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2021년, 넷플릭스에서 오징어 게임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평범한 한국 드라마라고 생각되었던 이 드라마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이 흥행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인간이라는 생물이 관찰을 좋아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가장 재미있는 구경이 남의 집 불구경, 그다음이 싸움구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은 자신과 관계없는 싸움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한다. 이는 현재의 오징어 게임뿐만 아니라 과거 고대 로마의 검투 경기에서도 나타난다. 로마 시민들은 자신과 관계없는 검투사들이 서로 싸우고 서로 죽이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 이런 부도덕적인 욕망은 창작물에도 영향을 끼쳐 데스 게임이라는 장르로도 발전했다.
물론, 이런 데스 게임이라는 장르가 과거의 검투 경기처럼 말초적 쾌락만을 제공하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데스 게임들은 전달하고 싶은 소주제를 데스 게임이라는 소재로 전달하려는 것뿐이다. 그리고 데스 게임이라는 장르가 부도덕적이고 잔인하기 때문에 이 메시지들이 오히려 설득을 얻는다. 방구석에서 전쟁은 나쁘다고 설파하는 것과 전장 한복판에서 전쟁은 나쁘다고 하는 것의 무게감은 분명 다르다. 그러므로 데스 게임이라는 장르의 가치엔 단순한 쾌락과 부도덕적 욕망만이 있는 것은 아닐 테다.
1. 이런 데스 게임의 말초적 쾌락과 메시지가 삐걱거리는 조화를 이루는 게임이 바로 단간론파 시리즈다. 단간론파 시리즈는 총 3개의 본편 게임과 1개의 외전, 그리고 여러 미디어믹스로 구성되어 있는 게임 시리즈다. 이 게임의 메인 컨셉이라고 하자면 고등학생들이 어느 장소에 갇히고 그곳에서 빠져나가려면 다른 학생을 죽여야 하는 것이다. 즉, 학생들은 살기 위해 다른 학생을 죽이고 다른 학생들은 살기 위해 범인을 잡는 그런 게임이다. 그러므로 이 시리즈는 데스 게임에 추리를 섞은 게임이다. 이는 게임을 더더욱 비도덕적으로 만든다. 왜냐하면 추리물이라는 장르는 가장 지적으로 보이면서도 비도덕적인 장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추리는 범죄가 발생해야, 특히 사람이 죽어야 성립되기 때문이다. 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살인이 발생하기를 기다린다. 그래야 누가 그를 어떻게 죽였는지 추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게임은 잘못했다가는 하루아침이라도 빨리 다른 학생이 죽기 만을 기다리는 말초적 쾌락에 사로잡힌 게임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이를 막는 것이 바로 단간론파의 캐릭터들이다. 다른 추리물에서의 피해자는 피해자다. 그냥 죽기 위해 있는 존재며 심지어 피해자가 가해자보다도 더 나쁜 경우도 흔해빠졌다. 그러나 단간론파에서 피해자는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다. 어제까지도 주인공과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밥을 먹던 친구였다. 이런 친구를 하루아침에 피해자로 만들면서 데스 게임의 잔인함을 부각함과 동시에 플레이어를 살인과 추리에 미친 악귀로 전락하지 않게 막는다. 그러므로 다른 게임보다도 단간론파에서 캐릭터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된다.
이런 캐릭터를 부각하기 위해 단간론파가 투입시킨 설정이 바로 초고교급이다. 어느 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초고교급이라는 특성은 각 캐릭터만의 개성을 더욱 강조하는데 도움을 준다. 더 나아가 이들은 초고교급이기 때문에 일반인은 시도하기 힘든 트릭을 이용한 살인도 할 수 있으므로 트릭의 다양성까지 증대시킨다. 물론 여기에도 허점이 있다. 애니메이션풍의 그래픽인 게임 특성상 초고교급의 능력이 조금 과장돼서 나타나는 감이 있고 이는 일부 플레이어에게는 오글거림을 선사할 수도 있다. 다만, 이것은 적응의 문제이므로 충분히 극복 가능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단간론파 시리즈는 비도덕적이고 말초적 쾌락을 추구하는 게임 구성을 캐릭터성과 메시지로 극복하려 한다. 이 삐걱거리는 조화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각 장르의 한계를 극복한 모양새를 보인다. 이 점이 단간론파 시리즈가 성공했던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2. 그렇다면 이제 개별 게임으로 넘어가자. 사실 그렇게 말했지만 이번 글에서는 이 시리즈의 첫 번째 게임, 단간론파 -희망의 학원과 절망의 고교생-에 대해 중점적으로 말하겠다. 사실 너무 제목이 기므로 앞으로는 1편 또는 무인편이라고 칭하겠다. 아무튼 이 1편은 단간론파 시리즈의 첫 시작이고 전 세계에 단간론파를 알린 게임이다. 그렇다면 이 게임의 특징은 무엇이 있을까? 1편의 장점과 단점을 살펴보며 한 번 천천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바로 이 시리즈만의 시스템, 학급재판이다. 단간 이전, 그리고 이후의 대부분의 추리 게임은 정적이다. 스토리뿐만 아니라 게임 플레이에서도 추리 게임은 정적이다. 시간을 들여서 누가 범인인지, 어떻게 죽였는지를 심도 있게 고민하는 것이 추리 게임의 미덕이며 자연스럽게 추리 게임은 정적인 게임 스타일로 정착했다. 그러나 단간론파는 다르다. 이 게임의 추리는 빠르고 역동적이다.
