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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 2의 빌런들 - (1)

삶은계-란 2023. 4. 28. 22:21

※ 이 글에는 스타크래프트 2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둘 중 하나는 잡아먹히고, 더 강한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이것이 저그의 생존 방식이다!
- 주르반, <스타크래프트 2> 中
힘은 함정이다. 무리 우두머리들은 그 함정에 빠졌다.
- 데하카,  <스타크래프트 2> 中
가장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고, 가장 똑똑하다고 해서 살아남는 것도 아니다.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것이 살아남는다.
- 찰스 다윈, 영국의 생물학자

0. 전작이었던 스타크래프트처럼 스타크래프트 2에도 많은 빌런이 등장한다. 물론, 스타 2에 등장하는 빌런들이 모두 처음 보는 얼굴은 아니다. 멩스크, 칼날 여왕 같은 빌런들은 익숙한 얼굴이다. 하지만 새 포대에 새 술을 담아야 한다는 말처럼 새 게임에는 새 빌런이 등장해야 한다. 이번에 소개할 빌런도 스타 1에서는 예측하지도 못한 새로운 빌런이다.

 

1. 저그는 원래 제루스에서 살고 있던 생물이었다. 이들은 제루스에서 평화롭지는 않지만 나름 그들만의 삶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몬이 제루스에 도착했고 그는 저그를 무기화시키기 위해 실험을 진행했다. 이로 인해 많은 저그들이 강제적으로 아몬이 만든 초월체에 지배당했다. 그러나 일부 저그들은 아몬의 지배를 거부하고 아몬이 찾을 수 없는 행성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아몬이 죽고 초월체가 제루스를 떠나자, 숨었던 저그들은 다시 표면으로 나와 그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하며 살아나갔다. 이 저그들을 원시 저그라고 부른다.

 

 원시 저그는 저그 군단과 다르게 각 개체마다 지성이 있다. 즉, 이들은 하나의 거대한 존재에 통제당하는 괴물이 아니라 지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야수 무리에 가깝다. 원시 저그들은 각 개체에 맞는 진화를 거듭해 나갔고 그중에서 특출 나게 강한 개체를 무리 우두머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가장 강한, 고대의 존재라 불린 우두머리가 바로 주르반이었다. 주르반은 제루스의 많은 정수를 흡수하며 더욱 강해져 왔다. 그러나 제루스 만의 정수로는 진화에 한계가 있었고 결국 그는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정수를 얻을 수 있을 때까지 긴 잠에 빠진다. 그리고 주르반이 잠에 빠지자 남은 우두머리는 남은 정수를 얻기 위해 서로 싸우고 투쟁하는 삶을 계속해나갔다.

 

 긴 시간이 지난 뒤, 제라툴에 조언을 받아 더 강해지기 위해 케리건과 저그 군단이 제루스에 도착했다. 그녀는 제루스의 비밀을 알아내고 더 강해지기 위해 잠자던 주르반을 깨웠다. 깨우는 도중, 케리건을 방해하는 브라크 무리와도 마주쳤으나 일단은 그 공격을 막아내고 주르반을 깨우는데 성공했다. 주르반은 케리건에게 더 강해질 수 있는 방법, 그리고 모든 일의 흑막인 아몬에 대한 정보를 알려줬다.

 

 주르반에 조언을 따른 케리건은 최초의 산란못의 힘을 받아 이전 칼날 여왕보다 더 강한 존재인, 원시 칼날 여왕으로 거듭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다른 원시 저그에게 케리건과 저그 군단은 이전에 타락했던 배신자들이었고, 그들을 처단하기 위해 제루스에 있던 야그드라, 슬리반, 크레이스 무리는 전부 케리건과 저그 군단을 공격했다. 하지만 원시 칼날 여왕이 된 케리건은 평범한 원시 저그는 물론, 무리 우두머리도 손대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존재였고 결국 이 세 무리 우두머리는 케리건 손에 쓰러졌다.

 

 케리건이 모든 무리 우두머리를 쓰러뜨리자, 주르반이 본색을 드러냈다. 그는 케리건이 모든 무리 우두머리를 쓰러뜨리고 원시 칼날 여왕이 된 다음, 케리건을 쓰러뜨려 그녀의 정수를 흡수할 생각이었다. 제루스에서 몇천 년간 만족할 만한 정수를 못 찾았던 주르반에게 케리건은 말 그대로 특식이었다. 하지만 케리건에게도 주르반은 마찬가지로 특식이었고 둘은 원시 저그의 본능에 따라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기 위한 사냥을 시작했다. 주르반은 케리건과 맞서 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상대였으나 케리건을 당해내지는 못했다. 결국 주르반 역시, 케리건의 먹잇감이 되어 흡수당하고 말았다.

 

 한편,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데하카는 더 많은 정수 수집을 위해서는 케리건과 한 편이 되는 것이 이득이라 생각했다. 우주 항해가 가능한 케리건을 따라간다면, 다른 행성에 있는 정수를 흡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데하카는 무리 우두머리들과의 결전 전, 케리건의 밑으로 들어왔고 그의 예측대로, 이후의 여정에서 데하카와 그의 무리들은 신날 정도로 정수를 얻었다. 

