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2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필자는 블리자드를 좋아한다, 정확히는 좋아했다. 전성기의 블리자드는 모든 게이머들이 좋아하는 그런 회사였을 것이며 많은 게이머들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바로 블리즈컨 직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블리자드도 세월이 지나고 예전 같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솔직히 필자도 지금 블리자드라는 회사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블리자드가 조금, 아니 많이 추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과거에 있었던 추억까지 없던 일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필자에게 추억이라는 단어와 가장 가까운 게임은 역시 스타크래프트일 것이다. 물론 블리자드 게임 중에서 가장 오래한 게임은 하스스톤이지만 필자가 최초로 하고 접했던 게임은 스타크래프트였다. 당시 스타리그의 무수한 영웅들의 활약을 보며 스타크래프트를 시작했었는데 비록 실력은 매우 비루했지만 매우 재미있게 했던 추억이 있다. 하지만 지금 와서 가장 기억 남는 것은 역시 스타크래프트의 스토리다. 비록 공허의 유산 에필로그는 조금 아쉽게 끝났지만 오리지널 시절부터 이어져왔던 스타크래프트 특유의 스토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상 깊게 다가왔다.
그렇다면 스타크래프트 스토리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빌런에 있다고 생각한다. 스타크래프트에 있는 다양한 빌런들은 재각기 다른 특징으로 스토리의 다양성과 긴장감을 부여했다. 복수심에 불타 우주를 지배하려는 이지적인 황제, 우주 최강의 악녀, 망가진 순환을 끊으려는 타락한 신 등, 이런 다양한 빌런들이 없었다면 스타크래프트의 스토리는 지금보다 훨씬 미미하고 지루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스타크래프트에는 어떤 빌런이 있을까? 그리고 그 빌런들은 어떤 특징을 지녔을까? 마지막으로 그 빌런은 좋은 빌런이었을까? 이런 질문을 해보며 한 번 스타크래프트의 빌런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2. 스타크래프트에서 가장 유명한 빌런은 역시 케리건일 것이다. 그러나 스타크래프트에서 최초로 등장한 빌런이 누구냐라고 물으면 바로 에드먼드 듀크일 것이다. 테란 연합의 장군이었던 그는 전형적인 부패하고 무능한 높으신 분의 이미지로 나온다. 그는 처음 등장하는 테란 캠페인에서 테란 캠페인의 주인공과 짐 레이너를 무시하고 공격하며 주인공과 짐 레이너가 코랄의 후예로 합류하는 계기를 준다.
하지만 그는 노라드 2호의 추락 이후, 마찬가지로 코랄의 후예에 합류하면서 이미지를 바꾼다. 비록 간사하고 부패한 이미지는 그대로지만 평범한 높으신 분 답지 않게 유능함을 보여준다. 코랄의 후예에 합류한 뒤, 그는 타소니스 공성을 지휘하며 자신이 카드게임으로 별을 따낸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 뒤, 듀크는 황제가 된 멩스크의 오른팔로 활동하면서 멩스크를 보좌하고 단독으로 군대를 이끌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유능함과는 별개로 코랄의 후예에 합류한 뒤, 듀크 특유의 허세 때문에 그는 개그 캐릭터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저그 임무나 프로토스 임무에서 호기롭게 등장하는 주제에 바로 주인공에게 패배하며 후퇴할 때 하는 대사는 전형적인 로켓단 삼인방이 피카츄 탈취를 실패하고 도망가는 모습과도 비슷하여 플레이어에게 웃음을 준다.
그러나 그의 최후도 어떻게 보면 허망하게 끝난다. 비록 개그 캐릭터의 면모가 있더라도 작중에서 듀크는 멩스크의 오른팔로 매우 고평가받는 인물이었고 그래서인지 케리건의 제거 대상에 들어가 결국 케리건에게 죽음을 맞이한다. 듀크는 마지막까지도 특유의 허세를 부리면서 그는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전체적으로 듀크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자며 허세로 가득찬 인물이다. 그는 비록 작중에서 유능하다고 평가받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뛰어난 사령관이 많은 세계에서 플레이어에게 엄청 유능하게 보이는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테란 연합의 최고 전력이었던 알파 전대를 이끌었다는 점, 그 멩스크에게 항복한 지 얼마 안 돼서 오른팔로 임명받았다는 점, 그리고 타소니스 공성에서 큰 공을 세웠던 점을 생각하면 그의 가벼운 면모를 감안하더라도 그를 완전히 무능한 인간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의 가벼운 언행, 허세는 그를 우습게 보이게도 하지만 자칫하면 암울한 일변도로만 이어질 수 있는 스토리를 환기하는 효과를 지녀 스토리의 분위기를 환기한다. 그런 점에서 듀크는 나름 훌륭한 역할을 한 빌런이라고 볼 수 있다.
3. 그렇다면 그 듀크의 상관이자 명실상부 스타크래프트 최악의 빌런 중 하나, 아크튜러스 멩스크는 어떨까? 사실 그는 생각보다 복잡한 사연이 있는 인물이고 그 복잡한 사연이 그의 매력을 배로 만든다. 그렇다면 그는 왜 어째서 혁명가에서 독재자의 길을 선택한 것일까?
