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1990년대 초 닌텐도는 게임의 왕이었다. 슈퍼 패미컴과 게임보이 둘다 엄청난 속도로 팔려나갔고 대부분의 게임사들이 닌텐도 게임기에 게임을 내지 못해 안달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닌텐도의 내부에서는 자연스럽게 오만과 안일함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 90년대는 신기술의 시대였다. 닌텐도는 자신의 게임기에 신기술을 도입하기로 결심했고 그 시작은 애석하게도 '버추얼 보이'였다.
1. 휴대용 게임기 부문의 리더인 요코이 군페이는 당시 유망한 가상현실 기술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건보이'라는 코드명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를 통해, 게이머들에게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몰입감 넘치는 3D 입체 게임 경험을 선사하고자 했다. 닌텐도는 버추얼 보이 프로젝트를 통해, 단순한 게임기 진화를 넘어, 새로운 차원의 게임 플레이를 개척하고, 미래 게임 시장의 가능성을 엿보고자 하는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버추얼 보이의 핵심 컨셉은 '레드 스크린'과 '3D 입체'였다. 닌텐도는 당시 기술적 한계 속에서도 강렬한 붉은색 LED 디스플레이를 통해 독특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하고, 시차를 이용한 방식으로 제한적이지만 3D 입체 효과를 구현하고자 했다. 완벽한 VR은 아니었지만, 닌텐도는 버추얼 보이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게임 플레이를 개척하고, 미래 게임 시장의 가능성을 엿보고자 하는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고사한 기술의 수평적 사고'라는 닌텐도의 철학을 정면으로 어긴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였는지, 야망과 다르게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그 레드 스크린이었다. 닌텐도는 당시 컬러 LCD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고, 3D 입체감을 구현하기 위해 흑백 LED를 선택했고, 그 결과물이 강렬한 붉은색 화면이었다. 이러한 붉은색 화면은 독특한 시각적 인상을 주었지만, 동시에 심각한 시각적 피로도 문제를 야기했다. 장시간 플레이 시 눈의 피로, 두통, 심지어는 멀미를 호소하는 사용자들의 증언이 잇따랐다.
또 3D 입체 역시 완전하지 못했다. 버추얼 보이는 '3D 입체 게임'을 표방했지만, 실제 구현 방식은 오늘날의 VR과는 거리가 멀었다. 버추얼 보이는 시차를 이용하여 3D 효과를 구현했다. 양쪽 눈에 약간 다른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깊이감을 느끼게 하는 방식이었지만, 진정한 3D 공간감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입체감은 제한적이었고, 화면 속 오브젝트가 튀어나오는 듯한 몰입감은 부족했다. 오히려 어색하고 불편한 3D 효과는 사용자들에게 혼란스러움과 어지럼증을 유발하기도 했다.
거기에 버추얼 보이는 휴대용 게임기를 표방했지만 휴대하기에도 어려웠다. 버추얼 보이의 디자인은 테이블 위에 거치해야만 플레이가 가능했고 자연스럽게 휴대성을 크게 떨어뜨렸다. 인체공학적으로 불편한 디자인도 문제였다. 플레이 자세가 불편하고, 장시간 사용 시 목과 어깨에 부담을 주었다. 거기에 배터리 수명까지도 짧아 사용자들에게 큰 불편함을 주었다. 게임보이의 가장 큰 장점이 긴 배터리 수명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아이러니하다.
종합적으로 버추얼 보이는 혁신적인 시도였지만, 기술적인 완성도 부족, 시각적 피로도 문제, 불편한 사용성, 짧은 배터리 수명 등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런 만큼 버추얼 보이가 실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버추얼 보이는 전세계적으로 고작 77만대가 팔렸다. 다행히 재고가 많이 남지는 않아 큰 손해는 아니었지만 이는 닌텐도의 하락세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2. 한편, 가정용 게임 시장에서 압도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던 닌텐도는, 새로운 경쟁자들의 등장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직면하게 된다. 기존의 경쟁자였던 세가뿐만 아니라, 소니라는 새로운 강자가 가정용 게임 시장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소니는 한때 닌텐도와 협력을 시도했지만, 결국 결렬되었고, 자신만의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을 들고 닌텐도에 도전했다. 물론 세가 역시, '세가 새턴'을 통해 가정용 게임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고자 했다.
이러한 도전에 맞서기 위해 닌텐도는 '닌텐도 64'를 준비했다. 닌텐도 64의 '64'는 64비트를 의미하는 것으로, 당시 비트 경쟁이 치열했던 상황에서 64비트 CPU를 탑재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실제로 닌텐도 64의 성능은 경쟁 기기인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세가 새턴보다 뛰어났고 닌텐도 내부에서는 닌텐도 64의 성공을 자신했다. 문제는 단순히 성능에만 있지 않았다. 닌텐도는 닌텐도 64 런칭 과정에서 세 가지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고, 이는 플레이스테이션과의 경쟁에서 패배로 이어졌다.
첫 번째 실수는 서드파티에 대한 대우였다. 닌텐도는 패미컴 시대부터 게임 퀄리티에 대한 강박 관념이 심했다. 이는 졸작 게임들로 인해 발생했던 아타리 쇼크에 대한 반면교사 때문이었다. 닌텐도는 철저하게 자사의 콘솔로 출시되는 게임들을 감독하며, 최대한 졸작들을 없애려 노력했다. 물론 이러한 감독은 자사 게임뿐만 아니라, 서드파티 게임에도 예외는 없었다. 닌텐도 입장에서는 최대한 품질을 보증하려는 시도였지만, 이는 다른 서드파티 게임사들에게는 불만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과도한 간섭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고, 심지어 검열을 한다는 비판까지 제기되었다.
