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단간론파 시리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봉제인형이 아냐! 나는 모노쿠마라고! 너희의... 이 학원의... 학원장이다!
- 모노쿠마, 키보가미네 학원의 학원장(?)
수수께끼는 전부 풀렸다. 범인은 나다. 그래서, 그게 어쨌다고? 이겼다는 자랑은, 너희들의 기억의 비밀을 풀고 난 다음에 해 주지 않을래?
- 에노시마 준코, 초고교급 절망
마음이 있기에 인간은 어리석은 희망을 품는다. 그 바람은 결국 화근이 되어, 고통과 괴로움의 진창에서 구르다가 최후를 맞게 되지. 소년, 이것이 절망이다.
- 아포리아, 일리아스텔 멸사성의 일원, 애니 <유희왕 5D's> 中
0. 절망이란 무엇인가? 빠져나갈 방법도, 눈앞에 놓인 난제를 해결한 방법도 없는 것이 절망이다. 기적이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상황이 절망이다. 희망이 없는 상태가 절망이다. 고로, 절망은 희망이 없다면 역설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우리가 어둠이라는 개념을 만든 것은 빛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0이라는 숫자를 만든 것은 1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악이라는 개념을 알게 된 것은 선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절망은 희망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기생충이다. 그것이 우리가 희망을 갖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아마도.
1. 에노시마 준코는 모든 것을 갖고 태어났다. 그녀는 천부적인 지능과 뛰어난 미모, 그리고 괜찮은 신체 능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진정한 재능은 바로 분석력이었다. 그녀는 마치 미래를 예지 하듯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랬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것에 질려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너무 질려버린 나머지 절망해 버렸고 세상을 자신처럼 절망시키고 싶어 했다. 그것이 그녀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래서 세상을 절망시켰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자신과 같은 절망을 알려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녀는 살인게임을 개최하기로 결심했다. 그를 위해 그녀는 친구들의 기억을 없애고 학원을 살인게임의 장소로 만들고 자신을 대리한 모노쿠마를 만들었다. 그리고 얼마 뒤, 살인게임이 개최되었다.
살인게임은 순조로웠다. 비상시를 대비해 도장을 인질 삼아 오오가미를 끌어들였다. 그러나 그럴 필요도 없이 마이조노를 시작으로 살인이 시작되었고 3번의 살인이 발생했다. 비록 오오가미가 갑자기 자살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그녀는 미리 유서를 챙겨뒀다. 그러니 안심할 수 있었다. 비록 갑자기 변덕이 돌아 유서의 내용을 알려줬긴 했지만 상관없었을 터였다. 이걸로 모두를 절망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 친구들은 오히려 하나가 되어 그녀에게 맞서려 했다. 살인게임은 그걸로 끝났다.
그녀는 새로운 계획을 생겼다. 살인게임이 끝났다면 최소한 이들을 키보가미네에 영원히 가둔다. 이것으로 게임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절망을 안겨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계획을 가장 방해하는 것이 키리기리 쿄코, 초고교급 탐정이었다. 재능에 걸맞게 키리기리는 그녀의 정체를 파헤치려 했다. 그녀는 키리기리를 제거하기 위해 함정을 팠다. 나머지 넷이 알리바이가 있는 틈을 타 나에기를 죽여 키리기리를 범인으로 만드려 했다. 그러나 키리기리가 이를 간파하고 살인을 막아 그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녀가 죽인 언니, 이쿠사바 무쿠로의 시체를 이용해 키리기리를 범인으로 만드려 했다.
하지만 또 문제가 생겼다. 키리기리는 도리어 범행을 나에기에게 덮어 씌우고 용의 선상에서 빠져나왔다. 이대로 나에기까지 빠져나간다면 그녀가 의심받을 수 있었다. 그녀는 황급히 재판을 중단시키고 나에기라도 처형하려 했다. 지금까지 살아남으면서 일행의 두뇌를 담당하는 게 키리기리였다면 가장 인망이 깊은 거 나에기였기에 그라도 죽이면 뭔가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또또 뭔가가 꼬였다. 그녀가 삭제했다고 생각한 얼터 에고가 나에기를 구해줬다. 나에기는 겨우 살아남았고 그녀는 아무도 죽이지 못했다. 이제는 함정으로 쓸 시체도 사라졌다. 거기에 진실을 깨달은 나에기는 이쿠사바의 재심까지 신청했다. 그녀는 진짜 구석으로 몰렸고 결국 마지막 작전을 써야 했다.
