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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 섬에서 범인을 잡는 게임 - (2)

삶은계-란 2023. 6. 28. 11:27

※ 이 글에는 슈퍼 단간론파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초고교급 '셰프'라 불러주지 않겠어? 그 편이 말이지, 도시적인 향기가 나잖아?
- 하나무라 테루테루, 초고교급 셰프
부모가 살아 계시거든 멀리 떠나지 말고, 떠나게 되면 반드시 갈 곳을 알려야 하느니라.
- 공자, 노나라의 철학자

 

0. 한식이 맛있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는 바로 어머니의 손맛도 있다. 어머니의 경험에서 나온 손맛은 같은 요리여도 더 맛있게 만들어준다. 물론 이 손맛이라는 개념이 한식의 계량화와 정량화를 막아 접근성을 높인다고 비판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요리 유튜버들은 한식의 레시피를 계량화해서 정확한 양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려 한다. 하지만 분명 손맛의 마법은 실존하며 이번에 소개할 인물도 이를 정확히 알고 있다. 뭐, 이 인물은 일본인이지만.

 

1. 초고교급 요리사 하나무라 테루테루는 매우 뛰어난 요리사였다. 물론 자신은 도시인을 자처하며 초고교급 셰프라 불러달라고 했지만 생긴 것도 그렇고 시그니처 요리도 그렇고 그냥 요리사가 맞다. 아무튼 하나무라는 어려서부터 식당을 운영하던 어머니의 밑에서 요리를 배웠고 그 덕에 실력 있는 요리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건강은 좋지 않았고 하나무라는 그런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키보가미네를 졸업한 다음, 성공한 요리사가 되어 효도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하나무라는 재수가 없게도 재버워크 섬으로 수학여행, 정확히는 살인 수학여행에 끌려갔다. 다행히 토가미가 일행의 질서를 잡으며 리더가 되었지만 토가미가 리더가 된다고 바로 섬에서 탈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거기에 모노쿠마가 사실 모두의 기억을 빼앗았다는 사실을 폭로하자 하나무라는 매일을 어머니를 걱정하며 지냈다. 이런 걱정을 토가미가 알아서였는지 토가미는 구관 건물에서 파티를 열겠다고 선언했고 하나무라는 자연스럽게 파티의 전속 요리사가 되어 구관에서 요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하나무라는 우연히 구관을 청소하던 코마에다가 지하를 청소하는 모습을 봤다. 문제는 코마에다가 단순히 청소를 하는 게 아니라 살인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나무라는 코마에다에게 살인을 멈추라고 부탁했지만 코마에다는 네가 진정한 희망이라면 한 번 막아보라는 식으로 응수한 뒤, 지하를 떠났다. 하나무라는 저런 코마에다를 막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선수를 쳐야 된다고 확신하며 살인을 막기 위한 준비를 했다.

 

 먼저 하나무라는 흉기가 될 수 있는 기다란 꼬치를 꼬치구이에 숨겼다. 그다음, 코마에다의 계획대로 정전이 일어나면 빛을 차단할 방화벽을 세운 뒤, 바로 광원이 될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들고 가 코마에다를 암살한다. 이것이 하나무라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하나무라는 정전이 일어나자 성공적으로 지하로 가 누군가를 찌르는 데 성공했다. 문제라면 그것이 코마에다가 아니라 토가미였다.

 

 하나무라는 자신이 무고한 토가미를 찔렀다는 사실에 당황했지만 일단은 이를 침묵한 채 학급재판을 넘기려 했다. 그러나 결국 하나무라가 남긴 증거들 덕분에 꼬리가 잡히고 말았고 결국 하나무라는 모든 것을 자백하고 말았다. 하나무라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모노쿠마가 약속했던 기억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모노쿠마는 하나무라의 말 따위는 깔끔하게 무시하며 하나무라를 처형시켰다. 이것이 슈퍼 단간론파의 첫 번째 범인, 하나무라의 최후였다.

 

 2. 하나무라는 코마에다를 막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 적어도 자기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만약 하나무라가 진심으로 코마에다를 막으려 했다면 하나무라는 살인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 있었다. 토가미에게 사실 코마에다가 위험하다고 전한다든가 말이다. 뭐, 하나무라의 화술이 코마에다에 비해 뒤처진다 하더라도 이미 코마에다는 뒷공작을 마친 뒤였으므로 충분히 코마에다가 위험하다는 것을 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무라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코마에다를 막기 위해서라면서 자신의 살인을 합리화했다. 그렇다면 하나무라는 왜 진짜 살인을 저질렀을까?

 

 그건 바로 하나무라가 효자라서 그렇다. 하나무라가 키보가미네에 입학한 이유는 어머니 때문이었고 어머니만을 위해 지금까지 힘들게 노력해 왔다. 그런데 모노쿠마가 자신의 기억을 빼앗았다고 하자 하나무라는 계속해서 어머니를 걱정하기 시작했고 어머니의 상황을 알기 위해서라도 살인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여기서 코마에다가 하나무라의 등을 떠밀어줬다. 그러니, 하나무라는 코마에다를 막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살인을 계획한 것이다. 

 

 물론 이는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먼저 코마에다를 막기 위해서 살인을 했다는 것은 반대로 코마에다는 트릭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즉, 코마에다가 조금만 협조적이었다면 하나무라의 살인은 순식간에 들통났을 것이다. 물론 하나무라의 계획은 코마에다를 죽이는 것이었지만 이는 실패했다. 즉, 코마에다를 죽이는 데 실패한 순간 하나무라에게 승산은 없었다. 또, 살인 현장도 하나무라에게는 좋지 않았다. 파티장에서 정전이 벌어졌을 때, 현장에 없던 것은 하나무라, 나나미, 페코야마, 쿠즈류뿐이었다. 그런데 나나미는 모노미와 함께 있어서 알리바이가 있고 페코야마는 화장실 이슈라서 마찬가지로 증거가 있고 쿠즈류는 대놓고 건물 밖에 있어서 알리바이가 확보되었다. 그렇다면 범행이 파티장 외부에서 일어난 순간 하나무라가 무슨 수를 쓰던 범인은 하나무라가 된다. 그러므로 범행을 한 장소나 타이밍이나 모두 하나무라에게는 별로 유리한 조건이 아니었고 결국 하나무라의 살인은 들통나고 말았다.

 

3. 하나무라의 동기 자체는 꽤 딱하기도 하고 1챕터의 트릭도 나쁘지 않다. 그러니 하나무라 자체도 나쁘지 않은 캐릭터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하나무라의 존재감은 크지 않다. 가장 큰 원인이라면 역시 1챕터의 범인으로서 응당 가져야 할 어그로를 코마에다가 다 뺏어버렸기 때문이다. 1챕터부터 급발진한 코마에다의 존재감은 너무나도 강대했고 이는 한낱 1챕터의 범인인 하나무라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슈퍼 단간론파의 첫 살인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하나무라라는 캐릭터가 마냥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오늘만큼은 하나무라의 시그니처인 돈가스를 먹으며 그를 기억하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