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혹시 유희왕 제알을 기억하는가? 시대를 풍미했던 애니메이션 유희왕 제알에는 여러 명장면이 있었지만 그중 하나는 바로 유마 vs 벡터다. 벡터의 비겁한 수로 유마가 궁지에 몰렸을 때, 기적으로 랭크 업 매직을 생성해 유토피아를 유토피아 빅토리로 진화시켜 이겼을 때의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엑와를 만들 때 제작진들도 포켓몬스터에 비슷한 시스템을 도입했으니 그것이 바로 메가진화다.
1. 메가진화, 진화를 뛰어넘는 진화로 메가스톤을 장착한 포켓몬과 키스톤을 보유한 트레이너의 공명으로 일시적으로 포켓몬이 메가진화를 하는 현상이다. 메가진화를 한 포켓몬은 종족값이 100 올라가며 포켓몬에 따라 특성이나 타입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이 메가진화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팬들은 기대를 모았다. 진화를 뛰어넘은 진화라는 컨셉 자체가 매력적이고 기존의 포켓몬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점도 기대받았다. 무엇보다도 기존 랜덤 매치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던 포켓몬이 메가진화로 살아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팬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메가진화는 실제로 기대받은 역할을 해냈을까?
일단 메가진화는 게임에 잘 녹아드는 데 설명했다. 스토리 상에서도 메가진화를 잘 소개하기도 했고 메가진화한 포켓몬들의 디자인들은 대부분 호평일색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엑와의 추가된 메가진화 중에서는 메가리자몽 X, 메가번치코, 메가가디안, 메가입치트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또 진화를 뛰어넘은 진화라는 컨셉 자체가 좋았기에 메가진화는 빠르게 인정받았고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포켓몬의 메가진화가 나올지 토론하는 일이 다반사였으며 심지어 새로운 메가진화가 등장했다는 가짜 뉴스까지 돌 정도였다.
그러나 메가진화에 장점만 있던 건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점이라면 바로 메가진화를 받은 포켓몬의 라인업이었다. 사람들이 메가진화로 기대했던 것은 상대적으로 약한 포켓몬이 메가진화를 받아 강해지는 것이었고 이를 충족시킨 라인업들도 있었다. 실제로 리자몽이나 입치트는 5세대에서는 약했지만 메가진화를 받고 6세대에서 극적으로 강해진 사례다. 그러나 이런 사례보다는 원래 강했던 포켓몬들이 메가진화를 받고 더 날뛰는 일이 많았다. 솔직히 강함으로만 봤을 때, 마기라스, 한카리아스, 팬텀 이런 친구들이 메가진화가 필요한가? 이 포켓몬들은 메가진화 없이도 강했다. 심지어 한카리아스는 메가진화가 구려서 쓰지도 않는 주제에 점유율 1위를 유지하던 말도 안 되는 사기 포켓몬이었다.
이렇게 된 원인은 메가진화의 선정 기준이 외모, 인기, 게임 밸런스인데 보통 성능이 좋으면 인기도 좋은 법이다. 그런데 인기를 선정 기준에 넣었으니 당연히 메가진화 없이도 강한 포켓몬들이 메가진화를 받고 메가진화가 필요한 마라카치 같은 포켓몬이 메가진화를 못 받는 것이다. 이런 홀대는 오루알사에도 이어져 플라이곤이 메가진화를 못 받는 대참사가 일어나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점은 일부 메가진화에 있었다. 게임 프리크는 메가진화를 기존 진화와 차별화된 능력으로 만드려 했고 그래서 메가진화한 포켓몬에 조금 실험적인 시도를 했다. 그리고 그 실험에 결과 탄생한 대재앙이 바로 메가팬텀과 메가캥카다. 사실 메가캥카는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 비록 메가캥카는 희대의 개사기 포켓몬이긴 했지만 새끼가 튀어나와서 두 번 공격한다고 이렇게 개사기가 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특공 170에 스피드 130 짜리 포켓몬에게 그림자밟기를 달아주자는 제안은 도대체 누가 한 걸까? 메가팬텀은 그때의 제작진이 생각이라는 게 있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참사였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이 있어도 분명 메가진화는 사랑받는 시스템이었다. 비록 제작진은 오루알사에서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메가보만다 같은 끔찍한 포켓몬을 만들곤 했지만 메가진화는 포켓몬과 잘 어울리는 컨셉이었고 모두가 메가진화는 포켓몬이 끝날 때까지 함께할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7세대에서 새로운 메가진화가 등장하지 않으면서 팬들을 걱정하게 만들더니 8세대에서 게임 프리크는 메가진화의 유기를 선언했다. 결국 엑와에서 야심 차게 도입한 새로운 시스템은 얼마가지 못하고 버려졌다.
2. 그러나 메가진화에 의의가 없는 건 아니다. 메가진화는 본가에서는 유기되었지만 다른 스핀오프에서는 지금도 꾸준히 활용되고 있다. 또 메가진화는 포켓몬스터에서 매 세대마다 배틀 기믹을 새로 추가하는 전통을 만들었고 매 세대마다 각 지방의 특색을 살리는 독특한 배틀 기믹이 도입되었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해서 그중 완성도가 가장 높은 건 메가진화였다. 다른 배틀 기믹은 메가진화의 문제점을 반면교사 삼아서 모든 포켓몬에게 적용되는 시스템을 추구했다. 그나마 Z기술과 다이맥스는 일부 포켓몬에게 전용 기믹을 주었지만 테라스탈은 그조차 없었다. 이는 모든 포켓몬이 새로운 배틀 기믹을 쓸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점을 낳았지만 밸런스 붕괴라는 부정적인 점도 낳았다.
메가진화는 각 포켓몬마다 적용되므로 그 포켓몬들만 신경 쓰면 된다. 그러나 다른 배틀 기믹은 모든 포켓몬에 적용되므로 모든 포켓몬의 밸런스를 신경 쓰며 디자인해야 되는데 현실적으로 이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후대의 배틀 기믹은 메가진화보다 더 강하게 악용되었다. 8세대의 다이맥스는 비행 타입 포켓몬, 특히 썬더가 악용했고 9세대에서는 망나뇽이 테라스탈을 악용했다. 그리고 만약 게임 프리크가 썬더와 망나뇽의 사례를 예측해서 이를 막았더라도 제2의 썬더, 망나뇽이 분명히 등장했을 것이다. 애초에 밸런스를 맞추는 게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메가진화는 포켓몬의 배틀 기믹 중 가장 가능성 있는 시스템이었다. 메가캥카, 메가팬텀, 메가보만다 등 일부 하자가 심한 포켓몬들만 교정하면 다른 배틀 기믹보다 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게임 프리크는 이를 수정하기보다는 유기를 선택했으니 이 점이 안타까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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