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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도시의 도서관 - (9)

삶은계-란 2023. 4. 24. 18:53

※ 이 글에는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름다운 선율로... 안젤리카의 추모를 끝없이 잇는 것...
- 아르갈리아
하하, 아직도 그 장갑을... 정말 역겹네.
- 아르갈리아
지휘의 미학은 지휘를 멈출 때를 아는 데 있다.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오스트리아의 지휘자

 

0. 피아노를 치든, 바이올린을 치든, 기타를 치든 혼자서 음악을 연주할 때는 지휘자가 필요 없다. 오로지 자기 자신의 템포에 맞춰서 연주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과 함께 연주할 때는 그 사람들의 연주 하나, 하나를 하나로 모을 지휘자가 필요한 법이다. 지휘자가 무능하다면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들을 모아도 그 연주는 망가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소개할 지휘자는 연주를 망가뜨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1. 아르갈리아는 도시의 해결사로 어렸을 때 꽤 어렵게 자랐다. 그는 여동생, 안젤리카와 함께 날개의 실험체로 쓰인 다음, 도시 외곽의 버려졌다. 살아남기 힘든 외곽에서 아르갈리아와 안젤리카는 살아남는 데 성공했고 실험으로 얻은 능력으로 도시에서 강력한 해결사가 되었다. 아르갈리아와 안젤리카는 남매애가 깊었는데, 그래서였을까? 아르칼리아는 안젤리카가 결혼을 반대했고 그녀가 결혼할 남편인 롤랑을 싫어했다. 롤랑은 그에게서 여동생을 빼앗아간 인물일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피아니스트가 나타났고 안젤리카는 그에 의해 가장 아름다운 음표가 되며 죽었다. 아르갈리아와 롤랑은 이 사실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그러나 그 둘이 같았던 것은 거기까지였고 그 뒤, 그 둘의 행보는 완전히 달라졌다. 롤랑은 아내가 죽은 분노를 세상에 돌리며 그녀의 죽음과 관련 있어 보이는 대상을 학살하고 다녔다. 반면, 아르갈리아는 세상에 분노를 돌릴 기력조차 잃은 채, 집에서 의지를 잃은 채 칩거할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길을 알려준 것이 그의 스승이자 도시에는 보라눈물이라 불리는 자, 이오리였다. 이오리는 아르갈리아에게 뒤틀림을 모으고 도서관을 공격해 빛을 탈취하라고 조언했고 아르갈리아는 이오리의 말을 따라 뒤틀린 뒤, 자신과 같은 뒤틀림을 모으기 시작했다.

 

 차근차근, 뒤틀림을 모아 잔향악단을 만든 아르갈리아는 도서관을 살 찌우기 위해 마침표 사무소나 웃는 얼굴들 등 수많은 사람들을 도서관으로 보냈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도서관이 빛을 얼마나 모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도서관에 행차했다. 도서관의 상태를 점검한 아르갈리아는 아직 때가 아니라는 말을 남기며 도서관에서 물러났지만 도서관에 그 강함의 편린만큼은 똑똑히 보여주었다.

 

 그 뒤로도, 이오리가 진정 자신을 위해 조언한 것이 아니라 이오리의 목적을 위해 그랬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를 공격한다든가, 잔향악단을 추적해 온 하나 협회 남부 1과와 주홍십자를 전멸시키는 등의 행보를 걷던 아르갈리아는 하나 협회 남부 2과가 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이제 때가 되었다는 것을 직감하고 도서관에 불청객으로 난입했다. 아르갈리아는 롤랑에게 웃으며 재헌이 만든 안젤리카 인형을 소개했고 롤랑은 격분하여 아르갈리아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아르갈리아는 앤젤라를 비난하며 비꼬았고 그 말들이 전부 사실이었기 때문에 앤젤라는 차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아르갈리아는 롤랑에게 인간은 무언가의 선으로 가로막혀 있어 발전할 수 없으며 자신이 빛을 탈취해 가장 아름다운 연주를 하는 것으로 그 무언가의 선을 없앨 것이라고 말한다. 롤랑은 그런 그를 미친 또라이 취급하지만 아르갈리아는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니라 단지 깨달음을 얻었을 뿐이라 말한다. 그렇게 여유로워 보이던 아르갈리아도 롤랑이 쓰던 안젤리카의 장갑을 보며 정색하더니 롤랑에게 달려들었다.

 

 둘의 전투는 치열했다. 아르갈리아와 롤랑 모두 전력을 다해 서로를 죽이려고 들었다. 거대한 칼과 낫이 서로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리듯, 우아하게 합을 나누었다. 그러나 롤랑은 도서관의 힘을 빌려 더 강해진 뒤였다. 아르갈리아는 치열한 혈투 끝에 롤랑에게 패배했고 아르갈리아는 이것이 끝이 아닐 거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이것은 끝이 아니었다. 앤젤라의 결단 덕에 아르갈리아는 다시 살아났고 그와 잔향악단은 다시 한번 빛을 탈취하려 했다. 그러나 다시 살아나도 도서관을 이기지는 못했으며 다른 단원들은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아르갈리아도 롤랑과의 일주일 간 벌어진 치열한 대결 끝에 결국 허무하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야 롤랑을 인정했지만 롤랑은 그를 마지막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2. 아르갈리아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조직력이다. 아르갈리아와 비슷한 특색급 강자들은 보통 개인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아르갈리아는 자신의 목표를 위한 자신만의 조직을 꾸린다. 잔향악단의 단원들은 설정상 한 명, 한 명이 뒤틀림으로 도시 내에서도 꽤 강자축에 속한다. 즉, 그런 뒤틀림 9명과 그런 뒤틀림이 이끄는 하부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아르갈리아는 좋은 리더임이 틀림없다. 

