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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 고, 과연 무엇을 낳았는가.

삶은계-란 2024. 1. 3. 22:53

0. 본가 포켓몬이 3DS 세대에 열심히 똥볼을 차고 있는 동안, 2016년 7월 6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한 포켓몬 게임이 출시되었다. 그 게임의 이름은 포켓몬 고, 증강현실 기술을 이용한 게임으로 실제 현실에서 포켓몬을 포획하는 새로운 방식의 게임이었다. 그리고 그 게임은 포켓몬의 힘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포켓몬 고는 전 세계에서 순식간에 인기 게임으로 등극했고 온 세상에 포켓몬 고 붐이 일어났다. 이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구글 지도 이슈로 포켓몬 고가 정식 출시가 되기 전부터 이미 한국은 포켓몬 고에 열광해 있었으며 포켓몬 고를 하겠다고 한국에서 유일하게 구글 지도가 되는 속초까지 가서 포켓몬 고를 하는 사람들이 비일비재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포켓몬 고를 여기까지만 알고 있을 것이다. 포켓몬 고의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보였던 흥행은 다른 모바일 게임들처럼 끝났다. 물론 그렇다고 포켓몬 고가 망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포켓몬 고도 다른 성공했던 모바일 게임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어느 정도 상실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번에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단순한 포켓몬 고의 흥행이라든가, 포켓몬 고가 어떤 게임인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포켓몬 고는 단순히 성공한 모바일 게임, 단순히 성공한 증강현실 게임이 아니었다. 이 게임은 그 자체만으로 포켓몬스터라는 프랜차이즈의 방향성을 바꾸었다. 그렇다면 포켓몬 고는 무엇을 바꾸었던 것일까? 바로 포획이다. 

 

1. 기존의 포켓몬스터 게임에서도 물론 포획은 중요한 지분을 차지했다. 과거 포켓몬의 캐치프레이즈가 "Gotta Catch 'Em All'였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포켓몬스터에서 포획은 그렇게까지 중요하지는 않았다. 과거 포켓몬 게임에서 포켓몬을 포획을 강요하는 요소는 생각보다 적었다. 물론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몇 마리의 포켓몬쯤은 당연히 포획해야 한다. 하다못해 공중날기 셔틀은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것 외에는 굳이 포켓몬을 추가로 포획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포켓몬을 포획하라는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지역도감 및 전국도감 완성이라는 컨텐츠가 있기는 했고, 파레리그한정으로 2회차 플레이를 위해서는 총 60종류의 포켓몬을 포획해야 했다. 그리고 일부 전설의 포켓몬(레지시리즈)를 포획하기 위해서는 특정 포켓몬을 잡아야 할 필요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제외하면 포획을 많이 하는 것은 필수적이지 않았다. 이는 애니메이션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초창기 포켓몬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인 지우와 라이벌 오바람은 포획을 많이 하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우가 시리즈에서 포획하는 포켓몬은 줄어들었고 특히 엑와에 이르면 풀파티를 간신히 채울 정도로 포켓몬 포획을 간소화하게 되었다.

 

 이렇게 포켓몬 포획은 명목상 중요했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포켓몬 포획은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아 졌고 실제 게임플레이를 하면서도 포켓몬 포획을 많이 하는 경우도 그리 많지 않아 졌다. 일반적인 1회차 및 2회차 플레이를 하며 포켓몬 박스를 2박스 이상 채운 경우는 거의 없었을 것이고 1박스를 채우는 경우도 많지 않았던 게 현실이었다. 그리고 포켓몬의 캐치프레이즈였던 "Gotta Catch 'Em All'도 스리슬쩍 사라져 있었다.

 

  포획의 위치가 이렇게 되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포켓몬 게임을 하고 애니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잡은 포켓몬에 애정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현실의 반려동물과도 비슷한데 아무리 동물을 사랑하더라도 반려동물을 마구잡이로 많이 키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는 능력의 문제만이 아니다.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반려동물을 최대한 많이 기르겠다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흔치 않다. 비슷하게 포켓몬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자신이 주로 키우게 되는 6마리의 포켓몬에 집중하게 되는 것도 당연한 마음가짐인 셈이다. 그래서 굳이 도감 완성 등 구체적 목표가 있지 않는 한 포켓몬 포획은 어느샌가 뒷전으로 밀렸다.

 

2. 그리고 이런 추세를 바꾼 것이 바로 포켓몬 고다. 지금 포켓몬 고는 다양한 컨텐츠가 있지만 과거 포켓몬 고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 가장 핵심 컨텐츠는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포켓몬을 포획하는 것이었다. 이 포켓몬을 포획한다는 원초적인 즐거움 하나만으로도 포켓몬 고는 충분히 즐거웠고 이를 계기로 포켓몬 고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는 포켓몬 고 출시 이후 가장 먼저 나온 본가 게임 포켓몬스터 레츠고 피카츄, 레츠고 이브이를 댈 수 있는데 이 게임은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포획이 필수적이다. 야생 포켓몬 배틀이 아예 사라져 야생 포켓몬과의 상호작용은 오직 포획으로만 가능하고 체육관에 진입하려 해도 포획과 관련된 조건을 만족해야만 진입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순식간에 포켓몬 포획의 위상은 하늘 끝까지 올라가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게임 포켓몬스터 소드실드에서도 이는 달라지지 않았다. 포켓몬스터 소드실드는 비록 타노스 이슈로 엄청난 논란이 일어나긴 했지만 게임 내 구역인 와일드에리어와 맥스 레이드배틀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통해 포획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울썬문을 처음 했을 때는 포켓몬을 1박스는커녕 2줄도 못 채운 채 엔딩을 보았다. 그러나 소드실드를 할 때는 박스를 무려 3개나 꽉 채운채 게임의 엔딩을 보았다.

