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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 흐릿한 추억 속에서 진실을 찾으며 - (1)

삶은계-란 2023. 5. 22. 10:49

0. 1996년 최초의 포켓몬스터 게임, 포켓몬스터 적·녹이 나왔다. 그리고 2023년 현재 포켓몬스터는 매우 잘 나가고 있다. 작년에 나온 포켓몬스터 스칼렛·바이올렛은 3일 만에 천만 장이 팔리고 1달 반 만에 이천만 장이 팔렸다. 작년에 나온 포켓몬빵은 아직도 성황리에 잘 나가고 있다. 그러나 현재 나오고 있는 포켓몬 게임에 대한 민심은 별로 좋지 않다. 특히 포켓몬스터 브릴리언트 다이아몬드·샤이닝 펄과 포켓몬스터 스칼렛·바이올렛은 판매량을 떠나 엄청난 악평을 받았다. 그리고 포켓몬 게임이 이런 식으로 나올수록 과거 포켓몬의 향수, 특히 포켓몬 게임의 전성기였던 4~5세대(포켓몬스터 금·은은 에뮬레이터 위주였으므로 제외했다.)가 나았다는 여론은 더욱 커졌다. 물론, 지금의 포켓몬 게임 특히 브다샤펄과 스바가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실망스럽다는 점은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과연 그 추억은 진실일까? 과연 그때의 포켓몬은 지금의 포켓몬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명작이었을까? 이번 글들을 통해 DP부터 BW2까지의 게임을 간략히 살펴보며 과연 이들이 진정으로 명작이었는지를 알아보겠다.

 

1. 먼저 포켓몬스터 DP 디아루가·펄기아다. 그리고 포켓몬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DP가 있었고 그들에게 고향은 신오지방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TV로 지우, 빛나, 웅이가 여행하는 것을 보며 구석에서 닌텐도를 잡고 DP를 했던 추억이 어린 시절에 포켓몬스터 DP를 했던 사람이라면 모두 있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DP는 최고의 명작일 것이고 그 사람들의 추억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DP는 냉정하게 말하면 명작보다는 졸작,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골소실보다는 스칼렛·바이올렛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위에서 DP를 졸작이라고 좀 강하게 말했긴 했지만 사실 DP가 장점이 없는 건 전혀 아니다. 와이파이 통신의 도입으로 최초로 전 세계 사람들과 포켓몬을 즐길 수 있게 되었고 배틀 측면에서는 기술의 물리/특수 분화가 이루어졌다. 이 물리/특수 분화의 도입으로 배틀의 환경은 완전히 뒤짚혔고 이후 게임에서 이 물리/특수 분화보다 더 큰 영향을 준 격변은 없었다. 또, 포켓몬스터 DP의 OST는 분명 뛰어난 편이며 팽도리나 루카리오 등의 포켓몬 디자인도 좋았고 신오지방이란 새로운 지방 역시 잘 디자인했다. 

 

 그러나 DP의 단점은 DP의 장점보다 훨씬 컸다. 일단 가장 문제점은 바로 신오도감 그 자체다. 일단 신오도감 포켓몬의 타입 배분은 너무 엉성하다. 사실 신오도감에 나오는 수는 150마리로 그 때 기준으로 엄청 많은 것도 아니지만 엄청 적은 것도 아니었다. 후대의 BW는 비슷한 숫자의 도감으로도 분포를 나름 잘 맞췄다. 그러나 신오도감은 가관이다. 일단 불꽃 타입 포켓몬은 최종진화 기준 초염몽과 날쌩마 단 두 종이다. 풀, 물 타입과 함께 스타팅 포켓몬의 타입을 차지하는 불꽃 타입 포켓몬이 단 두 종이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심지어 불꽃 타입 사천왕이라는 대엽은 불꽃 타입에 약점을 찔리는 동탁군을 쓰고 자빠졌다. 그것도 부유 특성으로!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이는 전기 타입도 마찬가지다. DP의 신오도감에 포함되어 있는 전기 타입 포켓몬은 최종진화 기준 렌트라, 라이츄, 파치리스 단 3종이며 전기 타입 체육관 관장 전진은 전기 타입에 약점을 찔리는 대포무노를 당당히 사용한다. 대엽과 전진은 설정상 친구 사인데 참 친구끼리 잘도 논다.

