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사이터스 2, 원피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예전의 우리 모습이라고! 최고야!
- 체리, 크리스탈 펑크의 보컬이자 리더
하하…… 진짜……더럽게 못 부른다니까……
- 셰리 폴린, 사이먼 잭슨의 연인
노루가 사냥꾼 손에서 벗어나듯 것 같이 새가 그물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듯이 스스로 구원하라.
- 잠언 6:5
0. 한국에서 배신자의 상징이 이완용이라면, 서양에서 배신자의 상징은 유다다. 유다는 은화 30전의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넘기며 예수를 배신했고 그 결과 유다는 기독교를 믿지 않는 자에게조차 배신자의 상징으로 남았다. 그러나 유다가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비판받는 것은 단순히 배신을 해서는 아니다. 유다는 배신을 한 주제에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무책임하게 죽어버렸기 때문에 지금도 비판받는 것이다. 분명 사람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그 실수를 책임지지 않고 도망가려는 순간, 그건 더 이상 실수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이런 실수를 저지른 사람의 이야기다.
1. 셰리 폴린은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소녀였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는 드론의 오발 사고로 인해 일찍 죽었고 아버지는 일이 너무 바빠 그녀를 돌볼 시간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셰리는 혼자서 외롭게 자라야 했다. 그러나 그녀가 갖고 있던 노래를 향한 열정은 꺼지지 않았고, 그녀는 체리라는 이름으로 자작곡을 발표해 나갔다. 그리고 그녀의 자작곡에 매력을 느린 기타리스트 제논, 배이시스트 조, 드러머 카이가 모여 새로운 밴드, '크리스탈 펑크'를 결성했다. 크리스탈 펑크의 보컬이자 리더였던 체리는 다른 멤버와 함께 여러 곡을 발표했고, 크리스탈 펑크는 점점 더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체리에게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체리의 아버지, 루이스는 사실 Baro파의 길잡이를 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었고 Baro파는 루이스에게 그의 딸 셰리도 이 일에 가담시키려 했다. 루이스는 이를 반대했지만 셰리는 아버지를 위해 가담, Baro파의 길잡이로 범죄 활동을 시작했다. 낮에는 밴드, 밤에는 범죄를 저지르며 체리의 나날은 바쁘게 지났고 그러는 중 체리는 제논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제논도 같은 심정을 느꼈고 곧 제논과 체리는 연인 관계로 발전하여 밴드 공식 1호 커플이 된다. 그러나 체리는 제논을 의지했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어두운 면을 제논이 알까 봐 두려워했다.
그리고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 법이다. 어느 날, 체리의 아버지 루이스가 중상을 입은 채 병원에 실려왔다. 루이스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수혈이 필요했는데 하필이면 체리와 루이스의 혈액형이 달랐다. 그러나 다행히 제논의 혈액형이 같았던 덕에 루이스는 다행히 살아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수술이 성공으로 끝날 때쯤, 제논의 아버지, 카일이 죽고, 여동생, 샤논이 정신퇴행이 돼버렸다는 소식이 들렸다. 제논은 같은 날 벌어진 사건을 보고 진실을 알아냈다. 집법원(경찰)이었던 카일이 샤논을 데리고 하교 중, 자신이 쫓고 있던 루이스를 발견했다. 카일은 루이스를 체포하려 했으나 루이스는 반격했고 카일은 사망, 루이스는 중상, 그리고 샤논은 그 충격으로 정신퇴행, 이것이 그날의 충격적인 진실이었다.
제논은 자신이 아버지와 여동생의 원수를 살렸다는 사실, 그리고 체리도 루이스의 범죄에 가담했다는 사실에 분노했고 그는 체리를 찾아가 진실을 물으려 했다. 그러나 체리는 뻔뻔하게 나서지도 않았고,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쳤다. 체리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자 제논은 마지막 정으로 체리의 전과를 지워준 뒤, 마찬가지로 밴드를 떠났다. 그리고 보컬과 기타리스트가 사라진 크리스탈 펑크는 해체, 영원한 전설로 남게 된다.
