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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 흑백 논리 속 회색을 찾아서 - (2)

삶은계-란 2023. 6. 23. 10:12

1. 블랙·화이트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N이다. 주인공이 아니라 N이다. 왜냐하면 블랙·화이트의 주인공은 포켓몬 전통에 따라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작품의 주된 줄거리와 주제를 설명해 주는 역할은 주인공의 진정한 라이벌, N이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N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었을까?

 

 N은 어려서부터 부모가 없었고 그런 그를 길러준 것은 인간이 아니라 포켓몬이었다. N은 포켓몬과 함께 자라며 자연스럽게 포켓몬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러던 중, 게치스가 숲 속에서 N을 발견했다. N의 능력을 알아챈 게치스는 N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한 뒤, 인간에게 학대당한 포켓몬을 보여주며 N을 길렀다. 학대당한 포켓몬과 대화하며 N은 자연스럽게 인간과 포켓몬은 공존할 수 없으며 둘은 분리되어야 한다는 사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성장하게 되었을 무렵, 플라즈마단은 이제 표면에 나서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N도 플라즈마단의 왕이 되어 포켓몬 해방을 준비했다.

 

  N은 포켓몬과 함께하긴 했으나 그 지방에 있던 야생 포켓몬을 잠시 포획했다가 놔주는 방식으로 그만의 여정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N은 넝쿨마을에서 우연히 주인공과 만났다. 주인공의 포켓몬은 지금까지 봤던 다른 포켓몬과 달리 주인공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N은 주인공과 첫 승부를 했다. 그러나 주인공은 쌔비냥 한 마리밖에 없던 N을 쉽게 이겼고 N은 주인공과 주인공의 포켓몬의 우정에 혼란을 느끼면서도 일단 물러났다.

 

 그 뒤, N은 주인공을 지켜보며 그의 앞길에 가끔씩 나타나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승부를 하는 등의 행동을 했다. 그러던 중, 뇌문시티의 관람차에서 단 둘이 관람차에 탄 N은 자신이 플라즈마단의 왕임을 밝히며 본격적으로 주인공과의 대립을 시작했다. 뇌문시티 관람차, 전기돌동굴 등에서 승부를 벌인 둘은 마침내 용나선탑에서 다시 만났다. 그리고 N은 용나선탑에서 제크롬에게 선택받는 데 성공했다. N은 제크롬과 함께 챔피언을 이긴 다음 하나지방의 왕이 되어 포켓몬을 해방시킬 것이라 선언한 뒤, 바로 포켓몬 리그로 향했다.

 

 포켓몬 리그에 도착한 N은 사천왕을 모두 쉽게 이기고 마침내 챔피언, 노간주에게 도달했다. 노간주 역시 챔피언으로 강력한 상대였다. 그러나 제크롬에게 선택받은 N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N은 노간주를 이겼고 뒤늦게 주인공이 도착하자 N은 이미 건설해 두었던 플라즈마단의 본거지, N의 성을 소환해 포켓몬 리그를 점령했다. 그리고 전설의 포켓몬에게 선택받은 두 영웅 간의 마지막 결투를 제안하며 성의 정상으로 향했다.

 

 주인공은 N을 쫓아 정상으로 향했다. 그러나 전설의 포켓몬이 없는 것을 본 N은 주인공이 선택받지 못했다고 생각해 실망하며 제크롬을 꺼냈다. 그러자 주인공이 갖고 있던 라이트스톤이 공명하더니 레시람이 깨어났고 주인공은 레시람에게 인정받아 레시람을 포획하는 데 성공했다. 이 모습을 본 N은 주인공을 전설의 영웅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제크롬과 레시람이라는 전설의 영웅 간 운명의 결투를 시작했다.

 

 둘의 실력은 엇비슷했다. 그러나 주인공의 실력이 약간 더 우세했다. 결국 N의 포켓몬은 차례차례 쓰러졌고 운명의 결투는 주인공의 승리로 끝났다. N은 패배를 인정하며 자신의 이상이 무너졌다는 사실에 충격받았다. 그러나 이를 본 게치스가 나타나 N의 패배를 비난하며 자신의 계획이 무녀졌다고 한탄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N을 사람의 마음을 가지지 않은 괴물이라 매도하며 N을 맹비난했다. 자신의 이상이 무너졌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이 게치스의 야망의 한낱 장기말이었다는 사실에 N은 흔들렸지만 자신의 이상만큼은 순수했기에 제크롬에게 선택받지 않았냐는 노간주의 조언을 듣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게치스와 주인공의 마지막 대결 전, 지친 주인공의 포켓몬을 회복시켜 주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게치스가 처참히 무너진 다음, 주인공과 N은 마지막으로 단 둘이서 대면했다. N은 처음 주인공과 만났을 때의 감상과 자신이 가졌던 왜곡된 생각에 대한 반성, 그리고 이상과 진실이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 등을 털어놓았고 마지막으로 주인공에게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조언을 남긴 뒤, 제크롬을 타고 미련없이 하나 지방을 떠났다. 이것이 N의 이야기였다.