나에기는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고 그녀의 정체, 에노시마 준코도 알아냈다. 에노시마는 순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에노시마는 학생들에게 세상은 '인류사상 최대최악의 절망적 사건'으로 멸망했고 너희가 알고 있던 소중한 것은 모두 사라졌으며 이제 밖에 나간다고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조롱했다. 이 말을 들은 모두가 절망했다, 단 한 명을 빼고. 오직 나에기만이 희망을 갖고 에노시마의 절망에 맞섰다. 에노시마는 최후의 제안으로 투표를 통해 키보가미네를 탈출할 것이지 말 것인지를 제안했다. 그러나 나에기는 현란한 말솜씨로 절망에 빠진 모두에게 희망을 주며 에노시마를 제외한 모든 학생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결국 에노시마는 패배했다. 그러나 이는 에노시마가 처음으로 맛본 패배였고 그녀는 그 패배에서 느낀 절망감이 너무 큰 나머지 스스로 자신을 처형했다. 이것이 모든 것의 흑막, 에노시마 준코의 최후였다.
2. 에노시마는 흑막으로서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녀가 승리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였다. 그러나 에노시마는 패배했고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 일단 에노시마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없었다. 에노시마의 살인게임은 외부에 공개되어 중계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외부에는 공정하게 보이는 척해야 이를 지켜볼 잔당들을 확실히 절망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에노시마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모두를 몰살시키거나 할 수는 없고 꼼수를 부려야 했다. 또, 에노시마가 방심한 것도 있었다. 비록 에노시마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는 없어도 그녀는 흑막이고 모든 학생들의 움직임을 알 수 있었다. 목욕탕에는 감시카메라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개인적으로는 그곳에도 에노시마가 무슨 장치로 감시를 하고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 에노시마는 모두를 파악했다고 생각했고 당연히 자신이 움직이는 대로 모두가 움직일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다른 학생들은 3 챕터 동안 에노시마가 원하는 대로 살인을 벌여줬으니 자신이 마지막에 유서를 공개하면 모두가 절망할 거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은 처참한 실패였지만 말이다.
거기다 에노시마가 아무리 모두를 감시한다 해도 에노시마는 한 명이었다. 그렇기에 양쪽에서 따로 떨어져서 행동을 한 다면 한쪽의 감시는 헐거워질 수밖에 없고 모노쿠마는 수동 조작이므로 에노시마가 다른 일을 하는 동안에는 모노쿠마가 무력화되었다. 에노시마가 키리기리를 위한 함정을 파는 동안 모노쿠마는 무력화되어 토가미 일행에게 해부당하는 신세가 되었고 다른 쪽을 감시하다가 나에기가 정보를 파는 것을 뒤늦게 발견한 경우도 있었다. 이런 점들이 겹쳐 결국 에노시마는 패배했고 죽음을 맞이했다.
마지막 죽음에 관해 얘기하자면 사실 에노시마가 그곳에서 죽을 이유는 없었다. 비록 살아있는 학생들이 나에기 아래 뭉치기는 했지만 모노쿠마는 아직 멀쩡히 작동했기에 무력에서는 에노시마가 우위에 있었다. 다만, 에노시마가 이렇게 처참한 패배를 맛본 것이 처음이고 애초에 에노시마가 바랬던 최고의 절망을 나에기가 안겨주었다는 점에서 그 기분을 느낀 채 죽고 싶었던 게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1편까지만 봤을 땐 말이다.
3. 에노시마라는 캐릭터는 솔직히 실망스럽다. 다만, 이 캐릭터가 실망스러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1편에서의 이유와 이 이후의 이유들이 솔직히 다르고 복잡하다. 그런 관계로 일단은 1편의 에노시마를 설명한 뒤, 그 이후의 에노시마를 설명하도록 하겠다. 먼저, 1편의 에노시마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바로 작명 실력이다. 어떻게 세계가 멸망한 대사건의 이름이 '인류사상 최대최악의 절망적 사건'인가? 너무 길고 유치해 보인다. 일단 앞으로의 글들에서는 그 사건을 인최최절로 부르겠다. 아무튼 인최최절이라는 사건의 이름은 너무나도 유치하고 없어 보인다. 에노시마는 살인게임의 흑막이다. 그런 인물이 세계가 멸망한 대사건을 인최최절 따위로 부르는 게 말이 되는가? 너무 없어 보이는 사건의 이름 때문에 세계멸망이라는 큰 재앙인 너무 비현실적으로 붕 뜨게 느껴지며 에노시마의 카리스마도 없어 보인다.
