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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의 빌런들 (4)

삶은계-란 2023. 4. 11. 23:29

※ 이 글에는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2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수많은 창작물에서 우주 개척 시대가 되면 등장하는 것, 바로 세계 정부다. 은하를 놓고 싸우는 SF에서 지구에 집중할 필요는 없고 그래서 굳이 수많은 지구의 국가들을 묘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스타크래프트에서도 세계 정부는 존재한다. 그리고 수많은 세계 정부처럼 이곳의 세계 정부도 빌런에 가깝다.

 

연합에 충성해라. 인류에 충성하라. 승리 외에는 그 무엇도 중요치 않다!
- 제라드 듀갈, UED 원정 함대 총사령관
인류는 다시 부흥하리라!
- 오스마르 가리토스 <워크래프트 3>

 

2. 지금으로부터 먼 미래의 지구, 지구는 혼란에 빠졌다. 환경은 오염되고 전쟁은 일상이었다. 이런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결성된 것이 강대국 협의회, UPL이었다. UPL은 지구의 대부분을 통합한 뒤, 대정화 운동으로 언어, 문화 통일 운동을 벌였으며 이를 반대하는 세력을 전부 숙청했다. 한편, UPL은 포화 상태의 인구수를 해결하기 위해 4대의 우주선에 사람을 태워 외우주를 개척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러나 우주선들은 원래의 목적지가 아닌 코프룰루 구역에 착륙, 각각 테란 연합, 켈모리안 조합, 우모자 보호령의 전신이 된다. 비록 예상치 못한 착륙이었지만 UPL은 그들을 감시함과 동시에 새로운 우주 개척 계획을 진행하였다.

 

 그러던 중, 엄청난 일들이 발생했다. 강대했던 테란 연합이 붕괴하고 저그와 프로토스는 새로운 종족이 감시 체계에 포착된 것이다. 이런 예상치 못한 일들을 목격한 지구의 다른 국가들은 충격을 받고 제 발로 UPL에 합류했다. 그렇게 모든 국가가 합류한 UPL은 지구 집정 연합, UED로 재탄생했다. UED는 저그와 프로토스를 수개월 간 관찰하였으며 이들과 군사적으로 상대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UED는 전쟁영웅 제라드 듀갈 제독을 필두로 한 원정대를 꾸려 코프룰루 구역에 출동시켰다.

 

 이 때, UED의 목적은 세 가지였다. 첫 번째, 테란 자치령의 제거. 두 번째, 저그의 노예화. 세 번째, 코프룰루 구역 내 프로토스 활동의 무력화. 이 세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듀갈 제독과 함대는 그들이 모르는 미지의 세계, 코프룰루 구역으로 떠났다.

 

 UED의 원정 초반은 순조로웠다. 테란 연합의 저항군이었던 사미르 듀란 중위의 도움을 받은 UED는 차근차근 자치령을 공략한 뒤, 자치령의 수도였던 아우구스트그라드를 함락, 자치령 정복에 성공했다. 그러나 자치령의 황제 멩스크를 체포하는 데는 실패했고 멩스크를 놓친 UED에서 내부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발단은 사이오닉 분열기였다. 사이오닉 분열기를 확보한 뒤,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논의할 때, 듀갈의 오랜 친구이자 부제독인 스투코프는 사이오닉 분열기의 활용을, 듀란은 파괴를 주장하였다. 듀갈은 듀란의 의견을 받아들여 사이오닉 분열기를 파괴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스투코프는 이를 몰래 빼돌려 비밀 시설에서 재조립했던 것이다. 듀갈은 이를 듣자 듀란에게 스투코프를 적절히 처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듀란은 스투코프를 보자마자 발포, 그를 죽였다. 하지만 스투코프는 죽기 직전 듀란이 진짜 배신자라는 것을 밝히고 진실을 깨달은 UED는 사이오닉 분열기를 다시 확보했다. 그리고 사이오닉 분열기를 이용해 차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UED는 고도의 과학과 약물의 힘으로 미성숙한 초월체를 지배하는 데 성공하며 잠시지만 코프룰루 구역의 지배자가 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칼날 여왕은 이 모든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는 과거의 적이었던 멩스크와 레이너 특공대와 힘을 합쳐 UED에 반격을 꾀했다. 칼날 여왕은 이들을 적절히 활용해 사이오닉 분열기를 파괴했으며 점령당한 코랄을 탈환했다. 그리고 이들을 배신한 칼날 여왕은 다시 네라짐을 이용해 UED가 지배하고 있던 미성숙한 초월체를 파괴했다. 그렇게 저그의 통제권을 잃은 UED는 최후의 발악으로 멩스크와 아르타니스와 힘을 합쳐 차 알레프에서 칼날 여왕을 공격했다. 그러나 그 공격마저도 실패하고 모든 것을 건 UED 군대는 결국 후퇴 도중 전멸하고 말았다.

 

