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한 때 E3가 열리는 날은 모든 게이머들의 축제였다. 수많은 게임과 콘솔들이 E3에서 공개되었고 많은 쇼케이스가 전설로 남았다. 하지만 코로나와 시대의 흐름으로 인해 E3는 결국 종말을 맞고 말았다. 그리고 이 종말이 일어나기 직전, 누구도 E3가 사라질 거라 믿지 않았던 2019년, E3에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새롭게 공개된 포켓몬스터 소드실드의 프로듀서 마스다 준이치가 소드실드에는 가라르도감, 즉 지역도감에 포함된 포켓몬만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그 직후, 전 세계가 불타올랐다. 이른바 포켓몬 타노스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1. 그렇다면 포켓몬 타노스 사태는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과거의 포켓몬스터 시스템을 알아야 한다. 과거의 포켓몬스터는 도감을 각 게임의 배경이 되는 지역도감과 모든 포켓몬이 등장하는 전국도감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그 게임 안에서는 지역도감에 포함된 포켓몬과 일부 전국도감 포켓몬만을 포획할 수 있도록 정해두었다. 예를 들어 DP에서는 찌르꼬는 평범하게 잡을 수 있고 구구는 엔딩 후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잡을 수 있지만, 나무지기는 절대로 포획할 수 없는 그런 방식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DP에서 나무지기를 사용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팔파크라는 시스템을 이용하면 3세대에서 키웠던 포켓몬을 DP로 옮길 수 있었다. 그래서 3세대에서 키우던 나무지기를 팔파크로 옮기면 DP에서도 나무지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과거 포켓몬스터 게임은 모든 포켓몬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으며 이는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E3에서의 발언은 이를 완벽하게 부정했다. 발표에 따르면 소드실드의 새로운 배경이 되는 가라르도감에 선택받지 못한다면 소드실드에서 그 포켓몬을 절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전세계의 포켓몬 팬들이 분노했던 것이다. 게임 프리크와 포켓몬스터는 그들이 정한 규칙을 뒤집었고 포켓몬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포켓몬이 가라르도감에 포함되기만을 전전긍긍하며 기다려야 하는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일부 팬들에게는 다행히도 일부 포켓몬들은 가라르도감에는 포함되지는 않으나 소드실드에는 포함되는 도감 외 포켓몬이라는 형식으로 포함되는 데 성공했다. 또, 소드실드의 출시 이후 DLC에서 지역이 추가되며 추가적으로 포켓몬이 더 추가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건 끝끝내 소드실드에 포함되지 못한 포켓몬 팬들에게는 전혀 위안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 이들도 포켓몬 타노스 사태가 비판받으리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포켓몬스터의 슬로건이 " Gotta Catch 'Em All"이기도 했고, 과거 기술상 문제로 모든 포켓몬을 사용하지 못했던 루비 사파이어나 마찬가지로 일부 포켓몬만 등장한 포켓몬 불가사의 던전 마그나 게이트의 안 좋은 반응 등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포켓몬 타노스 사태를 강행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들은 이런 짓을 벌인 것일까?
