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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스터 브다샤펄 - 리메이크도 리마스터도 아닌 무언가

삶은계-란 2024. 3. 17. 22:43

0. 포켓몬스터 DP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을 받은 게임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포켓몬스터 DP와 4세대는 조금 더 특별한 위치에 있다. 게임기가 아니라 컴퓨터로 더 많이 했던 금은을 제외하면 사실상 포켓몬스터 게임의 시작을 알린 것이 DP와 4세대기 때문이다. 4세대부터 본격적인 포켓몬스터 게임이 한국으로 수입되기 시작했고 그 이후부터 한국에서 포켓몬스터 게임은 빠질 수 없는 작품이 되었다. 그런 만큼 한국에서 4세대 리메이크에 대한 기대를 많이 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대망의 4세대 리메이크, 포켓몬스터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 샤이닝 펄이 공개되었을 때 아무도 환호하지 못했다.

 

1. 포켓몬스터 브다샤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문제점은 역시 그래픽이다. 트레일러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등장한 2등신의 캐릭터들은 모두에게 충격적이었다. 전작인 소드실드도 그래픽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그렇기에 그것보다는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다샤펄의 그래픽은 한눈에 봐도 별로였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소위 굳건이라 부르는 2등신 디자인 자체를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브다샤펄의 아트스타일이나 방향성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브다샤펄처럼 2등신의 데포르메를 보통 '치비' 스타일이라 칭하는데 이런 스타일은 잘만 사용한다면 고전게임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더 발전된 그래픽을 보여줄 수도 있다. 마치 같은 닌텐도 스위치로 나온 젤다의 전설 꿈꾸는 섬 리메이크처럼 말이다. 그러나 브다샤펄의 그래픽은 꿈꾸는 섬처럼 확실한 발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서 브다샤펄의 그래픽이 나쁜 의미에서 옛날 느낌이 나는 것이다. 

 

 거기에 꿈꾸는 섬은 다른 젤다와 달리 아기자기한 느낌이 강해서 치비가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브다샤펄은 시간과 공간, 반물질과 창조로 대표되는 거대한 스케일의 게임인데 이런 게임에서 치비를 쓰니 하이라이트가 되어야 할 천관산과 갤럭시단, 그리고 전설의 포켓몬들의 위엄이 죽어버렸다. 굳이 치비를 사용할 거였다면 하이라이트의 연출도 치비에 맞게 구성했어야 했는데 옛날 시절 연출을 그대로 담습 해버렸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2. 그렇다면 브다샤펄의 게임플레이로 들어가 보자. 사실 게임플레이 파트로만 봤을 때 브다샤펄이 발전이 전혀 없는 게임은 아니다. 먼저 DP의 치명적인 단점이었던 파도타기 속도, HP 감소 속도, 저장 속도, 너무나도 많은 비전머신, 신오지방 포켓몬 주제에 엔딩 전에는 얼굴도 못 보는 치명적인 분포도 등을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 브다샤펄의 전체적인 속도는 역대 포켓몬 게임 중 가장 빠르고 비전머신 역시 포켓치 앱을 사용함으로써 편리성을 챙기는 것과 동시에 익숙한 포켓몬의 등장으로 향수도 불러오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으로 분포도의 경우 기존 DP의 지하통로를 대체한 지하대동굴에 여러 포켓몬을 투입하면서 엔딩 전에도 여러 포켓몬 파티를 구성할 수 있게 해 놓았다. 기존 DP가 엔딩만 보고 접으면 엄연히 4세대 포켓몬인 토게키스, 마그마번, 에레키블, 로토무 등은 정체도 모르게 해 놨다는 걸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또 편의성을 제외하고도 난이도 면에서도 브다샤펄의 장점이 돋보인다. 소드실드는 난이도 곡선이나 레벨 디자인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브다샤펄은 그 점만큼은 소드실드보다 훨씬 뛰어나다. 1회차 포켓몬 리그와 난천은 포켓몬 역사상 가장 강한 포켓몬 리그이고 특히 난천의 파티는 DP에서의 악명보다도 더 강하고 치밀하게 배치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개체치가 6V에 노력치도 실전 배치되었으며 기술 배치나 지닌 물건들도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다. 특히 에이스인 한카리아스는 얼음 타입 공격을 반감하는 플카열매로 약점을 보완하는 동시에 칼춤으로 공격력을 올려 파티를 스윕하는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잘못하다간 이 한카리아스 하나에게 파티 전체가 끝날 수도 있다.

 

 물론 브다샤펄의 포켓몬 리그는 1회차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엔딩을 보고 2회차를 플레이한 뒤 다시 만난 포켓몬 리그는 더욱더 강해지는 데 특히 3회차 난천의 경우, 레벨 총합이 513으로 당시 기준으로 가장 높았으며 에이스인 한카리아스도 88레벨로 레드의 피카츄와 함께 현재 기준으로도 가장 레벨이 높은 NPC의 포켓몬이다. 그리고 피카츄와 한카리아스의 성능 차이를 생각하면 난천의 난이도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브다샤펄은 옛날에 4세대를 플레이했던 게이머들의 추억을 되살리는 의미로 DS 플레이어를 엔딩 후에 주는데 오루알사가 GBA 플레이어가 없어서 아쉬웠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점은 리메이크라는 취지에 걸맞는다. 뭐 브다샤펄은 이 정도의 장점이 있는 게임이다. 게임플레이도 분명 개선되었고 난도도 더 어렵고 쫄깃하다. 하지만 이런 점만으로 브다샤펄의 그래픽이라는 단점을 메꾸기에는 부족했다. 더 정확히는 그래픽보다도 더 큰 구멍이 있었다.