 

 이는 롤랑과 비교된다. 롤랑과 아르갈리아는 연관성이 깊은 캐릭터이지만 꽤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롤랑은 혼자서 도시에서 깽판을 치다가 도서관에 합류해 앤젤라의 시종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아르갈리아는 잔향악단의 단장이라는 지도자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둘의 사회성 차이가 크게 느껴진다. 그 외에도 둘은 비교하기 좋은 캐릭터다. 둘 다, 안젤리카의 죽음 이후 엄청난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 롤랑은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에 묶여 복수를 위한 의미 없는 학살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러나 아르갈리아는 안젤리카의 죽음을 어느 정도는 극복하는 데 성공해 도서관의 빛을 이용한 미래로 나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 미래라는 것조차 안젤리카의 추모라는 과거에 얽매인 과거였다. 결국 아르갈리아는 안젤리카의 죽음으로 비롯된 복수에서는 벗어났을지언정 안젤리카에 대한 집착이나 그리움까지는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롤랑도 마찬가지였지만 도서관에서 성장하고 난 뒤, 그는 안젤리카라는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모습과 비교하면 아르갈리아가 롤랑에게 패배한 이유를 알 수 있다. 결국 아르갈리아는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가 나아가려 한 미래도 인상적이다. 그가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는 정확하게 언급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짐작할 수는 있다. 아르갈리아는 빛을 탈취한 다음, 그 빛으로 피아니스트의 연주보다 더 아름다운 연주를 하여 사람들을 뒤틀리게 하는 것이 목표였을 것이다. 뒤틀림을 추구한 카르멘이 뒷배로 있다는 점과 자신의 깨달음을 퍼뜨리겠다고 말한 점에서 이 목표가 드러난다. 이런 그의 목표는 결국 실패로 끝나는데, 이는 방법 중에 빛을 탈취하는 것, 즉 날먹이 포함되어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비록 아르갈리아가 도서관으로 손님들을 보내주긴 했지만 결국 그 손님을 열심히 책으로 만들어 빛을 수집한 건 도서관이었고 아르갈리아는 빛이 모이기를 기다리기만 했다. 이런 점에서 결국 개미와 베짱이 같은 교훈도 이 캐릭터에 포함되지 않나는 생각도 든다. 베짱이가 나름 음악가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3. 다만 아르갈리아라는 캐릭터 활용에는 아쉬운 점이 있다. 표면적으로 아르갈리아는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의 최종 보스다. 머리 전은 최종 보스보다는 이벤트 전에 가까우므로 마지막으로 전투하게 되는 아르갈리아 최종 보스가 된다. 즉, 아르갈리아는 가장 인상 깊고 매력 있는 빌런이어야 했다. 그러나 아르갈리아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일단, 게임 외적으로 아르갈리아 보스전은 어렵지 않다.

 

 아르갈리아 1차전은 아르갈리아와 롤랑의 1:1 일기토이므로 컨셉은 잘 살렸지만 난이도는 그렇게까지 어려운 편은 아니다. 그리고, 아르갈리아 2차전에서는 이 게임 공인 치트키 붉은 안개를 사용할 수 있으므로 마찬가지로 어렵지 않다. 비슷한 포지션임에도 불구하고 살인적인 난이도를 보여주는 총류의 층 완전개방이나 이벤트 전이라 클리어는 어렵지 않아도 강한 스펙으로 플레이어를 압박하는 머리 전과는 비교하기가 미안하다.

 

 그나마 롤랑 전이 난이도 측면에서 아르갈리아 보스전과 비슷하지만 롤랑 전은 무려 5 페이즈나 되는 든든한 분량에 뛰어난 연출로 플레이어를 사로잡았다. 물론 잔향악단도 분량은 국밥을 넘어서 거의 한식 뷔페 수준이지만 솔직히 아르갈리아와 붙는 파트는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르갈리아 보스전 분량이 많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아르갈리아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스토리 내적으로도 아르갈리아의 포스는 떨어진다. 결정적인 원인은 잔향악단 2차전이다. 잔향악단 1차전까지는 10:10이라는 압도적인 규모로 부족한 분량을 어느 정도 해결하지만 총류의 층 완전개방 이후 하는 잔향악단 2차전은 솔직히 김이 좀 샌다. 차라리 잔향악단을 여기서 소모하지 말고 빛으로 부활한 잔향악단이 권토중래하며 물러나는 전개로 갔으면 캐릭터들도 아끼고 후속작의 기대도 높으면서 더 잘 쓸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르갈리아가 나쁜 캐릭터라는 것은 아니다. 아르갈리아는 특유의 광기와 잔향악단이라는 거대 조직을 꾸릴 수 있는 카리스마 등을 여실 없이 잘 보여줬다. 다만, 아르갈리아라는 캐릭터의 중요도를 생각하면 이 정도의 완성도로는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맨 위에 했던 질문을 생각하면 연주를 망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지휘자 때문에 연주의 질이 좋아질 정도는 아니었다. 이게 필자가 생각한 정답이다. 다음 Limbus Company에 등장할 지휘자는 과연 연주를 더 좋게 할지, 아니면 아르갈리아를 그리워하게 할지를 지켜보며 이번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