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2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 제독님. 실례지만 누구를 좀 소개하고 싶군요.
- 사미르 듀란, 저그 군단의 조언자
탕아여, 네 공격성은 아주 전형적이다.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이곳의 견본을 네가 모두 파괴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나는 이미 수많은 세계에 혼종의 씨를 뿌려두었다. 그들이 깨어나기 전에 전부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깨어나면... 네 우주는 변해갈 것이다. 영원히...
- 사미르 듀란, 거대한 힘의 하수인
이제 시작일 뿐이야. 아몬께서 별빛으로 속삭이셨다. 그분은 돌아오신다고 하셨다... 그분은 파괴한다고 하셨다. 멸종, 모든 것이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 에밀 나루드, 아몬의 하수인
입은 재앙을 여는 문이고
혀는 자신을 베는 칼이니
입을 닫고 혀를 깊숙히 간직한다면
어디서나 거뜬히 몸을 편히 하리라
- 풍도, 오대의 재상
0. 사람을 상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말이다. 과거 원시 사회에서는 힘이 있는 자가 말을 잘하는 자를 이겼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둘 사이의 균형은 반대로 기울어졌다. 그리고 이것은 머나먼 미래에 존재하는 코프룰루 구역에도 적용된다. 설사, 그것이 사람이 아니더라도.
1. 아몬에게는 자신의 오른팔과 같은 젤나가가 있었다. 그는 아몬처럼 강대한 힘을 가지지는 못했으나 그 어떤 젤나가들보다도 변장술에 능하였다. 그는 그 능력으로 긴 시간동안 아몬을 보조해 왔다. 그리고 초월체가 죽고 UED가 코프룰루를 침공해 오자 이제 그는 자신이 나서야 할 때가 찾아왔음을 알고 코프룰루 구역에 강림했다.
그는 사미르 듀란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다음, UED에 항복했다. 듀란은 UED에게 고급 정보를 알려주면서 듀갈의 신임을 얻었다. 그의 1차 목표는 UED의 원정이 실패하는 것이었고 신뢰를 얻은 듀란은 자연스럽게 원정 성공에 꼭 필요한 사이오닉 분열기의 해체를 제안했다. 듀갈은 그 제안에 찬성했으나 스투코프는 그 제안에 반대했고 머지않아 스투코프는 사이오닉 분열기를 독단적으로 재조립했다. 듀란은 이를 빌미로 스투코프를 죽임과 동시에 사이오닉 분열기를 다시 해체하려 했다. 그러나 스투코프가 죽는 순간, 그는 듀란이 배신했다는 진실을 알렸고 결국 사이오닉 분열기 해체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현명하고 유능한 듀갈의 오른팔을 제거한 성과를 가지고 듀란은 칼날 여왕의 곁으로 돌아왔다.
칼날 여왕의 곁에서 감염을 위장한 듀란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그는 칼날 여왕을 보좌하면서도 저그 반란군과 UED를 제거하기 위한 계책을 짰다. 저그 반란군의 핵심인 미성숙한 초월체는 공허의 힘, 즉 네라짐 만이 죽일 수 있었는데 듀란은 네라짐을 끌어들이기 위해 프로토스의 수도인 텔레마트로스를 정전시켰다. 대도시가 정전된 상태에서 프로토스가 혼란에 빠진 틈을 타, 듀란은 네라짐의 수장 라자갈을 납치했고 그 덕에 제라툴의 협조를 얻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제라툴의 손으로 미성숙한 초월체가 쓰러지니 이 역시 듀란의 계산 아래였다. 이렇게 저그 반란군과 UED는 사실상 괴멸되었다.
그 이후, 차 알레프에서 칼날 여왕이 프로토스, UED, 테란 자치령과의 전투를 벌일 동안, 듀란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칼날 여왕을 떠났다. 그리고 이름 없는 행성에서 진정한 목적을 위한 실험을 시작했다. 이를 진행하는 동안, 제라툴과 그 잔당들이 공격해오기는 하지만 듀란은 오히려 그를 비웃으며 자신은 케리건의 편이 아니라, 더 큰 힘을 위해 일하고 절대로 이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며 제라툴을 조롱했다. 그리고 이것이 듀란의 첫 번째, 그리고 가장 큰 실수였다.
듀란은 에밀 나루드라는 신분으로 새롭게 위장한 뒤, 뫼비우스 재단의 박사 자리에 올랐다. 그는 겉으로는 뫼비우스 재단의 박사로 유물을 연구하고 레이너를 도왔지만 속으로는 혼종을 더욱더 강하게 배양하거나 감염된 스투코프를 더 강화시키는 등의 행동을 했다. 후술하겠지만 이것이 나루드의 두 번째 실수였다.
케리건이 정화된 이후, 나루드는 레이너와 접촉해 케리건과 레이너의 보호를 자처했다. 물론 그것은 케리건을 제거하기 위한 계략이었고 나루드는 본색을 드러내며 멩스크를 부른 뒤, 케리건과 레이너를 제거하려 했다. 비록 그 작전은 실패했지만 대신 나루드는 케리건을 정화시켰던 젤나가 유물을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그는 훗날, 멩스크가 케리건을 제거하도록 유물을 멩스크에게 건넸다.
