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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검 - 살아있는 유저 분쇄기

삶은계-란 2024. 5. 10. 21:54

0. 유희왕 마스터 듀얼은 출시 초기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그러나 코나미는 수상할 정도로 업데이트를 안 했다. 그나마 한 업데이트라고는 자잘한 버그 패치와 첫 금제 정도였고 결국 게임 출시 이후 3개월 만에야 처음으로 새로운 카드가 출시되었다. 그러나 그때 추가된 카드 중 그나만 메타에 쓰였던 건 '플뢰르 드 바로네스' 하나였으니 메타는 또 안 바뀌었다. 그렇게 2달의 시간을 추가로 인내한 뒤에 새로운 카드팩이 추가되었고, 그때 등장한 테마는 한동안 마듀를 점령했다. 상검이었다.

 

1. 상검은 환룡족 위주의 싱크로 소환을 주축으로 한 테마다. 그러나 다른 싱크로 소환 테마와 달리 상검에는 튜너 몬스터가 없다. 대신 상검의 메인 덱 몬스터들은 상검 토큰이라는 튜너를 소환할 수 있어 이걸로 싱크로 소환을 했다. 그 뜻은 간단하게 몬스터 소환 한 번만으로 싱크로 소환을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거기에 이 싱크로 소환으로 나오는 몬스터들은 보통 '상검대사 - 적소', '플뢰르 드 바로네스', '상검대공 - 승영'이었는데 이들은 각각 필드 몬스터 효과 무효, 모든 효과 1번 무효, 상대 필드 및 묘지 카드 제외라는 걸출한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그 뜻은 상검은 첫 턴에 쉽게 강한 싱크로 몬스터 위주의 필드를 구축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상검이라는 테마에도 약점은 있었다. 먼저 상검 몬스터는 토큰 소환을 위해서는 특정 조건을 요구했기 때문에 좋은 덱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는 원핸드 초동이 불가능했다. 물론 그 특정 조건이 까다로운 편은 아니었지만 원핸드 초동이 안 된다는 건 분명 큰 약점이었다. 또, 필드의 파워가 나쁘지는 않지만 후속이 부족해 상대의 공격을 막지 못하면 다음 턴이 위험하다는 점, '이펙트 뵐러'나 '무한 포영' 등 특정 패 트랩에 취약하다는 점 등, 상검이라는 테마는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 테마였다. 그런 만큼 상검은 분명 강력했겠지만 메타를 지배할 정도의 파워는 아니었다.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변수가 있었으니 바로 직전 마스터 듀얼의 환경이었다. 마스터 듀얼의 메타는 근 5개월 동안 랜뽑 드트의 몰락을 빼면 변한 점이 거의 없었다. 즉 익숙한 트라게, 익숙한 전뇌계, 익숙한 엘드리치, 익숙한 아다마시아가 계속 보이던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상검이라는 강력한 테마가 들어오니 기존 메타에 질려하던 사람들이 다들 상검을 했다. 그래서 메타는 상검밭이 되었다.

 

 이때의 랭크 패턴은 이랬다. 막야 일소, 토큰 소환. 막야와 토큰으로 적소 소환. 적소 효과로 용연 서치. 용연 효과 발동으로 용연과 토큰 소환. 그 둘로 바로네스. 항복. 다음 판, 막야 일소... 이 패턴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당연히 메타는 순식간에 노잼이 되어버렸다. 뭐, 이런 상황이라면 상검을 카운터 치기 위해 다른 덱들이 출몰하는 게 정상이다. 문제라면 이 테마들도 딱히 정상은 아니었다.

 

 상검이랑 같이 추가된 카드가 하필이면 '데스티니 히어로 디스트로이 피닉스 가이' 통칭 디드라군이어서 거의 모든 덱에 디드라군이 들어갔다. 물론 상검에도 디드라군이 들어갔다. 그래서 저번 판은 상검, 이번 판은 디드라군, 다음 판은 디드라군을 넣은 상검, 그다음 판에 드디어 둘 다 안 넣은 덱이라서 안심했더니 VFD가 살아있는 전뇌계, 그다음 판에도 둘 다 없어서 안심했더니 스칙배 엘드, 메타가 요 모양 이 꼴이었다. 

 

 이런 상검 강점기는 2개월 뒤, 용사 파츠의 등장으로 끝났다. 용사 파츠는 일반 소환 의존도가 강한 덱에서는 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상검의 개체수는 줄었다. 그러나 용사 메타 역시 개판이었던 건 마찬가지였다. 결국 2022년 8월, 용사 관련 덱들이 죄다 금제를 당하면서 용사 메타는 순식간에 끝났고 다시 상검이 떠올랐다.

 

 상검은 그 뒤로도 한동안은 최상위 티어를 유지했다. 간편한 빌드와 쉬운 난도, 그리고 특정 속성을 완벽하게 봉쇄할 수 있는 '아크네메시스 프토로스'의 존재는 상검을 최상위 티어로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루닉, 참기, 이시즈 파츠, 스프라이트 등 더 강한 덱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상검의 파워는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그런 만큼 상검의 입지는 소멸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상검은 랭크에서 어느 정도는 꾸준하게 계속 보이곤 했다.

 

 그 이유라면 바로 상검의 낮은 진입장벽 때문이었다. 상검의 난도는 다른 덱들과 비교했을 때 매우 쉬웠다. 거기에 시크릿 팩까지 등장하니 가격도 낮아져 마스터 듀얼에 늦게 유입된 초보자들이 제일 하기 쉬운 테마가 되었다. 그래서 상검은 초보자들이 마스터 듀얼을 유입할 때 가장 많이 하는 덱이 되었다.

 

 코나미도 이를 늦게나마 눈치챘는지 2주년 이벤트부터 뉴비 한정으로 상검 스트럭처 팩을 공짜로 주는 이벤트를 시작했다. 이제 마스터 듀얼을 시작하는 뉴비들은 누구든지 쉽고 적당히 할만한 상검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유저들을 갈아버린 덱은 아이러니하게도 뉴비들의 쉼터가 되었다.

 

2. 앞으로 상검의 미래가 밝은가 하면 사실 애매하다. 상검은 오프에서도 딱히 추가적인 지원을 받지도 못했고 상검처럼 쉽고 강한 컨셉의 순성 테마가 언제 마스터 듀얼에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가격이 얼마나 비쌀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적당하다면 뉴비에게도 상검보다는 순성이 더 좋은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상검은 분명 시대를 풍미한 테마다. 분명 상검은 오프에서든, 마듀에서든 티어권에서 정상을 노리던 테마였고 많은 사람들에게 악몽으로 남은 테마였다. 그런 만큼 설사 상검이란 테마가 완전히 도태되더라도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히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상검이 막 나왔을 때 마스터 듀얼을 해봤던 사람들에게는 더욱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