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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들이 모여 범인을 잡는 게임 - (1)

삶은계-란 2023. 5. 5. 10:19

※ 이 글에는 단간론파 1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에스퍼니까요…. 농담이에요, 그냥 감이에요.
- 마이조노 사야카, 초고교급 아이돌
찰스 린드버그의 이름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대서양을 2번째로 횡단한 사나이의 이름을 누가 안단 말인가?
- 미국의 국회의원,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로 간 직후

 

0. 모든 분야에서 최초라는 단어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던, 또는 만들지 못했던, 또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에 처음으로 도달하고 만들고 발견한 것이 최초다. 그러므로 최초로 무언가를 해낸 사람은 영원히 기억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사람은 기억하지만 두 번째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사람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두 번째로 남극점에 도달한 스콧도 그가 남극에서 비참하게 죽은 것으로 기억받지, 두 번째로 남극점에 도달했다는 것으로 기억받지 않는다. 이처럼 최초라는 개념은 꽤 중요하다. 그리고 이는 단간론파의 기념비적인 최초의 피해자 역시 마찬가지다.

 

1. 마이조노는 중학교 시절부터 일본 최고 아이돌의 메인보컬을 맡고 있는 슈퍼스타였다. 비록 작중에서 그 그룹의 이름이 나오거나 하지는 않지만 같은 학생들이 그녀를 거의 알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녀가 인기가 많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녀는 최고의 아이돌이 되기 위해 피가 나는 노력을 했으며 그 결과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그렇듯이 아이돌의 인기는 영원하지 않은 법이다. 오히려 아이돌이란 자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로운 스타에게 밀려 언제든지 사람들에게 잊힐 수 있는 풍전등화의 자리다. 그렇기에 마이조노는 당대의 뛰어난 재능이 있는 초고교급만이 입학할 수 있는 키보가미네 학원에 입학해 자신의 꿈을 계속 지키려고 했다.

 

 그러나 입학날에 뜬금없이 학원에 갇히고 살인게임을 하게 될 처지에 놓이지 마이조노는 흔들렸다. 이대로 학원에 갇힌 채로 남는다면 졸업은커녕, 아이돌 생활도 하지 못할 터였다. 마이조노는 마음속에서부터 벌써 탈출 계획을 짜놓고 있었을 터다. 한 편, 마이조노는 초고교급 아이돌이라 친화력이 부족하지는 않겠지만 아이돌이라는 직업이 워낙 바쁜 관계로 업계 외의 사람들과 친분이 그리 깊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중학교 때, 얼굴이라도 익숙했던 나에기와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나에기와 마이조노는 금방 친해졌고 나에기는 마이조노가 학원 안에서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던 중, 모노쿠마는 각 학생들에게 살인을 좀 하라고 동기를 주었다. 마이조노도 동기 비디오를 봤는데 그 비디오에는 자신이 속해있던 그룹이 풍비박산이 난 모습이 녹화되어 있었다. 충격을 받은 마이조노는 자신이 지금까지 추구했던 것이 무너졌다는 생각에 매우 심각하게 멘탈이 흔들렸고 결국 모노쿠마가 제시한 유일한 탈출 방법, 살인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미 살인을 하기로 결심한 상황에서 마이조노는 나에기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먼저 나에기와 부탁해 방을 바꾼 다음, 자신의 말에 홀딱 넘어갈 여자에 미친 쿠와타를 나에기의 방으로 유인했다. 그리고 계획대로라면 방심한 쿠와타를 마이조노가 칼로 찔러 죽은 뒤, 그곳을 적당히 정리해 나에기가 한 것처럼 꾸밀 계획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쿠와타가 방에 놓여있던 모조검으로 마이조노에게 반격하는 데 성공했고 마이조노는 역으로 쫓기는 신세가 되어 샤워실로 도망쳤다. 그러나 쿠와타는 기어이 샤워실까지 쫓아와 마이조노의 배에 칼을 꽂았고 그렇게 마이조노는 죽었다. 그러나 그녀는 죽기 직전, 쿠와타가 범인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다잉메시지로 그의 이름을 적었다. 뭐, 다 적지는 못 했지만 말이다.

