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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스터 울트라썬 울트라문 - 이건 울트라하지 않아.

삶은계-란 2023. 12. 31. 23:30

0. 포켓몬의 전통에는 무엇이 있을까? 게임을 시작할 때 포켓몬 박사가 나온다는 점, 그 박사가 스타팅 포켓몬을 준다는 점, 그 스타팅 포켓몬은 풀, 불꽃, 물 타입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높은 확률로 풀 타입 포켓몬은 구리다는 점 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전통과 다르게 전통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도 전통으로 유지되고 있는 특징이 있으니 바로 세대의 시작을 알리는 첫 작품은 작품에 늘 하자가 있다는 점이다.

 

 짧게 보면 DP부터, 보다 길게 보면 아예 적녹 시절부터 이어지는 이 전통은 놀랍게도 스칼렛 바이올렛까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팬들은 포켓몬을 재미있게 했다. 그 이유라면 이 하자가 있는 게임을 보완해 줄 확장팩이 가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1세대에는 청과 피카츄가, 2세대는 크리스탈이, 3세대는 에메랄드가, 4세대는 PT가 있었다. 물론 이런 확장팩이 매 세대마다 있었던 건 아니다. 5세대는 블화가 하자가 적었던 관계로 확장팩 대신 후속작이 있었고 6세대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냥 안 나왔다. 그럼에도 팬들은 기다렸다. 하자가 있긴 하지만 명작의 가능성을 보였던 썬문의 확장팩을 말이다. 그리고 게임 프리크는 답했다. 울트라썬과 울트라문으로...

 

 포켓몬스터 울트라썬과 울트라문은 2017년 11월 17일에 발매되었다. 그렇다, 젤다 야생의 숨결과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 그리고 닌텐도 스위치 자체의 대흥행으로 축제 분위기인 상황 속에서 발매된 작품이었다. 그런 만큼 포켓몬 팬들이 울트라썬, 울트라문이 명작으로 나오기를 기다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울트라썬과 울트라문은 팬들의 기대를 배신한 매우 실망스러운 작품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울트라썬과 울트라문을 실망스러운 작품으로 만든 것일까?

 

1. 일단 팬들이 가장 개선되기를 바랐던 것은 바로 스토리였다. 썬문의 스토리는 빈말로도 좋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이를 알아서였는지 울썬문은 스토리를 수정하기는 했다. 그러나 성과는 미미했다. 세 번째 초전설인 네크로즈마와 다른 세계에서 온 울트라조사대 등이 새롭게 스토리에 관여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플롯의 차이는 거의 없다. 그나마 스토리 보스의 위치를 루자미네가 아니라 네크로즈마가 차지한 정돈데 놀랍게도 이는 스토리에 악영향을 미쳤을 뿐이었다.

 

 이 변경으로 인해 루자미네는 악역에서 선역으로 역할이 바뀌었는데 악역일 때 했던 포켓몬 냉동보관 등은 똑같이 하는 괴상한 캐릭터가 되어버렸고 하우는 이런 루자미네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성격좋은 친구에서 알로라만의 관행을 언급하는 뭔가 이상한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루자미네의 선역 전환은 치명적인 실책이었다. 그리고 이를 제외하면 별다른 변화가 없다. 즉, 썬문의 가장 큰 문제였던 릴리에 문제는 하나도 수습이 안 된 것이다. 그런 만큼 울썬문의 스토리는 썬문보다 더 형편없으면 형편없지 좋지는 않다. 이런 점은 많은 팬들을 실망하게 한 가장 큰 요소였다.

 

 울썬문 스토리의 또 다른 문제점이라면 2회차 플레이에 추가된 레인보우로켓단이다. 사실 레인보우로켓단이 추가된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팬들이 기대했다. 지금까지 나왔던 빌런들이 모두 힘을 합쳐 알로라지방을 침공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두근두근거리는 이야기였다. 거기에 전작인 썬문에서 레드나 그린 등 전작의 등장인물이 꽤 등장했었기 때문에 이들과 힘을 합쳐 빌런 올스타와 맞서 싸우는 스토리는 너무나도 재밌어 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기세 좋게 침공한 레인보우로켓단은 에테르파라다이스에 알박고 가만히 있는 게 전부였고 전작의 등장인물들은 아크로마를 빼면 전혀 스토리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렇다, 레드 vs 비주기의 재대결 같은 꿈의 대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팬들의 기대와 달리 레인보우로켓단 스토리는 에테르파라다이스에 알박은 보스들을 퍼즐을 풀면서 격파하는 게 전부인 로켓단 스토리보다도 못한 수준이다. 

