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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 2의 빌런들 - (2)

삶은계-란 2023. 4. 29. 23:04

※ 이 글에는 스타크래프트 2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신성모독자들아, 네놈들의 신에게 기도나 올려라! 이제 죗값을 치를 때다!
- 니온, 탈다림 집행관
주인님은 이미 승리하셨다, 알라라크. 넌 우리 동족을 파멸로 이끌 것이!
- 말라쉬, 탈다림 군주
말라쉬의 약속은 거짓이었다. 승천은 없다. 탈다림은 절대 승천하여 혼종이 될 수 없다. 아몬은 우릴 배신했다. 그 죗값으로… 놈은 죽어야 한다.
- 알라라크, 탈다림 군주
꺾느냐 꺾이느냐! 이것이 군단의 방식이다!
- 브루탈루스, 불타는 군단의 악마

0. 전통적으로 프로토스는 선역 종족이었다. 비록 프로토스와 맞서 싸우는 미션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프로토스는 스타크래프트 1 내내 선역을 유지했다. 그러나 프로토스의 본성은 선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니, 아몬이 떠난 이후 프로토스는 미쳐 날뛰며 서로를 죽이려고 날뛰었고 칼라가 없었다면 지금도 계속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프로토스가 칼라를 만들지 못하고 본성을 유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1. 아몬이 떠난 후, 끝없는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젤나가에 심취했던 일부 프로토스는 젤나가의 흔적을 찾기 위해 아이어를 떠났다. 이들은 온 우주를 헤맨 끝에 그들의 창조주인 아몬과 접촉하는 데 성공했으며 그의 말만을 따르는 광신도, 탈다림이 되었다. 탈다림은 테라진을 창조의 숨결이라 부르며 숭배했고 테라진이 많던 슬레인 행성에 정착했다. 이들은 아몬의 명령에 따르며 아몬의 부활을 착실하게 준비해나가고 있었다.

 

 탈다림 사회는 약육강식의 철저한 계급 사회였다. 탈다림 군주는 탈다림의 지도자로서 모든 탈다림의 생사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이 있었으며 그 밑을 따르던 고위 승천자들은 호시탐탐 그 자리를 노렸다. 이들은 라크쉬르라는 의식을 통해 상급자의 자리를 찬탈했으며 패배자에게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었다. 극단적인 수직적 사회에서 많은 탈다림 전사들이 죽어나갔으나 스타크래프트 2 시점에서는 큰 규모의 라크쉬르는 거의 없었다. 아몬이 약속했던 승천의 순간이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2. 탈다림이 작품의 전면에 첫 등장한 것은 자유의 날개 때였다. 탈다림 집행관 니온은 신성한 젤나가 유물과 창조의 숨결을 훔치려는 레이너 특공대와 맞서 싸웠다. 그러나 레이너 특공대는 너무 강력했고 니온은 모선까지 끌고 나와 저항했지만 결국 패배, 한낱 테란에게 사망하고 말았다. 니온은 유물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싸웠으나 아몬의 계획에 유물로 칼날 여왕을 정화시키는 것이 포함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결국 아몬에게 버려진 셈이다.

 

 변방에서 니온이 쓰러졌을 때, 슬레인에서는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탈다림 군주 말라쉬의 명에 따라 전쟁을 열심히 준비하던 도중, 첫 번째 승천자 누로카가 말라쉬에게 라크쉬르를 신청한 것이었다. 누로카는 아몬이 탈다림에게 승천이 아니라 파멸을 가져다줄 것을 눈치채고 말라쉬에게 라크쉬르를 신청했다. 누로카의 생각처럼 아몬은 탈다림을 버릴 생각이었다. 이는 탈다림 군주였던 말라쉬도 알고 있었지만 그는 아몬의 광신도였기에 탈다림의 파멸도 개의치 않았다. 이를 안 누로카는 네 번째 승천자 알라라크에게 협력을 요청했다. 알라라크는 알겠다고 대답했고 다음 날, 라크쉬르가 시작되었다.

