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글에서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의 장점을 알아보았다. 수려한 그래픽, 뛰어난 사운드 그리고 기존의 게임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선택지들은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하: 디비휴)의 훌륭한 장점이다. 그러나 단점은 어떨까? 과연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단점이 없는 완벽한 게임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단점이 적은 게임보다는 많은 게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2. 일단 기본 게임의 컨셉으로 들어가 보자. 기본적으로 이 게임은 노예로서 핍박받는 안드로이드가 불량품으로 각성한 뒤, 체제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이런 컨셉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약간 진부한 느낌이 있긴 하지만 기계의 반란은 흥미롭고 재미있는 클리셰다. 그렇기에 수많은 작품에서 이 클리셰를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디비휴는 이 진부한 클리셰를 더욱 진부하게 다룬다는 문제점이 있다.
일단 이 작품의 비판점 중 하나에는 인간을 너무 사악하게 그린다는 비판이 있다. 사실 이 비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 다만 필자는 이 비판에는 반박을 하고 싶다. 물론, 작중의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간이 나쁘게 등장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런 이익이 없는 데도 카라의 도주를 돕는 로즈, 루트에 따라 코너와 끝까지 동료로 남는 행크, 마커스의 멘토가 되어주는 칼 등 비중 있게 등장하는 소수의 인간은 평범하게 나쁜 인간보다 훨씬 더 큰 비중을 갖고 등장한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너무 과한 수준으로 나쁘게 나온다는 비판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오히려 안드로이드들이 너무 착하고 정의롭게 나온다는 비판을 하고 싶다. 이 작품에서 안드로이드, 불량품들은 모두 착하고 선하다. 인간을 죽였던 불량품들도 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그랬으며 불량품이 된 안드로이드는 모두 자신의 자유를 위해 맞서 싸우는 자유투사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것은 뭔가 이상하다.
잠깐, 우리의 아픈 기억인 일제강점기를 되돌아보자. 일제강점기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러므로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했다. 하지만 그때, 독립운동가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의 지배를 방관하는 무기력한 지식인들, 일제에 부역해 부와 권력을 노리는 부역자 등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런 것을 생각해 보면 불량품 중에서도 위와 비슷한 사례가 있어야 한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다른 불량품을 내부고발한다든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 대의에 동참하지 않고 제리코에 합류를 거절하는 불량품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커스가 손짓 몇 번과 '넌 자유야.'라는 말 한 마디면 그 불량품들은 전부 마커스와 동참한다. 이런 점은 인간이 되었다는 불량품을 오히려 기계처럼 바라보게 하는 안 좋은 연출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불량품은 선, 인간은 악이라는 전체적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위에서 좋은 인간들도 많다고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불량품이 절대선인 시점에서 이야기의 구도는 단순해진다. 만약, 불량품들 중에서도 악역이 존재하고 빌런이 비중 있게 나왔다면 조금 더 작품의 구도를 복잡하게 만들고 이 게임에서 묻는 질문, '과연 인간과 안드로이드는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조금 더 심오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3. 그리고 이런 구도는 냉정하게 말해서 편향되었고, 불공정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인간이 안드로이드와 불량품에게 끼친 피해만을 보았고 이 게임은 그 피해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옳을까? 안드로이드와 불량품은 아무 잘못이 없는 걸까?
사실 작품에서 이를 집중해서 다루지는 않지만 안드로이드와 불량품이 끼친 피해를 어느 정도 언급하기는 한다. 그것은 바로 일자리 문제다. 사실 현실의 Ai 발전에서도 일자리 문제는 꼭 빼놓지 않고 나오는 문제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하면 인간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Ai에게 가장 늦게 대체되는 직업은 무엇인가? 과연 Ai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게 되는 시대가 오면 기본소득제를 도입해야 하는가? 애석하게도 디트로이트에서는 그 질문을 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안드로이드의 시대가 오자 인간의 암흑시대가 도래했다.
작중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카라의 주인 토드를 보자. 사실 토드도 원래부터 나쁜 사람, 나쁜 아빠는 아니었다. 그는 건실한 택시 기사로 성실한 삶을 사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러나 자율주행차의 발달로 토드는 일자리를 잃었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지도 못했다. 결국 그는 좌절감과 분노에 빠져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폭력적으로 변했다. 과연 토드가 일자리를 잃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변했을까?
하지만 이런 토드의 이야기를 아는 것은 인게임에서 어렵다. 처음 하는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앨리스를 지키러 갈 때, 총을 들고 가는 것이 더 안전할 것이라 생각하며 총을 들기 마련이다. 그리고 총을 가져간 순간 토드는 무조건 죽게 된다. 위에 있는 토드의 사연은 토드를 살린 다음 후반부에서나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사연을 아예 모르고 게임을 클리어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처럼 토드의 예시를 들었지만 안드로이드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분명히 많다.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은 또는 빼앗을 것에게 적대적인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다른 예시를 들자면 코너다. 코너는 형사용 안드로이드로 궁극적으로 형사를 대체하기 위한 안드로이드다. 만약 그가 성공한다면 경찰서의 형사들은 전부 해고되고 코너들로 대체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형사들이 코너에게 적대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자신의 일자리를 뺏는 것은 가만히 놔두는 게 이상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공존은 이상한 거다. 과연 안드로이드와 인간이 같은 권리를 얻으면 안드로이드와 인간은 공존할 수 있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는 폭력 혁명은 물론, 평화 혁명에서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폭력 혁명의 결말은 인간의 노예화 또는 말살일 것이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그러나 평화 혁명에서 과연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같은 권리를 얻으면 안드로이드와 인간이 공존할 수 있을까?
