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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의 빌런들 (5)

삶은계-란 2023. 4. 12. 18:46
내가 바로 칼날 여왕이다.
- 칼날 여왕
너는 내게 뭘 제시할 입장이 아니다, 제독. 그리고 나는 포로 따위는 잡지 않아. 이렇게 하자. 기수를 돌려 지구로 돌아가라. 먼저 출발할 수 있게 해주마. 그 후에 군단이 널 뒤쫓겠다. 네가 죽기 전에 얼마나 멀리까지 갈 수 있을지 한 번 보자꾸나.
- 칼날 여왕
배반당하는 자는 배반으로 인해서 상처를 입게 되지만 배반하는 자는 한층 더 비참한 상태에 놓여지게 마련이다.
- 셰익스피어, 영국의 극작가

 

1. 누군가가 블리자드 역사상 가장 성공한 빌런을 누구냐고 묻는다면 필자는 칼날 여왕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 공포의 악마 디아블로보다도 그 패륜아 아서스 메네실보다 더 위대하고 더 성공했으며 더 작품을 빛낸 빌런, 그것이 스타크래프트 1의 칼날 여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우주 최고의 악녀로 자신보다 강하다고 평가받은 세력들을 힘으로 그리고 계략으로 이겨냈으며 상대방을 비꼬는 특유의 대사는 사람들을 화나게 함과 동시에 매력을 느끼게 했다. 그러므로 칼날 여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는 것은 이 글을 쓰면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 시리즈를 집중해서 본 사람들이라면 이 시리즈에서 스타 1의 케리건, 정확히는 저그 케리건을 케리건이라 하지 않고 칼날 여왕이라고만 칭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블리자드의 설정을 존중해서 그런 것인데, 쉽게 말하자면 저그 감염 이후, 자유의 날개까지의 빌런 케리건은 아몬의 영향을 받은 칼날 여왕으로, 그 뒤의 아몬의 영향이 없는 케리건을 그냥 케리건이라 부르는 것이다. 블리자드는 군단의 심장 이후, 칼날 여왕 시절 케리건은 사실 아몬의 영향을 받은 기존의 케리건과는 다른 자아였다고 언급하는 만큼 그 설정을 존중하는 것이다.

 

2. 그렇다면 이제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칼날 여왕이 되기 전부터 사라 케리건은 굴곡진 삶을 살아왔다. 그녀는 강한 사이오닉 능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 대가로 많은 사람에게 핍박받아야 했다. 그녀는 강제로 테란 연합의 유령이 되어 끔찍한 임무를 저질러야 했고 그중에서는 멩스크의 가족을 암살하는 것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를 그 끔찍한 상황에서 구해준 것은 멩스크였고 멩스크는 케리건을 용서하는 척했다. 당연히 케리건은 멩스크를 충실히 따랐다.

 

 그 뒤, 케리건은 코랄의 후예의 일원으로서 활약했다. 당시 케리건은 코랄의 후예에 합류한 레이너와 연인 관계가 되는데 처음에는 레이너의 엉큼한 생각을 보고 정색했지만, 그 둘은 점점 가까워져 끝내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하지만 멩스크는 케리건에게 사실상 자살 임무를 맡겼고 멩스크에게 은혜가 있던 케리건은 그 임무 수행에 성공했지만 멩스크는 그제 와서 발톱을 드러내고 그녀를 배신했다. 그렇게 케리건은 저그에게 죽음을 맞았다. 정확히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케리건의 사이오닉 능력을 본 초월체는 그녀를 죽이는 대신, 자기 대신 저그를 이끌 차기 지도자감으로 여겼다. 초월체는 아바투르에게 명령해 그녀를 칼날 여왕으로 개조하게 했다. 이렇게 칼날 여왕이 탄생했다. 칼날 여왕은 먼저 자신의 신경제어기를 무력화한 다음, 차 행성에서 프로토스들과 맞붙었다. 테사다르가 칼날 여왕의 시선을 끄는 사이 제라툴은 자스를 암살하는 데 성공하고 칼날 여왕은 태사다르에게 당했음을 인정한 채 남은 기사단을 처리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리고 그동안 초월체는 아이어를 침공하다 태사다르에게 최후를 맞았다. 저그의 최고 지도자는 죽었고 이제 그 자리를 누가 차지해야 할지만 남았다. 종족 전쟁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칼날 여왕은 그 상황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다고스와 미성숙한 초월체가 이끄는 저그 반란군보다 병력이 부족했던 칼날 여왕은 그 차이를 프로토스와 연합하여 메꾸려고 했다. 프로토스도 샤쿠라스의 저그를 몰아내기 위해 협력이 필요했던 만큼,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칼날 여왕은 그 사이에 네라짐의 지도자, 라자갈을 세뇌하는 데 성공한 상태였다. 비록 알다리스가 예상치 못한 내전을 일으키며 그의 입을 막느라 그를 죽이는 바람에 프로토스와의 연합은 깨졌지만 칼날 여왕은 이미 목적을 다 이루었다.