다른 창작물에서 세계 멸망, 또는 그에 준하는 사건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보자. '무한 츠쿠요미', '합일', '크라이시스', '서드 임팩트', '대전쟁' 등 솔직히 중2병스러운 이름도 있지만 그래도 인최최절보다는 낫다. 현실에서도 1차 세계대전을 '모든 전쟁을 끝낼 전쟁'이라고 부르기는 했어도 솔직히 인최최절은 너무하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조금 더 글자 수를 줄여 콤팩트하게 이름을 지었으면 에노시마의 위엄도 올랐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에노시마라는 흑막의 컨셉이다. 에노시마와 가장 유사해 보이는 캐릭터는 누가 봐도 조커다. 비록 혼돈과 절망이라는 추구점이 다르기는 해도 결국 그 사상을 추구하는 사상범, 그리고 맛탱이가 갔다는 점 등이 매우 비슷하다. 문제라면 기본적으로 조커라는 캐릭터는 배트맨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캐릭터라는 것이다. 조커의 가장 큰 의의는 질서의 화신 배트맨과 대립하는 혼돈의 화신이라는 점에서 나온다. 실제로 만화에서 배트맨이 사라진 세계에서 조커는 놀랍게도 정상인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몇 번 보인적이 있다. 배트맨이 없다면 조커도 범행을 저지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이를 잘 알기 때문에 크리스토퍼 놀란도 맷 리브스도 배트맨 영화의 첫 작품에서 조커를 등장시키지 않고 쿠키 영상에서 암시만 했던 것이다. 배트맨이 아직 완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커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에노시마도 마찬가지다. 에노시마라는 캐릭터는 결국 절망의 화신이므로 그녀가 진정으로 활약하려면 희망의 화신인 나에기가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1편에서 나에기는 희망의 화신이 아니라 희망의 화신으로 거듭나는 단계다. 나에기가 희망의 화신으로 일어서는 것은 6챕은 돼야 되는데 그렇기에 나에기와 에노시마의 대립 구도가 너무 짧게 나타난다. 그렇기에 에노시마가 갖고 있는 절망으로서의 지향점이 잘 안 살아나는 감이 있다.
물론 조커도 1편부터 등장한 예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팀 버튼의 배트맨에서는 1편부터 조커가 메인 빌런으로 나온다. 그러나 팀 버튼 배트맨의 조커는 배트맨의 부모님을 죽인 범인이다. 애초에 사상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감정으로도 엮인 관계다. 그게 중요하다. 에노시마도 단순한 절망 외에 개인적으로 나에기와 관련된 무언가가 있어야 했다. 뭐, 나에기의 실수로 부모가 죽었다거나, 하다 못해 나에기가 지우개를 빌리고 잊어먹었거나 하는 사소한 거라도 말이다. 만약, 그랬으면 지우개 때문에 살인게임을 벌이는 에노시마의 광기가 오히려 더 생생하게 드러났을 것이다.
실제로 후속작을 보면 나에기의 비중이 급감했음에도 불구하고 에노시마의 캐릭터성은 나아졌다. 희망과 절망의 이념 대립이 극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치,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가 엄청난 호평을 받은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1편에서 에노시마를 등장시키지 말거나 아니면 나에기와 조금 더 개인적인 무언가로 엮었다면 더 좋은 흑막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4. 후속작을 이야기하면 위에서 나온 에노시마의 문제점은 대부분 해결되었다. 먼저 인최최절이라는 절망적 작명 실력은 하도 들어서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희망을 상징하는 캐릭터들도 구축이 잘 돼서 절망으로서의 지향점이 잘 나타난다. 문제점이라면 이후에 추가된 설정들이다. 이 추가된 설정들이 도리어 에노시마라는 캐릭터와 시리즈의 주제를 망쳤다.
먼저 맨 처음에 썼던 에노시마의 동기는 사실 1편에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1편에서 에노시마는 오직 절망 때문에 이 일을 벌인 것으로 나온다. 심지어 에노시마가 세계를 혼자 멸망시켰다고도 언급되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에노시마가 무슨 일을 벌여 세계가 멸망했다고 추측만 할 수 있을 뿐, 심지어 세계는 혼자 망하고 에노시마는 그에 편승했다는 추론도 가능할 정도다. 그러나 후속작이나 미디어믹스에서 에노시마의 동기나 세계를 멸망시킨 과정이 상세히 드러나는 데 바로 이게 문제가 된다.
