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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이 모여 범인을 잡는 게임 - (完)

삶은계-란 2023. 5. 15. 22:21

※ 이 글에는 단간론파 1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건 틀렸어!
- 나에기 마코토, 초고교급 행운
희망은... 앞으로 나아가는 거야!
- 나에기 마코토, 초고교급 희망
희망은 좋은 거예요. 아마 가장 좋은 것이겠죠. 그리고 좋은 건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 앤디 듀프레인, 미국의 탈옥수, 영화 <쇼생크 탈출> 中
희망은 영원한 기쁨이다. 인간이 갖고 있는 토지와 같은 것이다. 해마다 수입이 올라가고, 결코 없어지지 않는 확실한 재산이다.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영국의 소설가

0. 당신은 한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말 그대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공부도 평범하게 하고 운동도 평범하게 한다. 당신의 삶과 특별함은 멀어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키보가미네 학원에 입학할 수 있는 단 한 명을 추첨한다고 한다. 당신도 다른 친구들처럼 한 번 추첨에 응모해 봤다. 하지만 이런 것이 당첨될 리가 없다. 평소에 경품 같은 것도 당첨된 적이 없었다. 당신의 평범한 삶은 계속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당신은 추첨에 당첨되어 초고교급 행운으로 키보가미네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은 행운인가, 아니면 불운인가, 아니면 운명인가?

 

1. 나에기는 키보가미네에 입학은커녕 살인게임에 휘말렸다. 자신 말고는 다 뛰어난(?)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 처음에는 헤맸지만 다행히 중학교 때 아는 사이였던 마이조노와 친해지는 데 성공했다, 어쩌면 친구 이상의 관계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모노쿠마의 동기를 받은 마이조노는 살인을 하기로 결심했고 그녀는 나에기를 이용한 트릭을 구상했다. 하지만 그 트릭은 하필이면 마이조노 때문에 나에기가 방에 놓은 모조검으로 인해 실패했다. 마이조노는 나에기의 방에서 죽었고 나에기는 순식간에 유력 용의자가 되었다. 다행히 범인이 나에기의 방을 청소한 덕분에 용의자에서는 벗어나고 샤워실의 문이 잘 안 열린다는 불운 덕분에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 사건의 진상을 안 나에기는 충격받았지만 죽은 둘을 대신해서라도 꼭 모노쿠마를 타도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버틸 수 있었다.

 

 그 뒤, 나에기는 키리기리와 협력하며 모노쿠마의 정체를 밝히려 노력했다. 비록 키리기리가 나에기를 일방적으로 이용하는 모양새이긴 했지만 어쨌든 나에기는 키리기리와도 어느 정도 친해지는 데 성공했다. 물론, 나에기는 키리기리뿐만 아니라 토가미와 후카와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과 금방 친해졌다. 나에기는 그 친분을 바탕으로 이후의 살인을 더 막으려 했다. 하지만 모노쿠마의 동기는 나에기의 생각을 뛰어넘은 단계였고 잇따라서 살인이 발생했다. 두 번째 사건에서 사건의 진상을 어느 정도 밝히며 토가미의 눈에 띄는 수난이 있기는 했지만 나에기는 키리기리와 토가미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데 성공했다.

 

 그러던 중 오오가미의 죽음과 유서를 계기로 토가미를 포함한 모든 학생이 하나로 뭉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노쿠마를 바로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모노쿠마는 후지사키가 죽기 전 만들었던 AI이자 학생들이 반격할 수 있는 수단이었던 얼터 에고를 제거했고 그다음으로 나에기까지 물리적으로 죽이려 했다. 그러나 키리기리가 모르는 사이에 흑막을 막아 이는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모노쿠마는 이쿠사바의 시체를 조작해 키리기리나 나에기를 범인으로 만들려 했다. 

 

 키리기리는 자신은 자신의 열쇠를 토가미에게 맡겨 물리적으로 살인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용의 선상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그건 진실이 아니었다. 키리기리는 마스터키를 갖고 있었고 나에기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키리기리가 사람을 죽였을 리가 없다고 확신한 나에기는 마스터키의 존재를 말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나에기가 범인으로 몰렸다. 그리고 그것을 노렸다는 듯이 모노쿠마는 재판을 끝냈고 키리기리가 손 쓸 틈도 없이 나에기가 범인으로 밝혀졌다. 이제 나에기에게 남은 것은 죽음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삭제된 줄 알았던 얼터 에고가 죽기 직전의 나에기를 구하는 데 성공했다. 나에기가 살아있다는 것을 안 키리기리가 바로 나에기를 구하러 왔고 나에기와 키리기리는 둘 다 이쿠사바를 죽이지 않았음을, 그리고 이쿠사바를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확신했다.

 

 나에기는 모노쿠마에게 최후의 재판을 제안했고 모노쿠마는 그 재판에 응했다. 그리고 나에기는 지금까지 수집한 증거를 토대로 모노쿠마의 정체가 처음에 죽었다고 생각했던 에노시마 준코이며 그녀가 이쿠사바를 죽였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에노시마는 세계가 처참히 망했음을 공개하며 학원에서 탈출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조롱했다. 그리고 모두가 그 말을 듣고 절망했다. 그들이 지금까지 싸워왔던 것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제 돌아갈 곳은 남아있지 않으며 눈앞에 보이는 것은 암흑만이 가득한 미지의 세계였다. 그 사실을 안 모두는 지금까지 목표로 했던 탈출을 포기하려 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곤 말이다.

