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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게 음해당했던 게임 프리크의 진실

삶은계-란 2024. 10. 31. 22:50

0. 포켓몬스터는 지금이 전성기라고 불려도 될 정도로 계속해서 엄청난 판매량을 자랑하고 있다. 게임 판매량은 천만 장을 넘어 이천만 장도 거뜬히 팔리고, 굿즈도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호재를 보이고 있으며 포켓몬 고나 유나이트 같은 외전 게임들도 잘 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와 반비례하게 포켓몬스터 메인 게임을 개발하는 게임 프리크의 평판은 지속적으로 추락해 왔다. 왜냐하면 이렇게 많은 돈을 버는 것과 별개로 게임 퀄리티가 점점 떨어져 왔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3DS 시대 이후 포켓몬스터는 예전만 못하다. 물론 DS 시절 포켓몬스터가 워낙 대단했기에 예전만 못한 걸로는 괜찮다. 하지만 점점 게임의 퀄리티가 우하향 곡선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스위치 시대에 말이다. 그나마 레전즈 아르세우스가 잘 뽑혔긴 했는데 나머지는 영 아니다. 소드실드의 반갈죽 사태나 브다샤펄 사태, 스토리를 제외한 스칼렛바이올렛의 모든 것 등 하나같이 끔찍하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게임 프리크는 당연히 비판을 받아왔고 단순히 게임을 못 만든 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일부러 게임을 대충 만든다, 나태하다, 태만하다, 도감 반갈죽도 그냥 지들이 일하기 싫어서 그런 거다 등 온갖 음해를 받아왔다. 하지만 이런 음해는 사실이 아니었다, 아니 이런 상황에서는 그 누가 와도 포켓몬스터를 명작으로 만들 수 없었다. 이는 이번에 유출된 여러 문건들로 밝혀졌는데 이제부터 차근차근 알아보자.

 

1. 최근 어떤 해커가 게임 프리크의 파일을 해킹해서 온갖 내부 자료들이 유출되었다. 그중에서는 캐릭터 디자인 컨셉 아트나 초기 밸런스 파일, 디자인 레퍼런스, 기묘한 초기 신오신화 자료(절대 정사가 아니다.)들도 있었다. 물론 이런 것들 뿐이면 그냥 게임 프리크가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런 것도 있었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 뒤에 나오는 것들은 게임 프리크, 더 나아가 포켓몬스터 IP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꼬락서니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먼저 밝혀진 것은 포켓몬 애니메이션, 그것도 지금 방영되고 있는 리코가 주인공인 포켓몬 애니메이션 관련 자료다. 게임 프리크는 IP의 성공을 위해서는 애니메이션과 게임이 동시에 흥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게임 프리크의 최고참인 스기모리 켄이 리코의 디자인도 해주고 최대한 게임과 애니메이션의 발매일과 방영일을 맞추기 위해 일부러 무리해서 게임을 발매했다. 그렇다, 게임이 버그와 글리치가 넘쳐나는 것은 전부 게임을 너무 일찍 내서였다. 상식적으로 스칼렛바이올렛의 버그들은 너무나도 기초적이어서 시간만 있으면 잡을 수 있었다. 그렇지 못한 이유는 게임 프리크가 진짜 시간이 없어서였다.

 

 문제는 스칼렛바이올렛이 애니메이션 때문에 일찍 발매하는 와중에도 애니메이션은 중요한 설정도 다 만들지 않은 채 허송세월하면 시간을 보내다가 애니메이션 방영이 연기된 것이다. 그래가지고 지우의 라스트 댄스, 내  꿈은 포켓몬 마스터가 W 완결 후 방영되었는데 사실 이것도 급조였다. 다행히 내 꿈은 포켓몬 마스터가 피죤투도 복귀하고 나름 괜찮게 끝나서 다행이지 만약 이것까지 말아먹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정말 끔찍하다.

 

 거기에 애니 제작진들은 게임 프리크에게 테라파고스 설정을 애니에서 쓰고 싶다고 계속 징징거렸고 결국 그들의 의견이 반영되어 테라파고스의 설정이 바뀌었다. 그 여파로 스칼렛바이올렛의 두 번째 DLC, 남청의 원반은 지금까지 테라파고스와 테라스탈 빌드업은 다 날아가고 카지가 혼자서 스토리를 다 해주는 기형적인 모습으로 바뀌었고 슈슈슈슈 패닉과 복숭악동이 없었으면 수습도 못했을 것이다. 

 

 또 계속 화체가 되었던 지우 하차 이슈, 사실 이것도 게임 프리크는 적어도 베스트위시 때부터 계속 주장해 오던 것인데 애니 제작진 측에서 이를 일방적으로 무시했던 것이고 결국 계속해서 쌓여오던 폭탄은 W에서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차라리 베스트위시나 XY에서 지우를 잘 하차시켰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는 걸 생각하면 참 근시안적인 판단이었다. 

 

 이렇게 밝혀진 것으로 보면 포켓몬 애니메이션이 최근 하락세를 겪는 것은 전부 애니 제작진들의 자업자득이고 게임 프리크는 나름 그들의 역할에서 애니를 구해주려고 노력을 했지만 실패하고 도리어 자신들 게임 퀄리티마저 애니에 끌려갔다는 것이 내부 유출 문서의 결론이다. 이렇게 보면 참 게임 프리크가 불쌍해진다. 특히 이 문서들에서 지금까지 포켓몬 팬들의 욕받이 오오모리가 이런 일들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오오모리도 욕도 많이 먹었을 텐데 안팎으로 고생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에게 불쌍하게도 애니 제작진들만 트롤러들이 아니었다. 포켓몬스터 IP를 총괄, 관리하는 회사는 포켓몬 컴퍼니다. 이 포켓몬 컴퍼니가 내부 문서에서 새로운 포켓몬 극장판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 극장판 내용이 가관이었다. 당시의 초안을 요약하자면 여주인공의 오빠가 뮤를 찾았다고 SNS에 올렸다가 네티즌들의 공격을 받고 자살하고 여주인공과 남주인공들이 오빠의 친구들과 함께 뮤를 찾는 이야기이다.