 

 그러나 그 사이, UED가 코프룰루 구역을 공격하여 자치령은 물론이고, 저그 반란군까지 진압에 성공, 저그를 손에 넣는 전무후무한 사태가 벌어졌다. 위기를 느낀 칼날 여왕은 불구대천지원수였던 멩스크와 과거의 인연이 있던 레이너 특공대와 힘을 합쳐 UED에 대항했다. 먼저 칼날 여왕은 자신의 통솔을 방해하는 사이오닉 분열기를 파괴한 뒤, 바로 코랄을 공격하여 코랄을 탈환해 UED를 약화시켰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자치령과 레이너 특공대가 필요 없다는 것을 느낀 칼날 여왕은 바로 이 둘을 배신, 멩스크의 오른팔인 듀크와 레이너의 친우였던 피닉스를 살해했다. 이때, 멩스크를 죽이지 않은 것은 멩스크가 무능한 인간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는데 이 판단은 엄청난 오판이었던 것으로 밝혀진다.

 

 그 다음으로 칼날 여왕은 텔레마트로스를 정전시킨 것과 동시에 라자갈을 납치, 이를 이용해 제라툴에게 미성숙한 초월체를 죽이라고 협박했다. 제라툴은 하는 수 없이 그 말을 따라 미성숙한 초월체를 제거했으나 칼날 여왕은 그를 비웃으면서 라자갈이 계속 세뇌되었다는 진실을 알려주었다. 제라툴은 어떻게든 라자갈을 데리고 차 행성 탈출을 시도했으나 실패, 결국 라자갈을 죽인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를 본 칼날 여왕은 비웃으면서 그를 동정해서가 아니라, 그가 평생 자신이 존경하는 지도자이자 스승을 죽였다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라는 의도로 제라툴을 의도적으로 놔주었다.

 

 하지만 이런 칼날 여왕의 행보는 수많은 적을 만들었으니, 자신의 패권을 망치고 많은 부대를 잃은 UED, 자신을 배신하고 신뢰하던 부하를 잃은 멩스크, 칼날 여왕에게 이용만 당하고 수많은 영웅을 잃은 프로토스가 일시적으로 힘을 합쳐 칼날 여왕을 공격해 왔다. 그러나 칼날 여왕은 이 공격을 모두 막아내는 데 성공했고 UED 만큼은 끝까지 쫓아가 그들을 모두 몰살했다. 그렇게 칼날 여왕은 저그 반란군을 자신에게 무릎 꿇리는 데 성공했으며 UED의 침공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그러나 마지막 전투로 저그 군단도 꽤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칼날 여왕은 4년 동안 휴식기를 가지면서 새로운 유닛을 만드는 등 내부 안정 기간에 들어갔다.

 

 그리고 4년 뒤, 칼날 여왕은 다시 대대적 침공을 가하며 코프룰루 구역을 공격했다. 그러나 4년 전 피닉스를 잃어야만 했던 레이너는 칼날 여왕에게 이를 갈고 있었고 그는 자치령과 손을 잡는 선택까지 하며 차 행성을 공격했다. 칼날 여왕은 온갖 수로 그를 막으려 했지만 실패했고 레이너는 젤나가 유물로 칼날 여왕을 정화, 그도 모르는 사이에 피닉스의 원수를 갚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한 때, 우주 최강의 X년, 우주 최악의 악녀, 칼날 여왕의 최후였다.

 

3. 칼날 여왕은 종족 전쟁에서 놀라울 만큼의 성공을 거두었다. 그녀는 프로토스, 자치령, 레이너 특공대 등을 이용하며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고 그들이 쓸모가 없어지자 마자 바로 그들을 배신했다. 그리고 이런 배신과 계락을 통해 칼날 여왕은 종족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자가 되었다.

 

 그러나 칼날 여왕은 스타크래프트의 대표적인 빌런으로도 평가받는다. 그녀의 대표적인 악행으로는 피닉스 살해 건이 있는데, 당시 레이너는 케리건과 연인이었기 때문에 칼날 여왕을 믿고 있던 상태였다. 그러나 칼날 여왕은 그 믿음을 보란 듯이 배신하고 피닉스를 죽였고 레이너는 너무 큰 배신감을 느낀 나머지 반드시 칼날 여왕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겠다고 맹세하는 계기가 된다.

