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고등학생이 모여 범인을 잡는 게임 - (7)

삶은계-란 2023. 5. 11. 23:11

※ 이 글에는 단간론파 1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설명해라, 나에기!
- 토가미 뱌쿠야, 초고교급 상속자
확실히.. 모노쿠마의 말대로다... 이 게임은 우리끼리 밀어내고... 승자만이 살아남는 목숨을 걸 경쟁... 확실히... 그렇다... 그러므로... 나는 이 게임에서 하차하는 것으로 하겠다.
- 토가미 뱌쿠야, 초고교급 상속자
이성이란 열정의 노예일 수밖에 없다. 열정을 떠받쳐 주고 그것에 순응하는 것 이외에 다른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
- 데이비드 흄,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0. 게임은 언제 가장 재미있을까? 게임은 자기가 이기고 있을 때 가장 재미있다. 그 게임이 재미있는 명작이라도 자기가 지고 있으면 재미가 없고 그 게임이 졸작이어도 자신이 이기고 있으면 재미있는 법이다. 하지만 어떤 게임은 그 게임을 안 하는 것이 승리하는 유일한 방법인 경우가 있다.

 

1. 토가미 뱌쿠야는 세계 최고의 재벌 중 하나인 토가미 재벌의 핏줄을 타고 태어났다. 그러나 그가 단순히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도련님은 아니었다. 그는 토가미 재벌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다른 형제들과 치열한 경쟁을 했고 피나는 노력 끝에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형들을 모두 제치는 데 성공했다. 토가미는 그렇게 토가미 재벌의 유일한 후계자가 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토가미는 인간은 모두 기본적으로 이기적이고 자신만을 생각하면 살아간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앞날이 창창할 것만 같은 토가미에게도 살인게임이 다가왔다. 그러나 토가미는 다른 학생들과는 달랐다. 토가미는 이것 역시 일종의 게임이라 생각하고 다른 학생들을 적대하며 승리를 위한 행동을 취했다. 타인을 비웃고 집단의 연대를 방해하며 토가미는 계속해서 분탕질을 해왔다.

 

 그의 행동이 인상 깊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2 챕터다. 토가미는 오오와다의 범행을 본 뒤, 자신에게 위협되는 인간이 누구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일부러 사건 현장을 조작했다. 그리고 토가미의 생각대로 나에기가 그 조작을 간파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서 원래 토가미는 진범을 밝히고 유유히 용의 선상에서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토가미의 생각과는 달리 나에기와 키리기리는 토가미의 도움 없이도 범인을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이를 본 토가미는 저 둘이 가장 자신에게 위협적인 대상이라는 것을 파악했다.

 

 그 뒤로도 학급재판에서 토가미는 계속해서 나에기를 의식한 행동을 보였다. 그는 나에기가 추리를 틀리면 비웃어주려는 의도로 일부러 힌트를 흘렸지만 나에기는 그 힌트를 기반으로 척척 정답을 맞혀나갔다. 거기에 자신을 제외한 학생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원동력도 나에기였으니 토가미에게 나에기는 매우 위협스러운 적이었다. 그러던 중, 네 번째 사건이 발생하고 오오가미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오오가미가 내통자라는 사실이 드러났으므로 그녀의 죽음이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를 기회로 나에기를 완전히 찍어 누르려했다.

 

 사건은 간단해 보였다. 밀실로 위장된 곳에서 누군가가 오오가미를 죽였다. 그리고 사건을 조사한 결과, 현장을 조작한 것은 아사히나였다. 그렇다면 간단했다. 범인은 아사히나다. 그녀는 오오가미와 친한 척을 하면서 이를 기회로 삼아 오오가미를 죽였다. 이것이 진상이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진상이 아니었다. 사실, 오오가미는 자살했던 것이고 아사히나는 이를 이용해 자신을 범인으로 만들어 모두를 죽이려 했다. 그리고 이는 오오가미를 핍박했던 타인, 그리고 오오가미를 지키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심판이었다.

