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슈퍼 단간론파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기억 따윈 없어도 너는 너잖아? 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지장 없다. 그것 만으로 충분해. 네가 너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지금 여기 있는 너의 가능성을 믿는다.
- 토가미 뱌쿠야, 초고교급 상속자
저는 누구도 아닌... 허무한... 심연인 겁니다...
- 망령, 국제 스파이, 게임 <역전재판 5> 中
0. 처음으로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했을 때는 낯선 풍경뿐이다. 처음 보는 도시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새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 그런 막막한 곳에서 고향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이 원래 알던 모르든 간에 반갑기 마련이다. 슈퍼 단간론파에서 토가미도 그런 존재다. 전편에서 토가미를 좋아했던, 싫어했든 간에 토가미는 분명 반가운 얼굴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제작진이 철저하게 설계한 하나의 함정이었다.
1. 히나타와 나머지 학생들은 키보가미네를 입학하자마자 뜬금없이 재버워크 섬이라는 열대 섬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뜬금없이 생긴 로봇 우사미가 갑자기 수학여행에서 희망을 모으는 여행을 하자고 했다. 그리고 뜬금없이 모노쿠마가 나타나 우사미를 제압한 뒤, 살인게임을 선언했다. 모노쿠마는 살인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전작의 플롯을 디스 하며 첫 번째 동기로 모든 학생들이 학창생활의 기억을 잃어버렸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살인을 한 사람에게만 그 잃어버린 기억을 돌려주겠다는 달콤한 제안을 했다.
학생들이 혼란에 빠졌을 때, 유일하게 익숙한 얼굴, 초고교급 상속자 토가미 뱌쿠야가 나섰다. 그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리더임을 선포한 뒤, 모두에게 절대 살인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자신이 무슨 일이 있어도 살인을 막겠다고 선언했다. 비록 살은 쪘지만 그래서 더 풍채가 있어 보였는지 토가미는 많은 학생들에게 받아들여져 일행의 리더가 되었고 그의 통솔 아래에 섬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비록 초고교급 야쿠자인 쿠즈류처럼 반동분자가 있긴 했지만 토가미는 이를 감수하더라도 일행을 잘 이끌었다.
그런 토가미는 어느 날, 의문의 쪽지를 받았다. 오늘 누군가를 죽이겠다는 내용의 쪽지였다. 이 쪽지를 받은 토가미는 살인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모두가 모두를 감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토가미는 모두가 모인 아침에 레크리에이션을 위한 파티를 열겠다고 선언한 뒤, 꼼꼼하게 파티 준비를 했다. 모두가 모두를 감시할 수 있는 폐쇄된 장소인 구관을 파티 장소로 정한 뒤, 파티 시작 전부터 위험한 흉기를 전부 치우고 자신은 비상상활을 대비한 야간투시경까지 준비했다.
그리고 실제로 비상 상황이 닥쳤다. 파티 준비를 위해 구관의 청소를 맡았던 코마에다가 사실 살인 예고를 한 진범이었다. 그는 청소를 하며 구관의 전력을 과부하시켜 정전시킨 다음, 미리 준비해 둔 흉기로 토가미를 제거하려 했다. 다행히 이런 상황을 예측했던 토가미는 즉시 야간투시경을 쓴 다음 피지컬로 코마에다를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순간, 또 다른 범인이 지하에서 토가미를 기다란 창으로 노리고 있었다. 토가미가 그 사실을 몰랐는지는 아니면 알고도 코마에다를 지키기 위해 모른 척한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토가미는 그 기다란 창에 찔려 죽고 말았다.
다행히 히나타와 일행들은 사건을 해결하는 데 성공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졌다. 사실, 지금까지 본 토가미는 진짜 토가미가 아니라 이름 없는 초고교급 사기꾼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재능으로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살다 자신의 진정한 본명까지 잃어버린 채 누군가로 변장하며 살아왔고 결국 초고교급 상속자, 토가미 뱌쿠야라는 정체를 선택했던 것이다. 결국 모두가 토가미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사실 이름 없는 사기꾼이었다.
2. 초고교급 사기꾼은 자신의 재능에 잡아먹혀 자신의 이름과 정체성을 잃은 불행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랬기에 그는 다른 사람이 되어 타인을 도울 수 있었다. 분명 슈단의 토가미는 가짜였지만 그는 진짜 토가미보다 더 뛰어난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학생들을 통솔하고 질서를 유지하며 집단을 이끄는 리더로서 토가미는 분명 뛰어났다. 그러므로 초고교급 사기꾼은 시작하자마자 죽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인물이었다.
그러나 가짜 토가미는 분명 뛰어난 리더십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의 지략까지 고평가 하기는 어렵다. 코마에다는 가짜 토가미의 심리를 이용해 완벽한 살인 현장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으며 가짜 토가미의 살인에 실패할 경우까지 대비해 의문의 범인에게 무의식적으로 살인을 하도록 유도까지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코마에다는 자신의 피를 묻히지도 않고 살인을 벌이는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진짜 토가미였다면 이 정도는 가볍게 막아낼 수 있었을 거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 점이 약간 아쉽다. 만약 가짜 토가미가 살아있었다면 특유의 리더십으로 이후의 살인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3. 분명 토가미의 재등장은 팬들에게 엄청난 기대감을 심어주었다. 다 처음 보는 얼굴 사이에서 유일하게 친숙한 인물이었고 초반부부터 주인공의 조력자가 되어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제작진들은 그 생각을 완벽하게 배신하며 또 한 번의 충격적인 1챕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이런 패턴은 전편의 조력자를 후속작에서 허무하게 죽인 셈이 되어 라스트 오브 어스 2의 골프공 사태와 같은 비판을 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제작진은 이조차도 예측해 토가미가 사실 가짜였고 진짜는 따로 존재한다는 설정으로 가짜 토가미의 캐릭터성을 더 심화시키고 팬들을 진정시키는 데도 성공했다. 그러므로 가짜 토가미 덕에 슈퍼 단간론파는 성공적인 시작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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