2. 몇 년 뒤, 체리는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 새 밴드, 체리 펑크를 결성했다. 비록, 크리스탈 펑크 때만큼의 인기는 아니었지만 언더에서는 꽤 인기 있는 밴드였고, 유명 DJ AEsir가 주최한 AEsir 페스티벌에도 초대될 정도로 나름 인지도가 있었다. 그러나 AEsir 페스티벌은 정작 주최자가 노쇼를 한 바람에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얼마 뒤, 체리 펑크는 메이저 기획사인 모노 사와 계약을 하게 되며 드디어 메이저 무대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 타이밍이 모노 사의 간판 아이돌 PAFF의 건강 악화로 인한 활동 중단 이후였고 그 덕에 체리 펑크는 PAFF 빠돌이들의 원망의 대상이 된다.
한편, 인기 스트리머 네코가 AEsir가 일으킨 사이버 테러의 혐의로 체포되고 동시에 로보헤드가 AEsir 페스티벌에서 사실 AEsir는 노쇼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AEsir가 AEsir 페스티벌에 참가한 관계자들의 기억을 전부 없애버렸다는 뜻이므로 AEsir 사건이 더 커졌다. 유적문명관리국(A.R.C.)은 제논으로 하여금 사건을 조사하게 하고 체리는 페스티벌의 참가자이자 증인으로 제논과 처음으로 재회한다. 오랜만에 재회한 거 치고는 그럭저럭 이야기가 잘 풀렸고 둘은 AEsir가 악마 후드를 뒤집어쓴 소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제논은 이를 끝으로 혼자 소녀를 잡으러 가려했지만 체리가 이를 말려 결국 둘이서 소녀를 찾아보기로 결정했다.
며칠 뒤, 체리는 제논과 다시 약속 장소에서 만났다. 그녀는 이제야 과거에 하지 못했던 사과를 제논에게 했고 그녀에겐 다행히도 제논은 그 사과를 받아들였다. 사과를 마친 뒤, 둘은 신호를 역추적해 후드를 쓴 소녀를 찾았다. 체리는 그 후드 쓴 소녀를 펄스건을 제압하지만 사실 그 소녀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형태를 한 로봇, 아키텍트였다. 비록 이것만으로 AEsir의 정체를 확정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AEsir가 네코가 아니라는 것은 증명할 수 있었고 체리와 제논은 네코를 풀어주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제논과 체리가 함께 네코를 꺼내주는 모습을 본 기레기들이 제논이 어장관리를 한다는 식으로 기사를 적었고 그 결과 제논은 졸지에 어장관리남으로 낙인찍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풀려난 네코가 입을 잘못 놀리는 바람에 PAFF 빠돌이들이 모노 사 앞에 폭도로 변신해서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필 모노 사로 출근을 하던 체리는 폭도들에게 맞아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된다. 다행히 크게 다친 건 아니어서 금방 퇴원할 수 있었지만 우연히 같은 병원에서 입원 중이었던 샤논을 보고 말았다. 체리는 샤논이 정신퇴행을 했는지는 모르고 있었고 자기 때문에 샤논이 저렇게 되었다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제논이 AEsir 혐의로 체포되고 모든 죄를 인정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큰 충격에 빠진다. 하지만 도저히 제논이 이대로 AEsir가 되어 범인이 되는 것을 볼 수 없었던 체리는 코너의 의뢰를 받아들여 코너, 조와 함께 제논을 구출했다. 물론, 이는 코너가 체리를 미끼로 쓴 작전이었지만 어찌 됐든 제논을 구출한 체리는 코너의 지령에 따라 Node 03으로 향했다.