 

2. 원시 저그는 저그 군단과 달리 아몬의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한 저그였다. 그들은 아몬과 초월체를 거부하고 제루스에서 서로를 죽이고 죽이며 적응하고 성장해왔다. 그 과정에서 원시 저그는 저그 군단이 얻지 못한 것들을 얻었다. 대표적으로 원시 저그는 저그 군단과 달리 저글링조차도 자유의지가 있으며 그렇기에 자치령이 대 저그 병기로 준비했던 사이오닉 분열기도 무시할 수 있었다. 또, 기나긴 시간 동안, 정수들을 흡수하여 강해진 무리 우두머리는 매우 강력한 개체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원시 저그는 저그 군단에게 패배했다. 대부분의 무리 우두머리와 주르반, 모두 케리건에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 원인이라면 바로 개체로서는 원시 저그가 더 뛰어날 수 있어도 결국 군집으로서는 저그 군단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저그 군단의 유닛들은 저그 군단이 원하는 방향으로 아바투르가 심혈을 기울여 설계되었다. 그래서 각 개체로는 열심히 정수를 얻은 원시 저그의 유닛보다는 약해도 조금 더 특화된 능력으로 차별화할 수 있다. 거기에 저그 군단은 코프룰루 구역을 돌아다니며 더 많은 개체를 생산할 수 있고, 다양성도 더 뛰어나다는 것을 생각하면 결국 군집 단위로는 저그 군단이 원시 저그를 압도했다.

 

 또, 무리 우두머리는 강력하기는 했다. 그러나 최초의 산란못에서 원시 저그의 힘까지 얻은 케리건의 앞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원시 저그가 저그 군단에 갖는 이점은 개체의 강력함이었는데 원시 칼날 여왕으로 그 이점이 깨지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결국 원시 저그 우두머리와 그 무리는 저그 군단에게 패배하고 도태되었다.

 

 주르반의 경우는 약간 이야기가 다르다. 주르반은 적어도 무리 우두머리를 쓰러뜨릴 때까지는 케리건의 아군이었다. 주르반은 케리건이 어떻게 해야 원시 칼날 여왕이 될 수 있고, 무리 우두머리를 쓰러뜨릴 수 있을 지 알려주는 친절한 조언자였다. 그러나 주르반은 원시 저그였고 원시 저그의 숙명은 더 강한 정수를 흡수하고 강해지는 것이었다. 주르반은 그 본능에 충실하게 따랐고 그 결과는 죽음이었다. 가장 강한 원시 저그였던 주르반은 결국 원시 저그다운 최후를 맞은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가 데하카다. 데하카의 경우, 힘이나 세력은 다른 우두머리보다 미약했다. 그러나 그는 원시 저그답지 않게 당장의 정수를 위해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았다. 원시 저그답지 않게 행동했던 데하카는 케리건의 밑으로 들어갔고 그 덕에 데하카는 원시 저그가 추구하는 정수를 누구보다 더 많이 얻을 수 있었다. 가장 원시 저그 답지 않았던 데하카가 최후의 승자가 된 셈이다.

 

 결국 원시 저그는 끊임없이 적응하고 진화하며 시대의 변화에 마주쳐야 했다. 데하카는 시대의 변화를 따르는 데 성공했지만 주르반과 다른 무리 우두머리는 그렇지 못했다. 그랬기에 주르반과 무리 우두머리들은 도태되었고 데하카는 살아남았다. 이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장 자신답지 않은 행동을 해서라도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해야 한다는 교훈을 보여준다.

 

3. 원시 저그는 기존의 저그와는 많이 차별화된 종족이었다. 기존의 저그가 생체 군단의 느낌이었다면 원시 저그는 야수의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은 플레이어에게 신선함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원시 저그의 아쉬운 점이라면 비중이다. 뭐, 데하카 같은 경우에는 특이한 말투로 나름 존재감을 뽐내긴 했지만 케리건과 적대하는 빌런으로서 원시 저그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아무리 원시 저그가 제루스 원주민이라는 걸 감안해도 단 미션 3개 만에 순식간에 퇴장하는 것은 너무 짧았다. 특히, 주르반은 나름 고대의 존재인데 깨어난 지 미션 2개 만에 바로 죽어버렸다. 

 

 또, 이건 스토리 외적인 이야기인데, 원시 저그에서 모티브를 따온 군단 숙주의 당시 성능은 많이 역했다. 특히 군단의 심장 당시, 래더에서 너무나도 사기적이면서도 늘어져서 게임에 큰 악영향을 끼쳤다. 물론 군단의 심장 래더를 말아먹은 유닛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군단 숙주는 조금 심했다. 그래도 기존 저그와 차별화된 원시 저그의 도입은 프랜차이즈 전체로 보았을 때는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데하카는 스토리뿐만 아니라 협동전에서도 활약했고 기존에 거기서 거기였던 저그의 다양성을 늘려주었다. 다만, 스토리 내적으로도 원시 저그의 비중이 조금 더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