 

2. N의 성장 과정은 왜곡되었다. 포켓몬 세계에서는 분명 인간에게 학대당한 포켓몬이 있다. 하지만 그보다도 많은 포켓몬들은 인간과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N은 이런 포켓몬을 보지 못하고 자랐고 자연스럽게 인간과 포켓몬이 분리된 사회라는 이상을 가졌다. 그리고 그 이상이 성장 과정의 왜곡과는 별개로 마냥 틀린 건 아니다. 굳이 현실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포켓몬을 하면서 성능이 안 좋은 포켓몬을 유기하는 일은 흔하다. 특히, 실전이라 불리는 멀티플레이로 가면 개체치나 성격 등 선천적인 능력치가 더 중요해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또, 굳이 멀티플레이를 안 하더라도 색이 다른 희귀한 포켓몬을 얻기 위해 계속해서 알까기를 하며 일반 포켓몬을 버리는 일 역시 비일비재하다. 필자의 경우도 색이 다른 포켓몬을 얻기 위해 몇 박스씩 알까기를 한 경험이 있다. 과연 이런 실태를 처음 포켓몬을 만들었을 때 의도했을까? 과연 알까기의 희생양이 되는 포켓몬과 버려진 포켓몬들이 행복할까? N의 이상은 이런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

 

 또, 굳이 게임 플레이 얘기를 안 하더라도 게임 내에서도 포켓몬을 학대하는 트레이너는 분명 존재한다. 애니에서 등장하는 로켓단 삼인방처럼 빌런 주제에 포켓몬을 아끼는 자들이 특이한 거지, 많은 로켓단, 아쿠아단, 마그마단, 갤럭시단 조무래기들은 포켓몬을 자신의 범죄를 위한 도구로만 이용했다. 이렇게 좋은 쪽으로 본다면 N은 빌런이 아니라 혁명가다. 실제로 그의 이상만큼은 순수했고 그랬기에 이상의 포켓몬이라는 제크롬이 N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N은 완전한 이상을 가진 인간이었을지언정 진실을 돌아보지는 못했다. 게임에서도 애니에서도 언급되지만 포켓몬 세계에서의 인류 문명은 분명 포켓몬과 함께 공존하는 방향으로 발전했고 그 결과 포켓몬이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다. 애니메이션만 하더라도 지우의 꼬부기가 소방서에서 일한다든가, 전기 포켓몬의 힘으로 발전소를 돌린다든가 말이다. 포켓몬 게임의 도로만 하더라도 멀쩡한 도로에 포켓몬이 사는 풀숲이 한가운데에 있다. 현실이라면 편하게 8차선 고속도로를 뚫기 위해 파괴되었을 풀숲 말이다. 거시적으로 봤을 때 포켓몬 세계에서 인류는 포켓몬과 공존하는 방향으로 발전했고 이는 포켓몬과 인간의 분리가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다.

 

 또, 포켓몬 세계는 분명 포켓몬과 인간의 공존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게 현실이다. 유치원생부터 노인들까지 사람들은 포켓몬과 친구처럼 지냈고 이들을 강제로 헤어지게 하는 것은 너무 잔혹하다. 이는 N의 이상이 완전할지언정 도달할 수는 없음을 보여준다. 이는 마치 토마스 무어의 유토피아와도 같은 이치인데 유토피아는 그리스어로 존재할 수 없는 장소라는 뜻이다. N의 이상은 현실에 존재할 수 없었고 그랬기에 N의 이상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3. 그렇다면 주인공은 어떨까? 사실 포켓몬스터의 주인공이 늘 그렇듯이 주인공은 말이 없기 때문에 주인공의 사상을 자세히 알아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행적으로 추측했을 땐 주인공은 지극히 진실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포켓몬 세계에서 변하지 않는 진실은 바로 포켓몬과 인간이 함께한다는 것이다. 포켓몬과 인간의 교류는 포켓몬 세계에서 절대 불변한 진실이고 주인공은 그 진실을 깨뜨리려는 N과 플라즈마단에게 맞서 싸웠다.

 

 하지만, 진실을 수호하는 것만으로는 플라즈마단을 막을 수는 있을지언정 N을 이기고 영웅이 될 수는 없다. 진실을 수호한다는 것은 좋게 말하면 위에서 말한 인간과 포켓몬의 공존을 수호한다는 것이지만 반대로 진실을 수호하는 것만으로는 인간에게 학대당하는 포켓몬을 막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상이 없는 진실은 그 자리를 유지할 수는 있을지언정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한다. N의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주인공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N과 플라즈마단과 맞서 싸우며 변화했다. 주인공은 단순한 진실의 수호자가 아니라 포켓몬과 인간의 공존하는 동시에 포켓몬의 학대를 막는 이상까지도 같이 추구하기로 결심했다. 이상없는 진실은 무가치하며, 진실 없는 이상은 무의미하다. 주인공은 그 사실을 먼저 알았고 그랬기에 하나지방의 진정한 영웅이 되어 N과 플라즈마단을 막고 더 나아가 N도 변화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N과 주인공은 치열한 대립 끝에 인간과 포켓몬의 진정한 공존이라는 진실이자 이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물론, 이 둘의 사상은 약간 다르다. 주인공은 몬스터볼의 존재를 부정하진 않지만 N은 언젠가 몬스터볼의 존재 없이 인간과 포켓몬이 공존하는 세상을 꿈꾼다. 이는 두 관념이 합쳐졌더라 하더라도 주인공은 진실을, N을 이상을 더 추구한다는 기본점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의 사상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기 때문에 둘은 각자의 방법으로 그들만의 이상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4. 이렇게 N과 주인공의 대립은 블랙·화이트가 가장 전하고 싶었던 주제, 흑백논리의 배격과 서로 다른 사상의 공존을 효과적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이는 블랙·화이트가 불멸의 명작으로 남게 해준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분명히 블랙·화이트가 명작이라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문제라면 그게 일부에게만 한정이었다. 분명 블랙·화이트는 대주제를 성공적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블랙·화이트의 스토리에는 커다란 허점이 생겼다. 그리고 그 커다란 허점은 블랙·화이트를 마냥 명작이라고만 부르기엔 어렵게 한 이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