 

 나에기는 절망을 부정했다. 세상이 멸망했더라도, 돌아갈 곳이 남아있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죽은 사람을 위해서라도, 지금까지 싸워왔던 시간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절망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에노시마는 그를 비웃으며 모두를 설득시킬 수 있으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기는 정말로 모두를 설득시켰다. 점 대신에 자신의 직감을 믿겠다고 다짐한 하가쿠레, 오오가미의 의지를 잇겠다고 결심한 아사히나, 토가미 재벌을 부흥시키겠다고 결심한 토가미, 그런 토가미를 따르기로 한 후카와, 그리고 나에기를 초고교급 행운이 아닌, 초고교급 희망으로 인정한 키리기리까지. 에노시마는 나에기에게 경악하면서도 자신의 패배라는 최고의 절망을 맛보며 패배를 인정했다. 그리고 에노시마는 스스로 자신을 처형했다. 나에기는 에노시마의 죽음을 막으려 했으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얼마 뒤, 나에기와 친구들은 학원 정문 앞에 섰다. 그 앞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나에기는 앞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분명 그 앞에 무엇이 있든, 그에게는 희망이 함께 할 테니까.

 

2. 나에기는 초고교급으로 키보가미네에 입성하긴 했지만 사실 초고교급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일단 행운이라는 능력 자체가 애매모호하게 묘사되며 나에기가 행운을 맛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나에기의 진정한 능력은 행운에 있지 않았다. 다른 초고교급 학생들은 초고교급이라는 뛰어난 능력을 얻은 대신 어딘가가 맛이 간 경우가 많았다. 좋게 말하면 괴짜지만 나쁘게 말하면 미친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나 나에기는 특출 나게 뛰어난 무언가가 없는 대신, 특출 나게 뒤쳐진 무언가가 있지도 않았다. 이런 무난함이 특출 난 약점이 있던 다른 학생들과 차별화되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요인이 되었다.

 

 물론 나에기만의 특출 난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기이할 정도로 긍정적인 성격과 강한 멘탈이다. 작중에서 나에기는 마이조노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캐릭터에게 뒤통수를 맞는다. 하지만 나에기는 이를 넓은 마음으로 용서하며 오히려 그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이는 마치 삼국지연의의 유비와도 비슷하다. 삼국지연의의 유비도 무언가 특출 난 능력은 부족하나 특유의 인덕으로 관우, 장비, 제갈량 등의 인재를 모을 수 있었고 그 결과 조조도 생전에 오르지 못한 황제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관우가 죽자 바로 멘탈이 터져 이릉에 꼬라박았다가 망한 유비와 달리 나에기는 매우 튼튼한 멘탈을 갖고 있었고 어떤 상황이 닥치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실제로 다른 학생들이 학급재판에서 어리바리할 때, 나에기가 적극적으로 추리해 참가했던 것은 이 능력이 한 몫했다. 그랬기에 나에기는 끝까지 이성을 유지하며 유비와 달리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다.

 

3. 나에기라는 캐릭터는 사실 플레이어의 아바타에 가까웠다. 너무나도 평범함에 가까운 캐릭터성이나 조금 더 개성적인 후속작의 주인공들과 비교하면 나에기의 아바타성이 더욱 드러난다. 나에기가 이렇게 설계된 원인은 그가 게임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게임의 주인공이 몰개성적일수록 플레이어와 동일시되기 쉽고 플레이어가 몰입하기도 쉽다. 그러므로 초중반부의 나에기는 몰개성적으로 만들어져 플레이어의 이입을 쉽게 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반전되는 것은 후반부다. 후반부에서 나에기 특유의 관대함이 일반인들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커진다. 이런 모습을 보이며 나에기는 단순한 플레이어의 아바타에서 독립된 캐릭터가 되어 플레이어에게 큰 임팩트를 주었다. 물론, 나에기의 개성이 강해지며 플레이어의 몰입감이 어느 정도 깨진다는 단점도 있다. 특히, 인최최절이라는 말도 안 되는 사건은 플레이어의 몰입감을 분쇄시키는 데는 충분했다. 그러나 넓게 봤을 때, 나에기가 단순한 아바타에서 초고교급 희망으로 성장하는 플롯 자체는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이 덕에 후속작에서는 주인공 자리에서 추방당했지만 매우 적은 비중으로도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나에기라는 캐릭터는 단일 작품의 주인공으로도, 시리즈의 첫 주인공으로도 잘 설계된 캐릭터이다.

 

4. 이렇게 단간론파 -희망의 학원과 절망의 고교생-의 관한 글을 모두 적었다. 사실 안 적은 캐릭터가 있긴 하지만 하가쿠레 따위의 캐릭터에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싶지는 않았다. 뭐, 게임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을 말하자면 솔직히 처음 했을 때는 후반부의 임팩트가 안 좋은 의미로 강력해서 별로였지만 지금 다시 돌아보니 그래도 괜찮은 게임이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특히, 추리 게임의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이 작품을 고평가 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이 작품의 후반부에 여러 결점들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런 결점들이 후속작들에서 안 좋게 작용해 시리즈가 오래가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긴 하다. (제작진이 단체 퇴사한 시점에서 후속작이 과연 나올 수 있을지, 나온다면 그게 사람들이 아는 단간론파와 같을지는 미지수다.) 그래도 추리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록 추리 게임이라는 장르가 천연기념물 같아 추리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 한 번쯤은 해봤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