 

2.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아이돌은 재능만으로는 할 수 없다.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지만 달성할 수 있는 그런 직업이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피나는 연습과 스케줄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이조노에게 아이돌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꿈이었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어도 아무렇지도 않지만 반대로 어렵게 얻은 것을 쉽게 잃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마이조노는 선을 넘어서라도 꿈을 잃지 않으려 했다.

 

 그녀가 살인 대상으로 선택한 것이 쿠와타라는 것도 인상 깊다. 그가 희생양으로 선택받은 이유는 단순히 쉽게 넘어올 것 같아서 같은 게 아닐 것이다. 그는 마이조노와 정반대의 재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별 다른 노력 없이도 4번 타자에 1 선발을 해 먹었다. 현실로 치면 최소 오타니와 동급이다. 그리고 야구라는 스포츠는 아이돌과 달리 충분한 재능이 있다면 별다른 노력 없이도 정상에 설 수 있다. 물론, 그 자리를 오래 유지해 먹으려면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쿠와타의 인생계획이 야구 조금만 하다 때려치우고 펑크 록으로 전향한다는데 그 정도면 노력 따위는 필요 없을 것이다. 이렇게 자신과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쿠와타가 그나마 마이조노가 진심으로 죽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마이조노가 꿈을 위해서 선을 넘는다고 해도 후지사키처럼 가냘픈 사람을 죽일 정도의 용기는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기껏 얻은 재능을 노력도 하지 않으며 같은 음악계열로 생각 없이 전향하려는 쿠와타 정도는 마음의 죄책감 없이 죽일 수 있었을 터였다. 그러나 그녀에게 남은 이 약간의 양심은 그녀의 죽음을 불러왔다. 야구 경기로 길러진 쿠와타는 마침 옆에 있던 모조검으로 마이조노를 무력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고 결국 그녀의 살인은 실패로 끝났다. 

 

 또, 마이조노는 분명 살인에 나에기를 이용했다. 그녀는 나에기를 이용해 살인현장을 위장했으며 위기 시에 나에기에게 누명을 씌우려 했음이 틀림없다. 다만, 그녀는 학급재판의 규칙을 잘 모르고 있었다. 범인을 못 잡으면 나머지가 죽는다는 것을 몰랐으므로 잠깐 누명이 써지는 것 정도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랬기에 나에기를 잠깐 배신하는 것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물론, 실제로 마이조노가 살인에 성공해서 학급재판에 돌입했다면, 순순히 자백을 했을까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이조노가 가지고 있는 아이돌과 꿈을 향한 의지는 나에기를 향한 우정보다는 훨씬 강했기에 마이조노는 어떻게든 나에기를 범인으로 몰았을 것이다.

 

그녀가 남긴 다잉메시지이자 이제는 단간을 상징하는 숫자이기도 한 11037도 단순히 나에기를 구해주기 위해서만 적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범인을 못 잡으면 범인을 제외한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다잉메시지를 적은 의도는 나에기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주려는 선의보다는 쿠와타에게 죽었다는 원한이 더 컸을 것이다. 물론 웬만한 사람은 죽어갈 때 제일 착해진다고 나에기에 대한 미안함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3. 마이조노는 누가 봐도 진히로인처럼 여겨졌다.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미유키가 그랬던 것처럼 역전재판에서 마요이가 그랬던 것처럼 마이조노는 추리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자 조수 겸 히로인으로 접근했다. 그랬기에 그녀의 죽음은 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것도 무고한 피해자가 아니라 사실 살인을 하려다 역으로 당한 사실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랬기에 그녀의 죽음은 작품내외적으로 엄청난 임팩트를 가져왔다. 마이조노가 죽음으로서 누구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고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여실 없이 보여준 것이다. 이 덕에 프롤로그만 보고 이게 맞나 싶었던 사람들도 마이조노의 죽음과 그 진상을 알고 작품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마이조노는 단간론파가 성공할 수 있었던 촉매가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마이조노를 1챕의 피해자로 만든 것은 성공적인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