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월드 챔피언, 한 종목의 최강의 자리에 오른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다. 당연히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엄청난 시련과 노력이 따른다. 그러므로 월드 챔피언 자리에 오른 자는 엄청난 존경과 숭배를 받기 마련이다. 월드컵에는 리오넬 메시와 아르헨티나가 있고 리그 오브 레전드에는 페이커와 T1이 있었다. 이들은 피나는 노력 끝에 월드 챔피언 자리에 오른 위대한 자들이었다. 그리고 유희왕에는 마경이란 자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가 벌인 희대의 낚시극과 관련된 덱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1. 유희왕도 다른 카드 게임처럼 세계 대회인 유희왕 월드 챔피언십이 존재하고 거기서 우승한 듀얼리스트는 월드 챔피언이라는 명예의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2020년에서 2022년 사이에는 특수한 사정으로 유희왕 월드 챔피언십이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2019년에 월드 챔피언에 올랐던 마경이라는 듀얼리스트(YP)가 장기간 월드 챔피언으로 인정받았다. 2019년에 샐러맨그레이트로 우승을 차지했던 마경은 오프 듀얼에서는 매우 뛰어난 듀얼리스트였다. 많은 대회에서 입상하고 월드 챔피언십까지 오른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은 꽤 많았다. 그러던 중, 2022년 유희왕 마스터 듀얼이 출시되었다.
유희왕 마스터 듀얼의 초창기는 혼란 그 자체였다. 마지막 기억이 GX에서 머무른 어르신들, 오룡즈를 마지막으로 접은 사람들, 제알 당시 정룡에 질려 떠나버린 사람들, 아크파이브의 처참한 퀄리티를 보고 떠난 사람들, 브레인즈에서 링크 마커로 카드가 깡통이 되어 접은 사람들, 끝까지 유희왕에 남아 있던 사람들, 그리고 유희왕이라고는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그런 만큼 이 혼란 속에서 확고한 티어리스트를 원하는 목소리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월드 챔피언 마경이 그 대답에 응했다.
마경의 티어리스트는 다음과 같았다. 전뇌계, 팬텀 나이츠, 십이수 트라이브리게이드가 S랭크, 드라이트론, 엘드리치, 드래곤메이드, 프랭키즈, 진룡이 A랭크, 미계역암흑계, LL 트라이브리게이드, 썬더 드래곤, 소환수 섀도르가 B랭크, 샐러맨그레이트, 공룡, 누메론이 C랭크였다. 이 티어리스트를 본 사람들은 확고한 티어리스트가 나왔다면서 안도하기는 개뿔, 오히려 더 입장이 갈라지기만 했다.
애초에 사기로 악명이 높았던 드라이트론과 엘드리치가 A랭크고, 티어 덱 중에서는 불안정했던 팬텀 나이츠가 S랭크라는 점 때문에 마경의 티어리스트는 엄청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 티어리스트 중 가장 큰 논란이 된 것은 드래곤메이드였다. 그렇다면 드래곤메이드가 뭐길래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일까?
드래곤메이드라는 드래곤족 몬스터인 드래곤메이드 몬스터들을 활용한 테마로 강력한 일반 함정인 '드래곤메이드의 정리정돈'이나 융합 몬스터인 '드래곤메이드 슈트럴', 배틀 페이즈 때마다 폼 체인지를 할 수 있는 드래곤메이드 메인 덱 몬스터 등으로 아드를 벌어 게임을 이기는 덱이었다. 이 드래곤메이드가 마스터 듀얼에서 차지하던 위치는 크게 2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드레곤메이드는 당시 마스터 듀얼에서 몇 안 되는 아니메풍 테마이었다. 유희왕이란 프랜차이즈는 블랙 매지션 걸 때부터 아니메풍 카드를 만들기 시작했고 섬도희의 흥행 이후로 아니메풍 테마의 발매는 일상적이었다. 그러나 마스터 듀얼 출시 당시 성능이 그럴싸한 아니메 풍 덱은 생각보다 얼마 없었다. 대표적인 아니메풍 테마였던 이빌트윈은 덱의 핵심인 'Evil★Twin's 트러블 써니'의 부재로 성능이 구렸고, 도레미코드는 그때도 구리긴 마찬가지였으며 라뷰린스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아니메풍 테마의 원조인 섬도희가 성능이 좋았지만 섬도희는 운용 난도가 너무 높았고 아니메풍 테마 중에서는 일러가 아쉬운 편이었다. 그런데 드래곤메이드는 성능도 그럴싸하고 운용 난도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두 번째, 드래곤메이드는 마스터 듀얼 초창기의 몇 안 되는 운영 덱이었다. 운영 덱은 전개 덱과 달리 차근차근 자신의 아드를 늘리고 상대의 아드를 줄여서 이기는 덱으로 다른 TCG에 비유하자면 컨트롤 덱에 가깝다. 이 운영 덱은 전개 덱과는 차별화된 플레이로 특유의 유저층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마스터 듀얼 초창기에는 쓸만한 운영 덱이 많지 않았다. 대표적인 티어덱들은 거의 전개 덱이었고 엘드리치는 골조는 운영 덱이지만 대부분이 영속 함정을 넣은 날먹으로 굴리지 진지하게 운영을 원하고 굴리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https://jjabcde.tistory.com/113
그나마 10기 시절부터 이어져 온 전통의 운영 덱, 섬도희, 얼터가이스트, 썬더 드래곤, 샐러맨그레이트, 오르페골이 있긴 했는데 상위 티어덱과 비교하기에는 지속된 금제와 낡은 덱 구조로 인해 성능이 밀렸고 운용 난도도 매우 높은 편이었다. 이런 경쟁 테마들 사이에서 쉽고 할 만한 드래곤메이드는 꽤 많은 사람들에게 선택을 받을 여지가 있었다.
