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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 흐릿한 추억 속에서 진실을 찾으며 - (4)

삶은계-란 2023. 5. 25. 19:57

1. 블랙·화이트가 발매된 이후, 사람들이 기대했던 다음 작품은 바로 그레이였다. 포켓몬의 전통이라면 세대의 첫 작품이 나온 뒤, 그 작품의 확장팩이 나온다는 거였는데 3세대 이후, 그 작품의 메인 전설의 포켓몬은 바로 그 세대에서 첫 나온 3번째 초전설이었다. 에메랄드에서 레쿠쟈가 그랬고, PT에서 기라티나가 그랬다. 그리고 블화에서 그 후보는 큐레무였다. 설정은 뭔가 있어 보이지만, 레시라무와 제크로무에는 못 미치는 성능, 그리고 검정과 하양의 정 가운데에 있는 회색이라는 색이 이 추측을 더욱 신빙성 있게 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예측은 틀렸다, 좋은 방향으로.

 

 게임 프리크가 발매한 것은 그레이라는 확장팩이 아니라 블랙·화이트의 후속작, 블랙·화이트 2였다. 이는 포켓몬 역사상 같은 세대에서 나온 최초, 그리고 마지막 후속작이다. 즉, 블랙·화이트 2는 보통 에메랄드나 PT, 후대의 울썬문 등과 비교되지만 이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작품이다. 이 셋은 확장팩이지만 블화 2는 엄연한 후속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은 이 차이를 인식하지 못했고 그 결과 블화 2의 판매량은 고작 800만 장으로 확장팩을 제외한 작품 중에서는 제일 덜 팔렸다. 800만 장이 다른 작품으로 치면 대박이었겠지만 포켓몬이었기에 아쉬운 판매량이었다. 하지만 판매량이 전부는 아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800만이라는 판매량 안에 담겨 있는 블화 2의 진실에 대해 알아보겠다.

 

2. 일단 블화 2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라면 역시 콘텐츠다. 블화 2는 지금까지 나온 게임 중 하골소실과 함께, 어떤 측면에서는 하골소실보다도 더 풍부한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대표로 몇 개 예를 들자면, 전작에도 있던 배틀 서브웨이, 역대 네임드 트레이너와 대결할 수 있는 포켓몬 월드 토너먼트, 포켓몬과 함께 영화를 찍을 수 있는 포켓우드, 나만의 상점가를 꾸밀 수 있는 조인애비뉴, 또 다른 챌린지 콘텐츠인 하나의 난관, 그리고 이 모든 콘텐츠를 합친 메달랠리까지 정말 다양하고 독특한 콘텐츠가 많이 추가되었다. 

 

 또, 블화 2는 블화와는 다른 새로운 하나지방을 보여줬다. 여러 마을과 도시가 블화 2에서 새롭게 추가되었고 기존의 도시도 많이 바뀌었다. 특히, 블화 2에서도 유지된 체육관의 퍼즐은 하나같이 새롭게 바뀌었다. 그리고 블화 2에서는 기존의 포켓몬들도 메인 스토리 중 볼 수 있도록 바꿔 포켓몬 측면에서도 새로운 하나지방을 만들었다. 그 덕뿐인지, 블화와 비교하면 블화 2의 네임드들이 조금 더 다양하고 다채로운 라인업을 보여준다. 그리고 스토리 쪽으로 들어가 보면 블화 2는 충실하게 블화를 계승했다. N이 사라진 뒤, N의 이상을 따르는 분파와 게치스의 야망을 따르는 분파로 갈라진 플라즈마단. 포켓몬의 해방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 블화의 사건 이후 바뀐 하나지방 등을 잘 보여줬고 플라즈마단에 의해 꽁꽁 얼려진 도시나 최초로 공개된 포켓몬의 합체는 분명 충격적이었다.

 

3. 그러나 블화 2에도 단점은 있다. 일단, 전편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내용 면에서 블화 2는 블화를 충실히 계승했지만 분위기 면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블화 2의 스토리는 전형적인 포켓몬 스토리로 회귀했으며 이는 블화 특유의 분위기와 스토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물론, 블화 2에도 위에서 말했던 포켓몬 합체 같은 볼거리는 충분히 있다. 하지만 이는 에메랄드에서의 그란돈 vs 가이오가, PT에서의 깨어진 세계 등의 볼거리로도 볼 수 있는 종류의 볼거리다. 블화 2는 후속작답지 않게 블화만의 분위기가 부족했다.

 

 또, 블화 2는 캐릭터의 사용도 아쉬웠다. 전작인 블화는 단순한 배지 셔틀이었던 체육관 관장을 살아있는 캐릭터로 만들어 스토리에 개입시켰고 이는 엄청난 호평을 불러왔다. 그러나 블화 2에서 체육관 관장들은 다시 기존의 배지 셔틀로 회귀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물론, 블화의 유산이 사라진 건 아니라서 블화 2의 체육관 관장들도 어느 정도 스토리에 개입하긴 하지만 그 정도가 분명 블화보다는 미미하다. 그리고 블화 2에서 챔피언이 된 아이리스 역시 기존의 챔피언이었던 노간주나 그를 이긴 N보다 비중이나 임팩트가 약했다. 가장 아쉬운 점이라면 전작 주인공이 출연하지 않는 것이다. 금은에서 레드의 임팩트를 감안하면 전작 주인공의 미출연은 너무나도 아쉽다. 이런 캐릭터 활용은 분명 전작 블화와 비교하면 퇴보했다. 

