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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단간론파는 도대체 뭘 말하려고 했던 걸까?

삶은계-란 2024. 4. 1. 09:14

0. 몇 개월 전, 필자는 뉴 단간론파 V3 모두의 살인 신학기라는 게임을 리뷰한 적이 있다. 그리고 거기서 뉴 단간론파의 스토리를 비판했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링크에 있으니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https://jjabcde.tistory.com/99 내용을 말하자면 이 게임은 근본적으로 추리 게임인데 추리 게임의 본질을 어기고 진실을 감췄다는 것이 주된 비판의 요지였다. 그런데 이렇게만 말하고 뉴 단간론파를 넘어가기에는 뭔가 아쉽다. 그 게임의 평가가 어떻든지, 숨겨진 진실을 놔두고 떠나는 것은 찝찝하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뉴 단간론파의 진실을 탐구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물론 지금부터 알아볼 진실이 뉴 단간론파의 확고한 진실인지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이 글로 밝혀진 진실은 확고한 진실일 수도, 진실의 파편일 수도, 완벽한 헛소리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뉴 단간론파의 진실을 알아보려는 시도 자체는 나름 유의미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생각과 함께 뉴단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겠다.

 

1. 일단 뉴단은 일반적인 추리물이 아니다. 그러므로 진실을 알기 위해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추리물의 공식은 통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마지막에 범인이 자백하는 말은 진실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수많은 추리물에서 범인은 탐정에게 잡히고 범인은 자신의 트릭과 사연을 주저리주저리 고백한다. 그리고 이는 확고한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크게 작품 내적과 작품 외적인 원인이 있다. 

 

 먼저 작품 내적으로 범인들이 트릭과 사연은 교차 검증이 된다. 트릭은 보통 탐정이 먼저 범인을 확정 짓기 위해 말하므로 교차 검증이 된다. 사연 역시 그 범인과 관련된 살아있는 사람이 증언함으로써 교차 검증이 되기 마련이다. 소년탐정 김전일의 기념비적인 첫 사건 오페라 극장 살인사건을 예로 들어보겠다. 이 사건의 범인 아리모리 유지는 죽은 연인의 복수를 하기 위해 그 연인을 자살로 몰아간 여학생 셋을 죽이려 했다. 그러나 그 복수는 단 한 명의 여학생을 남긴 채 미완으로 끝나고 마는데 그 과정에서 남은 여학생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 범인의 슬픈 사연은 진실로 확정된다. 이렇게 작품 내적인 교차 검증을 통해 범인의 고백은 단순한 자기변명이 아니라 진실로, 더 나아가 서사의 완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반대로 작품 외적으로 말하자면 범인들의 고백은 메타적으로 진실임이 확정되어 있다. 추리물의 근본은 작가와 독자 간의 심리 게임이다. 작가는 공정한 환경에서 사건을 제작하고 그 속에 용의자와 범인을 섞어 넣는다. 독자는 작가가 공정하게 준 단서와 사건, 용의자를 통해 범인을 추리한다. 그리고 마지막 탐정의 지목과 범인의 고백을 통해 작가가 정답을 공개한다. 이것이 게임으로서 추리물의 근본이다. 추리물에서 이런 심리 게임적 요소는 후대로 갈수록 많이 퇴색되긴 했지만 범인의 고백이 진실이다라는 공식은 아직도 살아 숨 쉬는 것이다.

 

 그렇다면 뉴단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흑막 시로가네 츠무기의 고백은 믿을 수 없다. 먼저 시로가네의 고백은 교차 검증이 되지 않는다. 뭐, 시청자 투표로 움직이는 키보라든가, 실시간으로 이론 무장에 참여하는 관중 등을 교차 검증이라 볼 수도 있지만 이를 확고한 교차 검증이라 볼 수는 없다. 먼저 키보의 경우 키보가 시청자 투표로 움직인다고 말한 것은 시로가네가 유일하다. 즉, 키보는 사실 시청자 투표로 움직이는지 아는 사람은 시로가네뿐이다. 키보가 자신이 시청자에 의해 의지를 뺏기는 것처럼 연출되기는 했지만 그것이 시청자인지 시로가네 자신인지 누가 알겠는가? 그것이 확고히 검증되지 않은 이상 이는 교차 검증이라 볼 수 없다.

 

 관중들도 마찬가지도 6챕 도중 이 살인게임을 실시간으로 바라보고 있다며 시로가네는 관중들의 사진을 보여준다. 사진 말이다. 이게 제일 중요하다. 왜냐하면 단간론파의 세계관에서 사진과 그림의 관계는 반대다. 단간론파의 세계에서 그림은 현실에서 사진이고, 사진은 현실에서 그림이다. 그 뜻은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는 관중들의 사진은 사실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게 그림이라는 것은 저 관중들이 실제 존재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시로가네가 만든 Ai인지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걸로 교차 검증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면 작품에 단순 트집을 잡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이하라가 말하지 않았는가? 작품의 엔딩에서 사이하라는 두 가지 근거로 시로가네를 의심한다. 첫 번째는 시로가네가 에노시마를 모방했다는 말. 모방이란 보통 실제 있었던 사건을 따라 했을 때 모방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모방 살인이라든가처럼 말이다. 그런데 시로가네가 그렇게 말했다는 건 에노시마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뜻이 되고 이는 단간론파가 픽션이라는 시로가네의 주장은 거짓이 된다. 이 주장은 나름 그럴싸하다.

