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스타크래프트의 빌런들 (2)

삶은계-란 2023. 4. 10. 23:08

※ 이 글에는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2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지난번에는 테란을 대표하는 대표적인 빌런인 듀크와 멩스크에 대해 알아보았다. 듀크와 멩스크는 각각 역할은 약간 달랐지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스토리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기여했다. 그렇다면 저그는 어떨까? 스타크래프트 안에서 가장 빌런다운 역할을 하는 저그의 빌런에 대해 알아보자.

 

2. 저그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위대한 지도자가 누구인지 저글링들에게 물어보면 누구라고 답할까? 아마도 저글링들은 풀 뜯어먹는 소리로 초월체라 답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오버마인드라는 이름으로도 익숙한 초월체는 저그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강력한 지도자이자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빌런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초월체는 도대체 어떤 빌런이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저그의 기원부터 탐구해보아야 한다.

 

 타락한 젤나가 아몬은 아이어에서 평화롭게 살던 프로토스를 강제로 진화시켜 자신들의 장기짝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하는 수 없이 아몬은 아이어를 떠나야 했다. 그런 아몬이 새롭게 선택한 종족이 저그다. 제루스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던 저그들에게 접촉한 아몬은 프로토스처럼 그들을 강제로 진화시켰다. 다만 프로토스에게 자유의지가 있어서 일을 망쳤다는 것을 안 아몬은 저그를 자유의지가 없는 새로운 구조로 재탄생시켰다. 마치 저그라는 종족을 하나의 생물체로 만든 것인데 저글링이나 히드라 같은 유닛을 장기로, 정신체를 신경 세포로, 마지막으로 초월체를 뇌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반대로 제루스에서 태초에 모습을 유지한 채 진화한 종족을 원시 저그라고 하는데 이 원시 저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나중에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일단, 초월체에 집중하자.

 

 저그의 유일한 지도자가 된 초월체는 아몬에게 두 가지 명령을 받는다. 하나는 저그를 번영시킬 것, 다른 하나는 아몬에게 무조건 충성할 것이었다. 초월체는 그 말을 충실히 따랐다. 그는 제루스에 살던 생물들을 흡수해 저그로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저그는 우주 항행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초월체와 저그는 아몬의 충직한 하수인으로서 젤나가들 간의 전쟁에 참가, 젤나가들을 전멸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면 바로 전멸한 젤나가 중에는 아몬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아몬이 일단 죽고 난 뒤, 초월체는 죽은 젤나가들의 지식을 흡수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 지식에는 저그와의 형제 종족인 프로토스, 그리고 아몬의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몬의 계획이 성공한다면 저그는 몰락할 것이다. 그렇다면 저그의 번영은 실패로 돌아간다. 반대로 저그를 번영시키려면 아몬에게 거역해야 한다. 그러나 초월체는 아몬을 거역할 능력이 없었다. 초월체에게는 힘과 지식이 모두 있었지만 진정한 자유의지만큼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초월체는 결국 아몬의 명령을 따른다. 그러나 프로토스의 본성, 아이어만의 위치는 몰랐기 때문에 아이어의 위치도 알아내고 저그에게 유용한 생명체를 흡수도 할 겸, 코프룰루 구역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그리고 마침 코프룰루 구역에는 테란이라는 신생 종족이 있었다. 테란의 사이오닉 잠재력을 눈여겨본 초월체는 이들을 흡수하기 위해 테란을 공격한다. 그리고 뜻밖에도 초월체는 엄청난 행운을 맞이한다. 테란, 어쩌면 프로토스도 능가할 수 있는 잠재력의 소유자인 사라 케리건을 포획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아몬의 계획을 알고 있던 초월체는 자신 대신 저그의 번영을 이끌 후계자로 케리건을 선택한 뒤, 그녀를 칼날 여왕으로 재탄생시킨다. 

 

 하지만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칼날 여왕마저 속이는 데 성공한 태사다르와 제라툴은 초월체의 심복 정신체 중 하나인 자스를 암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우연히 그 과정에서 초월체와 제라툴의 의식이 연결되고 초월체는 아이어의 위치를 알아내는 데 성공한다. 초월체는 전 저그를 이끌고 아이어 침공을 개시했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초월체는 아이어의 완전 함락과 프로토스의 흡수라는 목표 달성에 거의 근접했지만 결국 태사다르의 영웅적 희생에 힘입어 결국 아이어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이 이후, 저그 군단은 두 번 다시 초월체가 이끌던 수준의 통합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초월체의 유산, 칼날 여왕은 훗날 아몬의 야망을 막는 1등 공신이 된다.

 

3. 이 정도로 초월체의 삶을 알아보았으니 이제 초월체를 한 번 분석해보자. 초월체의 목적은 단 하나 바로 저그의 번영이었다. 그가 한 모든 악행은 전부 저그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몬의 계획을 안 뒤, 초월체가 존재하는 것이 바로 저그의 번영을 해친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그는 자신 대신 저그를 이끌 존재 칼날 여왕을 탄생시킨다. 하지만 칼날 여왕을 탄생시킨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아이어에서 목숨을 잃는 것이 초월체의 목표는 아니었을 것이다. 초월체 사후, 칼날 여왕은 저그 내에서 매우 불안한 입지를 지녔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또, 아이어 침공부터가 자스의 암살이라는 초월체가 예상치 못한 변수로 생긴 일임으로 초월체의 입장에서 그가 너무 일찍 죽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초월체의 진짜 계획은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칼날 여왕을 공식적인 초월체의 후계자로 입명하고 그녀를 저그 군단의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충분히 부여한 다음 죽는 것이었다. 하지만 초월체는 너무 일찍 죽었고 그 결과 심복 정신체들은 칼날 여왕이 아닌 새로운 미성숙한 초월체를 만드는 선택을 하였다. 이는 초월체가 전혀 원하는 일이 아니었으나 다행히 칼날 여왕의 계략과 권모술수로 칼날 여왕은 저그 군단의 지도자가 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칼날 여왕조차 저그에 대한 지배력은 초월체보다 훨씬 부족했으니 이는 생전 초월체가 가진 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준다.

