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포켓몬은 사실 예전부터 단점이 많은 게임이었다. 그래픽은 동 세대 게임과 비교했을 때도 별로였고 스토리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포켓몬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뛰어난 캐릭터 디자인과 바로 잘 만들어진 레벨 디자인에 있었다. 포켓몬 6마리와 함께 체육관 배지를 모으면서 챔피언이 되는 과정 자체가 계속해서 사용해도 질리지 않고 재미있었다. 그러므로 엑와의 레벨 디자인이 건재하다면 스토리가 별로라는 오점은 그저 작은 흠으로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던 게 문제였다.
1. 엑와의 레벨 디자인의 문제점은 바로 학습장치다. 학습장치는 원래 1세대부터 있었던 근본 있는 도구로 포켓몬에게 장착하면 그 포켓몬이 전투에 안 나가도 경험치를 반으로 나눠서 얻는 도구였다. 이 학습장치는 약한 포켓몬을 키워주는 데 도움을 주지만 얻는 경험치의 총량을 늘려주지는 않아서 밸런스가 잘 맞는 도구였다. 그러나 6세대에 와서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6세대에서 학습장치는 중요한 도구로 바뀌어 전원을 켜면 모든 포켓몬이 경험치를 나눠 받는 도구로 바뀌었다. 사실 여기까지만 보면 굳이 경험치를 6분의 1씩 나눠서 받는 정체불명의 도구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경험치 공식이 바뀌면서 경험치를 나눠 받을 때, 총량이 줄지 않도록 바뀌었고 그 결과 학습장치를 사용하면 배틀에 나간 포켓몬은 100%의 경험치를, 그렇지 않은 포켓몬은 절반을 받도록 바뀌어 총 350%의 경험치를 얻었다.
기존에 비해 350%의 경험치를 받는다는 이야기는 단순히 레벨업이 빨라진다를 넘어 너무나도 쉽게 플레이어가 NPC의 레벌을 초과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상대보다 레벨이 높다는 건 포켓몬에서 전략의 중요도가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의미다. 레벨이 심하면 5~10까지도 차이 나는데 누가 머리를 쓰면서까지 게임을 할까? 급격하게 떨어진 난이도는 게임의 재미를 없애버린다. 학습장치는 엑와의 게임 플레이를 재미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엑와의 레벨 디자인 문제를 학습장치에만 덮어씌우는 것은 불공평하다. 학습장치는 엄연히 전원을 켜고 끌 수 있는 중요한 도구다. 그러니까 학습장치의 사기적인 성능이 거슬린다면 전원을 끄고 원래 포켓몬 게임을 하던 것처럼 하면 된다. 그러면 포켓몬을 어려워하는 초보자들은 학습장치를 켜고 쉽게 하면 되고 반대로 숙련자들은 학습장치를 끄고 하면 된다. 학습장치가 일종의 난이도 선택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깨달은 숙련자들은 학습장치를 껐고 곧 엑와의 레벨 디자인이 학습장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단 전통적으로 포켓몬 게임은 초반이 제일 어렵다. 관동지방의 이슬이나 성도지방의 꼭두가 어려운 이유는 이들이 강한 포켓몬을 얻지 못하는 초반에 나와서였다. 그리고 엑와의 레벨 디자인은 이를 충족시키기에는 하자가 있었다. 가장 큰 문제라면 첫 번째 체육관과 두 번째 체육관 사이의 간격이 너무 길다. 백단시티에서 비올라를 이기고 난 뒤, 다음 체육관을 가려면 3개의 도시와 6개의 도로를 거쳐야 한다. 당연히 그 사이에 포켓몬을 잡고 트레이너를 상대하면서 파티가 풍성해지고 자연스럽게 두 번째 체육관은 초반부가 아니게 된다. 그러니 다른 포켓몬이 했던 것처럼 초반에 강한 보스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다른 지방의 경우, 관동지방은 달맞이산만 넘으면 바로 이슬이 나오고, 성도지방은 너도밤나무숲만 지나도 금빛시티가 나온다. 둘의 체육관 간격이 짧으므로 이슬과 꼭두라는 임팩트 있는 보스가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엑와는 그 간격이 너무 길었고 자연스럽게 초반부의 강한 보스는 물 건너갔다.
하지만 포켓몬에 강한 후반부 보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라면 하골소실의 레드나 DPPT의 난천, BW의 게치스가 이 예다. 그러나 엑와는 이들을 모범으로 삼아 강한 후반부 보스를 만드는 데도 실패했다. 먼저 레드의 경우는 레벨이라는 요소가 가장 강하게 자리 잡은 사례다. 일반적인 플레이 시, 레드는 플레이어의 포켓몬보다 거의 10~20의 차이가 나고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두 개의 지방을 다루는 하골소실의 특권이므로 다른 지방에서는 적용할 수 없는 예다.
하지만 난천과 게치스는 어떨까? 둘의 공통점은 라인업과 기술 배치가 매우 튼튼하다는 것이다. 난천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하나하나가 강력하며 게치스 역시 그의 에이스 삼삼드래를 필두로 약점이 없는 저리더프, 마찬가지로 약점이 하나인 두빅굴, 넓은 기술폭으로 플레이어를 압박은 버프론과 절각참, 맹독과 방어로 플레이어를 골치 아프게 하는 데스니칸이 있다.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를 치밀하게 만들었기에 다양한 포켓몬과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후반부에도 강한 보스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엑와는 어떨까? 일단 포켓몬 리그 전까지 대부분의 캐릭터는 기술 배치부터가 문제다. 정확히는 포켓몬의 기술을 다 채우지도 않은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포켓몬을 키울 때 기본이라면 포켓몬이 최대로 배울 수 있는 기술 4가지를 다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데 엑와의 캐릭터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는 체육관 관장도 마친가지이고 라이벌도 마찬가지며 플라드리 역시 예외가 아니다. 배우는 기술부터가 이런데 어떻게 강한 후반부 보스가 나올 수 있겠는가?
다행히 포켓몬 리그에 진입하면 이 문제는 개선된다. 그러나 강한 보스 역할을 해야 할 사천왕은 포켓몬을 단 4마리만 쓰기 때문에 강한 보스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챔피언인데 사실 카르네 자체는 학습장치가 없다면 꽤 괜찮은 완성도의 보스다. 하지만 스킨류 특성을 기술 배치로 자체 봉인해서 메가가디안이라는 포켓몬을 백 퍼센트 활용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그래서 엑와는 인상 깊은 보스전이 없는 게임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게임도 지루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2. 그렇게 엑와는 스토리도 구리고 게임 플레이도 아쉬운 그저 그런 작품으로 남았다. 물론 엑와는 3D 그래픽과 대각선 이동, 편의성 개선이라는 장점도 있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이를 지금까지의 포켓몬과 비교하면 엑와는 확실히 아쉬웠다. 개인적으로는 3D 그래픽이라는 혁신을 위해 디테일이 망가진 그런 작품이지 않았나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엑와에게 필요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엑와의 문제점을 고친 지가르데가 주역으로 나오는 Z 버전이었다. 하지만 게임 프리크는 어째서인지 칼로스지방을 유기하기로 결정했고 결국 이는 엑와를 재평가의 여지가 없는 작품으로 만드는 데 못을 박았다. 그렇게 엑와는 포켓몬의 하락기를 시작한 작품으로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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