 

 두 번째 근거는 단순히 자신들이 살인게임에 자원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다. 사실 근거라고 하기에는 사이하라의 생각뿐이니 꽤 빈약하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꽤 합리적인 근거기도 하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고 생방송도 되는 게임에 자원하려는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이런 걸 생각하면 일리가 없지는 않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는 사이하라의 단순한 망상이 아니다.

 

 뉴단이 나오고 사람들이 엔딩을 본 뒤, 혼란에 빠졌을 때 제작진은 프롤로그를 다시 보라고 트위터에 올렸다. 그리고 그 말을 따라 프롤로그를 보면 사이하라의 망상이 진실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사이하라와 아카마츠를 포함한 모든 학생들이 자원에서 참가한 것 같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납치되었다는 인상에 가깝다. 

 

 이를 통해 도달할 수 있는 결론, 시로가네의 고백은 거짓이고 그녀를 믿어서는 안 된다. 그녀가 말하는 살인게임, 픽션, 자원이 모든 것은 진실이 아니고 에노시마는 실존한다. 이렇게 끝났다면 좋았겠지만 애석하게도 뉴단의 진실은 이렇게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말이 곧 그 사람의 말이 모두 거짓이라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거짓말은 약간의 참에 약간의 거짓을 섞는 데서 탄생한다. 설사 시로가네의 말이 거짓이라 해도 그 모든 증언이 거짓이라 볼 수는 없다. 분명 거기에는 진실이 숨어있다. 그리고 그 진실을 찾기 위해서는 단순히 시로가네의 말을 다시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러므로 일단 프롤로그로 돌아가보자.

 

2. 이 게임의 프롤로그에서 수상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가장 수상한 점은 바로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시로가네 그 자체다. 프롤로그의 흐름은 간단하다. 아카마츠와 사이하라가 납치돼서 만나고 다른 학생을 만났는데 모노쿠마즈에게 걸려 초고교급 능력을 부여(?) 받은 뒤, 다시 프롤로그가 시작된다. 근데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시로가네는 다른 학생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이게 문제다. 만약 시로가네가 흑막이라면 그녀는 다른 학생처럼 혼란에 빠질 이유가 없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로가네는 사건의 말려든 평범한 학생처럼 행동한다. 

 

 물론 이는 시로가네가 흑막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한 행동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없다. 모노쿠마즈에게 초고교급 능력을 부여받을 때 학생들은 기억 라이트를 쬤다. 그리고 기억 라이트는 기존의 기억을 덮어씌운다. 그러므로 그 상황에서 시로가네가 흑막처럼 행동하고 다녀도 다른 학생들은 기억 라이트로 이를 잊을 테니 굳이 평범한 척 코스프레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시로가네는 흑막처럼 행동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시로가네는 흑막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로가네는 적어도 초고교급 흑막의 능력을 받기 전까지는 흑막이 아니라 아카마츠나 사이하라처럼 납치된 학생에 불과했다.

 

 물론 여기에는 작품 외적인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시로가네가 흑막인 척 행동하지 않은 이유는 프롤로그에서 흑막의 정체를 공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로가네는 프롤로그에서도 흑막이다라는 주장 말이다. 하지만 메타적인 시점으로 봤을 때 이 프롤로그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아니 애초에 프롤로그에 이렇게 공을 들인 단간론파가 뉴단 말고 더 있던가? 그냥 적당히 주인공의 독백 이후 학교에서 깨어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제작진은 뉴단만큼에서는 이렇게 공을 들여 프롤로그를 만들어 놨다. 이렇게 한 이유는 단 하나다. 이 프롤로그는 플레이어가 무조건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이고 이를 통해 뉴단의 진실을 탐구하는 것이 제작진의 의도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의도를 생각하면 프롤로그에서 시로가네의 행동은 그녀가 흑막이 아니다는 결론에 도달하기에는 충분하다.

 

 이렇게, 우리는 뉴단의 진실에 한 발을 내딛는 데 성공했다. 1번, 시로가네의 말은 믿을 수 없다. 2번, 시로가네는 사실 흑막이 아니다. 하지만 이 프롤로그로 알아낼 수 있는 진실은 애석하게도 여기까지가 전부였다. 시로가네는 흑막이 아닌 피해자였고 진짜 흑막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흑막이 누군지도 알 수 없으며 목적도 알 수 없고 살인게임의 픽션 여부도 전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끝내기에는 너무 아쉽다. 분명 확고한 진실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딘가에 진실의 실마리는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뉴단 진실의 실마리는 뉴단과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게임에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