 

 그나마 이들이 한 곳에 알박고 있어도 좀 멋있는 모습이라도 보여줬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마적과 아강은 카리스마는 어디에 두고 서로 싸우다가 쫓겨나며, 게치스는 추하게 인질극이나 하고 있다. 물론 그게 추한 게치스의 캐릭터와 어울리긴 하지만 하필이면 그 대상이 릴리에라는 점에서 하나도 다급하거나 간절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심지어 이들은 법의 처벌을 받는 것도 아니고 죽는 것도 아니라 원래 세계로 쫓겨나는 결말을 맞는데 분명 전작인 오루알사에서 다른 평행세계를 생각하라며 차원이동장치를 부셨던 것을 생각하면 이조차도 내로남불이다. 이런 고로 썬문의 스토리는 실망스러웠지만 최악의 스토리는 울썬문일 수밖에 없다. 피아나도, 릴리에도 레인보우로켓단을 넘지는 못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후속작들 역시 레인보우로켓단을 넘지는 못했다. 만약, 레인보우로켓단을 넘는 스토리가 나온다면 그것이 포켓몬 최후의 날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건 게임플레이인데 이조차도 썬문에서 퇴화한 모습이 여럿 보인다. 물론 확장팩답게 썬문에서 잡지 못하는 새로운 포켓몬들을 추가한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뿐, 울썬문의 게임플레이는 썬문에서 정체되거나 퇴보한 부분이 뚜렷하다. 가장 큰 것은 바로 레벨 디자인이다. 썬문의 난도는 어려웠다. 특히 포켓몬을 처음 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랬다. 하지만 썬문의 난도는 맛있게 어려웠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울썬문을 이를 간과했는지 난도를 더 어렵게 만들었고 이는 레벨 디자인에 악영향을 미쳤다.

 

  주인 텅구리, 라란티스, 따라큐, 짜랑고우거의 난도는 전작보다 더 올랐고 울썬문에서 추가된 주인 에리본의 난도는 살인적이다. 하지만 이들보다 훨씬 어려운 포켓몬 역사상 최강의 보스가 있으니 바로 그 보스가 울트라네크로즈마다. 레벨 60에 종족값 754, 거기에 모든 스탯 1랭크 업, 그리고 9개 타입의 약점을 찌르고 오직 강철 타입만이 반감시킬 수 있는 4공격기까지. 웬만한 포켓몬은 울트라네크로즈마 기술 한 번에 죽어버린다. 이런 디자인의 보스는 너무 일차원적이다.

 

 기존의 어려운 포켓몬 보스들이 호평받았던 것은 단순히 스펙 때문에 강했던 게 아니라 기술과 스탯, 그리고 환경이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썬문과 울썬문의 라란티스만 하더라도 약점이었던 스피드를 스피드 상승 오라로 극복하고 솔라블레이드를 쾌청을 받아 즉발로 쏘는 동시에 보조 포켓몬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파훼하는 방법으로 라란티스보다 빠른 포켓몬을 내보내 선턴에 쓰러뜨리거나 치명상을 입힌다는 확실한 방법이 있었다. 이를 실행할 수 있는 포켓몬도 플레이어의 게임 진행 중 한 마리 정도는 있을법하므로 생각을 하는데만 성공한다면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고 그렇기에 라란티스는 호평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네크로즈마의 파훼법은 기합의 띠로 버틴 다음에 맹독을 건다든가, 방/특방이 높은 강철 타입으로 버틴다든가, 조로아크로 날먹을 한다든가 등인데 하나같이 비직관적이고 스토리 도중에 선호되지 않는 방식이다. 기합의 띠는 스토리 중 단 한 번만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고 스토리 중에서는 소모성 아이템이므로 사용하기가 꺼림칙스러우며 스토리에서 방/특방이 높은 강철 타입은 버려지기 마련이고 날먹이 가능한 조로아크는 얼굴도 못 봤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방식의 파훼법은 좋은 방식이 아니다. 특히 포켓몬스터라는 진입장벽과 대상 연령층이 낮은 게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물론 울썬문의 문제점이 네크로즈마뿐만은 아니다. 포켓몬 체육관 역시 매우 실망스러웠다. 팬들이 울썬문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포켓몬 체육관의 부활이었다. 물론 섬 시련 역시 재밌었지만 전통과 근본의 포켓몬 체육관이 울썬문이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리자 팬들은 포켓몬 체육관과 섬 시련이 어떻게 어우러질지 궁금해했다. 그러나 울썬문이 출시되고 등장한 포켓몬 체육관, 체육관 오브 관동은 정말 실망 그 자체였다. 

 

 체육관 오브 관동은 바로 팬들이 기대하던 체육관이 아니었다. 네임드라고는 전작에 잠깐 나온 용규뿐이고, 퍼즐도 전무하다. 생긴 거는 갈색시티 체육관처럼 만들었는데 전작 쓰레기통처럼 생긴 것들은 쓰레기통도 아니고 음료수 냉장고다. 포켓몬 체육관다운 테마는 전혀 없으며 심지어 클리어를 하고 주는 것도 그냥 배지도 아니고 모조배지다. 이럴 거면 굳이 체육관 오브 관동을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체육관 오브 관동에 의의는 전무하다. 색다른 배틀 시설도 아니고 팬들의 향수도 자극하지 못한 시간 낭비이자 공간 낭비가 바로 체육관 오브 관동이었다.

 

2. 그런고로 포켓몬스터 울썬문은 포켓몬스터 팬들에게 크나큰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썬문은 분명 발전 가능성이 있는 게임이었고 울썬문이 썬문의 완전판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그 확신은 최악의 배반으로 돌아왔다. 울썬문은 썬문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울썬문은 재평가받게 된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애석하게 좋은 쪽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