 

 3. 브다샤펄의 게임플레이 중 가장 심각한 것은 버그였다. 분명 4세대 DP는 버그가 많은 게임이었다. 특히 조금만 신경 쓰면 환상의 포켓몬을 얻을 수 있는 버그는 최악이었다. 하지만 브다샤펄의 버그는 4세대를 뛰어넘은 1세대와 버금갈 정도로 많았다. 2021년에 나온 게임이 말이다. 그렇다, 이 게임은 2021년에 출시되었다.

 

 브다샤펄의 버그를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기본적으로 포켓몬을 마음껏 복사할 수 있는 복사 버그,  도구 복사 버그, 벽뚫기 버그, 이로치 버그, 이벤트 스킵 버그, 쉐이미 포획 버그, 배틀 스킵 버그까지, 버그를 사용한다면 누구든지 엔딩을 20분 만에 볼 수 있었다. TAS 같은 프로그램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말이다. 이런 대량의 버그는 브다샤펄이 게임은커녕 프로그램로서도 가치가 부족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또 브다샤펄은 포켓몬을 꺼내서 함께 꺼내서 걸어 다닐 수 있는 컨텐츠를 보여줬다. 포켓몬과 함께 걷기는 하골소실 때부터 포켓몬 역사상 최고의 컨텐츠로 불렸던 만큼 기대도 컸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이 포켓몬과 함께 걷기가 하자가 심했다. 일단 뒤에 따라오는 포켓몬의 AI가 너무 심각하게 멍청하다. 어디론가 가려고만 하면 포켓몬이 제대로 따라오지를 못한다. 그래서 제작진이 보완책으로 포켓몬이 너무 플레이어와 떨어져 있으면 근처로 텔레포트하게 만들었는데 그래서 더 정신이 사납다. 어딜 돌아다니기만 해도 포켓몬이 반짝거리면서 좇아오니 이게 함께 걷기인지 함께 축지법 연마하기인지 모르겠다. 또 뒤에 따라오는 포켓몬의 모델링도 뛰어난 것도 아니고 일부는 조악하기까지 하다. 그런 만큼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포켓몬과 함께 걷기는 실망스러웠다. 

 

 거기에 전체적인 조작감도 구리다. 기본적으로 돌아다니는 조작감도 소드실드는커녕 4세대보다도 못한데 자전거 조작감은 더더욱 최악이다. 기본적으로 관성이 너무 심해서 조작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앞으로 가려도 뒤로 가려면 바로 뒤로 가는 게 아니라 스윽~ 미끄러졌다가 뒤로 가고 그러다가 장애물에 부딪히기 일쑤이다. 물리 엔진을 도대체 어떻게 구현했길래 이런 조작감이 나오는지가 의문이다. 

 

 또 브다샤펄은 PT의 장점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깨어진 세계는 흔적기관처럼 백금옥 입수 과정에서 극히 일부분만 살필 수 있고 스토리 역시 형편없던 DP에서 그대로 머물러 있다. 거기에 네임드의 엔트리도 올라간 난도와는 별개로 비상식적인 DP의 엔트리 그대로다. 그렇다, 물 타입을 쓰는 전기 타입 체육관 관장 전진과 강철 타입을 쓰는 불 타입 사천왕 대엽이 그대로다. 아니 야생 포켓몬 분포도는 신경 썼으면 트레이너 라인업도 신경을 써야 되지 않았을까? 이런 점에서도 브다샤펄의 형편없음은 쉽게 눈에 띈다.

 

4. 이런 단점들을 고려해 봤을 때 브다샤펄의 전체적인 완성도는 형편없다. 물론 이 게임의 무장점의 게임인 건 아니다. 하지만 그래픽과 버그 등을 고려할 때, 이 게임의 전체적인 완성도는 이 게임이 풀 프라이스를 받고 2021년에 발매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낮다. 개인적으로 4세대를 하고 싶어 하는 친구가 있다면 브다샤펄보다는 차라리 예전에 나온 PT 기라티나를 추천해 줄 것이다. 진심으로, 그 정도로 브다샤펄은 4세대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부끄러운 자화상이 되어버렸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이 게임의 개발 과정이다. 이 게임은 게임 프리크가 아니라 외주로 만들어졌다. 물론 외주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모두 완성도가 낮으리라는 법은 없지만 기본적으로 포켓몬 게임의 리메이크는 게임 프리크에서 만들어졌었다. 그런데 브다샤펄부터 리메이크가 외주로 이동했다는 것은 게임 프리크가 포켓몬스터의 리메이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보여준다. 특히 얼마 안 지나 발매된 레전즈 아르세우스의 완성도와 비교하면 더더욱 말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나올 5세대, 6세대 리메이크의 완성도도 브다샤펄과 비슷할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 희망적인 이야기가 있다. 분명 전통적인 리메이크는 버려졌다. 하지만 게임 프리크는 새로운 방식의 리메이크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들은 증명을 해내는 데 성공했다, 레전즈 아르세우스로. 거기에 새로운 작품으로 레전즈 ZA의 발매가 확정되었으니 이제 리메이크의 미래는 레전즈에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ZA가 잘 나온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