 

 또 다른 악행으로는 라자갈 건이 있는데, 네라짐의 지도자였던 라자갈을 세뇌한 뒤, 그녀를 조종한 것도 모자라 라자갈을 해방시키기 위해 제라툴이 눈물을 머금고 그녀를 죽이자, 평생 고통 속에서 살라고 제라툴을 조롱하는 모습은 만인이 분노할 정도였다. 거기에 차 알레프에서의 전투도 성공적으로 승리한 칼날 여왕은 포로는 필요 없다고 조롱하면서 UED를 몰살했다. 비록 우주에서도 제노바 협약이 적용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후퇴하는 병사를 한 명도 안 살려두고 몰살하는 것은 분명 악행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용서받지 못할 악행은 칼날 여왕의 결국 발목을 붙잡았다. 칼날 여왕은 코프룰루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세력에 어그로를 끌었으며 그 결과 자유의 날개에서 자치령과 레이너 특공대의 연합이라는 말도 안되는 연합이 탄생했다. 그리고 그 악행에 대가로 칼날 여왕은 변변치 못한 유언도 남가지 못한 채 정화되어 사라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참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거시적으로 브루드워에서의 칼날 여왕은 작품에서 훌륭한 역할을 했다. 브루드워에서 기억나는 스토리하면 칼날 여왕이 모두를 배신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생각하면 칼날 여왕은 브루드워를 명작이라고 불리게 하는 요소였다. 그러나 자유의 날개에서의 칼날 여왕은 실망스러웠다. 

 

 일단 가장 중요한 점은, 자유의 날개에서 칼날 여왕은 생각보다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저그와 싸우는 임무는 대부분 칼날 여왕과 싸우는 거지만 칼날 여왕이 직접적으로 등장해서 임팩트를 끼치는 임무는 최종 임무를 제외하면 얼마 되지 않는다. 이는 칼날 여왕의 가장 큰 매력인 특유의 비꼬는 대사를 들을 수 있는 빈도가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이 점은 빌런으로서 칼날 여왕의 매력을 줄인 안타까운 선택이 되었다.

 

 또 다른 점이라면, 바로 칼날 여왕의 최후가 너무 간략하게 끝났다는 점이다. 칼날 여왕은 최후의 임무에서 유물로 정화되어 죽는다. 그러나 칼날 여왕과 사라 케리건이 다른 인격이라는 것이 너무 간략하게 표현되었으며 정화될 때의 과정도 너무 단출했다. 칼날 여왕은 별 다른 유언도 못 남기고 유물이 띡 작동하더니 사라진 것이다. 거기에 케리건을 구하는 과정에서 타이커스가 케리건 암살을 시도하는 장면까지 나오니 자연스럽게 칼날 여왕의 최후는 애초에 저 멀리 흘러간 셈이 되었다.

 

 그런 관계로 자유의 날개에서 칼날 여왕은 브루드워 만큼의 포스를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칼날 여왕이 최종 보스로 나오는 마지막 임무의 난이도가 매우 어려운 관계로 그쪽으로는 포스를 매우 많이 발휘하기는 했지만 자유의 날개에서의 칼날 여왕은 브루드워에서의 유니크한 빌런이 아니라 그냥 흔한 우주 정복을 하려는 빌런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그 점이 자유의 날개 스토리의 옥에 티가 되었다.

 

4. 이것으로 칼날 여왕, 그리고 스타크래프트의 빌런에 관한 글을 적었다. 사실 더 마이너한 빌런들이나 스타 2에서 더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빌런이 남아있지만 그건 스타크래프트 2의 빌런이지 스타크래프트의 빌런이 아니기도 하고 여기서 흐름을 끊고 가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 일단 이 편을 마지막으로 이 시리즈를 마친다. 이 글을 쓰면서 느낀 점이라는 것은 확실히 과거의 블리자드는 빌런을 잘 만들었다는 점이었다. 흔히 익숙한 초월체, 멩스크, 칼날 여왕은 물론이고 알다리스나 듀갈 같은 조금 더 마이너한 빌런들의 완성도도 뛰어난 편이며 이는 스타크래프트의 스토리가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받는 이유라고도 생각한다. 지금의 블리자드는 게임이나 스토리에서 조금 헤매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과거를 되돌아보고 자신들이 어떻게 빌런을 설계했는지를 다시 배운다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라 생각하며 이번 시리즈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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