그러나 머지않아 스투코프가 실험시설에서 탈출했다. 그리고 스투코프는 나루드의 생각과는 달리 케리건과 손을 잡았다. 나루드의 실험과 시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스투코프는 케리건의 나루드 처단에 큰 도움을 주었고 나루드는 젤나가 사원의 힘을 빌려 원시 칼날 여왕이 된 케리건과 맞섰지만 나루드는 전투력이 약한 젤나가였고 결국 케리건을 이기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일단은 말이다.
하지만 젤나가는 공허에서 죽지 않으면 언제든지 공허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었고 나루드도 공허에서 부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가 죽어있던 사이, 아몬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도리어 테란-저그-프로토스 연합군이 공허로 쳐들어온 뒤였다. 나루드는 공허 피조물들을 이끌며 연합군을 막으려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나루드는 자신이 죽였던 스투코프에게 죽으면서 최후를 맞았다. 이것이 나루드의 결말이었다.
2. 듀란 또는 나루드, 이름이 뭐든 간에 그는 매우 유능한 아몬의 심복이었다. 그는 아몬이 부활하기 위한 계획을 철저하게 세웠고 그 계획은 성공했다. UED와 프로토스를 이용해 미성숙한 초월체를 제거했고 그 과정에서 케리건을 만악의 근원으로 만들었다. 실제로 듀란의 계획대로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면 초월체가 엿보았던 미래와 똑같이 아몬의 승리로 끝났을 것이다. 또, 나루드로 변장해서 혼종 제작에 큰 기여를 했으며 케리건을 몇 번이고 죽일 뻔하는 등, 스타2에서도 그의 활약은 이어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나루드는 아몬 패망의 1등 공신이었다.
이름 없는 행성에서 제라툴이 듀란을 발견했을 때, 듀란은 너무나도 쉽게 진실을 말했다. 그리고 그 이유에는 무슨 아몬에게 반역을 꾀하거나, 아니면 자신만의 목표가 있어서 그랬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제라툴을 조롱하려고 했던 거다. 이는 제라툴에게 잠깐 충격을 주는 데는 성공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멘털을 회복한 제라툴은 열심히 예언을 찾아 떠났고 그 결과, 케리건이 모든 것의 열쇠라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결국, 듀란 때문에 아몬의 계획 중, 가장 중요한 목표였던 케리건 제거가 어그러졌다. 제라툴은 이를 다시 레이너에게 알리고 레이너는 결국 케리건을 살리는 데 성공했다. 만약 제라툴이 진실을 몰랐다면 레이너는 유물을 쓴 다음, 피닉스 복수도 할 겸, 타이커스 목숨도 살려줄 겸 망설임 없이 케리건을 저승길로 보냈을 것이다. 결국 이는 듀란의 가장 큰 실수가 되었다.
듀란의 두번째 실수는 바로 스투코프를 굳이 감염된 테란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것도, 평범한 인페스티드 테란이 아니라 케리건의 명령도 거역할 수 있는 지성 있고 뛰어난 감염된 테란으로 말이다. 듀란은 아마 스투코프가 케리건에게 복수심을 품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스투코프는 애초에 케리건보단 자신을 눈앞에서 쏴 죽인 듀란에게 더 큰 원한을 갖고 있었고, 그는 탈출해 성공해 듀란의 계획을 방해했고 결국 듀란은 자기 손으로 케리건을 죽일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더 나아가, 듀란 자신도 결국 스투코프에게 죽음을 맞았다. 듀란은 자신의 실수로 역사를 바꿨다, 자신에게 안 좋은 방향으로.
이렇게 듀란은 유능했고 충성스러웠으나 입이 가볍고 치명적인 판단 미스를 저질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자신과 아몬의 파멸이었다. 듀란이 파멸시켰던 듀갈의 패인도 스투코프 살해 방치라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란 것을 생각하면 인과응보라 할 수 있는 셈이다.
3. 듀란은 스타크래프트 시리즈가 만들어낸 최고의 빌런 중 하나다. 스타 1에서 그는 능글맞은 말투와 함께 작품의 흑막 역할을 완벽히 수행했으며 자유의 날개에서는 뭔가 떡밥을 품고 있는 보이지 않는 위험 역할을, 군단의 심장 이후에는 아몬의 2인자 역할을 충실히 행했다. 특히, 그의 두 번의 최후는 빌런으로서 맞을 수 있는 매우 깔끔한 결말이었다. 그러므로 듀란은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스토리를 좋은 쪽으로 이끌게 한 1등 공신 중 하나였다.
다만, 듀란은 흑막 주제에 입이 너무 쌌다. 비록, 스타 1에서 아몬에 대한 복선을 뿌리기 위한 역할이어겠지만 솔직히 듀란이 거기서 모든 것을 풀 이유는 없었다. 특히, 자신이 케리건의 부하가 아니라 거대한 힘의 밑에서 일한다는 대사는 누가봐도 범인이 자백하는 대사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차라리 듀란이 흑막답게 자신을 케리건의 부하로 위장했으나 제라툴이 이를 눈치챈 것으로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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