 

 물론 신오도감의 문제점은 타입 배분 뿐만이 아니다. DP의 신오도감은 4세대에 처음 등장하는 포켓몬들조차 누락되어 있다. 에레키블, 마그마번, 토게키스, 엘레이드, 글라이온 전부 안 나온다. 이들은 엔딩을 보기 전에는 얼굴조차 보지 못한다. 즉, 처음에 포켓몬스터 DP를 시작한 꼬꼬마 뉴비들은 이런 포켓몬의 존재 여부조차 모르고 넘어갈 것이다. 이들은 DP에서 처음 추가된 포켓몬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도감을 만들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신오도감의 여파를 맞아 네임드들의 포켓몬 라인업도 엉망이 되었다. 뭐, 충호의 에이스가 드래피온인건 누가 봐도 벌레 타입처럼 생긴 독/악 타입이므로 충분히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얼음 타입의 약점을 찌르는 요가램을 쓰는 무청이나 위에서도 나왔던 전진, 대엽 듀오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아니 대엽은 자기 라인업에 불꽃 타입보다 다른 타입이 훨씬 많은 괴상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점은 빈말로도 포켓몬스터 DP를 명작이라고 말할 수 없게 한다.

 

 물론 DP의 문제점이 그 뿐만 있는 것은 아니다. DP의 또 다른 문제점은 심각한 인터페이스다. 일단 포켓치의 버튼이 단 하나다. 포켓치는 닌텐도 DS의 하단 화면을 이용한 시스템으로 하단 화면에 게임 중 도움이 되는 애플리케이션이 있는 시계다. 그러나 애플리케이션을 이동하는 버튼이 단 하나다. 즉, 앞뒤로 넘어가면서 애플리케이션을 볼 수 없다. 만약 TV 리모컨에 채널 이동 버튼이 단 하나라면 얼마나 불편할까? 포켓치는 실제로 이동 버튼이 단 하나다. 이는 너무나도 불편하다.

 

 그리고 DP는 느리다. 모든 게 느리다. 파도타기 속도도, 저장 속도도, 텍스트가 나오는 속도도, HP가 깎이는 속도도 전부 느리다. 혹시 챔피언로드에서 해피너스를 상대해 본 적이 있는가? 필자의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그 해피너스의 HP가 전부 줄어드는 데 한 1분 정도가 걸린 것 같다. 또, 바다를 건널 일은 꽤 있는데 그동안 파도타기 속도는 걷는 속도와 똑같다, 걷는 속도와. 다른 포켓몬 게임에서 파도타기 속도는 최소 뛰는 속도와는 비슷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느리다. 전투는 텍스트가 나오는 속도가 느려서 너무 늘어지고 심지어 게임을 저장하는 속도도 느리다. 모든 것이 느린 슬로시티를 구현한 하나의 예술과도 같다. 

 

 버그. 포켓몬스터 DP에서는 누구나 방법을 알면 쉽게 환상의 포켓몬을 얻을 수 있었다. 아, 쉽게라는 말은 일본인에 한정된다. 왜냐하면 케이크를 먹듯이 환상의 포켓몬을 얻는 버그는 해외판에서 수정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조금 어렵게 환상의 포켓몬을 얻는 버그는 한국인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물론 버그야 포켓몬의 친구기도 하고 최신작인 스칼렛·바이올렛에서도 버그가 나오는 게 현실이지만 그래도 이런 치명적인 버그가 게임의 평가를 낮춘다는 점은 바뀌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스토리. 사실 개인적으로 스토리가 뛰어난 포켓몬 게임은 몇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DP의 스토리가 구리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태홍은 전형적인 신세계의 신 워너비이며 갤럭시단은 중2병 집단이고 전설의 포켓몬을 두고 하는 결전은 흐지부지 끝나고 난천은 가끔 보는 것 말고는 크게 하는 게 없다. 솔직히 난천도 리그전에서의 강력함이 아니었다면 카르네 신세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뭐 이런 저런 이유들 때문에 DP는 구시대의 스칼렛·바이올렛이라 생각한다.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단점, 특히 기술적인 단점들이 너무 심각해 장점을 심하게 덮어버렸다. 과거에 DP를 재미있게 했던 이유는 DP가 명작이라 그런 게 아니라 그때는 어떤 게임도 재미있게 할 수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마치 지금의 어린 학생들이 스칼렛·바이올렛을 재미있게 즐기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스칼렛·바이올렛도 15년 뒤에는 추억의 명작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DP가 4세대의 전부는 아니다.

