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2015년은 게임의 황금기였다. 물론 2011년, 2013년, 2017년 등과 비교하면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2015년 정도면 양질의 게임이 많이 나온 해였다. 이 2015년에 나온 게임 중에서 최고의 게임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위쳐 3, 폴아웃 4, 블러드본, 메기솔 5, 언더테일, 슈마메 등을 뽑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2015년에 나온 게임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게임은 쟁쟁한 위 게임들이 아니라 바로 Life is Strange라고 생각한다. 왜냐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이제부터 차근차근 적어보겠다.
1. Life is Strange는 2015년 1월 30일 돈노드가 개발하고 스퀘어 에닉스가 퍼블리싱한 어드벤처 게임이다. 이 게임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18세 소녀 맥스 콜필드의 이야기를 다룬다. 맥스는 오래전 헤어진 친구 클로이와 재회하면서 자신의 고향인 아카디아 베이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에 휘말리게 된다.
이 게임은 어드밴처 게임인데 게임플레이는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텔테일 게임즈의 어드벤처 게임과 스타일이 비슷하다. 주인공을 움직이고 컷신을 구경하며 특정 장면에서 나오는 중요해 보이는 선택지를 고르는 방식이다. 다만 QTE가 없다는 것이 텔테일 게임즈의 게임들과 차이점이다. 개인적으로 QTE를 좋아하지는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텔테일 게임즈의 게임들이 가장 비판받았던 점이라면 바로 선택지를 엄청 중요한 척 제시하는 주제에 사실 별로 의미가 없다는 점인데 Life is Strange도 결론만 말하자면 딱히 선택지가 결말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런데 텔테일 게임즈의 게임을 몇 개 해본 사람 입장으로 이를 큰 단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바로 Life is Strange의 스토리 구조 때문이다.
Life is Strange의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 맥스 콜필드는 18살의 평범한 여고생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평범했다. 어느 날 맥스는 자신에게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된다. 그것도 아주 우연히 말이다. 화장실에서 누군가 죽는 걸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맥스가 갑자기 시간을 되돌려버린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맥스는 그 사람이 자신의 옛 친구였던 클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맥스는 이 능력으로 클로이를 구하고, 둘은 다시 친구가 된다. 그리고 이 둘의 모험이 시작된다. 맥스와 클로이는 실종된 레이첼이라는 소녀를 찾아 나선다. 레이첼은 클로이의 친구였고, 맥스가 떠난 5년 동안 클로이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실종 사건을 파헤치다 보니 온갖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날씨가 미쳐 날뛰고, 동물들은 죽어 나가고, 일식까지 일어난다. 그리고 맥스의 환상 속에서는 거대한 토네이도가 마을을 집어삼키려 한다. 뭔가 심상치 않다. 한편 맥스와 클로이의 관계는 점점 더 가까워진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둘은 서로에 대한 감정을 깨닫고, 키스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행복도 잠시, 레이첼의 시체가 발견되고 범인이 밝혀진다. 범인은 다름 아닌 맥스의 사진 선생님 제퍼슨이었다. 제퍼슨은 여학생들을 납치해 사진을 찍는 변태 살인마였던 것이다.
맥스는 제퍼슨에게 잡혀 고통받지만, 어떻게든 빠져나와 클로이를 구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맥스의 능력 때문에 운명이 계속 뒤바뀌면서 거대한 토네이도가 실제로 마을을 덮치려 한다. 맥스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클로이를 살리고 마을을 희생할 것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클로이를 구하지 않고 마을을 살릴 것인가. 이 선택의 결과는 플레이어의 선택에 맡겨진다.
그러므로 Life is Strange에는 수많은 선택지가 있지만 결국에 결말은 마지막의 선택지, 클로이를 살리고 토네이도에 마을을 희생할 것인가, 아니면 원래 운명대로 클로이를 죽게 내버려 두고 마을을 살릴 것인가 이 두 가지로 귀결된다. 그러므로 얼핏 보면 Life is Strange의 선택지도 텔테일 게임즈 게임의 수많은 선택지와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Life is Strange는 장르가 시간여행물이라는 점에서 선택지에 중요도가 생긴다. 물론 선택지는 직접적으로 결말에 미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결말 직전까지 선택지는 줄거리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이 작품에는 케이트라는 캐릭터가 나오는데 얘는 아싸에 왕따다. 유일하게 친한 친구가 주인공 맥스인데 그래서 케이트는 정신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여준다. 1 챕터~2 챕터 사이에 맥스는 케이트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선택지가 나오는데 솔직히 줄거리의 핵심과는 거리가 멀어 보여서 굳이 상호작용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케이트가 2 챕터 막바지에 자살을 시도하는데 이때 케이트를 막는 난도가 올라간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케이트를 살리는 데 성공했든, 실패했든 간에 이는 플레이어의 경험에 큰 영향을 미치고 다른 선택지 더 나아가 결말에서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만약 케이트를 살리는 데 실패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클로이를 살린다는 선택지를 고를 경우 케이트는 어차피 죽었으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아니면 케이트도 못 지켰는데 클로이라도 지켜야 되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반대로 마을을 살린다는 선택지를 고른다면 내 실수로 케이트가 죽었는데 이렇게라도 살리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처럼 이 게임의 선택지는 직접적으로는 결말과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간접적으로는 충분히 상호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점이 Life is Strange의 선택지가 다른 텔테일 게임즈의 게임들보다 마음에 드는 이유다.
