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2017년 3월, 닌텐도는 회사 역사상 가장 큰 위기 중 하나에 직면해 있었다. Wii U의 처참한 실패와 이와타 사토루 사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인해 많은 이들이 130년 역사의 이 회사가 하드웨어 비즈니스에서 철수하고 소프트웨어 개발사로 전환할 것이라 예측했다. 스마트폰 게임의 부상과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의 강력한 콘솔 지배력 사이에서, 닌텐도의 독특한 철학을 고수하며 생존할 공간은 점점 좁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 등장한 닌텐도 스위치는 단순한 신형 콘솔이 아닌, 회사의 존립을 건 마지막 승부수였다.
그리고 2025년 현재, 닌텐도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스위치는 엄청난 판매량을 자랑하며 영화나 테마파크 분야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최근 공개된 닌텐도 스위치 2는 많은 게이머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 8년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를 차근차근 알아보자.
1. 2016년, 닌텐도는 새로운 콘솔, 닌텐도 스위치를 공개했다. 이 콘솔은 기존의 다른 콘솔들과 달리 가정용과 휴대용의 혼합, 하이브리드 콘솔이었다. 스위치 공개 후,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어떤 이들은 가정용과 휴대용 콘솔의 장점만을 가진 좋은 콘솔이 될 거라 생각했고, 또 다른 이들은 가정용과 휴대용의 단점만 더해진 이도저도 아닌 콘솔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조차 스위치로 나올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는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틀렸다. 왜냐하면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야생의 숨결)은 단순히 재미있는 게임이 아니라 역사상 최고의 게임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2017년 3월 3일, 수많은 사람들이 스위치를 구매했다. 그 이유는 당연히 야생의 숨결 때문이었다. 모든 웹진과 리뷰어들이 야생의 숨결을 역사상 최고의 게임이라 칭송했고, 당연히 많은 이들이 야생의 숨결만을 위해 스위치를 구매했다. 그리고 야생의 숨결은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넓은 오픈월드와 혁신적인 상호작용, 극도의 자유도는 모두를 야생의 숨결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야생의 숨결의 엔딩을 봤을 때쯤, 닌텐도는 새로운 게임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마리오 카트 8 디럭스, 스플래툰 2,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 모두 2017년에 나온 게임들로 엄청난 흥행을 거두었다. 특히 마리오 카트 8 디럭스는 엄밀히 말하면 신작은 아니지만, Wii U가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사실상의 신작으로 많은 이들에게 마리오 카트 8이 명작이었음을 알려줬다. 그 결과 닌텐도 스위치는 발매 첫해에만 약 1500만 대가 팔렸다. 그리고 이마저도 생산량 부족으로 사람들이 줄을 서면서 스위치를 산 결과였다.
그 다음 해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타이틀 발매로 인해 걱정을 사기도 했지만, 연말에 연이어 출시된 포켓몬스터 레츠고 피카츄/이브이와 슈퍼 스매시 브라더스 얼티밋 덕분에 마찬가지로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포켓몬스터 소드/실드, 모여봐요 동물의 숲 등 메가히트작의 출시로 닌텐도 스위치의 흥행은 정점을 찍었다. 특히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없어서 못 살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자랑했다. 그 결과 닌텐도 스위치는 2024년 12월 말 기준으로 약 1억 5000만 대가 팔렸으며, 앞으로도 이 판매량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닌텐도가 만든 콘솔 중 가장 많은 판매량이다.
하지만 이 시기 닌텐도의 가장 큰 성과는 단순히 기기를 많이 팔았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예전만 하더라도 닌텐도의 게임들은 마리오, 포켓몬, 대난투, 동물의 숲 등 소수 IP에 의존하는 경향이 컸다. 심지어 젤다마저도 인지도와 평가와는 달리 판매량이 엄청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시기 닌텐도 스위치로 출시한 IP들은 모두 엄청난 성장세를 기록했다.
대표적으로 젤다만 하더라도 예전에는 천만 장을 감히 넘보지 못했지만, 스위치 이후 야생의 숨결이 3400만 장, 후속작인 왕국의 눈물이 2300만 장이 팔리며 명성에 버금가는 흥행을 보여주었다. 마찬가지로 커비 역시 인지도에 비해 잘 안 팔리는 시리즈 중 하나였는데, 스위치에 오자 750만 장이 팔리며 엄청난 상승세를 보여줬고, 영원한 2인자인 루이지의 게임, 루이지 맨션도 루이지 맨션 3로 천만 장을 넘기는 데 성공했다.
그 외에도 파이어 엠블렘, 제노블레이드 등도 스위치 시대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기록했고, 전 세대만 하더라도 망할 것만 같았던 메트로이드와 페이퍼 마리오도 부활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 시기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 것은 역시 피크민과 마앤루 시리즈였다. 닌텐도 내부에서 '넥스트 마리오'라 불릴 정도로 큰 기대를 얻었고 실제로 평가도 좋았지만, 높은 진입장벽과 저주받은 기기 선택 능력으로 바닥을 기는 흥행을 보였던 피크민은 피크민 4로 약 350만 장이 팔리며 드디어 흥행 시리즈로 거듭났고, 아예 개발사가 폐쇄돼서 영영 못 볼 것만 같았던 마앤루도 마앤루 브라더십으로 부활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닌텐도 스위치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양쪽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에는 거치용과 휴대용 통합으로 인한 개발 집중이 있었다. 거치용과 휴대용으로 나누어서 나와야 될 게임들이 스위치라는 콘솔 하나로 집중돼서 나오니 더 많은 시간을 게임 개발에 투입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더 양질의 게임이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양질의 게임이 나오니 당연히 게임이 더 많이 팔리고, 그것이 다시 게임 개발에 투자되는 선순환을 이뤘던 것이다.
거기에 닌텐도는 게임 외적으로도 엄청난 성공을 거듭했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우려를 한몸에 받았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애니메이션은 10억 달러를 돌파하며 총 13억 달러라는 엄청난 흥행에 성공했고, 유니버설과 합작한 슈퍼 닌텐도 월드도 코로나 시국에도 불구하고 성공하며 계속해서 확장해나가고 있다. 이렇게 닌텐도 스위치 시대는 게임 내적이든, 외적이든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던 시대였다.
2. 이렇게 닌텐도 스위치의 성공은 단순한 행운이 아닌, 위기 속에서 태어난 혁신적 발상과 철저한 게임 개발 철학의 결실이었다. 닌텐도가 추구해온 가치는 스위치라는 하드웨어를 통해 완벽하게 구현됐고, 이는 휴대용이라는 다른 콘솔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만들어냈다. 특히 닌텐도만의 강점인 뛰어난 IP들을 활용한 고품질 게임 라인업은 하드웨어의 성공을 뒷받침했다. 게임 업계의 트렌드가 계속 변해도 자신들만의 길을 고집했던 닌텐도의 고집이 결국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이제 닌텐도는 스위치의 성공을 기반으로 스위치 2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려 한다. 차세대 콘솔이 기존 스위치의 철학을 이어가면서도 어떤 혁신을 보여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닌텐도의 DNA가 여전히 살아있는 한, 그들이 게임 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게임이란 결국 재미라는 본질에 집중해온 닌텐도의 이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철학이, 앞으로도 수많은 게이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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