이 게임의 추리는 학급재판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대부분 진행된다. 그중, 학급재판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논스톱 논의다. 이 논스톱 논의란, 살아남은 학생들이 원형으로 서로 사건에 대해 진행하는 토의를 말한다. 주인공인 나에기는 이를 듣고 모순되는 점을 찾아 이를 논파할 수 있는 탄환(증거)을 쏴야 한다. 이것이 이 게임의 제목이 단간론파임 이유다. 그런데, 이 논스톱 논의는 다른 추리 게임처럼 플레이어가 조절할 수 있는 템포로 진행되지 않는다. 플레이어가 스페이스바나 엔터키를 누르지 않아도 자동으로 이야기가 쭉쭉 진행되기 때문에 진짜로 내 앞에서 토의가 벌어지는 듯한 실감을 준다. 또, 논스톱 논의 자체에 시간제한이 있기 때문에 빨리 진행해야 한다는 긴장감을 준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고 빠르게 논의가 진행되며 이는 기존 추리 게임의 좋게 말하면 신중하고, 나쁘게 말하면 갑갑한 템포와는 정반대의 느낌을 준다.
현실에서는 법정에서 증거품을 던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역전재판에서는 판사에게 증거품을 던진다. 그리고 단간론파에서는 증거품도 아니라 아예 재판 중 탄환을 쏴버린다. 뒤로 가면 갈수록 모순을 지적할 때 얻는 말초적 쾌락의 양은 더 커진다. 그렇기에 단간론파의 추리는 설사 트릭이 조금 아쉬운 사건이라도 본질적으로 재미있다. 이것이 이 게임, 더 나아가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이다.
학급재판의 장점은 논스톱 논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건이 종반부에 치달았을 때, 사건의 내용을 천천히 정리하는 클라이맥스 추리 역시 이 게임의 훌륭한 장점이다. 지금까지 풀어왔던 복잡한 사건의 얼개를 알려주는 것과 동시에 이를 플레이어가 직접 할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은 사건의 흐름 정리를 도와주는 것은 물론이요, 그 과정에서 재미까지 챙겼다는 점에서 뛰어나다.
물론 학급재판이라는 시스템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머신건 토크 배틀이 바로 그 예시다. 사실 이 시스템의 개요는 나쁘지 않다. 대규모 논의에 집중한 게임의 특성상, 1:1 대결이 빈약한 감이 있는데 머신건 토크 배틀은 이론상 이 빈약한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다만, 이 게임은 리듬 게임 같은 스타일로 진행되는데 그때 나오는 브금이 좀 많이 구리다. 리듬 게임을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매우 아쉽다. 특히, 이 파트를 제외한 단간론파의 브금이 전체적으로 좋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또, 스포일러가 안 되는 선에서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1~4챕까지의 스토리는 뛰어나다. 시작하자마자, 생각지도 못한 반전을 보여준 1챕부터 4채까지 스토리는 기승전결, 굳이 따지면 기승전까지의 이야기가 잘 구성된 편이다. 다만 5~6챕은 아쉬운 편이다. 일단, 5챕과 6챕은 내용 구성상 흑막과 맞서는 파트인 관계로 굳이 두 개의 파트로 나눌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무리해서 파트를 나눈 결과, 흐름이 늘어져서 아쉬웠다. 또, 흑막의 설정이나 캐릭터성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건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흑막은 조금 다르게 하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
이렇게 단간론파 1편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제 다음 편부터는 각 캐릭터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이 게임의 스토리를 조금 더 깊게 알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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