코이와 닌텐도는 이에 정면으로 대립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바로 흑백 LCD 화면을 활용한 '게임보이'였다.

 

 흑백 LCD 화면은 그래픽적인 측면에서 세가 게임 기어의 화려한 컬러 그래픽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게임보이는 흑백 LCD를 사용한 덕분에 두 가지 중요한 이점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저렴한 생산 단가와 긴 배터리 수명이었다. 흑백 LCD는 화려한 컬러 그래픽보다 생산 단가가 훨씬 저렴했고, 전력 소모량도 적어 배터리 수명도 훨씬 길었다. 이는 게임보이가 휴대용 게임기라는 본질적인 측면을 완벽하게 파악한 전략이었다. 이 전략은 완벽하게 통했고, 소비자들은 고가의 세가 게임 기어 대신 저렴하고 오래가는 게임보이를 선택했다. 요코이와 닌텐도의 철학, 즉 '고사한 기술의 수평적 사고'가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게임보이가 하드웨어 성능만으로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뛰어난 게임 라인업 역시 게임보이의 성공에 큰 기여를 했다. 특히 게임보이에 번들로 제공되었던 '테트리스'는 단순한 규칙과 조작, 뛰어난 중독성이라는 휴대용 게임에 어울리는 모든 요소를 갖춘 걸작이었다. 테트리스는 게임보이를 구매해야 할 강력한 이유를 제시하는 킬러 타이틀 역할을 했다.

 

 테트리스 외에도, '젤다의 전설 꿈꾸는 섬', '별의 커비', '메트로이드 2', '슈퍼 마리오 랜드', '닥터 마리오' 등 수많은 명작 게임들이 게임보이로 출시되었다. 또, '포켓몬스터 적/녹'은 출시와 동시에 게임보이의 수명을 크게 늘렸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게임들의 활약에 힘입어, 게임보이는 전 세계적으로 약 1억 1,800만 대라는 경이로운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게임보이는 닌텐도가 휴대용 게임 시장을 독점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닌텐도는 게임보이를 통해 휴대용 게임 시장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했으며, 이는 이후 휴대용 게임 시장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3. 슈퍼 패미컴과 게임보이는 각각 가정용 게임 시장과 휴대용 게임 시장에서 닌텐도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비록 경쟁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두 게임기의 압도적인 판매량은 닌텐도의 위상을 하늘 높이 끌어올렸다. 어쩌면 이때가 닌텐도가 게임 업계를 거의 통일할 뻔한 가장 가까운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게임기 시장을 거의 완벽하게 장악한 데다, 당시 PC 게임 시장은 지금처럼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닌텐도는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며, 명실상부한 게임 업계의 제왕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은 닌텐도를 오만이라는 함정에 빠뜨렸다. 오만, 7대 죄악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죄악은, 닌텐도의 전성기를 종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닌텐도는 연이은 성공에 도취되어, 스스로를 '업계 최고'라고 믿으며 안주한 결과, 닌텐도는 시장의 변화와 소비자의 니즈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닌텐도의 오만은, 앞으로 닌텐도가 맞이할 수많은 위기의 전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