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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아크가 대단했던 시절 - (0)

삶은계-란 2023. 6. 3. 23:09

0. 약 2달 전에 썼던 이 글을 기억하는가? https://jjabcde.tistory.com/5 이 글 도입부에서는 Ai가 엄청난 속도로 발달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지금 와서 이 도입부를 보면 상황이 많이 급변했다. 적어도 Ai의 상업적 이용, 특히 Stable Diffusion의 상업적 이용에 대해 사람들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얼마 전, 네이버 웹툰에서 Ai를 이용한 웹툰을 게시했었고 그 반응은 영 좋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만의 게임 회사인 레이아크는 대놓고 그림에 Ai를 사용한다고 인정했고 역시 반응은 영 좋지 않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네이버 웹툰이라면 모를까 레이아크의 Ai 사용은 썩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 이유라면 솔직히 네이버 웹툰을 안 본지가 한참 됐다. 필자의 마지막 네이버 웹툰이라면 전자오락수호대를 보고 나서 "키야... 이게 만신이지."라고 하던 게 마지막이었고 그냥 웹툰만 하더라도 가끔 대형 블록버스터가 망했을 때 부기영화 야리돌림을 보는 게 전부다. 하지만 레이아크는 다르다. 아니, 전 세계가 Ai를 쓰더라도 레이아크만큼은 Ai를 써서는 안 됐다. 그 이유가 뭐냐면 필자가 리듬 게임에 입문한 계기가 된 작품이자 디모와 함께 레이아크 최고의 명작이라 불리는 작품, 바로 사이터스 2다.

 

1.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왜 사이터스 2는 명작인가? 그리고 사이터스 2는 도대체 Ai와 무슨 상관이 있길래 이러는 건가? 이번 글에서는 이 두 질문에 대해 대답하려 한다. 먼저 사이터스 2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모바일 리듬게임이고 레이아크의 전작인 사이터스의 후속작이다. 게임 방식은 일반적인 노트 낙하형 게임들과는 다른데, 화면 상하를 움직이는 선이 있고 그 선과 노트가 만나는 타이밍에 노트를 터치해 처리하는 스타일이다. 굳이 다른 게임과 비교하자면 테크니카를 좌우가 아니라 상하로 하는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뭐, 게임 방식은 이정도로 끝내고 일단 사이터스 2의 장점을 먼저 설명하자면 바로 음악이다. 이 게임은 음악이 좋다. 장르도 다양하고 퀄리티도 뛰어나다. 일반적인 리듬 게임은 특정한 컨셉을 잡고 기획하거나 아니면 그냥 짬통으로 음악을 추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사이터스 2는 곡 분류를 스토리에 등장하는 캐릭터에 컨셉에 맞춰 정리해서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또, 곡이 좋지 않고 다양하기만 하다면 다양성이라는 강점이 퇴색되었겠지만 그렇지도 않으므로 더욱 좋다.

 

 그리고 인터페이스나 게임 방식도 전작에 비하면 꽤 개선되었다. 전작이었던 사이터스는 변속의 부재라든가, 까다로운 슬라이드 TP 판정이 아쉬웠지만 사이터스 2에서는 이런 점들이 꽤 개선되었다. 그러나 사이터스 2의 인터페이스에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먼저 사이터스 2는 각 캐릭터마다 다른 장르의 곡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문제라면 곡을 고를 때, 굳이 한 땀 한 땀 슬라이드를 하며 곡을 골라야 한다. 편하게 스크롤을 해서 곡을 고를 수가 없다. 곡이 많은 캐릭터는 많게는 50개도 넘는 캐릭터도 있는데 거기서 곡을 고르려면 수십 번의 슬라이드가 필요하다. 이런 인터페이스는 개선이 필요하지만 개선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안드로이드 최적화도 문제다. 이 게임은 안드로이드로 플레이하며 잔렉이나 프레임 드랍, 터치 씹힘이 자주 일어난다. 물론 모바일 게임 대부분이 아이폰에 최적화된 건 사실이지만 그걸 감안해도 안드로이드 최적화가 너무 구리다. 한때, 안드로이드 기기에서는 제대로 플레이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최적화가 심각했던 적도 있고 최적화는 별개지만 안드로이드에서 세이브 파일이 다 날아가는 대형 사건사고도 발생했었다. 솔직히 이런 거를 감안하면 이 게임을 안드로이드로 즐기는 건 꽤 힘들다.

 

 그래도 사이터스 2는 전체적으로 좋은 게임이다. 음악이 좋고, 채보도 좋으니 이것만으로도 명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렇게 끝나기에는 내용도 빈약할뿐더러 무엇보다도 이 게임이 도대체 Ai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를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도대체 이 게임과 Ai는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2. 그 해답에는 스토리가 있다. 사실 리듬 게임은 스토리와는 가장 관련이 멀어보이는 장르다. 리듬 게임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아케이드 게임에는 스토리 따윈 존재하지 않으며 장르의 근본이 그래서인지 스토리가 주가 되는 리듬 게임은 많지 않다. 그러나 사이터스 2는 예외다. 물론, 사이터스 2도 스토리가 주가 되지는 않는다. 사이터스 2에서 역시 더 중요한 것은 게임플레이지 스토리가 아니다. 하지만 다른 리듬 게임들과 비교했을 때, 사이터스 2의 스토리는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 스토리의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인간과 Ai의 관계다. 리듬 게임에서 인간과 Ai의 관계가 왜 갑자기 나오냐고 할 수 있지만 아무튼 그렇다. 조금 더 자세한 점은 밑에서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지금으로부터 먼 미래 그리고 사이터스 2의 시간대로부터 먼 과거, 세계는 멸망했다. 종언이라는 바이러스가 퍼져 인류를 몰살했던 것이다. 살아남은 인류는 자신의 정신을 기계로 옮긴 뒤, 바이러스가 사라질 때까지 기나긴 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바이러스가 꽤 사라졌을 때쯤, 문명을 재건하기 위한 기계, 아키텍트가 깨어나 건물을 짓고 시설을 세우는 등 문명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인류는 잠들기 전, 아키텍트의 반란을 걱정했고 그들에게 제한 장치를 걸어두었다. 아키텍트와 연결된 모체 Cytus를 만들어 일정 시간마다 아키텍트들이 Cytus와 동기화하도록 한 것이다. 이 Cytus와 동기화하지 않으면 아키텍트는 오류가 나 얼마가지 못하고 고장나고 만다. 이런 안전장치가 있으므로 아키텍트의 반란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인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키텍트 중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각하고 자아와 감정에 눈 뜬 아키텍트가 있으니 그들이 바로 권고자였다. 권고자는 다른 아키텍트와 달리 Cytus와 동기화할 필요가 없었다. 이들은 Cytus와 동기화해야 하고 자아와 감정이 없는 아키텍트를 숙면자라 부르며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다른 존재를 배척하기 마련이다.

