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단간론파 1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말했죠? 적응 못하는 자는 죽는다고... 여기 생활에 익숙해져야만 한답니다.
- 셀레스티아 루덴베르크, 초고교급 갬블러
묻고 더블로 가!
- 곽철용, 대한민국의 달건이, 영화 <타짜> 中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마라 이런 거 안 배웠어? 뭐 해, 너네 형님 손 안 찍고.
- 고니, 대한민국의 타짜, 영화 <타짜> 中
0. 도박과 놀이는 무엇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놀이를 하면서 뭔가 중요한 것을 내기로 건다면 도박이고 그렇지 않으면 놀이다. 텍사스 홀덤을 하더라도 짜장면 내기로 가볍게 한다면 놀이가 되겠지만 가위바위보도 전재산을 걸고 하면 도박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목숨을 걸고 하는 살인 게임은 그 무엇보다도 도박에 가깝다. 그렇다면, 초고교급 갬블러는 당연히 살인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1. 셀레스티아 루덴베르그, 일본어로는 야스히로 타에코로 불리는 이 여자는 갬블러다. 자신을 독일계라고 주장하며 남자를 등급으로 구분하는 이상한 성격을 갖고 있지만 도박 실력만큼은 확실했다. 어둠의 세계에서 수많은 도박에서 살아남았고 포커페이스와 거짓말에 능했다. 그런 셀레스의 소원은 바로 자신만의 성을 지어 그곳에서 미남들을 시종으로 부리며 행복하게 사는 삶이었다. 일반인이라면 뭔가 이상하겠지만 일단 대충 넘어가자. 그러나 그 꿈은 키보가미네 학원에 입학하고 살인 게임에 휘말리며 멀어지게 된다.
살인 게임이 시작되고 셀레스는 누구보다 이 상황에 달관한 척했다. 그녀는 이곳에 갇혀서 계속 살면 되지 않냐는 식으로 자신의 본심을 갇혔다. 실상, 셀레스는 살인을 해서라도 어떻게든 이곳에서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자신의 본심을 감추는 것이 게임에 유리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녀는 본심을 감추었다. 또, 그는 여자라면 정신을 못 차리는 야마다 군을 부리며 자신의 아군을 늘렸다.
첫 두 사건의 경우, 셀레스는 일부러 눈에 띄지 않게 행동했다. 첫 사건에서는 쿠와타에게 정당방위 건으로 일침을 가한 것 말고는 눈에 띄는 말을 하지 않았으며 두 번째 사건에서는 아예 존재감이 드러날 행동을 하지 않았다. 사실 셀레스의 본명을 생각하면 셀레스도 분명 두 번째 사건의 동기가 컸을 것이다. 그러나 셀레스는 다른 사람도 자신처럼 비슷하게 비밀이 치명스러운 사람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다행히 살인을 참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세 번째 동기가 주어졌다.
세 번째 동기는 돈이었다, 많은 돈. 사실 이 돈이라는 동기는 얼핏보면 가장 약한 동기였다. 이미 끔찍한 사건을 두 번이나 경험한 학생들에게 돈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아무도 돈이라는 동기로 사건이 벌어질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셀레스가 노린 점이었다. 그녀의 꿈에는 돈이 많이 필요했고 지금이라면 동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은 살인을 예측하지 못할 터였다. 그녀는 치밀하게 야마다와 살인 준비를 시작했다. 멍청했던 야마다는 셀레스의 감언이설의 속아 그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그녀의 공범이 되었다. 그다음, 셀레스는 야마다에게 똑같이 멍청했던 하가쿠레를 범인으로 몰 수 있는 저스티스 로보 슈트를 만들라고 명령했다. 마지막으로, 셀레스는 당시 학생들에게 알려진 얼터 에고를 이용해 야마다에게 이시마루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얼터 에고는 죽은 후지사키가 죽기 전 만든 인공지능으로 후지사키와 닮아서 그런지 착하고 유능했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얼터 에고를 좋아했지만 특히, 오오와다가 죽은 뒤 힘들어 했던 이시마루와 그냥 2D를 좋아하는 야마다가 얼터 에고를 제일이었다. 셀레스는 그것까지 이용해 살인 계획을 세웠다. 그는 야마다를 이용해 자신과 야마다가 저스티스 로보라는 괴인에게 습격당한 것으로 위장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 야마다가 이시마루를 죽이고 자신이 야마다를 죽였다. 그리고 하가쿠레는 저스티스 로보 슈트 안에 집어넣어 그를 범인으로 만드려 했다. 그러나 이 계획에는 여러 실수가 있었다.