Node 03에 도착한 체리와 제논은 일단, 크리스탈 펑크 시절 동료였던 카이에 집에 머무르며 다음 지령을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 체리는 오랜만에 옛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합주하며 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며칠 뒤, 코너의 지령에 따라 체리와 제논은 구황회의 보스, 노라와 접촉한다. 노라는 이미 코너와 이야기를 마친 뒤였고, 마침 기억을 찾기 위해 Node 03에 있었던 PAFF, 네코, 그리고 로보 헤드도 만났다. 구황회는 뒷세계의 조직답지 않게, 꽤 양심적으로 돌아가던 조직이었고, 그 덕에 체리와 제논은 좋은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그런 구황회를 견제하려는 Node 03의 토룡과 Node 08의 Baro파가 체리와 제논을 넘기라는 식으로 구황회에 접근했고 노라가 그 제안을 거부하자 Baro파는 드론을 보내 구황회를 습격했다. 체리와 제논은 노라와 조직원들을 도와 드론들을 막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체리는 드론에 사격당해 중상을 입고 만다. 다행히 구황회는 의료시설이 잘 갖춰진 곳이었으므로 치료에는 문제가 없었다, 아니 없었어야 했다. 그러나 치료 도중, Baro파가 의료 센터를 해킹해 의료 센터를 완전히 정전시켰고 체리의 생명 유지 시스템도 완전히 꺼져버렸다. 체리는 마지막으로 제논에게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 'Still'을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체리는 노래를 들으며 과거 제논이 선물했던 펜던트를 건넨 뒤 누구보다 가장 소중했던 연인의 곁에서 숨을 거뒀다.
그렇게 체리의 육체는 죽었으나 정전의 여파였을까, 체리의 정신 일부는 OS 공간으로 흘러들어 갔다. 그곳에서 체리는 샤논도 자기처럼 OS 공간에 정신이 흘러들어 갔고 그래서 지금까지 정신퇴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체리는 샤논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으나 그 과정에서 아키텍트의 습격을 받는다. 사실, Baro파는 의료 센터를 해킹할 능력 따위는 전혀 없었고 제논을 위협적으로 여겼던 모든 일의 흑막, 바네사가 모든 것의 원흉이었다. 바네사는 체리를 제압한 뒤, 그녀의 정신을 자신의 정신으로 덮어씌워 자신의 하수인으로 만든 다음 제논을 제거하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논과 체리는 OS 공간에서 가장 바라던, 그리고 바라지 않던 방식으로 재회했고 결국 제논은 눈물을 머금고 체리의 남은 정신까지 소멸시켜 자기 손으로 체리에게 안식을 선사했다.
3. 체리는 살면서 여러 범죄를 저질렀다. 그나마 살인은 안 한 것으로 추정되나 직접적으로 범죄 조직을 도우며 적어도 드론 등 기물 파손은 여러 번 저질렀을 거라 추측이 된다. 하지만 체리의 가장 큰 죄는 바로 제논을 배신한 것이었다. 체리에게 제논이 소중한 존재였던 것처럼 제논에게도 체리는 소중한 존재였다. 비록 제논이 지금보다는 덜 성숙했던 시기였어도 체리가 사과만 잘했다면 제논은 그녀를 분명 용서해 줬을 것이다. 그러나 체리는 그러지 않고 도망갔고 그녀는 남은 삶을 죄책감 속에 살아야 했다.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 체리는 제논에게 용서받고 다시 제논과 함께해 구원받고 싶었다. 그러나 더럽혀진 영혼을 지닌 자신은 고귀한 제논과는 다시는 함께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과거의 업을 지고 과거와 연을 끊으며 살려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일까, 체리는 제논과 다시 만난다. 제논과 재회한 후, 체리는 제논에게 용서받아 함께하고 싶으면서도 자신은 절대 구원받지 못할 거라는 상반되는 생각을 했다. 특히, 샤논의 소식을 들은 뒤에는 더더욱 그랬다.
