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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의 역사 (5) - 판을 뒤짚다

삶은계-란 2025. 3. 2. 23:49

 

0. 2000년대 초, 닌텐도는 사면초가에 놓여 있었다. 게임큐브는 판매량으로는 플레이스테이션 2에, 성능으로는 엑스박스에 밀리는 애매한 위치였다. 그나마 잘 나가는 건 게임보이 어드밴스 뿐이었다. 하지만 소니가 이 시장까지 넘보기 시작했다. PSP라는 첫 휴대용 게임기를 내놓았는데, 성능이 플레이스테이션 2와 맞먹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닌텐도는 아무도 예상 못한 결정을 내린다. 성능 경쟁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게임 경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꾼 것이다.

 

1. 2002년 닌텐도의 새 사장이 된 이와타 사토루는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에 맞서려면 성능 경쟁이란 치킨 게임이 아닌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선택한 건 바로 블루 오션 전략이었다. 경쟁사들이 피 터지게 싸우는 하드코어 게이머 시장 대신, 게임을 접해보지 않은 새로운 층을 공략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전략을 위해 PSP에 맞설 콘솔로 DS를 만들었다.

 

 닌텐도 DS의 특징은 정말 혁명적이었다. 두 개의 화면을 세로로 배치하고, 아래 화면은 터치스크린으로 만들었다. 당시로선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기 전이라 터치스크린은 대부분에게 생소했다. 거기에 마이크까지 추가해 음성 인식도 가능하게 했다. 무선 통신 기능도 기본으로 넣어 근처의 다른 DS와 통신할 수 있었다. 게임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셈이다.

 

 처음 DS가 공개됐을 때 많은 전문가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일부는 DS가 닌텐도의 마지막 휴대용 게임기가 될 거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이 예측은 출시 후 완전히 빗나갔다. 그리고 이를 이끈 건 마리오도, 포켓몬도, 젤다도 아닌 '두뇌 트레이닝'이었다

 

 두뇌 트레이닝은 블루 오션 전략의 핵심이었다. 이 게임이 나왔을 때 많은 게이머들은 굳이 왜 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게임을 안 하던 노인들에겐 뇌건강에 좋은 기능형 게임으로 인기를 끌었다. 게임과 거리가 멀었던 일반인들도 머리가 좋아진다는 소문에 구매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두뇌 트레이닝은 약 1900만장이 팔리며 DS 베스트셀러가 됐다. 블루 오션 전략의 완벽한 성공이었다.

 

 물론 닌텐도가 노린 건 노인들만이 아니었다. '닌텐독스'와 '놀러와요 동물의 숲'은 게임과 거리가 멀었던 여성층을 공략했고, 이 역시 성공이었다. 놀동숲은 약 1200만장, 닌텐독스는 무려 약 2400만장이나 팔리며 여성층이라는 새 시장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닌텐도의 스테디셀러인 마리오, 포켓몬, 젤다도 한몫했다. '뉴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포켓몬스터 다이아몬드/펄', '젤다의 전설 몽환의 모래시계' 등 많은 게임들이 DS로 나와 흥행했다. 특히 뉴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약 3100만장이 팔리며 엄청난 성적을 냈다. 이런 신구 조화 덕에 닌텐도 DS는 약 1억 5000만대라는 어마어마한 판매량을 기록했고, 이는 PSP의 약 2배였다. DS는 성능이 훨씬 좋은 PSP를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리고 이 승리는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2. DS가 엄청난 성공을 거둘 때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서는 엑스박스 360이 뛰어난 성능으로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고 오히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3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닌텐도가 내놓은 건 Wii였다. Wii는 DS처럼 성능은 이 둘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초라했다. 하지만 Wii 역시 닌텐도의 블루 오션 전략을 위한 게임기였다.

 

 DS가 터치스크린에 중점을 뒀다면 Wii는 모션 컨트롤에 집중했다.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리모컨처럼 생긴 Wii 리모컨을 컨트롤러로 삼아 가볍게 휘두르거나 흔드는 것만으로도 쉽게 조작할 수 있었다. 닌텐도는 이 모션 컨트롤을 활용한 게임을 Wii의 번들 게임으로 내놓았다. 바로 Wii 스포츠였다. Wii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Wii 스포츠를 즐길 수 있었고, 사람들에게 모션 컨트롤이 뭔지 확실히 보여줄 수 있었다.

 이런 트렌드에 쐐기를 박은 건 Wii Fit이었다. Wii Fit은 Wii 리모컨에 더해 운동용으로 밸런스 보드라는 새 컨트롤러도 추가했는데, 이를 통해 더 정밀하고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되는 운동을 할 수 있었다. 게임에 전혀 관심 없던 사람들이 운동을 위해 Wii를 사기 시작했고, Wii Fit은 엄청나게 팔려나갔다. 약 2300만장이 팔렸는데, 이는 두뇌 트레이닝보다도 더 많은 판매량이었다.

 

 물론 Wii 역시 전통적인 게이머들을 위한 게임이 없진 않았다. 특히 슈퍼 마리오 갤럭시는 역사상 최고의 마리오 게임 중 하나로 불리며 엄청난 호평을 받았고, 젤다의 전설 황혼의 공주나 스카이워드 소드도 호평을 받으며 좋은 기세를 이어갔다. 뉴슈마 Wii도 발전한 멀티플레이로 좋은 평가를 받았고, 마리오 카트 Wii는 모션 컨트롤을 게임에 완벽히 녹여내며 약 3700만장을 판매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렇게 블루 오션 전략과 기존 게임의 조화로 성능으로는 보잘것없어 보이던 Wii는 발상의 전환으로 플레이스테이션 3와 엑스박스 360을 이기며 약 1억대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닌텐도의 부활을 알리는 완벽한 성공이었다. 이 성공은 단순히 기기 판매량의 수치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었다. 블루 오션 전략에 주목한 경제 전문가들은 닌텐도를 선구자로 봤고, 닌텐도는 당시 전성기를 누리던 애플과 비교되는 등 대외적으로도 엄청난 위치에 올랐다.

 

 이런 상황이니 닌텐도의 전성기는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전성기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막을 내린다. 바로 닌텐도의 영원한 흑역사이자,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콘솔, Wii U가 등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