2. 이 포켓몬 타노스 사태라는 비상식적인 사태의 원인에는 크게 3가지 가설이 있다. 먼저 첫 번째 가설은 바로 구조조정이다. 7세대가 끝났을 때 포켓몬에 총 등장하는 포켓몬의 수는 총 809마리다. 처음 포켓몬스터가 151마리로 시작했던 것을 보면 엄청나게 많은 수다. 이렇게 많아진 포켓몬의 수는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먼저 인기 포켓몬과 비인기 포켓몬의 격차가 지나치게 많이 벌어졌다. 포켓몬을 하는 모두가 피카츄나 이브이는 알고 있지만 네오라이트나 나메일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또, 인기뿐만 아니라 밸런스 차원에서도 포켓몬은 심각한 문제점을 앓고 있었다. 7세대 당시 따라큐 등 지나치게 강한 포켓몬들이 메타를 장악하고 있었고 약한 포켓몬은 기를 서지 못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TCG의 블록 로테이션 같은 시스템으로 메타를 조정해 보겠다는 생각 역시 이 시점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따라서 이 가설에 따르면 인기 있는 포켓몬들 위주로, 또는 포켓몬을 유사 블록 로테이션 시스템을 도입해 구조조정을 실시하려 했다는 것이 포켓몬 타노스 사태의 이유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먼저 인기 포켓몬에 대해 말하자면 물론 리자몽같은 인기 포켓몬은 손쉽게 가라르도감에 포함되기는 했다. 하지만 가라르도감의 라인업을 보면 인기 포켓몬만으로 가득 차있는 건만은 아니다. 극단적인 예로 개굴닌자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지닌 포켓몬 중 하나였지만 소드실드의 마지막 DLC까지 끝끝내 복귀하지 못했고 상대적으로 인기가 많은 1세대의 많은 포켓몬들 역시 가라르도감에 포함되지 못했다. 반면 인지도 면에서 밀리는 마라카치가 바로 가라르도감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인기를 이유로 구조조정을 실시했다는 가설은 사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밸런스 문제도 마찬가지다. 밸런스 차원에서 가장 문제가 심각했던 따라큐는 비록 너프가 되었다는 걸 감안해도 당당하게 가라르도감에 포함되었다. 밸런스를 생각해서 개굴닌자를 삭제했다고 하기에 에이스번은 개굴닌자와 똑같은 특성으로 밸런스를 파괴했다. 이를 고려하면 밸런스 역시 게임 프리크의 목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렇게 보면 첫 번째 가설인 구조조정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두 번째 가설은 무엇일까? 두 번째 가설은 가장 많은 포켓몬 팬들이 지적하는 가설, 바로 태만함이다. 이는 타노스 사태를 떠나 포켓몬 게임의 퀄리티 때문에도 지적받는 사항인데 3DS 세대 이후 떨어지는 포켓몬 게임의 퀄리티는 날이 가면 갈수록 비판받았고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당장 마젤포로 묶여 불리는 마리오와 젤다를 비교해 보면 이는 더욱더 크게 느껴진다. 초기 스위치에서 마리오는 마디세이가 나왔고 젤다는 야숨이 나왔으며 포켓몬은 소드실드가 나왔다. 후기 스위치에서 마리오는 원더가 나왔고 젤다는 왕눈이 나왔으며 포켓몬은 스칼렛바이올렛이 나왔다. 냉정하게 둘을 포켓몬과 비교하기가 미안해질 정도다.
거기에 꼭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과거와 비교했을 때 현재진행형으로 망가지는 퀄리티를 보니 포켓몬스터의 퀄리티가 날이 갈수록 추락해 가는 것도, 포켓몬 타노스 사태가 일어난 것도 모두 게임 프리크의 태만함 때문이다라는 가설은 너무나도 설득력 있고 간단해 보이는 해석이다. 포켓몬 타노스 사태가 일어난 것은 이들이 스위치 세대에 맞춰 새 포켓몬의 모델링을 만들기 귀찮아서다, 이게 이 가설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모델링을 귀찮아할 정도로 태만하다면 현재 포켓몬스터 게임들의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 만약 이들이 진정 태만하다면 3DS 세대 이후의 포켓몬스터 게임들은 이전 게임의 복제품으로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7세대의 섬 순례, 8세대의 와일드에리어, 9세대의 오픈 월드는 모두 혁신적인 변화였다. 만약 이들이 진정으로 태만하다면 차라리 이런 점을 바꾸지 않고 기존 포켓몬의 공식을 따르며 오히려 모델링의 신경을 쓰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그런고로 포켓몬 타노스 사태의 원인이 태만함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면 정답은 무엇일까? 