 

 이제 스토리 외적인 이야기를 말하자면 바로 난이도 설정 그 자체다. 일반적인 게임이라면 보통 난이도 설정 정도는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설정하고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부 어려운 게임 같은 경우, 가장 어려운 난이도는 2회차 시스템으로 넣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블화 2는 다르다. 블화 2에서 난이도 설정을 해금하려면 엔딩을 본 뒤, 하나링크라는 시스템을 해금해야 한다. 그렇다, 난이도 설정을 엔딩을 본 뒤에야 가능하다. 더 놀라운 점이라면 이 엔딩 뒤에 얻는 난이도 설정도 더블팩으로 나뉘어 있다. 블랙 2는 더 게임이 어려워지는 챌린지 모드를, 화이트 2는 더 게임이 쉬워지는 어시스트 모드만을 해금할 수 있다. 이때의 게임 프리크는 난이도도 더블팩으로 나눠 팔았다.

 

 다행인 점이라면 이 모드들은 하나링크를 통해 다른 기기로 전송할 수 있어서 통신을 통해 게임 시작한 직후에도 난이도 설정을 바꿀 수 있다. 물론 더블팩을 사거나 근거리 통신을 해야 난이도 변경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게 과연 장점인지는 모르겠다. 더 놀라운 점이라면 일반적인 회사라면 이 시스템을 개량해서 후속작에 계승할 것이다. 그러나 이후 게임들에는 난이도 설정 자체가 없다. 그나마 7세대까지는 학습장치라는 시스템을 통해 간략하게나마 난이도를 구현해 놨지만 8세대 이후 학습장치는 디폴트가 되어 끌 수가 없다. 결국 블화 2의 난이도 설정은 잘 만들어 놓은 신규 시스템 해금 방식을 이상하게 해 놓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포켓몬 시리즈에게 보여주는 반면교사조차 되지 못한 셈이다. 

 

 그리고 이건 게임 외적인 이야기이긴 한데, 블화 2가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닌텐도 DS의 와이파이 서비스를 종료해 버려 와이파이 관련 콘텐츠를 더 이상 즐길 수 없게 되었다. 5세대에서 처음 등장해 인기를 끈 랜덤 매치는 물론이고 메달랠리 콘텐츠에도 와이파이 서비스 관련 콘텐츠가 포함되어 있어 지금은 치트를 제외하면 어떤 방법으로도 메달랠리를 완성하지 못한다. 이는 게임프리크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4. 블화 2는 분명히 단점이 없는 게임이 아니었다. 5세대의 후속작이면서 5세대의 분위기를 완전히 살리지도 못했고 게임 외적 사유로 인해 풍부한 콘텐츠들도 빛을 바랐다. 그러나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블화 2는 명작으로 인정받는다. 왜 그런 걸까? 그것은 바로 블화 2가 포켓몬의 끝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물론 포켓몬스터라는 거대한 프랜차이즈가 블화 2를 마지막으로 끝났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블화 2는 적녹 때부터 이어져 온 2D 시대의 끝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기존의 투박하면서도 정겨웠던 2D 시대는 블화 2를 마지막으로 끝나고 새로운 3D 시대가 포켓몬스터 X·Y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포켓몬의 평가는 엑와를 기점으로 급격히 추락한다. 그러므로 블화 2는 한 시대의 끝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추억이 되었다.

 

 게임 프리크도 블화 2가 2D 시대의 끝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게임을 만들었다. 블화 2는 포켓몬 역사상 가장 풍부한 콘텐츠를 지닌 게임이며 이는 시대의 끝이라는 상징성에 걸맞다. 특히 지금까지 나왔던 트레이너와 꿈의 대결을 펼칠 수 있는 포켓몬 월드 토너먼트만 하더라도 그 예다. 기존의 체육관 관장이나 챔피언들과 펼치는 꿈의 대결은 포켓몬 팬들을 열광하게 했다. 그리고 기존의 챔피언 배틀 브금은 전부 최후의 결전 느낌으로 웅장했으나 블화 2의 챔피언, 아이리스와의 배틀에서 사용되는 브금은 신나고 발랄한 분위기여서 모든 여정을 끝낸 플레이어를 축하해 주는 느낌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G1kHPeGqSw8 

아이리스의 배틀 브금. 밝고 경쾌하다.

 이처럼 블화 2는 한 시대의 종막을 담당하는 게임이었고 게임 프리크는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줬다. 그 시절에 포켓몬을 좋아했던 사람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포켓몬 게임이 무엇인지는 사람들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포켓몬을 마무리하기에 가장 적합한 작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 블랙·화이트 2를 댈 것이다. 이게 블화 2의 판매량이 아쉬웠을지언정 사람들에게 명작이라 기억받는 이유다. 

 

5. 이렇게 DS 세대의 포켓몬스터 게임을 모두 살펴봤다. 비록 추억은 추억이라고는 하지만 그 당시의 포켓몬 게임들은 추억으로 남아있을 가치가 있음을 증명한 것 같다. 다만 안타깝게도 흔히 말하는 포켓몬의 황금기는 DS 세대를 끝으로 끝난다. 물론, 그것이 포켓몬이 안 팔린다는 소리는 전혀 아니다. 포켓몬의 판매량은 오히려 현세대에 와서 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다만, 퀄리티의 측면에서 사람들이 4~5세대를 회상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분명 그때의 포켓몬 게임은 지금보다 나은 점이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다시 4~5세대처럼 2D 그래픽으로 회귀한다고 환영받지는 않을 것이다. 냉정히 말해서 같은 기기의 게임들과 비교했을 때, DS 세대의 게임들도 그렇게 그래픽이 좋지는 않았다. 또, 지금은 편하게 누리는 당연한 것들이 그때는 없었고 지금은 없는 불편한 것들이 그때는 있었다. 그러니 그때가 좋았다고 지금의 게임을 너무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지금 많이 바뀐 포켓몬의 모습을 보면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오늘 하루쯤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추억의 게임을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