 

 포켓몬 레전드 아르세우스와 포켓몬 스칼렛 바이올렛 역시 포획은 게임의 중추에 있다. 레알세는 대놓고 몬스터볼을 직접 조립해 포켓몬을 포획하는 것이 핵심 컨텐츠이며 게임의 제목에 나오는 아르세우스를 포획하기 위해서는 히스이도감을 전부 채워야 한다. 지방도감을 채워야만 포획할 수 있는 포켓몬은 아르세우스가 유일하다는 것을 생각하며 레알세에서 포획의 위상을 알 수 있다. 한편, 스칼렛 바이올렛에서도 와일드에리어와 맥스 레이드배틀을 계승한 오픈 월드와 테라 레이드배틀로 마찬가지로 포획을 강조했다.

 

 이는 애니메이션에서도 이어졌는데 비록 포켓몬 고 이후 등장한 포켓몬스터 W에서 지우는 예전처럼 포켓몬을 5마리만 포획한다. 그러나 포켓몬스터 W의 새로운 캐릭터이자 또 다른 주인공인 고우는 대놓고 뮤 포획을 목표로 삼는 포획에 중점을 맞춘 캐릭터다. 지우가 5마리를 포획할 동안 고우는 무려 약 108마리 정도를 잡았을 정도다. 그러므로 애니에서도 게임에서도 포획은 각 작품의 중추가 되는 핵심적인 요소로 거듭났다.

 

3. 그러면 포켓몬 고의 전후로 포획이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다. 사실만큼, 어쩌면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포획이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는 사실이 과연 포켓몬스터라는 프랜차이즈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는가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포켓몬스터 W에서 포획을 상징하는 고우라는 캐릭터 그 자체다. 고우는 포켓몬스터 W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낙인찍혔고 마지막이 되어버린 지우와의 작별을 망쳐버린 최악의 캐릭터로 평가받았다. 고우의 과한 포획은 포획이 단순한 포획이 아니라 밀렵으로 생각되게 만들었고 이는 고우의 중요한 포획 순간들이 긍정적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특히 전설의 포켓몬인 스이쿤을 포획하는 에피소드는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스이쿤은 전설의 포켓몬이었으므로 그에 걸맞은 대접이 필요했는데 이를 몬스터볼 딸깍으로 잡는 모습은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결국 포획이 중심이 된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 W는 긍정적 평가를 받지 못했다.

 

두 번째는 게임 프리크가 포획을 대하는 태도이다. 6세대 이후 게임 프리크와 포켓몬스터 시리즈는 엔드 컨텐츠의 부재를 비판받았다. 배틀프런티어, PWT, 포켓슬론 등과 비교했을 때 6세대의 배틀하우스, 7세대의 배틀리조트는 분명 초라했다. 그 뒤, 등장한 포획의 강조는 이 엔드 컨텐츠 부족을 포획으로 메우려는 느낌이 강하다. 실제로 포획이 필수가 아니었던 7세대 전만 하더라도, 전국도감이 아니라 한 지방의 지방도감을 채우는 것만으로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단순히 풀숲에서 포획하는 게 아니라 특정한 장소와 시간을 맞춰야 하는 포켓몬, 야생에서는 안 나와 직접 진화시켜야 하는 포켓몬, 특정 버전에서만 나와 교환을 필요로 하는 포켓몬 등 도감을 맞추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긴 작업을 모든 플레이어가 한다면 당연히 부족한 엔드 컨텐츠라는 비판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포획이 성공적으로 엔드 컨텐츠로 정착하는 것만으로도 엔드 컨텐츠를 채울 수 있게 된다. 그래서인지 스위치 이후 포켓몬들은 하나같이 포획 이외의 엔드 컨텐츠가 빈약하지만 그것으로는 큰 비판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포켓몬 포획이라는 할 거리를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의 배틀프런티어나 PWT, 포켓슬론을 좋아했던 사람 입장으로서 이런 방향성은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그 점이 포획의 중요성이 커지는 포켓몬스터의 방향성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두 번째 이유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시대의 흐름을 멈출 수는 없는 법이다.  포켓몬 고는 분명 역사상 가장 성공한 모바일 게임 중 하나이며 스위치 세대 이후 포켓몬스터 역시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다.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포켓몬 포획은 포켓몬스터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만큼 앞으로 포켓몬스터는 이런 방향성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방향성을 게임 프리크가 이끌었다면 한 가지 질문이 들기 마련이다. 포켓몬 포획이 중심이 되었다면 왜 게임 프리크는 포켓몬 타노스 사태를 벌였는가? 이에 대한 대답과 분석은 다음 글에서 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