Life is Strange의 또 다른 장점은 역시 선택지도 선택지지만 이야기 그 자체다. 특히 단순한 맥스의 성장 드라마가 아니라 시간여행이 들어갔는데 이 능력 하나로 게임이 완전히 달라졌다. 맥스의 능력은 간단하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 근데 이게 생각보다 대단하다. 뭔가 잘못됐다 싶으면 시간을 되돌려서 다시 해볼 수 있다. 말실수했다? 다시 하면 된다. 친구가 죽었다? 다시 하면 된다. 이렇게 보면 시간여행 능력만 가지면 신이라도 된 것 같다. 실제로도 초반엔 잠깐 그런 느낌이 든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건, 모든 선택을 다시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게 과연 좋은 걸까? 맥스와 플레이어는 이 능력 때문에 엄청난 고민에 빠진다. 모든 선택을 다시 할 수 있다는 건, 어떤 선택이 옳은지 영원히 고민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러고 어떤 고민을 하더라도 선택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다. 게다가 이 능력은 생각보다 제한적이다. 맥스가 아무리 시간을 되돌려도, 큰 흐름은 바뀌지 않는다. 레이첼은 여전히 죽어있고, 토네이도는 여전히 마을을 향해 온다.
그리고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원래 시간대에선 클로이가 죽은 총격으로 인해 푸른 나비가 날았고 그로 인해 토네이도가 탄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맥스가 시간을 계속 되돌려 그 사건이 없어지자 현실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날씨가 이상해지고, 동물들이 죽어 나가고, 결국엔 거대한 토네이도까지 생긴다. 이게 대 맥스 때문이다.
이 갈등을 극대화시켜 놓은 장면이 바로 악몽 장면인데 마지막 5 챕터에서 제퍼슨을 처리한 뒤, 맥스는 시간여행의 부작용으로 악몽에 빠진다. 거기서 맥스는 지금까지 시간여행을 사용하면서 마주친 갈등, 버려야만 했던 선택지, 그로 인한 죄책감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여기서는 클로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나아갔던 맥스를 비난하는 동시에 반대로 그러면서 만들어나갔던 클로이와의 추억을 강조한다. 이런 세세한 장면이 이 게임의 주제, ' 선택과 그 결과, 그리고 책임'을 강조한다. 과연 모든 걸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오히려 더 불행해질까? Life is Strange는 이런 질문을 플레이어 가슴속에 깊이 던진다. 그리고 그 선택은 플레이어에게 맡긴다. 이 점이 Life is Strange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이유다.
Life is Strange가 아름다운 건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그래픽과 사운드도 훌륭하다. 그래픽부터 말하자면, 이 게임은 현실적인 그래픽을 추구하지 않았다. 대신, 마치 수채화를 보는 것 같은 그래픽을 선보였다. 그리고 이 선택은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아카디아 베이의 풍경이 실레로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햇살 가득한 캠퍼스, 울창한 숲, 황혼의 해변... 모든 장면이 한 폭의 수채화와 같다.
그리고 사운드트랙도 정말 최고다.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 선율부터 감성 터지는 인디 록까지, 게임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살려준다. 특히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은 마지막 엔딩에 흐르는 ' Spanish Sahara'이다. 이 곡은 클로이와 마을 중 마을을 선택하면 나오는 엔딩에 흐르는 곡인데 엔딩의 슬프면서도 동시에 희망적인 오묘한 분위기를 정확하게 살리는 명곡이다. 이런 점들이 잘 어우러져 Life is Strange를 최고의 명작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2. 하지만 어떤 명작이라도 흠잡을 데는 있기 마련이다. 분명 Life is Strange는 걸작 중 걸작이지만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가장 아쉬웠던 건 버그였는데 게임을 하던 도중 2번 정도, 중간에 그래픽이 깨지다 튕기고 다시 돌아오니 가장 최근 세이브로 진행도가 삭제되는 버그가 있었다. 이런 버그는 게임 진행 중 나타나면 당연히 불쾌하다.
또 아쉬운 점이라면 스토리와 별개로 게임플레이 자체는 약간 심심한 편이라는 점이다. 물론 제작진들이 이를 생각해서 이동이나 간단한 미니게임을 넣긴 했는데 투 더 문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솔직히 그냥 스토리나 빨리 진행하지 이런 걸 왜 넣었는지 싶었다. 이런 점들이 Life is Strange의 사소한 아쉬운 점이었다.
그래도 이 게임은 분명 훌륭한 게임이다. 스토리 게임을 좋아하고 시간여행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볼 만하다. 이 게임을 하면서 생각할 거리를 받고, 감동을 받고, 특별한 경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게 좋은 방향이라고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떻겠는가? 원래 인생에 확실한 선택은 없는 법이다. 이 게임에서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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