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4세대를 완성한 포켓몬스터 PT 기라티나는 분명 명작이었다. 그러나 4세대는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3세대의 파이어레드·리프그린 이후 구세대 작품의 리메이크는 연례행사가 되었고 그다음 대상은 그 금은이었다. 일본이나 해외는 물론이요 한국에서도 불멸의 명작이라 평가받는 그 포켓몬스터 금은의 리메이크는 당연히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금은의 리메이크였던 하트골드·소울실버는 그 마음을 배신하지 않았다. 하골소실은 너무나도 뛰어난 작품이었고 포켓몬 팬들은 하골소실을 포켓몬 역사상 최고의 명작이라 칭송했다.
이렇게 말하고 넘어가는 것이 모두가 만족할 결론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글에서는 하골소실의 거품을 살짝 걷어내려 한다. 개인적으로는 하골소실은 포켓몬 역사상 최고의 명작이 아니라 생각한다. 물론 그 말이 하골소실이 졸작이라든가, 평작이라든가라는 주장은 아니다. 하골소실은 물론 명작이지만 최고의 작품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는 마치 호날두가 뛰어난 축구 선수일지언정 GOAT는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다만, 하골소실은 노쇼를 하지도 않았고, 아이를 패지도 않았으며, 이적을 시켜달라고 생떼를 부린 적도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하골소실은 적어도 호날두보다는 훨씬 나은 게임이다. 그걸 기억하며 하골소실의 부족한 점을 살펴보자.
하골소실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그중 가장 핵심은 바로 2개의 지방이다. 포켓몬 역사상 2개의 지방을 탐험할 수 있는 게임은 금은과 하골소실 밖에 없다. 집 뒤에 있던 수로를 건너면 바로 관동지방에 도착하는 그 짜릿함은 다른 어떤 게임에서도 경험하지 못할 짜릿함이고 이를 부정할 순 없다. 그러나 금은의 관동지방은 분명 아쉬운 점이 많았다. 당시 용량 문제로 인해 상록숲, 블루시티동굴, 홍련섬, 실프주식회사, 포켓몬타워, 사파리존 등 구현되지 못한 곳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이건 용량 문제는 아니지만 레벨 디자인도 좀 많이 허술했다. 굳이 원작 재현을 위해 태초마을의 야생 포켓몬을 레벨 2로 설정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런 디테일이 금은에는 부족했다.
그리고 하골소실도 마찬가지다. 비록 하골소실에서 일부 관동지방의 던전들은 부활하는 데 성공했다. 상록숲이나 블루시티동굴은 원작처럼 부활하는 데 성공했고 사파리존은 위치가 다른 곳으로 이동했긴 했지만 얼추 살아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원래 사파리존이 있던 위치에는 팔파크가 있으니 이 정도면 나름 구현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홍련섬이나 포켓몬타워, 실프주식회사는 끝내 살아나지 못했다. 뭐, 용량 때문이든 간에 홍련섬이나 포켓몬타워는 각각 망하거나 라디오타워로 대체된 것으로 금은을 그대로 구현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프주식회사나 라디오타워 내부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아쉽다.
그러나 더 아쉬운 것은 바로 전체적인 레벨 디자인이다. 사실 금은의 레벨 디자인도 솔직히 좋은 편은 아니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태초마을의 2레벨 구구를 예로 들었지만 사실 금은의 레벨 디자인은 한두 가지가 문제가 아니다. 지나치게 로어에 신경을 써 레드를 너무 강하게 만든 것까지는 뭐 임팩트를 위해 그렇다 치더라도 관동지방의 체육관 관장을 로어에 맞추겠다고 목호보다 레벨을 낮게 한 건 솔직히 너무 했다. 두 개의 지방을 돌아야 돼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성도지방의 포켓몬 레벨은 너무 낮고 그렇다고 관동지방 레벨을 잘 신경 써서 만든 것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레벨 디자인이다. 극단적으로 관동지방에서 새 포켓몬을 키우고 싶다면 짜잔, 적녹과 똑같은 레벨인 야생 포켓몬 상대로 쌩노가다를 하거나 아니면 성도지방 챔피언로드로 돌아가 노가다를 해야 한다. 뭐 그린까지 깨면 은빛산에서 노가다를 할 수 있다지만 솔직히 그냥 관동지방 야생 포켓몬 분포를 좀 바꿔줘도 괜찮지 않았을까? 설정상 금은은 적녹의 3년 뒤 시간인데 3년 간 포켓몬 분포가 바뀌었다고 치고 했으면 조금 더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비판은 하골소실에도 적용된다. 유일하게 개선된 점이라면 관동지방 체육관 관장의 레벨이 전체적으로 올라갔다는 점 밖에 없다. 나머지는 금은과 똑같다. 너무 레벨이 낮은 성도지방의 포켓몬, 파레리그와 그대로인 관동지방의 야생 포켓몬 전부 똑같다. 심지어 레드는 레벨이 더 올라가서 상대를 하려면 노가다를 더 해야 된다. 그나마 체육관 관장 재대결 콘텐츠가 추가되긴 했는데 그것도 조건이 까다로워서 사실상 노가다용으로는 부적합하다. 솔직히 이런 금은 더 나아가 2세대의 단점까지 답습했어야 했을까? 이런 문제점은 RPG라는 장르의 관점에서 하골소실을 저평가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요소다.
마지막으로 스토리 이야기를 하자면 하골소실의 스토리는 엄청 좋은 편은 아니다. 다만, 포켓몬스터의 스토리가 5세대 전까지는 딱히 혁신적인 무언가 없이 전형적인 모험 이야기이도 하고 그래서 엄청 좋은 편은 아닐지언정, 사람들의 눈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구리지도 않다. 그리고 이건 사이드 스토리지만 스이쿤 스토커로도 불리는 수호의 이야기는 나름 감동적이었다. 일생을 바쳐 스이쿤을 쫓던 수호가 마지막에 주인공을 인정하며 스이쿤을 포기할 때의 모습은... 솔직히 마음 한편에서는 좀 슬펐다.
뭐, 위에서는 이렇게 단점을 많이 말했지만 그렇다고 하골소실이 졸작이라는 건 아니다. 하골소실은 분명 명작이 맞다. 두 개의 지방을 모험하는 컨셉, 포켓몬과 함께 걷기, 포켓슬론과 배틀프런티어 등 깊이 있는 컨텐츠 등의 장점은 레벨 디자인이 구리다는 심각한 단점을 갖고 있는 이 게임을 명작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2퍼센트 아쉬웠던 디테일과 매우 심각하게 구린 레벨 디자인 때문에, 필자는 이 게임을 역사상 최고의 포켓몬 게임이라고는 차마 말하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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