 

 누로카와 말라쉬가 대결하는 동안, 두 번째와 세 번째 승천자 구라즈와 제니쉬는 각각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 구라즈는 말라쉬의 편에, 제니쉬는 누로카의 편에 섰다. 구라즈와 제니쉬의 대결은 치열했으나 결국 부상을 입은 구라즈가 제니쉬를 죽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순간, 관중들 사이에서 간을 보던 알라라크가 경기장으로 달려 나와 구라즈를 죽였다. 라크쉬르 도중, 협력자는 직접 싸움에는 관여할 수 없으나 사이오닉 에너지를 주는 것으로 지원할 수는 있다. 알라라크의 지원을 받은 누로카는 말라쉬를 쓰러뜨리기 직전까지 갔다.

 

 그 순간, 알라라크는 말라쉬의 편에 설 것을 선언하며 누로카를 배신했다. 라크쉬르에선 참전하는 동시에 누구의 동맹인지 선언하는 관습이 있었다. 이는 굳이 지킬 필요는 없었으나 대부분의 탈다림은 당연히 지키는 관습이었다. 그러나 알라라크는 그런 것을 무시하고 경쟁자들을 제거한 다음, 말라쉬를 지지하며 누로카 마저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말라쉬는 이런 알라라크가 아니꼬웠지만 3명의 고위 승천자가 갑자기 사라진 상태에서 그까지 제거할 수는 없었으므로 일단은 그를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첫 번째 승천자가 된 알라라크는 사실 누로카의 주장에 공감했었다. 그러나 알라라크는 누로카의 계획은 무모했고 조급하다는 판단 하에 누로카를 버리는 선택을 했다. 누로카를 모든 탈다림이 따르지도 않을 거고 설사 탈다림의 지지를 얻어도 아몬과의 정면승부를 하기에는 체급의 차이가 크다는 판단도 있었다. 알라라크는 대신, 아몬에 맞설 수 있는 동맹을 찾으며 때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르타니스의 모습을 발견한 알라라크는 그를 아몬의 손아귀로부터 구해주며 자신을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자신이 라크쉬르에서 승리하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아르타니스도 황금 함대를 잃은 상황에서 알라라크와 탈다림이 있어서 나쁠 점은 없었다. 둘은 동맹을 맺었고 그 뒤, 알라라크는 말라쉬에게 라크쉬르를 신청했다. 제 아무리 황금 함대를 잃었다고는 해도, 댈람은 강했다. 댈람의 도움으로 말라쉬는 패배했고 말라쉬는 그를 저주하며 죽었다. 그리고 알라라크는 드디어 탈다림 군주가 되었다. 

 

 알라라크는 그 뒤, 아르타니스와 협력하지만 둘의 사이는 원만하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조화를 추구하는 아르타니스와 패도를 추구하는 알라라크가 잘 맞는다는 게 이상했고 알라라크는 아르타니스를 비롯 다른 아둔의 창의 구성원들이 말을 할 때마다 비꼬았다. 그러나 그의 실력만큼은 확실했고 알라라크의 말버릇에 다른 프로토스들도 모두 적응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알라라크와 그의 죽음의 함대는 아이어 탈환과 아몬의 추방에 기여했다.

 아몬이 사라지자, 알라라크와 아르타니스는 다시 제 갈길을 갔다. 알라라크는 일부 탈다림의 댈람 합류를 허락한 뒤, 아둔의 창을 떠났다. 그 뒤, 알라라크는 탈다림 군주로서 탈다림을 이끌고 있으며 노바 비밀 작전 시점에서는 노바와 대립하기도 했다. 그러나 탈다림 군주가 된 알라라크의 이후 행보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2. 탈다림은 아몬이 유도한 프로토스의 본성을 유지한 광신도였다. 이들은 아몬을 위해 죽었고 아몬을 위해 살았으며 아몬을 위해 온갖 악행을 벌였다. 탈다림의 무기 체계만 봐도 대부분이 다른 프로토스 무기를 약탈한 것이며 테란 세력들도 마구잡이로 공격했다. 그런 점에서 탈다림은 악역임이 틀림없다. 이는 알라라크도 예외는 아니다. 비록, 그는 아르타니스와 힘을 합쳐 아몬을 무찌르는 데 공헌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탈다림의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프로토스의 본성을 버리지도 못했으며 공허의 유산 이후로도 지나라를 시켜 티라도 IX와 바도나의 만간인들을 학살했다. 그런 의미에서 알라라크는 초월체처럼 아몬이라는 악에 맞선 악이지 절대로 영웅이 아니다.