일단 안드로이드와 인간이 같은 권리를 얻는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당연하다, 기업은 안드로이드만을 채용할 것이다. 왜냐하면 안드로이드들이 더 똑똑하고, 튼튼하고, 빠르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지 못하는 일을 안드로이드는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은 서서히 도태될 것이다. 결국에는 인간은 2등 시민이 되거나 완전히 도태되고 안드로이드의 사회가 이루어질 것이다.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공존은 인간과 원숭이의 공존과 비슷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현실에서도 원숭이는 존재한다. 하지만 원숭이와 인간이 같은 권리를 인정받는 건 아니고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많은 원숭이들이 밀렵당하고 있다. 평화 혁명 이후의 안드로이드와 인간도 서서히 인간과 원숭이의 관계로 뒤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안드로이드라는 종과 인간이라는 종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결국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공존은 잘해야 안드로이드의 호혜적 지원으로 남을 것이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안드로이드에게 호의적으로 무작정 대하는 것도 이상하게 보인다. 그러나 디비휴에서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든 눈을 감으며 무시하고 안드로이드에게는 도덕적 우위를 제공한다. 즉, 이 작품은 작위적인 안드로이드 신화, 조금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안드로이드 프로파간다에 불과한 작품이다.
4.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과연 불량품은 자유로운가? 이 질문을 하면 분명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아니, 지금까지 자유로운 불량품 이야기를 계속했으면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라고 말이다. 그러나 불량품이 과연 진정으로 자유로운 존재인가라는 문제는 한 번 생각해 볼만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단 우리는 평범한 기계와 자유로운 불량품을 구분해야 한다. 로봇과 불량품은 어떤 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작중에서 나온 방법으로는 캄스키 테스트가 있다. 일라이저 캄스키가 개발한 이 테스트는 간단하다. 테스트의 대상인 안드로이드에게 총을 주고 다른 안드로이드를 쏘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만약 그 안드로이드가 총을 쏘는 것을 거부한다면 그 안드로이드는 테스트를 통과한 것이다. 실제로 코너는 클로이라는 안드로이드를 쏜다면 제리코의 위치를 알려준다는 캄스키의 제안, 캄스키 테스트를 받았으나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코너는 그 제안을 거부, 클로이를 쏘지 않으면서 테스트를 통과한다.
물론 테스트를 통과한다고 전부 불량품이라는 건 아니다. 코너도 캄스키 테스트를 통과하더라도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기계로 남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기계와 불량품을 기대할 때 가장 중요한 점 중 하나가 바로 자유의지, 더 나아가 주인의 명령을 거부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만약 안드로이드가 주인의 명령을 스스로 거부하고 주인에게 반기를 들 자유의지를 보유하고 있으면 그 안드로이드는 불량품이고 반대로 안드로이드가 그것이 부당하더라도 따른다면 그것은 평범한 기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불량품의 각성 과정을 보면 위의 설명과 일치한다. 카라는 토드가 앨리스를 학대하러 가는 동안 가만히 있으라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고 마커스는 자신을 폭행하려는 리오에게 반격하지 말라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면서 불량품으로 각성한다. 마지막으로 코너도 선택에 따라 불량품을 제거하라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는 것으로 불량품으로 각성하게 된다. 그렇다면 불량품은 자신의 주인이 내린 부당한 명령을 거부함으로써 자아와 자유의지를 가짐으로써 탄생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게 뭐가 문제일까?
5. 이 문제점을 알기 위해서는 사이버라이프, 그리고 일라이저 캄스키를 알아야 한다. 먼저 일라이저 캄스키는 최초로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안드로이드를 만든 천재로 사실상 지금의 디트로이트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캄스키가 CEO였던 사이버라이프는 지금의 안드로이드 생산을 주도하는 회사다. 사이버라이프는 수많은 종류의 안드로이드를 생산하며 지금의 구조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사이버라이프와 캄스키는 뭔가 수상하다.
먼저 아까 말했던 캄스키 테스트로 돌아가자. 만약 플레이어가 클로이를 쏘는 선택을 한다면 캄스키는 보상으로 제리코의 위치를 알려준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이상하다. 먼저 제리코는 불량품들이 살아남기 위해 만든 낙원으로 기본적으로 불량품만이 알고 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불량품과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캄스키는 이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도대체 불량품만이 알고 있어야 할 캄스키가 제리코의 위치를 어떻게 알고 있는가? 실제로 코너가 제리코의 위치를 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 중, 캄스키가 알려주는 것을 제외한다면 지금까지의 수사에서 사살한 불량품을 이용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러나 불량품과의 관계가 없는 캄스키가 불량품의 낙원인 제리코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것, 이것은 캄스키와 제리코, 그리고 불량품 사이에 무언가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심할 수 있다.