아마도 이 세 번째 가설이 포켓몬 타노스 사태의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바로 시간 부족이다. 앞에서 마리오, 젤다와 포켓몬을 비교했지만 사실 포켓몬은 이 둘과 비교하면 엄청난 악조건 속에서 개발되고 있는 게임이다. 닌텐도의 게임, 특히 본사에서 직속으로 개발되는 게임은 모두 전설적인 개발자, 미야모토 시게루의 철학에 따라 개발된다. 그리고 그의 철학을 대표하는 말이 바로 "연기된 게임은 언젠가는 좋아지지만, 서두르게 발매된 게임은 영원히 나빠진다."이다.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은 전설적인 게임으로 기억되지만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충분한 개발 기간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원래 2015년에 발매되었어야 했던 이 게임은 두 번의 연기 끝에 2017년에야 발매되었고 그 결과 야숨이 최고의 명작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포켓몬스터는 이런 철학의 수혜를 전혀 받고 있지 못하다. 그 이유라면 역시 포켓몬스터라는 프랜차이즈의 주 수익은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8년 기준 포켓몬스터라는 프랜차이즈의 총수익은 900억 달러이지만 그중 게임으로 내는 수익은 180억 달러 정도 전체 수익의 20퍼센트밖에 안 된다. 스위치 세대 이후 게임 판매량이 더 늘었다는 걸 감안해도 포켓몬스터 게임이 프랜차이즈 수익에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많지 않다. 반대로 프랜차이즈의 총수익 중 약 60퍼센트 정도를 상품 수익이 차지한다. 고로 포켓몬스터라는 프랜차이즈의 수익에서 가장 큰 기여를 하는 건 상품이다. 이렇게 상품과 게임의 비중이 뒤집힌 상황에서 게임의 역할은 무엇인가, 바로 상품이 나올 수 있도록 제때 나와주는 것이다.
이것이 포켓몬 타노스 사태가 일어난 이유이며 포켓몬스터 게임이 명작으로 나오지 못하는 이유다. 명작이 나오기 위해서는 충분한 개발 기간이 필요하다. 특히, 그 명작에서 큰 변화를 시도한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포켓몬스터는 개발 기간을 늘리지 못한다. 제때 게임이 나오고 새로운 포켓몬을 소개해야 상품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게임 프리크가 아무리 혁신적인 생각을 하고 아무리 포켓몬을 많이 등장시키고 싶더라도 그러지 못한다. 단순하게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원인이라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예전에도 포켓몬스터 프랜차이즈의 구조는 똑같았을 텐데 포켓몬도 전부 나오고 명작이었는데? 왜 지금은 못한다는 거지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하게 게임 개발 과정이 시대가 지나면서 더욱 복잡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4~5세대는 팬들뿐만 아니라 개발진들도 매우 행복했을 시절이었을 것이다. 기존의 도트 노가다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3D 모델링을 이용한 픽셀 그래픽을 제작할 수 있어 모델링과 관련된 노력을 최대한 줄일 수 있었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다.
그러나 3DS 시대 때부터 3D 그래픽을 사용하게 되면서 모델링에 기울여야 하는 노력은 점점 커져만 갔고 이는 스위치 세대에서 극에 달했다. 이들은 모든 포켓몬을 구현하는 동시에 혁신적인 시스템을 투입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게임 프리크는 모든 포켓몬의 구현이라는 당연해 보였던 사실을 포기해 버렸고 그들이 추구하는 혁신적인 시스템도 반쪽자리로 밖에 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포켓몬 타노스 사태에 관한 슬프고도 잔혹한 가설이다.
만약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포켓몬스터의 미래는 암울하다. 포켓몬스터는 계속해서 잘 팔릴 것이고 게임 프리크는 게임의 완성도보다는 게임이 제 때 완성되는 지만을 신경 쓰며 게임을 만들 것이다. 그러므로 팬들이 기다리는 명작 포켓몬스터 게임은 결코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며 단지 상품을 위해 수많은 포켓몬을 쏟아내기만 하는 게임들만이 가득할 것이다. 타노스 사태는 어쩌면 이런 미래를 보여준 일종의 서막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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