3. UED는 한 때 강대한 세력으로 코프룰루 정복에 가장 가까웠던 세력 중 하나였다. 그러나 UED는 멀디 먼 코프룰루의 특성상 소수 정예로만 군대를 데리고 와야 했고 자연스럽게 공격 시엔 뛰어난 첩보 능력을 통한 병력 집중으로 쉽게 자치령과 저그를 공격하며 승승장구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방어 시에 상대 편의 집중 공격을 막아내기에는 부족했다. 거기에 UED는 테란을 2등 민족으로 무시하였고 그 결과 UED는 테란의 민심을 얻는 데 실패했다. 이는 레이너 특공대 등 유능한 테란들이 UED의 적이 된 것은 물론이고, 소수 정예였던 UED의 보급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거기에 UED는 승리를 위해 저그를 이용하는 등, 기존의 빌런들이 사용하는 방식을 사용했으며 UED의 사상도 파시즘, 전체주의, 군국주의에 가까웠다. 그런 점에서 UED를 선역으로 볼 수는 없다. UED는 명백히 빌런이었으며 UED의 악행은 그들을 승리에 가깝게 만들었지만 궁극적으로 그들을 파멸로 이끌었다.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 UED는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인류 세력이었다. 오리지널의 테란은 저그와 프로토스라는 강대한 외계인의 싸움에서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약자 입장이었고 이는 플레이어들이 테란, 특히 짐 레이너에 이입해 얼핏보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수 있는 스타크래프트의 이야기를 조금 더 실감 나게 볼 수 있게 했다. 그러나 UED는 테란과는 정반대의 컨셉인 강한 인류였다. UED는 강한 인류의 포지션에서 한 때 코프룰루를 정복할 뻔하는 모습을 보이며 많은 팬들을 만들었고 지금도 스타크래프트의 팬덤 중에는 UED 팬덤의 수가 꽤 있는 편이다. UED는 스타 2에 등장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만 UED의 성공은 대전쟁 직후 혼란스러웠던 코프룰루 구역의 상황을 적절히 이용한 것과 UED도 몰랐던 사이오닉 분열기의 존재가 컸다. 이걸 감안하면 더 성장한 코프룰루 구역의 세 종족이 건재한 상황에서 첩보망도 사라진 UED가 1차 원정보다 더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므로 스타크래프트 2에 UED가 등장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이를 반영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다만 스타크래프트 2에 UED는 끝내 등장하지 못했지만 지금도 UED의 팬덤은 건재하다는 점에서 UED의 도입은 스타크래프트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은 좋은 선택이었다.

 

케리건, 여기는 듀갈 제독이다. 병력을 포기하고 지구 집정 연합에 주권을 양도할 마지막 단 한 번의 기회를 주마.
- 제라드 듀갈, UED 원정 함대 총사령관
오 주인이시여, 질투를 조심하시옵소서. 질투는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여 먹이로 삼는 녹색 눈을 한 괴물이니까요.
- 이아고 <오셀로>

 

4. UED를 이야기할 때, UED 원정 함대 총사령관이자 제독, 제라드 듀갈을 빼놓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라드 듀갈은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며 성인이 되자 군인의 길을 걸었다. 그는 군인으로서 수많은 적들로부터 인류를 지켰으며 그 중에서는 이스한티 반란도 있었다. 듀갈은 그 과정에서 군부와 UPL의 신임을 얻었고 새롭게 창설된 UED의 지배 위원회에 군부 대표로 참석할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듀갈은 큰 힘을 가졌으나 올곧았고 UED는 그를 원정 함대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그 총사령관이란 자리는 단순히 지휘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군정권, 군령권 더 나아가 코프룰루 구역의 총독으로 인정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코프룰루 구역 내에서 듀갈은 철권통치를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자리에 올랐다.

 

 총사령관이 된 듀갈은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부사령관인 스투코프와 함께 원정군을 이끌고 코프룰루 구역으로 떠났다. 그리고 듀갈은 2번 항목에서 적었던 것처럼 UED의 총사령관으로서 원정을 지휘했다. 그러나 원정은 실패로 끝났고 UED의 남은 선택은 후퇴였다. 하지만 6만 광년 이상 떨어진 지구로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고 듀갈은 자신이 했던 잘못을 참회하며 자살을 선택했다. 그리고 듀갈이 남긴 유서도 승전보도 지구로 전달되지 못했고 UED 원정 함대는 전멸하고 말았다.

 

5. 위에서는 UED 전체를 기준으로 UED의 평가를 했다면 이제는 듀갈을 기준으로 해보겠다. 먼저 듀갈은 전쟁영웅이었고 재래식 전술에 대한 신뢰가 강했다. 이 재래식 전술에 대한 신뢰는 원래 나쁜 것이 아니다. 전술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도 아니고 군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성이다. 이미 검증된 전술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군대에서 보편화된 이유다. 하지만 코프룰루 구역에서의 전쟁은 달랐다. 애초에 적부터 같은 인간과 저그와 프로토스로 천지차이로 달랐고 그에 맞는 전술, 전략까지 모두 달라야 했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믿음이 너무 강했던 듀갈은 이를 무시했고 그 결과는 스투코프의 죽음이었다.

 

그리고 듀갈은 올곧고 바른 인간이었으나 반대로 유연하지 못했다. 이 점은 스투코프와는 정반대였는데 그랬기에 스투코프가 볼 수 있었던 것을 듀갈은 보지 못했고 듀란이 스투코프가 배신했다고 모함했을 때, 그는 눈치채지 못하고 스투코프를 의심하며 듀란에게 스투코프 처리의 전권을 넘겨주었다. 스투코프의 죽음은 막을 수 있었으나 그가 막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스투코프가 살아있었다면 UED 원정 후기 당시의 연패도 아마 막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듀갈은 좋은 사람이었다. 듀갈은 가족을 사랑했고 친구와의 관계도 원만했다. 하지만 그는 원정 함대의 총사령관이었다. 그는 총사령관으로서 UED의 악행을 막기는 커녕 계획된 악행을 충실히 따랐으며 그의 통치는 결국 멩스크의 철권통치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듀갈을 선역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적어도 마지막 순간에 보인 모습을 보아, 그가 인간적인 빌런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거시적으로 듀갈은 좋은 빌런이었다. 그는 UED의 강대한 지도자로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고 UED의 몰락기에도 그 카리스마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인간적인 최후는 많은 사람들을 UED의 팬으로 만들었다. 비록 UED도 듀갈도 스타크래프트 2에서는 비중이 미미했지만 적어도 그들이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에 기여한 공헌은 기리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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