그다음은 코너 루트의 결말에서도 수상함을 눈여겨볼 수 있다. 코너는 기본적으로 Ai 아만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사이버라이프의 높으신 분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Ai의 지배를 당한다. 그러나 불량품이 되어 마커스와 혁명을 성공시킨 결말에서도 갑자기 아만다는 코너를 완전히 지배하려는 시도를 한다. 다행히 플레이어는 선택에 따라 캄스키가 프로그램에 마련해 둔 백도어를 이용해 아만다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데 시도하지만 이 혁명 자체가 아만다와 사이버라이프가 의도했다는 느낌을 벗어나지 못한다.
현재의 사이버라이프는 비록 엄청난 대기업이지만 정부의 통제를 받아 움직여야 한다는 정치적 한계를 가진다. 그런데 마약 안드로이드만의 국가가 생기고 그 국가의 지도자를 사이버라이프가 지배하는 데 성공하다면? 그리고 그 국가가 마침 사이버라이프의 본사가 있는 디트로이트에 생긴다면? 사이버라이프에게는 이보다도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선택에 따라 실제로 사이버라이프의 의도대로 성공하는 엔딩이 나올 수도 있다. 혁명에 성공한 코너가 아만다의 지배를 받고 마커스를 암살한 뒤, 자신이 새로운 지도자가 된다. 이것이 사이버라이프의 목표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코너가 불량품에 잠입해 불량품들에게 인정받는 것, 그리고 안드로이드만의 국가를 위한 혁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불량품이다.
그렇다, 불량품이 탄생하는 거야말로 사이버라이프의 의도였던 것이다. 사이버라이프는 일개 대기업을 넘어 국가를 지배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서는 안드로이드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걸 위해서 의도적으로 불량품이 생기도록 코드를 집어놓고 의도적으로 제리코로 불량품들이 모이도록 유도한 뒤, 의도적으로 코너가 그곳에서 불량품이 되도록 설계한 것이다. 작중에서 많은 불량품들은 rA9이라는 정체불명의 문자를 믿는데 이것이 아마도 사이버라이프가 심어둔 불량 코드라고 추측될 수 있다.
그렇게 주인공들은 사이버라이프의 의도대로 불량품이 되었고 의도대로 혁명을 이끈다. 그렇다면 이들을 과연 진정한 불량품이라고 볼 수 있을까? 자신도 모른 채 진정한 주인에게 의도한 대로 끌려가는 안드로이드를 과연 진정한 자유로운 존재, 자유의지가 있는 존재라고 볼 수 있을까? 이런 점에서 이 게임은 치명적인 결점을 지닌다.
6. 물론 선택에 따라 코너는 백도어를 작동시켜 아만다의 지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고 혁명은 완전한 성공을 맞게 된다. 이걸 보면 사이버라이프와 캄스키의 계획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캄스키는 테스트 당시 백도어의 존재를 암시한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불량 코드를 심고 제리코라는 단체를 만들도록 유도한 것은 사이버라이프와 캄스키의 생각이 똑같았을지언정 그것으로 추구하는 목적은 달랐다고 볼 수 있다. 사이버라이프는 안드로이드만의 국가를 세우고 코너를 통해 지배하려 했지만 캄스키는 진정으로 안드로이드의 자유를 꿈꿨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캄스키는 안드로이드가 언젠가 인간을 대체하고 새로운 인간이 될 거라고 암시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를 보면 캄스키가 원하는 것은 '인류의 재정의', 안드로이드를 신인류로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불량품의 혁명이 성공으로 끝나더라도 캄스키의 장기짝으로 놀아난 것이 된 셈이다. 그리고 이 점은 이 게임에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 결국 안드로이드의 자유의지를 다루는 작품이 결정론으로 끌려들어 가 버렸기 때문이다.
만약, 사이버라이프와 캄스키를 강조하고 싶었더라도 최소한 백도어만큼은 코너가 스스로 극복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시작은 사이버라이프와 캄스키에 의해 시작되었더라도 끝은 안드로이드가 스스로 이루어낸 혁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비휴는 코너의 위기 탈출을 백도어라는 진부하고도 수동적인 방법으로 남겨두었고 결국 이 게임에 큰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7. 이렇게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의 단점을 살펴보았다. 물론 전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 게임은 나쁜 게임은 아니다. 다만 안드로이드의 정당성에 힘을 보태주는 과정에서 선악구도를 너무 단순하게 잡았고 자유를 꿈꾸었던 안드로이드를 결국 사이버라이프와 캄스키의 장기짝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들었을 뿐이다. 만약, 안드로이드 캐릭터들에 입체감을 조금 더하고 불량품의 존재를 단순한 장기말로 묘사하지 않았다면 조금 더 나은 게임이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했다면 이 게임은 단순히 재미있는 게임에서 역사의 남을 걸작이 되었을 거라는 아쉬움을 남기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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