가장 큰 실수라면 야마다가 수트 설계를 이상하게 해서 도저히 혼자서는 제대로 입고 움직일 수 없는 슈트를 만들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다른 학생들이 한 번 슈트를 입고 나니, 도저히 혼자서는 이 슈트를 입고 누군가를 습격하거나 현장을 조작하는 등의 행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버려 오히려 하가쿠레가 용의 선상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그다음이라면 야마다의 실수였다. 야마다는 원래 하가쿠레에게 죽은 척 한 뒤, 자신에게 시선이 멀어진 틈을 타 이시마루를 죽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야마다는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증거를 너무나도 많이 남겼고 그 결과 야마다가 이 사건의 공범이었음이 너무 쉽게 드러났다. 셀레스도 죽은 사람이 한 명일줄 알았을 때, '그들'이라는 말실수를 하며 자신도 사건을 알고 있음을 실수로 자백해 버렸다. 마지막으로 야마다가 죽기 직전, 범인은 야스히로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하필이면 그게 셀레스의 본명이었다. 결국 모든 것이 들통난 셀레스는 범행을 자백하고 모노쿠마에게 처형당했다.
2. 셀레스의 타이밍이 뛰어났다. 이미 두 번의 살인으로 다른 학생들은 살인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고 돈으로는 동기는 지난 두 번의 살인 동기에 비하면 꽤 약했다. 거기에 얼터 에고의 등장으로 토가미를 제외한 학생들이 나름 한마음으로 뭉치고 있던 타이밍이었으므로 더욱 그랬다. 거기에 셀레스는 학급재판의 규칙도 잘 이용했다. 학급재판에 따르면 탈출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을 죽인 주범 뿐이다. 즉, 자연스럽게 공범의 존재를 배제하게 된다. 셀레스는 이를 이용해 야마다를 공범으로 만들어 사건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사실 피해자가 범인의 공범이라고 상상하기는 꽤 어려웠을 터였다. 즉, 셀레스는 이길 수밖에 없는 도박을 했다, 아니, 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패망한 원인은 야마다였다. 사실, 셀레스의 어이없는 제안, 서로 사람을 죽이고 재판에서 승리해서 탈출하자라는 제안을 받고 승낙할 정도의 지능이라면 야마다의 멍청함을 감안해서 계획을 짰어야 했다. 그러나 셀레스는 야마다를 너무 과대평가했고 그 결과 야마다는 마치 허구한 날 바닥을 밟으며 공대를 터뜨리는 공대원에 빙의하여 계획을 완벽하게 망쳤다. 인체공학은 개무시하고 만든 저스티스 로보 때문에 하가쿠레를 범인으로 몰 수 없었고 이시마루를 죽이는 과정에서 그의 시계를 망가뜨려 그의 사망추정시각을 속이는 것을 방해했다. 또, 죽음을 위장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살아있다고 광고라도 하듯이 너무 많은 증거를 남겼으며 심지어 셀레스에게 배신당한 뒤엔 그녀의 정체를 알리며 죽었다. 이 마지막 유언이야 배신당한 뒤에 복수라 쳐도 나머지는 너무나도 한심한 실수였다. 만약 이 실수들이 없었다면 셀레스가 승리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셀레스가 야마다 때문에만 패배한 것은 아니었다. 일단 공범자를 잘 선택하는 것도 실력이며 공범자가 멍청하게 행동할 것을 고려도 해야 했다. 그리고 셀레스도 말실수를 하거나 트릭을 위해서였지만 너무 과하게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등, 의심 살 만한 행동을 안 한 것도 아니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셀레스의 패배는 당연했다. 그리고 도박에서 패배하면 손모가지가 날아가는 것처럼 셀레스도 살인 게임에서 패배해 목이 날아갔다. 하지만 만약 셀레스가 범행을 들키지 않았어도 과연 그것은 승리였을까? 살인게임의 진상을 생각하면 설사 돈을 얻고 탈출했더라도 그녀가 꿈꾸던 나만의 성 건설과 미남 시종들은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그녀의 살인은 한 가지 교훈을 알려준다. '도박에서 무조건 이기는 것은 도박장 주인이다.' 이것이 그녀가 남긴 교훈이었다.
3. 셀레스의 3 챕터는 단간론파 1편의 챕터 중 가장 트릭 완성도가 높은 편이다. 1, 2 챕터는 우발 살인의 측면이 강했으므로 추리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현란한 트릭과는 관계가 멀었다. 그러나 3 챕터는 셀레스의 발 아래 철저하게 계획된 트릭이었으므로 제대로 된 트릭을 이 게임에서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순간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트릭은 잘 만들었지만 범인 특정이 너무 쉽다는 점이었다. 하가쿠레는 범인이 아니고, 나머지는 함께 다녔으니 결국 남는 것은 셀레스라는 소거법으로 너무나도 쉽게 범인이 드러난다. 물론 트릭 자체를 파악하는 것은 나름 까다롭지만 범인의 정체가 너무 쉽게 드러나는 것은 튜토리얼 챕터도 아닌 시점에서는 많이 아쉬웠다. 다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3 챕터의 트릭은 뛰어난 편이고 추리 게임으로서의 단간론파 1편이 가장 빛나던 순간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번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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