두 번째 실수는 CD-ROM이었다. 닌텐도 64는 당시 부상하고 있던 CD-ROM 대신 전통적인 롬 카트리지를 고수했다. 이를 첫 번째 실수와 연관 지어 CD-ROM은 롬 카트리지와 비교하면 서드파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지므로 롬 카트리지를 고집했다는 견해가 있지만, 이는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닌텐도 64 출시 전, 닌텐도의 수장인 야마우치 히로시뿐만 아니라, 미야모토 시게루조차 공식 석상에서 CD-ROM의 무용함과 롬 카트리지의 우월함을 설파하고 다녔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에도 완전히 틀린 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롬 카트리지는 로딩 속도 면에서 CD-ROM보다 훨씬 빨랐고, 이는 닌텐도 64의 명작들, '슈퍼 마리오 64'와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의 탄생에 기여했다.
하지만 롬 카트리지는 용량과 해상도 측면에서 CD-ROM에게 크게 뒤쳐졌다. 그리고 대부분의 서드파티들은 떠오르고 있던 CD-ROM을 활용한 고용량, 고해상도의 게임을 만들고 싶어했다. 당연히 서드파티들은 닌텐도 64라는 플랫폼에 게임을 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마지막 실수는 엄청난 성능 자체였다. 닌텐도 64는 당시 최고의 게임기 중 최고의 성능을 자랑했지만, 뛰어난 성능은 곧 어려운 개발 난도로 이어졌다. 실제로 닌텐도조차 닌텐도 64의 까다로운 개발 환경 때문에 게임 발매일을 늦출 수밖에 없었다. 닌텐도 64의 단점을 간파한 소니는 적은 통제, CD-ROM, 쉬운 개발 환경으로 서드파티들을 유혹했고, 대부분의 서드파티들은 닌텐도 64가 아니라 플레이스테이션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닌텐도 64는 1996년, 플레이스테이션보다 2년 늦게 출시되었고, 플레이스테이션의 판매량을 넘지 못한 채 처음으로 게임기 시장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닌텐도의 오만이 만들어낸 아성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닌텐도 64를 패배자라고만 칭하고 넘길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닌텐도 64는 후대 게임들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유산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닌텐도 64의 유산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크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적 측면이 있다. 하드웨어로 보면 가장 큰 것은 역시 '아날로그 스틱'이다.
기존 게임 컨트롤러의 십자 버튼은 2D 게임에는 적합했지만, 3D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고 시점을 조작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닌텐도 64는 아날로그 스틱을 도입하여 3D 게임 컨트롤 방식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아날로그 스틱은 섬세하고 직관적인 360도 방향 조작을 가능하게 하여, 3D 공간에서의 자유로운 이동과 시점 변화를 구현했다. 이는 '슈퍼 마리오 64'와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와 같은 3D 액션 어드벤처 게임의 조작감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으며, 이후 모든 3D 게임의 표준 조작 방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닌텐도 64 컨트롤러의 아날로그 스틱은 현대 게임 컨트롤러 디자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지금도 대부분의 게임 컨트롤러에서 아날로그 스틱을 찾아볼 수 있다.
이제 게임패드에는 빼놓을 수 없는 '진동'도 닌텐도 64에서 처음 도입되었다. 닌텐도 64는 '럼블 팩'이라는 진동 기능을 제공하는 주변기기를 통해 진동을 처음으로 제공했다. 럼블 팩은 컨트롤러에 장착하여 게임 상황에 맞춰 진동을 발생시켜, 생생한 피드백과 몰입감을 높였다. 총격 장면이나 폭발 장면에서 느껴지는 진동은 게임의 현실감을 더하고, 게이머의 몰입도를 극대화했다. 럼블 팩은 이후 게임 컨트롤러의 진동 기능의 시초가 되었으며, 현대 게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물론 닌텐도 64의 게임들도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슈퍼 마리오 64'는 닌텐도 64의 런칭 타이틀이자, 3D 액션 게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기존 2D 횡스크롤 액션 게임에서 3D 공간으로 무대를 옮겨, 자유로운 시점 조작과 다채로운 액션을 구현했다. 아날로그 스틱을 활용한 혁신적인 조작 체계는 3D 공간 탐험의 재미를 극대화했으며, 박스형 정원 디자인의 레벨 구성은 3D 액션 게임 디자인의 새로운 표준을 확립했다.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역시 닌텐도 64의 대표작이자, 게임 역사상 최고의 게임 중 하나로 손꼽히는 걸작이었다. 광활한 3D 오픈 월드, 깊이 있는 스토리, 매력적인 캐릭터, 그리고 혁신적인 게임 시스템은 젤다 시리즈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Z 주시 시스템을 통해 3D 공간에서의 전투와 퍼즐 풀이를 더욱 직관적으로 만들었으며,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독특한 스토리텔링은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겼다.
이 둘은 후대에도 영향을 끼칠 만큼 손꼽힐 정도의 명작으로 평가받았으며 그 외 '골든아이 007', '마리오 카트 64', '반조-카주이' 등도 꽤 고평가를 받았다. 그래서였는지 닌텐도 64는 전세계적으로 약 3200만대를 판매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전세대인 슈퍼 패미컴보다는 적었고 경쟁자인 플레이스테이션보다는 확실히 열세였지만 적어도 체면치레는 거둘 수 있는 성과였다. 하지만 닌텐도는 게임기 시장에서 처음으로 패배를 맛봤다. 강한 일격을 당한 닌텐도는 소니와 플레이스테이션을 향해 이제 도전자의 입장이 되었고 닌텐도 역시 소니에게 강한 반격을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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