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슈퍼 단간론파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허나 포기하면 아무 것도 없다. 걸음을 멈춘 뿐. 삶을 포기하는 건... '삶에 대한 모독' 밖에 안된다!
- 타나가 간다무, 초고교급 사육위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 대한민국의 속담
0. 슈퍼 단간론파의 2챕터와 3챕터는 냉정하게 말하자면 아쉬웠다. 2챕터는 트릭은 괜찮았지만 스토리가 별로였고 3챕터는 반대로 스토리는 괜찮았지만 트릭이 별로였다. 이대로라면 슈퍼 단간론파는 유수히 많은 후속작처럼 묻히고 사라질 터였다. 그러나 슈퍼 단간론파의 4챕터, 그리고 4챕터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남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1. 초고교급 사육위원이 타나카 간다무는 중2병 말기 환자였다. 자신이 기르는 햄스터 4마리를 파괴신 암흑사천왕이라 부르며 자신을 악의 마왕이라고 칭하는 그런 인물이었다. 다른 곳이라면 바로 SNS에 박제당한 뒤, 평생 조리돌림감이 되었을 행동들이었지만 다행히 키보가미네 학원은 그런 중2병도 받아들여주는 마음 넓은 곳이었기에 타나카는 자연스럽게 살인 수학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반부에서 타나카는 그리 두드러지는 활약을 하진 않았다. 다만, 특유의 중2병 말투로 가끔씩 임팩트를 남기기도 했고 햄스터들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신기한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러나 4챕터, 모노쿠마가 새로운 동기를 제시했다. 모노쿠마는 학생들에게 깜짝 하우스에 힌트가 있다고 속였고 학생들은 멋 모르고 깜짝 하우스에 들어갔다. 물론 그곳은 거대한 함정이었다. 깜짝 하우스에는 입구는 있었지만 출구는 없었고 모노쿠마는 살인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깜짝 하우스에서 못 나간다고 선언했다. 살상가상으로 깜짝 하우스에는 식량도 전혀 없었다. 즉, 학생들은 살인이 일어나지 않으면 모두 깜짝 하우스에서 굶어 죽을 판이었다.
처음에는 모두가 힘을 모아 모노쿠마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마음은 마음이고 현실은 현실이니 시간이 지나자 배가 고프기 시작했고 점점 모두의 의지는 얕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타나카는 모노쿠마가 살인을 위해 준비해 둔 파이널 데드 룸으로 향했다. 파이널 데드 룸은 이름답게 목숨을 건 챌린지를 통과하면 극상의 흉기를 얻을 수 있는 방이었다. 타나카는 그 챌린지를 통과하는 데 성공, 극상의 흉기를 알아냈다.
그 극상의 흉기는 바로 깜짝 하우스의 구조였다. 깜짝 하우스는 겉보기에는 딸기 하우스와 포도 하우스, 그리고 타워라는 세 개의 탑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상은 딸기 하우스 밑에 포도 하우스가 있는 복층 구조의 탑이 바로 깜짝 하우스였다. 타나카는 이 구조를 이용해 살인을 하기로 결심했다. 먼저, 타나카는 모종의 사건으로 로봇이 된 니다이를 피해자로 점찍었다. 그다음, 깜짝 하우스의 모든 시계의 알람을 늦춰 자신과 니다이가 단둘이 만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로봇이 된 니다이는 생체시계가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람 시계를 망가뜨린 다음, 타나카는 포도 하우스와 딸기 하우스를 잇는 리프트 버튼을 망가뜨린 뒤, 니다이가 타워로 오기만을 기다렸다. 니다이가 도착하자 타나카는 니다이와 치열한 전투 끝에 무기에 독을 발라 케른을 죽인 가로쉬처럼 햄스터를 이용해 니다이의 정지 버튼을 눌러 제압한 뒤, 그를 타워 손잡이에 매달았다. 그리고 파이널 데드 룸을 통해 포도 하우스로 돌아온 타나카는 그쪽 방향의 타워로 들어가 타워의 엘리베이터를 낮춰 니다이가 깨어나면 바로 추락사하게 설계한 뒤, 사인 공작을 위해 무거워 보이는 해머와 돌조각들을 놓았다. 그리고 타나카의 예상대로 니다이는 추락했고 타나카의 완전범죄는 성공했다. 아니, 성공한 것만 같았다.