 

 일단 자살이라는 소재부터 문제다. 이건 포켓몬스터다. 꿈과 희망의 IP 그 자체인 포켓몬스터, 여기에 자살이라니... 물론 문서에 따르면 이 극장판은 성인용이긴 하다. 그래도 포켓몬스터라는 IP는 기본적으로 아동층으로 대상으로 한다. 그러니까 선을 넘으면 안 된다. 근데, 자살은... 당장 같이 내부 유출로 나온 초기 신오신화가 폐기된 설정이고 전 세계의 신화에 포켓몬만 대입했는데도 포켓몬이 여자를 납치한 후 결혼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전 세계 영화관에 걸릴 포켓몬스터 극장판의 내용이 자살? 이건 말이 안 된다.

 

 다행히도 게임 프리크는 내부 문서에서 그런 걸 넣으면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고 내부 문서에서도 자살 내용은 삭제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자살만이 아니다. 먼저 이 극장판에는 포켓몬의 비중이 너무 적고 너무 인간 캐릭터들에민 치중되어 있다. 비중 있는 포켓몬은 뮤 밖에 없고 나머지는 남주인공, 여주인공, 여주인공의 오빠, 그리고 오빠 친구들로만 극이 구성되어 있다. 이런 건 포켓몬 극장판이 아니다. 그냥 극장용 애니메이션이지. 아무리 포켓몬스터가 혁신이 필요하다 뭐다 해도 그래도 포켓몬 극장판에는 포켓몬이 있어야 된다. 그런데 이 극장판은 포켓몬이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 막말로 뮤의 자리를 하츄핑으로 바꾸어도 이 극장판의 내용은 성립된다. 이 역시 게임 프리크가 내부 문서에서 열심히 지적한 것들 중 하나이다.

 

 또 내부 문서에서 포켓몬 컴퍼니 측은 이 극장판을 홍보할 마케팅을 여러 가지 말했는데 그중 가관인 건 예고편에만 원작 캐릭터를 넣고 실제 극장판에는 카메오로만 출현시킨다는 것이다. 요즘은 예고편에서 그런 식으로 낚시하면 엄청 욕먹는다. 당장 라스트 오브 어스 2나 조커 폴리 아 되만 하더라도 예고편에서 낚시하다고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거기에 포켓몬 컴퍼니는 이런 식으로 극장판을 만드는 이유를 여성층을 노려서 여주인공의 오빠와 친구들의 비중을 많이 넣었다고 했다. 근데 여성층들도 전부가 BL을 좋아하는 건 아니고 BL을 좋아하는 여성층들도 이미 인기 있는 단델과 금랑같은 걸 좋아하지 누가 극장판에서 처음 나온 남정네들을 보러 가겠는가? 당장 게임 프리크만 하더라도 그냥 그럴 거면 단델과 금랑의 유쾌한 뮤 탐험기로 바꾸라고 말한 걸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다. 그냥 이 극장판은 답이 없다.

 

 다행히도 이 극장판은 원래 2023~2024년쯤 개봉 예정이었는데 개봉은커녕 마케팅도 없는 걸 보면 폐기된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작품이 진지하게 기획되고 있던 걸 보면 포켓몬 컴퍼니도 감이 없다는 게 눈에 훤히 보인다. 그리고 게임 프리크는 이런 짐덩어리를 갖고 제한된 시간 내에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

 

2. 만약 젤다 제작진들이 야생의 숨결이 너무 잘 나왔으니 2년 안에 후속작으로 내라고 명령받았다면 왕국의 눈물이 이렇게 명작으로 나올 수 있었을까? 잘해야 야생의 숨결의 복사 붙여 넣기로 끝났을 것이고 못 하면 사이버펑크 2077과 사이좋게 망겜의 대명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게임 프리크는 이를 매 게임을 만들 때마다 강요받고 있다. 누가 이런 환경에서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겠는가? 진짜 게임의 신이 와도 불가능하다. 게임 프리크는 지금까지 억울한 음해를 받고 있었다.

 

 오오모리도 마찬가지다. 모두들 그를 포켓몬을 패망으로 몰아넣는 악의 원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서 좋은 포켓몬 게임을 만드려 하고 IP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려고 했던 훌륭한 디렉터였다. 게임 프리크는 죄가 없었다. 적어도 진범은 아니었다. 진범은 게임 프리크 뒤에서 열심히 사고를 치는 포켓몬 컴퍼니와 애니 제작진들이었다.

 

 물론 결론이 이렇게 났다고 해서 갑자기 포켓몬스터의 게임 퀄리티가 올라가지는 않을 것이다. 겨우 내부 문서가 유출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포켓몬 컴퍼니와 애니 제작진들의 태도가 바뀌지도 않을 것이고 지나치게 짧은 게임 발매 일정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포켓몬 게임들도 기존과 비슷한 문제점을 가질 것 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정하더라도 우리는 이제 진실을 안다. 그러니 이제는 포켓몬 게임을 비판하더라도 게임 프리크에 대한 비판은 조금이나마 덜 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들은 적어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