 

 탈다림도 마찬가지다. 이전에 아몬에 따른 광신이 알라라크 집권 이후 사라졌을지언정, 그 아몬의 위치를 알라라크가 대신했다. 아몬을 위한 검이었던 탈다림은 이제 알라라크를 위한 검이 되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휘둘러진다. 실제로 알라라크 집권 이후에도 라크쉬르 같은 제도나 수직 체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탈다림은 언제든지 다시 코프룰루를 위협할 수 있는 검인 셈이다.

 

 그러나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알라라크는 아르타니스와 헤어지기 전, 탈다림 구성원에게 댈람에 합류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를 주었다. 이는 탈다림의 구성원에게 자유의지를 선사하는 몇 안 되는 장면이다. 탈다림의 구성원 중 일부는 이 기회를 붙잡고 댈람의 합류했을지도 모른다. 이는 탈다림도 어쩌면 변화의 여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건을 계기로 탈다림이 조금 덜 폭력적이고, 조금 덜 수직적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물론, 알라라크의 이 결정은 탈다림의 변화 따위가 아니라, 알라라크의 반대파를 평화적으로 몰아내기 위한 정치적 수사일 가능성일 확률이 더 높다. 알라라크는 댈람과 함께하면서 잠재적으로 댈람에 우호적이고 탈다림 체제에 적대적으로 바뀐 탈다림을 피 안 흘리고 없애기 위한 고도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노바 비밀 작전 시점에서 탈다림이 딱히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위의 가설보다 더 신빙성이 있다. 결국 탈다림의 변화는 반대파들이 댈람으로 간 시점에서 이미 물 건너간 셈이다.

 

3. 자유의 날개의 탈다림은 그렇게 매력적인 빌런은 아니었다. 그냥 테프전을 위해 만든 그런 세력에 불과했다. 그러나 공허의 유산에서 추가된 탈다림의 새로운 설정, 그리고 알라라크라는 새로운 인물은 탈다림을 매력적인 빌런으로 만들었다. 기존 프로토스의 단순한 팔레트 스왑이 아니라 새로운 유닛 구성을 보여줬고, 다른 프로토스 사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광신적이고 폭력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사회 체계, 그리고 외면부터 내면까지 매력덩어리인 알라라크까지 보여주며 탈다림은 180도로 변모했다. 탈다림은 단순한 광신도가 아니라 매력 있는 광신도가 된 것이다.

 

 이는 작품에도 꽤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공허의 유산 본편 스토리는 자칫하면 착한 아르타니스 vs 나쁜 아몬이라는 지루하고도 뻔한 구도로 갈 수 있었는데 이 구도에서 빌런인 탈다림과 알라라크가 아르타니스에 합류하면서 조금 더 긴장감을 유도시켰다. 또, 알라라크는 공허의 유산에 각 합류한 캐릭터 치고는 꽤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 이 역시 탈다림과 알라라크라는 빌런이 워낙 잘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공허의 유산에서 시도된 탈다림의 변화는 성공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노바 비밀 작전 이후 스타크래프트 프랜차이즈가 멈추면서 이 탈다림의 뒷이야기가 공개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졌다는 점이다. 특히, 며칠 전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비전블리자드 인수가 사실상 희박해지면서 더더욱 그렇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인수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블리자드가 이를 계기로 개선되어 탈다림의 뒷이야기를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