그러나 타나카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다. 살인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우연히 알람시계가 울렸고 이를 우연히 밖에서 서성이던 쿠즈류가 봤다. 타나카는 일단 자기도 알람 시계의 소리를 듣고 방에서 나왔다고 변명하며 이를 무마하려 했다. 그러나 타나카의 방은 하필이면 제일 방음이 잘 되는 호화 객실이라서 안에서는 절대 알람 소리가 안 들렸다. 거기에 코마에다도 파이널 데드 룸을 클리어하는 데 성공하며 깜짝 하우스의 구조를 알아내는 데 성공해 트릭까지 간파당했다. 결국 모든 것이 밝혀지자 타나카는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다.
타나카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단순히 살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그는 생명체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깜짝 하우스에서 나머지 학생들은 단순히 모노쿠마에게 저항하겠다고 말한 체 죽음을 선택하는 체념에 빠져있었다. 타나카는 그런 태도를 경멸하며 다른 학생에게 삶을 추구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전하고 싶어 했고 그 방법으로 한 명을 제외한 모두를 살리는 살인이라는 길을 선택했다. 그렇다고 타나카는 자신의 살인을 바로 자수할 생각도 없었다. 모두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죄를 자수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신념을 남에게 알려주기 위해 자신이 어기는 모순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므로 타나카는 모두를 살리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최대한의 공작과 변명을 이어나갔었다.
재판이 끝나고 다른 학생들이 이를 간파하자 타나카는 단지 삶을 포기하지 않은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한 뒤, 자신은 엄연히 사람을 죽인 살인자이지 영웅이 아니라며 이를 부정했다. 그리고 타나카는 자신이 평생을 살아온 것처럼 악의 마왕답게 생을 마쳤다. 그러나 그 처형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전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2. 타나카 간다무의 신념은 간단하다. 바로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생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노력한다. 타나카는 이를 옆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그런 신념을 얻었고 그 신념을 위해서 살인을 저질렀다. 그러므로 타나카가 햄스터를 이용해 정지 버튼을 누른 것을 비겁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야생의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에도 최선을 다하는 법이다. 그리고 니다이는 토끼보다는 사자에 가깝다. 그런 강적을 잡을 때는 정정당당이라는 허울보다는 야생의 법을 따라야 한다. 타나카는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을 뿐이고 자신의 신념과도 모순되지 않는다.
물론 타나카가 살인자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런 묘사들은 살인자를 미화하는 안 좋은 방향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타나카가 스스로를 악인으로 칭하며 이를 부정했기에 역설적으로 성공적인 세탁을 할 수 있었다. 만약, 타나카가 자기 입으로 자신을 미화했다면 학생들은 물론, 플레이어도 타나카를 경멸의 눈빛으로 쳐다봤을 것이고 4챕터 역시 평가가 절하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타나카가 자신을 부정했기에 역설적으로 자신을 악이라고 칭하는 위악자의 희생이라는 성공적인 세탁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3. 그러므로 슈퍼 단간론파의 4챕터는 매우 뛰어나다. 일단 트릭의 완성도도 적당히 어려우면서도 모순되는 점은 없으며 사건의 서사도 흠잡을 곳이 없다. 굳이 스토리에서 흠을 잡자면 모노쿠마가 다른 챕터와 다르게 대놓고 살인이 일어나라고 억지로 동기를 만든 감이 있지 않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는 후반부에 자세히 해명된다. 그리고 이 4챕터의 중심에 있는 캐릭터가 타나카이므로 타나카 역시 매우 잘 만들어진 캐릭터라 볼 수 있다.
다만 4챕터에도 완전히 허점이 없는 건 아니다. 바로 깜짝 하우스의 디자인이다. 깜짝 하우스의 딸기 하우스와 포도 하우스는 딸기와 포도 컨셉을 살리겠다시고 벽에다 딸기와 포도를 같은 색으로 도배를 해놨다. 솔직히 하는 내내 너무 어지러웠다. 개인적으로 저 디자인을 조금만 더 수정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이걸 빼면 4챕터는 흠잡을 곳이 없는 완성도 높은 에피소드다. 그리고 제작진은 놀랍게도 이를 뛰어넘는 에피소드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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