멩스크의 삶은 굴곡졌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 앵거스 멩스크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크튜러스에게 사업가가 아닌 더 큰 목표를 가지라고 했지만 아크튜러스는 그런 아버지의 말을 따르고 싶지 않아했다. 그는 아버지에게 반항하며 군인, 광산시굴자 등의 진로를 거치며 성장했다. 하지만 앵거스는 그런 반항적이고 자유를 추구하던 아크튜러스를 보며 자기 자신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아크튜러스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테란 연합의 부패상을 보며 독립을 꿈꾸는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앵거스를 포함한 가족들은 테란 연합의 유령들에게 암살당하고 아크튜러스는 복수를 꿈꾸며 혁명가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이것이 멩스크의 가장 큰 문제였다. 비록 멩스크는 여러 경험을 하며 테란 연합의 부패상을 보기는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에 대한 비전이 없었다. 그가 혁명에 투신했던 것은 단 하나 바로 복수심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복수가 끝난 멩스크가 어떻게 변할지는 정해져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아무튼, 혁명에 투신하며 코랄의 후예를 꾸린 멩스크는 레이너, 테란 캠페인의 주인공, 그리고 케리건 등 믿음직한 동료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다. 그러나 그런 동료들과 혁명을 진행하는 도중에도 멩스크의 복수심은 꺼지질 않았다.
사실 케리건은 멩스크의 가족을 죽인 유령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케리건은 그 당시 재사회화를 받으며 자유의지를 잃은 채 살인을 저질러온 살인 병기였으며 멩스크는 그런 케리건을 겉으로는 용서하면서 자신을 대인, 원수조차 포용할 수 있는 이미지로 만들었다. 물론 그런 대인의 모습은 순식간에 박살 난다. 그는 저그를 유인할 수 있는 사이오닉 방출기를 이용해 테란 연합의 수도성이었던 타소니스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테란 연합에게 복수하며 그와 동시에 타소니스에 케리건을 버린 채 떠나며 자신의 가족을 죽인 케리건에게도 복수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복수는 복수를 낳고 증오는 증오를 낳는다. 그런 멩스크의 행동에 분노한 레이너는 코랄의 후예를 떠나 멩스크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 그런 레이너를 죽이는 데 실패한 멩스크는 어쩌면 과거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그 사람에게 복수하려고 했던 과거의 멩스크, 그리고 지금의 레이너. 멩스크는 자신이 만든 테란 연합의 끔찍한 최후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만큼은 테란 연합처럼은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 결국 자신만은 복수당하지 않겠다는 의지, 그리고 자신 안에 숨어있던 권력욕,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서 그는 테란 자치령의 황제가 되었고 그날로 혁명가 멩스크는 숨을 거두었다.
그 뒤, 멩스크의 행보를 간단히 알아보자. 그는 UED에게 죽을 뻔하고 케리건과 레이너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나지만 케리건에게 배신당한 뒤, 그의 오른팔 듀크를 잃는다. 그리고 그는 레이너의 혁명을 막느라 고생하다가 그의 아들 발레리안과 레이너 덕에 케리건을 제거한 줄 알았으나 결국 돌아온 케리건에게 목숨을 잃는다.
이제 멩스크의 인물상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그는 복수를 꿈꾸는 복수귀이면서 동시에 마키아벨리적 권력가다. 그는 자신의 복수와 관련된 상황 속에서 감정적으로 변하면서도 동시에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그런 복수귀적인 모습은 그의 인생 전반기와 후반기에 따라 달라지는데 전반기의 멩스크는 자신의 가족을 죽인 테란 연합과 케리건이라는 어떻게 보면 정당화될 수 있는 대상에 대한 복수를 추구한다. 그러나 후반기의 멩스크는 자신이 배신했던 케리건이나 자신을 떠난 레이너에 대한 복수라는 누가봐도 잘못된, 자기 합리적인 복수를 추구한다.
이런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멩스크 자신이 복수를 잘 이해해서인데, 자신이 복수에 성공했던 만큼 남들도 자신에게 복수할 수 있음을 잘 이해하고 있고 이를 위해서는 무슨 수단이든 상관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거 권력욕의 화신이며 스타크래프트 최악의 독재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살아남기 위해 레이너의 혁명을 악랄하게 탄압하고 케리건을 죽이기 위해 자신의 아들도 희생시키려 했다. 하지만 반대로 타인의 복수를 막기 위해 비슷한 독재 국가인 테란 연합과는 달리 테란 자치령의 국력을 코프룰루의 존재하는 테란 최강의 국가로 발전시키는 등 창업 군주로써의 업적도 세운다.
그러므로 혹자는 멩스크는 비록 죽었지만 실패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비록 케리건에게 죽기는 했지만 테란 자치령은 건재하며 그는 영원히 테란 자치령의 창업 군주로 길이 기억되리라는 의견이다. 필자는 그 의견에 반대한다. 멩스크에게 중요한 것은 테란 자치령 따위가 아니었다. 멩스크에게 중요한 것은 복수의 연쇄를 끊는 것, 곧 자신만이 살아남고 케리건과 레이너로 대표되는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위협 대상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점에서 멩스크는 철저하게 실패했다. 레이너는 끝내 케리건과 화해했으며 멩스크 자신은 케리건의 손에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결국 멩스크는 자신이 가장 바라지 않던 방법으로 죽은 자업자득을 맞이한 셈이다.
결국 멩스크는 케리건의 손으로 최후를 맞이한다. 그러나 그는 스타크래프트 오리지널 시절부터 군단의 심장까지 가장 인상깊은 테란의 빌런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그는 때로는 감정적인 복수귀의 역할을, 때로는 냉혹한 권력가의 역할을 보였다. 그리고 스타크래프트 스토리의 최종 보스인 아몬과의 승부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 타이밍에 가장 적절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렇기 때문에 멩스크는 블리자드가 만들어낸 최고의 빌런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오늘 하루만큼은 죽은 멩스크에 대한 Joy를 표하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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