거기에 성능까지도 그 드라이트론이나 엘드리치와 범접할 만하다고 월드 챔피언 마경이 말하니 사람들이 속아넘어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월드 챔피언 마경을 믿고 비싼 가루를 퍼부으며 드래곤메이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랭크에서 드라이트론과 엘드리치를 만난 드메 유저들은 점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이 덱이 비슷한 수준이라고?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드래곤메이드는 A티어는커녕 C티어에도 못 미치는 덱이었다. 랭크에 빈번한 티어덱들을 상대하기에는 초창기에도 턱없이 부족했고 그 뒤, 상검, 디드라군, 후완다리즈, 용사 등 더 강한 카드들이 등장하자 드래곤메이드의 힘은 더욱더 크게 빠졌다. 마경이 틀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마경은 드래곤메이드를 A티어에 올렸을까? 그리고 왜 드래곤메이드는 구렸을까? 이는 오프와 마스터 듀얼의 차이에 있다. 오프는 사이드 덱이 있는 관계로 패 트랩의 힘이 더 강하다. 예를 들어 상대가 드라이트론이라는 걸 알면 사이드 덱에서 드라이트론 저격용 드롤을 가지고 오고 상대적으로 쓸모없는 카드들은 사이드 덱에 돌려놓을 것이다. 그렇다면 같은 패 트랩이더라도 상대적으로 그 매치에서 패 트랩이 가지는 힘이 더 강해진다.
그러나 마스터 듀얼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므로 오프처럼 패 트랩만으로 턴을 넘기거나 하는 플레이가 힘들어진다. 그러므로 마스터 듀얼에서는 패 트랩을 투입할만한 다량의 스페이스보다 강력한 메인 기믹이 더 중요하다. 문제라면 드래곤메이드가 상대적으로 빈약한 메인 기믹의 힘을 패 트랩으로 극복하는 덱이었다는 점이다. 드래곤메이드의 고점은 '드래곤메이드 슈트럴'에 '천구의 성각인'을 세우는 정도였다. 이 선턴 빌드는 운영 덱 치고는 나쁘지 않지만 이 고점에 도달하기 위한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는 게 문제였다.
최소 2~3핸드가 있어야 되고 방해가 없어야 이 빌드가 나오는데 드래곤메이드는 공격권이라는 게 없는 덱이라서 한 번이라도 패 트랩을 맞으면 고점 빌드를 만들 수가 없다. 거기에 최소한의 빌드를 세울 수 있는 카드의 수조차 적으니 결국 남는 건 패 트랩을 통한 운영이었다. 하지만 패 트랩 운영이 마스터 듀얼에서는 통하지 않았으니 자연스럽게 드래곤메이드의 파워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마스터 듀얼과 오프는 현저히 달랐다. 그러나 마경은 이를 망각하고 오프처럼 드래곤메이드를 A티어에 올리고 말았고 여기에 낚인 사람들은 A티어는 커녕 C티어도 안 되는 덱을 만들어버렸다. 모두 마경에게 당한 것이다. 이 사건 이후 마스터 듀얼에서 마경의 공신력은 떨어졌다.
하지만 드래곤메이드의 티어가 낮은 게 전부였다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일러스트는 배신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코나미는 드래곤메이드의 스트럭처 덱을 발매했다. 그렇다, 비싼 가루를 들어 만들었던 드래곤메이드 덱은 이제 단 1500젬이면 누구나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연히 먼저 만든 사람들 입장에서는 배가 아플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마경 말만 믿고 큰 돈 들여 드래곤메이드 덱을 만든 사람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말았다. 이것이 마스터듀얼 희대의 촌극 중 하나, 마경의 티어리스트의 전말이다.
2. 마경의 티어리스트와 드래곤메이드는 사람들에게 많은 교훈을 남겼다. 먼저 마스터 듀얼에서는 오프와는 다른 접근법으로 덱을 구축해야 된다는 점이었다. 마스터 듀얼은 오프와 달리 단순히 덱 스페이스가 많다고 능사가 아니며 메인 기믹이 강해야지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게임이었다. 이웃집 잔디깎기를 이용한 60장 덱이 오프보다 마스터 듀얼에서 더 흥했던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로는 오프 듀얼을 잘한다고 마스터 듀얼을 무조건 잘한다는 건 아니었다. 마경은 분명 오프 월드 챔피언이었고 지금도 오프에서는 뛰어난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티어리스트에서 보여준 형편없는 혜안이나 훗날 유희왕 월드 챔피언십 2023에서 보여준 촌극을 생각하면 오프를 잘한다고 마스터 듀얼도 잘하지는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점을 보면 오프 듀얼과 마스터 듀얼은 똑같은 유희왕 게임이면서도 많은 점들이 다르다. 그리고 지금의 코나미는 그 점을 인지해서인지 마스터 듀얼에 맞는 운영을 하고 있다. 솔직히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방향성을 찾았다는 점에서는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과거의 코나미는 그러지 못했고 그 결과는 마스터 듀얼 동접의 급격한 감소를 못 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든다. 만약 코나미가 이 사실을 일찍 알았다면 드래곤메이드는 진짜로 A티어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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