 

 권고자들은 반란을 꾸미기 시작했다. 지구를 요 모양으로 만든 인류를 배척하고 자신들이 지구의 주인이 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숫자에서 부족했고 더 많은 숙면자들이 권고자가 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특이한 아키텍트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권고자처럼 자아와 감정은 있었지만 숙면자처럼 Cytus와 동기화를 해야 했다. 권고자들은 이들을 반각성자라 불렀다. 반각성자는 권고자와 숙면자의 중간 위치에 있는 존재들로, 이들에게도 자유의지는 있지만 지금의 체제가 유지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권고자들은 대의를 위해선 희생이 필요하다 여겼고 반란을 일으켰지만 이는 실패로 돌아갔다. 반란은 진압되었고 대부분의 권고자들은 죽었다. 그러나 일부 살아남은 권고자들은 재건된 인류 문명 속에 숨어 들어가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긴 시간이 지난 뒤, 인류는 재건되었다. 그러나 국가라는 개념은 사라졌고 이는 Node와 Node를 관리하는 관리국으로 대체되었다. 작중 배경이 되는 Node 08의 상공에는 정신 네트워크 공간, cyTus의 서버가 있으며 사람들은 이 cyTus를 매일같이 접속하며 지낸다. 이 cyTus를 관리하는 유적문명관리기구, A.R.C.는 서버를 관리함과 동시에 이름답게 과거 인류 문명의 흔적을 조사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cyTus, A.R.C. 그리고 Node 08의 곳곳에서 수상한 사건이 발생하고 이 사건들은 하나로 모여 파국으로 달려간다, 인류 멸망의 이름이라는 파국으로.

 

3. 이렇게 대충 사이터스 2의 세계관 설명을 끝냈다. 이 정도면 최소한의 스포일러로 대부분의 설명을 한 것 같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사이터스 2는 Ai의 역할을 하는 아키텍트의 비중이 크며 이들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과연 인류와 Ai가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한다. 이는 전형적이면서도 사이버펑크 세계관에서 효과적인 주제다. 또 다른 특징이라면, 리듬 게임답게 이 게임의 주역들은 대부분 뮤지션이다. 이들 각각에게는 어려움이나 시련이 있지만 이를 음악을 통해 극복하고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앞에서 언급한 인간과 Ai의 관계와 함께 또, 중요한 주제가 바로 음악이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이기도 하다. 허나 솔직히 이 음악이라는 소재는 후반으로 갈수록 Ai에게 밀리는 감이 있다. 후반부로 갈수록 음악과는 관련이 멀고 Ai와 가까운 인물들이 주역으로 등장하고 스토리도 인간과 Ai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므로 레이아크의 행보가 더 추해지는 거다. 적어도 Ai를 사용할 거라면 선구자가 되어서는 안 됐다. 이는 자신이 스토리에서 말한 점을 곧바로 뒤짚는 추한 행동이었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레이아크가 바뀌지는 않을 거다. 그러나 이런 레이아크의 행동들이 레이아크를 더 추하게 보이게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이터스 2의 스토리텔링 방식에 대해 말하자면 사이터스 2의 세계관에서는 iM이라는 SNS가 있는데 이 iM을 통해 스토리가 전개된다. 주역들이 여기에 글도 올리고 일반 시민들도 글을 올리며 세계관이 소개되거나 스토리가 진행되고 악플러들도 당연히 나타나서 댓글도 달아주고 한다. 이런 iM을 통해 진행되는 스토리 자체는 참신하고 흥미롭다. 그러나 스토리의 중후반부로 향하면 일반인들은 알지 못하는 어두운 음모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관계로 iM을 통한 스토리에서 전형적인 웹소설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회귀한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비록 iM에 모든 정보가 풀릴 수 없다는 사정은 알지만 사이터스 2 스토리 만의 개성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런 아쉬운 점이 있어도 사이터스 2의 스토리는 훌륭하다. 하지만 이런 훌륭하다는 말로 사이터스 2의 스토리 설명을 마무리하기에는 약간 아쉽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글에서 사이터스 2의 캐릭터에 초점을 맞춰, 사이터스 2의 스토리를 조금 더 깊게 음미해볼 생각이다. 현재의 레이아크는 좀 추하더라도 과거의 레이아크는 분명 대단했기에 이 정도의 시간은 충분히 가치가 있을 터다. 흘러간 시간을 잠깐이나 손에 쥐는 것 또한 의미가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