어쩌면 체리는 자신의 죽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는 드론 사태 때 약간 암시되는 데, 드론이 습격했을 때 체리는 유독 앞장서서 드론을 막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체리의 영웅적인 모습이라 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곳에서 자신을 희생해서 모두를 구함으로써 구원받으려는 모습일 수도 있다. 실제로 체리가 드론 사태 때, 총을 맞았고 그 때문에 죽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신빙성이 있다.
체리가 육체적으로 죽고 나서, OS 공간에서 샤논과 재회했을 때도 드러나는 데, 이때 체리는 자신의 안위는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샤논만을 신경 쓰다가 바네사에게 잡힌다. 이것도 자기희생을 통한 구원의 추구라는 체리의 방향성이 일관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특히, 샤논이 체리의 가장 큰 죄책감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러한 일련의 자기희생을 통해 체리는 과거의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녀는 죽음으로 구원받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제논은 이미 체리를 용서한 뒤였다는 점이다. 제논은 체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고귀한 영혼을 지닌 인물이 전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체리처럼 더럽혀진 영혼을 지닌 사람에 더 가까웠다. 애초에 크리스탈 펑크라는 밴드가 더럽혀진 영혼을 지닌 사람들끼리 서로를 위로하기 위한 장소였을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체리도 제논도 조도 심지어 멤버 중 유일하게 고귀한 영혼에 가까운 카이도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크리스탈 펑크 시절이었다. 서로 비슷한 사람끼리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를 성장시켰기에 그때가 제일 행복했었다. 하지만 체리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추구하지 않아도 될 구원을 추구하다 죽었다. 물론, 이는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려 한 고결한 행동이긴 하다. 그러나 제논은 체리가 어떻든 간에 그녀를 받아줬을 것이다. 이것이 체리의 죽음이 안타까운 이유다.
4. 사이터스 2에서 체리의 비중이 엄청 큰 건 아니다. 비록 체리가 제논의 AEsir 추적이나 탈옥을 도와주기는 했지만 제논과 달리 게임의 핵심이 되는 캐릭터라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체리의 죽음은 분명 사이터스 2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비록 과거 회상에서는 죽음이 난자하고 전기 고문이 나오는 게임이긴 했어도 현재 시점에서는 나름 어두운 분위기를 자제하는 게임이었다. 마치 과거 회상에서는 허구한 날 죽음으로 끝나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불살이었던 과거의 원피스처럼 말이다. 그러나 에이스의 죽음으로 분위기가 어두워진 원피스처럼 체리의 죽음으로 사이터스 2의 분위기는 급격히 어두워진다. 아니, 원피스는 워낙 장편이라 에이스가 죽었다고 바로 어두워진 것도 아니었는데 체리는 죽자마자 바로 분위기가 긴박해지고 어두워진다. 그런 점에서 체리의 죽음은 분명 작품의 터닝포인트였다. 그리고 에이스가 비록 밈이 되긴 했어도, 원피스라는 작품 자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처럼 체리 역시 사이터스 2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좋은 캐릭터였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체리의 죽음이 전개되는 크리스탈 펑크 팩은 솔직히 너무 스토리를 보기가 힘들다. 사이터스 2의 스토리는 각 팩에 할당된 곡을 클리어하면 경험치를 받고 경험치를 모아 레벨 업을 하며 스토리와 곡을 해금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처음으로 해금된 곡이 너무 별로고 곡도 리듬 게임 치고는 너무 길어서 스토리를 보기가 어렵다. 아니, 쉽게 경험치를 올릴 수 있는 캡소를 산 사람 중 최소 절반이 크리스탈 펑크 레벨업이 귀찮아서 그랬을 것이라 확신할 정도로 너무 레벨업이 힘들다. 솔직히 좋은 곡을 좀 초반에 해금하게 해 줘서 레벨업을 조금만 쉽게 해 줬으면 어땠을 거라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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