 

 초월체 사후, 칼날 여왕 또는 케리건은 아몬을 물리치고 우주를 구하는 데 큰 공헌을 한다. 실제로 자신을 태사다르라 칭하는 오로스 역시 초월체를 용기있는 생명체라고 치하했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초월체는 사실 빌런이 아니라 우주를 구한 영웅이 아니었을까? 아니다. 초월체의 목표는 우주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의 생존이 아니었다. 초월체의 목표는 오직 저그의 생존이었다. 그리고 초월체는 프로토스나 테란을 공격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만약, 테란이나 프로토스의 영웅들이 초월체를 막지 못했다면 설사 칼날 여왕이 우주를 구했더라도 그 우주는 저그만의 우주가 되었을지언정, 저그, 테란, 프로토스 세 종족이 어우러지는 우주가 되지는 못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초월체를 안티 히어로 또는 히어로로 보는 시각은 부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초월체가 적어도 거대한 악의 하수인으로 남은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종족을 위해 주인을 배신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존재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 오로스가 초월체를 용기있는 생명체라 말했던 것이다.

 

 거시적으로 봤을 때, 초월체는 좋은 빌런이었다고 생각한다. 저그 캠페인에서 보여주는 리더십과 카리스마, 그리고 프로토스 캠페인에서 막대한 저그 병력으로 표현되는 엄청난 절망감은 자신의 주인인 아몬보다도 더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초월체가 우주를 구원하기 위한 영웅을 탄생시킨 것은 맞지만 그것은 저그를 위해서였지 우주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런 점을 생각했을 때, 위 설정이 오히려 죽은 초월체의 설정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4. 그렇다면 그 초월체들의 충실한 하수인, 정신체들은 어떨까? 정신체들은 위에서 나왔듯이 초월체들을 보좌하기 위한 생명체다. 그들은 초월체보다는 못한 지능이 있지만 초월체를 거역할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초월체 생전에,정신체들은 초월체를 보좌하는 충직한 신하들이었다. 비록 초월체가 편애하던 칼날 여왕에 대한 반감이 있긴 했지만 그들에게는 자유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칼날 여왕을 건드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초월체가 아이어에서 비명횡사하자 이야기는 바뀌기 시작했다. 명목상 초월체의 후계자는 칼날 여왕이었지만 칼날 여왕은 정신체에게는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거기에 정신체들은 기본적으로 자유의지 없이 초월체만을 따르는 존재, 따라서 그들은 본능적으로 서로를 융합하여 새로운 초월체를 만들어낸다. 이 새로운 초월체가 이끄는 저그 군단은 칼녈 여왕의 군세보다 훨씬 더 많은 병력을 자랑하는 거대한 새력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초월체는 제대로 사고를 하고 판단하기에는 미성숙했고 결국 미성숙한 초월체는 한낱 인간인 UED에게 조종당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그리고 칼날 여왕은 자치령, 레이너 특공대, 그리고 프로토스를 조종하여 자신의 군세를 되찾고 미성숙한 초월체를 죽이는 데 성공한다. 결국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성숙한 초월체와 칼날 여왕에게 반기를 든 정신체들은 몰락했다. 그리고 살아남은 정신체들 마저 아몬의 손발이 될거라는 칼날 여왕의 판단 아래에 모두 숙청, 정신체는 모두 사라지게 된다.

 

 정신체와 저그 반란군의 실패에는 그 근본부터가 문제였다. 그들은 스스로 사고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초월체를 보좌하기 위한 생명체였다. 그래서 자신이 보좌할 대상이 없어지자 그들이 한 선택은 새로운 보좌 대상을 만드는 것이었고 그것은 저그 반란군이 칼날 여왕에 비해 우위를 가지고 있던 병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정신체가 승리하는 결말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런 관계로 빌런으로서 정신체, 특히 브루드워부터의 정신체 무리, 일명 저그 반란군은 부족했다. 일단 미성숙한 초월체 특성상 병력을 일사천리로 부릴 수 없었으며 결국 UED에게 조종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렇기에 인 게임 내에서 저그 반란군은 그렇게 위협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특히, 정신체의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는 다고스조차 브루드워 내에서는 인게임에 전혀 타나지 않는 점도 더욱 그러하다.

 

 개인적으로는 저그 반란군, 특히 다고스에게 조금 더 서사를 주고 조금 더 분량을 줬다면 저그 반란군과 칼날 여왕 간의 대립이 조금 더 재미있게 그려졌을 거라 생각한다. 특히, 브루드워, 곧 종족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 칼날 여왕과 저그 반란군 사이에 대결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비록 브루드워의 스토리는 매우 훌륭한 편이었지만 이런 점까지 더 보완한다면 더 좋은 스토리가 되었을 것이다.

 

5. 이정도로 구시대 저그 군단의 빌런들을 알아보았다. 비록 정신체들은 브루드워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적어도 오리지널에서 초월체와 정신체는 메인 빌런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생각한다. 그 점이 지금까지도 호평받는 스타크래프트: 오리지널의 스토리의 중추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음 글에는 빌런과는 가장 멀어보이는 종족, 프로토스의 빌런에 대해 알아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