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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의 역사 (6) - 개같이 멸망

삶은계-란 2025. 3. 4. 19:30

 

0. 2006년 출시된 Wii와 2004년 출시된 DS는 닌텐도 역사상 가장 폭발적인 성공을 거둔 콘솔이었다. Wii는 1억 대 이상, DS는 1억 5천만 대 이상 팔리며 전 세계적으로 게임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모션 컨트롤과 터치스크린이라는 혁신적인 인터페이스로 비게이머들까지 끌어들이며 닌텐도는 게임 업계의 정상에 우뚝 섰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엄청난 성공이 닌텐도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성공의 정점에서 닌텐도는 다음 세대 기기를 준비해야 했지만, 이미 완벽에 가까운 성공을 거둔 플랫폼을 어떻게 대체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일반인들을 다시 한번 놀라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스마트폰과 태블릿이라는 새로운 경쟁자들에 대응할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닌텐도의 대답은 닌텐도 3DS와 Wii U였다. 그리고 그 대답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특히 Wii U는 닌텐도 홈 콘솔 역사상 가장 낮은 판매량을 기록하며 회사를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었다. 그렇다면 왜 Wii U는 실패했을까? 왜 3DS는 그 성공에도 불구하고 닌텐도를 구원하지 못했을까? 이번 글에서 이를 차근차근 알아보자.

 

1. 먼저 나온 것은 닌텐도 3DS였다. 2011년 2월 26일, 닌텐도는 DS의 후속기인 닌텐도 3DS를 일본에서 출시했다. 특수 안경 없이도 3D 화면을 볼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을 탑재한 이 기기는 닌텐도가 자신감을 갖고 내놓은 차세대 휴대용 게임기였다. 출시 가격은 25,000엔(미국에서는 250달러)으로, 닌텐도 역사상 가장 비싼 휴대용 기기였다.

 

 그러나 비싼 가격과 게임의 부족, 그리고 빛 좋은 개살구였던 3D 기능은 시너지를 내며 3DS의 초기 판매에 큰 악영향을 끼쳤다. 거기에 시대도 닌텐도의 편이 아니었다. 2011년은 스마트폰과 태블릿 시장이 급속도로 보급되던 시기였다. 즉, 휴대용으로 게임을 하려면 굳이 3DS가 필요하지 않았다. 단일 기능의 전용 게임기에 높은 가격을 지불할 소비자는 예상보다 훨씬 적었다.

 

 그러자 닌텐도는 강력한 가격 인하로 여기에 응수했다. 3DS 가격을 약 40%나 인하했다. 기존 유저들은 불만을 품었지만 이 덕에 3DS의 판매에 반등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기에 시간이 지나자, 닌텐도의 전매특허 게임들이 3DS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슈퍼 마리오 3D 랜드, 마리오 카트 7,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2, 튀어나와요 동물의 숲 등 양질의 게임이 3DS로 쏟아졌다. 거기에 전 세대만 해도 PSP의 선봉장이었던 몬스터 헌터가 경쟁자였던 플레이스테이션 비타를 버리고 3DS로 합류했다. 이는 비타의 몰락과 3DS의 부활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그리고 2013년 10월, 발로 만들어도 천만장이 팔린다는 게임, 포켓몬스터 XY가 출시되면서 3DS와 비타 간의 경쟁은 완전히 막을 내렸다. XY는 약 1600만장이 팔리며 포켓몬의 힘을 증명했다. 그 뒤에도 계속해서 양질의 게임들이 나온 결과 닌텐도 3DS는 약 7600만대가 팔렸다. 이는 전작이었던 DS의 절반 정도였지만 스마트폰을 감안하면 꽤 성공한 수치였다.

 

 그러나 이런 3DS조차 이 시기의 닌텐도를 구하지 못했다. 이는 스마트폰의 성능이 더 좋아지면서 휴대용 게임기 시장 자체가 무너질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Wii U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망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Wii U는 도대체 얼마나 망했던 걸까?

 

2. 닌텐도는 Wii U를 E3 2012에서 야심차게 공개했다. 그러나 그 공개는 실수투성이었다. 먼저 이름부터가 문제였다. Wii U, 직관적인 이름이 아니다. 뭔가 Wii의 후속기라기보다는 Wii Fit처럼 Wii의 부속기기 같은 느낌이 들었다. 특히 Wii와 DS로 입문한 일반인들에게는 더욱 말이다. 거기에 이름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공개 당시 닌텐도는 Wii U의 새로운 기믹인 게임패드를 위주로 홍보했는데 이는 더욱더 Wii U를 부속기기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Wii U의 핵심이었던 게임패드는 어땠을까? 애처롭게도 게임패드의 혁신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휴대용 게임기처럼 터치 스크린이 있는 게임패드라는 컨셉 자체는 흥미로웠다. 그러나 기술력의 부족으로 그 강점을 살리지 못했다. 배터리 수명이 짧고(약 3-5시간), 콘솔로부터의 통신 범위도 제한적이었다. 거기에 닌텐도조차 게임패드의 활용법에 대해 명확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 만큼 게임패드는 실패한 기믹이 되어버렸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성능마저 구렸다. 닌텐도는 야심차게 자신만의 첫 HD 게임기를 만들었으나 이는 고작 엑스박스 360과 플레이스테이션 3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플레이스테이션 4와 엑스박스 원이 등장하자 Wii U의 성능은 완전히 뒤쳐져버렸다. 당연히 서드 파티들은 Wii U를 외면했다. 게다가 Wii U가 닌텐도의 첫 HD 게임기였던 관계로 닌텐도 자신조차 Wii U 게임을 만드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출시 초기 게임 부족을 낳았다.

 

 게임패드는 장식품이고, 성능은 구린데, 게임도 없다. 이런 게임기가 성공한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됐다. Wii U는 초반부터 판매량이 비실비실하더니 결국 플레이스테이션 4와 엑스박스 원에게 완전히 추월당하며 처참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Wii U는 약 1400만대가 팔렸는데 이는 닌텐도의 가정용 게임기 역사상 가장 저조한 실적이었다.

 

 그래도 닌텐도의 게임만큼은 건재했다는 게 다행이었다. 슈퍼 마리오 3D 월드, 마리오 카트 8, 스플래툰 등은 좋은 평가를 받으며 몇 안 되는 Wii U 유저들을 안도시켰다. 하지만 이미 Wii U의 실패가 확정된 뒤 나온 게임들이었기에 절대적인 판매량은 그리 많지 않았으며 Wii U를 살리지도 못했다. 그런고로 한동안 이들은 비운의 게임으로 남게 된다.

 

3. 이런 위기 속에서 닌텐도는 여러 개혁을 단행했다. 그 중 가장 큰 개혁은 바로 모바일 시장 진출이었다. 닌텐도는 자신의 게임들을 스마트폰으로 냈고 많은 게임이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포켓몬스터 GO는 사회 현상이 될 정도로 큰 성공이었다. 하지만 이런 성공들은 도리어 닌텐도가 게임기를 버리고 세가처럼 소프트웨어 회사로 변하는 게 아닌가는 우려를 나을 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닌텐도의 사장이었던 이와타 사토루가 2015년에 사망하면서 닌텐도의 분위기는 암울해 보였다. 이렇게 어두워보이는 분위기 속에서 닌텐도는 새로운 게임기를 발표하고, 그 게임기는 모든 것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