 

2. 분명 포켓몬스터 DP 디아루가·펄기아는 명작이 아니었다. 그러나 DP가 곧 4세대는 아니다. DP는 4세대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작품이지만 4세대는 DP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다. 4세대에는 DP의 확장팩, 포켓몬스터 PT 기라티나도 있다. PT는 DP의 확장팩으로 배경은 신오지방으로 똑같지만 메인 전설이 기라티나로 바뀌었고 그 외 여러 추가 요소들이 포함된 확장팩이다. 그렇다면 PT는 DP와 달랐을까?

 

 달랐다. DP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이라면 바로 기술적 문제였다. 그리고 PT는 이 기술적 문제를 거의 극복했다. 포켓치에는 버튼이 두 개가 있고 파도타기는 이제 빨라졌다. HP가 줄어드는 속도도, 텍스트가 나오는 속도도 빨라졌다. 물론 저장 속도는 그대로긴 하다. 그러나 DP의 답답한 슬로시티와 비교하면 이 정도 속도면 충분히 빠르다. 기존의 3G가 DP라면 LTE가 PT라 비유할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신오도감도 개선되었다. 기존의 150종 신오도감에 60종의 포켓몬이 더 추가되었고 그 중에는 에레키블, 마그마번, 토게키스 등 4세대에 새로 추가되었으나 DP에는 반영되지 않은 포켓몬과 헬가, 부스터, 쥬피썬더, 자포코일 등 기존에 부족했던 타입들을 보충할 포켓몬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DP에서는 형편없던 라인업도 개선되었다. 특히 웃음벨이었던 전진, 대엽 듀오의 라인업은 각각 전기 타입, 불꽃 타입 네임드에 어울리는 라인업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스토리 역시 DP에 비하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태홍은 단순히 신세계의 신 워너비가 아닌 나름 이유가 있는 신세계의 신 워너비로 바뀌었고 갤럭시단도 단순한 중2병이 아니라 태홍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광신도로 묘사가 바뀌었다. 갤럭시단과의 최종 결전도 기라티나의 난입으로 조금 더 긴장감 있게 바뀌었다. 특히, 깨어진 세계는 2023년 현재에도 포켓몬에서 볼 수 없는 참신한 스타일의 맵이었다. 난천도 조금 더 스토리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면서 명언도 남기고 활약상도 보여줬다. 이 정도면 포켓몬스터 내에서는 상위권의 스토리다.

 

 마지막으로 PT는 컨텐츠 추가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기존 콘테스트를 개선한 것은 물론이고 배틀프런티어, 승부장소 등의 콘텐츠도 적절히 추가했다. 특히, 배틀프런티어는 지금까지도 포덕들이 제발 좀 다시 나왔으면 하는 콘텐츠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결국 4세대를 완성한 것은 PT였다. DP는 4세대의 틀을 잘 세웠지만 디테일이 매우 부족했다. 마치 스칼렛·바이올렛처럼 말이다. 그러나 PT는 그 부족했던 디테일을 너무나도 잘 채웠다. 그러므로 PT는 단순히 추억 속의 명작이 아니라 진짜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안타까운 점이라면 확장팩 장사의 특성상 PT는 분명 DP보다 덜 팔렸고 브다샤펄에서도 PT의 개선점은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약 PT의 개선점이 브다샤펄에 조금 더 확실하게 반영되었다면 브다샤펄이 지금처럼 욕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브다샤펄이 어떻든 PT는 명작이다. 그리고 그건 시간이 지나더라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