 

 하지만 토가미는 아사히나가 죽을 각오를 해서까지 그런 일을 벌일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고 추하게 나에기에게 반론을 제기했다. 그러나 최후에는 토가미도 패배를 인정하고 오오가미가 자살했음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오오가미의 유서를 읽은 뒤, 토가미는 모노쿠마의 살인게임에서 하차를 선언하고 다른 학생들과 협력하기로 결심했다. 그 뒤, 5~6 챕에서 진실을 찾기 위해 단독 행동을 하던 키리기리의 대신해 토가미가 일행의 리더 자리를 맡는다. 비록 토가미 특유의 기분 나쁜 말투는 바뀌지 않았지만 나름 뛰어난 능력으로 키리기리의 빈자리를 잘 메꾸었다. 

 

 그러나 최후의 학급재판에서 모노쿠마, 아니 에노시마에게 세계와 토가미 재벌이 망했다는 사실을 들은 토가미는 절망했다. 하지만 초고교급 희망으로 각성한 나에기의 도움으로 토가미는 절망을 극복했다. 토가미는 자신이 토가미 재벌을 재건할 것이라 다짐하며 일어섰다. 그리고 학급재판이 끝난 뒤, 토가미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학원을 탈출하였고 친구들에 대한 태도도 나아졌다, 뭐, 말투는 그대로이긴 하지만.

 

3. 토가미는 기본적으로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살아왔다. 후계자 경쟁에서 승리한 자는 후계자가 되어 부와 명성을 긁어모을 수 있지만 패배한다면 낙오자가 되어 평민으로 떨어진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금수저는 아니다. 토가미는 살아남는 데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왜곡된 전제를 얻었다. 하나. 모든 인간은 합리적으로 행동하려 한다. 둘. 모든 인간은 자신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한다. 셋. 다른 낙오자들보다는 자신이 더 뛰어나다. 결론적으로는 자신이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는 자뻑이다. 그러나 이 왜곡된 전제는 토가미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네 번째 사건의 피해자인 오오가미도, 사건을 조작한 아사히나도 모두 자신을 우선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오가미는 분열을 막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고 아사히나도 자신을 포함해 모두를 심판하기 위해 사건을 조작했다. 애초에 사람이 모두 합리적으로 자신만을 위해 판단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분노조절장애라, 묻지 마 살인 등을 설명할 수 없다. 결국 토가미는 자신의 자뻑을 위한 왜곡된 전제를 두고 있었고 이는 토가미를 파멸로 이끌 뻔한 것이다.

 

 하지만 토가미는 이 위기에서 무너지지 않았다. 보통 이런 재수 없는 캐릭터들은 한 번 위기에 처했을 때 그대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토가미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인간이 때로는 비합리적이고 이타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학생들과 협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토가미까지 하나가 되자, 주인공 일행은 모노쿠마를 위기로 몰았고 결국 모노쿠마를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 후속작들과 달리 5챕 이후, 주인공 일행에서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얼마나 주인공 일행이 똘똘 뭉쳤는지, 그리고 토가미가 거기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 알 수 있다. 살인게임을 통해 토가미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냉소적인 인간에서 타인을 생각하는 인간으로 성장했다.

 

3. 토가미는 창작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라이벌이다. 그리고 추리 게임의 라이벌답게 주인공인 나에기의 추리를 도우면서도 방해하는 그런 역할을 한다. 다만, 후속작들의 라이벌들은 창작물에서 볼 법한 과장된 액션을 취한다면 토가미는 재력을 제외하면 현실에서 볼 법한 캐릭터다. 그러므로 후속작의 라이벌들보다 더 신경을 긁는 그런 느낌이 있다. 하지만 토가미는 뛰어난 지력으로 나에기의 추리를 돕기도 하며 갱생한 뒤에는 입이 좀 험한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토가미는 단간론파 시리즈의 라이벌 캐릭터의 원형이 되어 후속작에서 더 뛰어난 라이벌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런 의미에서 토가미 뱌쿠야는 본편은 물론이고 후속작까지 좋은 영향을 끼친 잘 만든 캐릭터임이 틀림없다. 이를 마지막으로 이번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