에노시마의 동기는 괜찮아 보인다. 그녀는 사실 초고교급 분석가로 모든 것을 한 번에 분석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알 수 있었기에 그녀는 삶이 질렸고 절망해 버렸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도 절망시키려 했다는 것이 그녀의 동기다. 솔직히 괜찮아 보인다. 이런 능력자가 현실에 존재하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설득력이 있고 납득이 가는 동기다. 문제라면 이것이 1편의 행적과 모순된다는 것이다.
애초에 1편의 에노시마는 모든 것을 아는 전지전능한 분석가와는 거리가 멀다. 그녀가 모든 것을 분석할 수 있다면 패드가 열에 약하다는 것도 몰랐거나 오오가미의 유서를 굳이 읽어주거나, 5번째 재판을 황급히 종료하는 추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1편의 에노시마라면 삶이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전지전능하고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는 에노시마가 나에기에게 어떻게 패배했는가라는 의문도 든다.
정상적이라면 그냥 샹크스가 팔 하나 잃은 것처럼 그런갑다하고 넘겼을 것이다. 그러나 샹크스와 달리 이를 설명하기 위해 너무 무리수가 들어갔다. 바로 나에기의 행운이다. 나에기의 행운은 간헐적으로 일어나 에노시마도 분석할 수 없고 결국 그 덕에 패배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다면 더욱더 심각한 모순이 생긴다. 애초에 이 시리즈의 주제가 '절망에 맞서는 희망'이고 희망으로 절망을 이길 수 있다는 것 아니었나? 근데 이렇게 되면 절망을 이기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운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는 시리즈의 주제를 전면으로 박살 내는 심각한 문제점이다.
에노시마가 세계를 멸망시킨 과정도 문제다. 에노시마가 세계를 멸망시킬 때, 그녀는 나에기의 1년 선배들인 77기를 자신처럼 절망으로 만들어 세계를 멸망시켰다고 언급된다. 이는 2편에서 언급되는 데 사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문제라면 이들을 어떻게 절망으로 만들었는지가 문제다. 애니메이션으로만 나온 3편에서 에노시마는 77기를 세뇌해서 이들을 절망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이 아는 그 세뇌, 정신 지배, 마인드 컨트롤이 맞다. 역시 얼척이 나가는 설정이다. 만약 세뇌로 절망을 만들 수 있으면 왜 1편에서는 세뇌를 사용 안 했는가? 바깥세상의 시선 때문에? 하지만 세뇌의 힘이 있다면 바깥 세계도 세뇌하면 되는데 그게 대순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설정들은 궁극적으로 에노시마라는 캐릭터를 무너뜨렸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후속작들에서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간단하다. 설명을 안 하는 것이다. 에노시마의 동기나 77기를 절망으로 만든 방법 따위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조커의 동기에 혼돈 말고 별게 있는가? 없다. 세뇌를 언급하지 않았다면 77기를 절망으로 만든 방법쯤은 사람들이 알아서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2편에서 77기 일행은 모두 절망에 빠질 만한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강박감은 에노시마에 무리한 설정을 붙여버렸고 결국 에노시마의 캐릭터를 완전히 망쳐버렸다. 위에 언급된 1편의 문제점이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된 것을 생각하면 더욱 아쉬움이 든다.
5. 이렇게 에노시마의 이야기를 모두 마쳤다. 솔직히 에노시마라는 캐릭터가 아예 가능성이 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1편의 에노시마는 무언가 문제가 있긴 했지만 후속작의 묘사에 따라 분명 소생이 가능한 캐릭터였다. 그리고 단간론파 1편은 분명히 성공한 게임이었다. 충분히, 에노시마를 데리고 가더라도 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제작진은 에노시마를 살리기 위해 무리한 설정을 덕지덕지 붙였다. 이는 시리즈의 최종장인 단간론파 3을 망치는 매우 큰 원인이 되었으며 시리즈의 쇠퇴를 낳았다. 개인적으로는 캐릭터 구축을 너무 급하게 하지 않고 조금만 더 느긋한 마음으로 세계관을 구축했다면 에노시마도 단간론파 시리즈도 조금 더 오래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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