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데스티니 히어로 디스트로이 피닉스 가이', 통칭 디드라군, 디드라군은 유희왕을 풍미했던 강력한 융합 몬스터였다. 아무 몬스터 두 마리로 나와서 매 턴 1번 공짜로 파괴하고 파괴당해도 불사조처럼 끊임없이 부활했다. 거기에 융합 소재로 사용된 카드들까지 적절한 유틸 효과까지 있었다. 그래서 결국 디드라군을 뽑게 해주는 융합 카드인 '퓨전 데스티니'와 그 카드를 아무 몬스터 두 마리로 사용할 수 있게 했던 '프레데터 플랜츠 베르테 아나콘다'가 차례대로 금지를 가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디드라군은 유희왕 마스터 듀얼에도 출현했다.
1. 디드라군이 처음 마스터 듀얼에 돌아올 때, 많은 사람들은 디드라군을 저평가했다. 그 이유라면 그전에 나왔던 '십이수 드란시아' 때문이었다. 십이수 드란시아는 오프에서의 악명만큼 강하지는 않았고 그래서 디드라군도 드란시아처럼 똑같이 마듀에서는 그저 그럴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드란시아 엔드의 위대함이 사실 위대하지 않은 것처럼 디드라군 엔드의 위대함도 별로 위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완벽히 빗나갔다. 디드라군은 나오자마자 온갖 덱에 들어가 깽판을 쳤다. 2500/2100이라는 적절하게 강한 스탯, 매 턴마다 거의 공짜로 하는 카드 1장 파괴, 파괴 시 다음 턴에 부활가능한 끈질김은 디드라군은 하나로만 턴을 종료해도 턴을 받기에 강력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디드라군의 강함을 더해주는 것은 융합 소재였다. 디드라군의 융합 소재로는 보통 '데스티니 히어로 디바인 가이'와 '데스티니 히어로 대시 가이'가 사용되었다. 먼저 대시 가이의 경우 드로우 페이즈에 뽑은 카드 1장을 특수 소환하게 해 주었다. 물론 뽑은 카드가 엄청 쓸모 있는 카드일 확률은 적긴 했지만 공짜 특수 소환이라는 것만 해도 충분한 가치는 있었다.
그러나 대시 가이보다 훨씬 강했던 건 디바인 가이, 속칭 항아리 가이였다. 디바인 가이는 묘지에서 자신과 다른 데스티니 히어로를 제외하는 것으로 카드를 2장 뽑을 수 있었다. 욕망의 항아리가 유희왕에서 얼마나 강력한지를 생각하면 엄청나게 강한 성능이었다. 물론 드로우는 디드라군이 소환된 다음 자신 턴에 할 수 있으며 자신의 패가 0장이어야 된다는 특징이 있지만 보통 전개를 마치면 패가 0장이 되기도 하고 대시 가이로 패를 비우기도 유용하다. 그런 만큼 디바인 가이의 효과를 못쓸 일은 직접 방해받지 않는 이상 거의 없었다.
그러니 디드라군은 자체 스펙도 강한 카드가 융합 소재로 유틸성도 챙긴 채 매 턴마다 불사조처럼 끔찍하게 부활하는 카드였다. 당연히 웬만하면 디드라군을 안 쓸 이유가 없었다. 상검도 디드라군을 쓰고, 트라게도 디드라군을 쓰고, 심지어 엘드리치도 디드라군을 썼다. 티어덱들도 그 정도였으니 비티어덱들은 그나마 파워를 끌어올리기 위해 개나 소나 디드라군을 넣고 다녔다. 결국 랭크 전체가 디드라군으로 가득 차 버렸다. 거기에 디드라군은 계속해서 부활하는 카드였으니 사람들은 순식간에 디드라군에 질렸다. 모두가 디드라군의 금지를 바랐다.
디드라군의 금제를 위해서는 여러 선택지가 있었다. 먼저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선택지는 바로 디드라군을 뽑을 수 있는 융합 마법, '퓨전 데스티니'를 금지하는 것이었다. 이는 실제로 코나미가 오프에서 했던 결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디드라군을 가장 정직하게 사용했던 히어로 테마에게 가장 큰 피해가 가는 금제기도 했다. 그다음 선택지는 '퓨전 데스티니'에 너무나도 쉽게 접촉할 수 있게 하는 '프레데터 플랜츠 베르테 아나콘다'였다. 그러나 아나콘다는 훗날 나올 낙인융합의 판촉을 위해 남겨둘 필요가 있었다. 마지막 선택지는 디드라군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었지만 출시된 지 얼마 안 된 카드를 코나미가 바로 금지할 리가 없었다. 사람들은 코나미가 디드라군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해했다. 그리고 코나미는 놀랍게도 이 세 가지 방법을 모두 선택하지 않았다.
2. 코나미가 선택한 것은 바로 디바인 가이 금지였다. 이 결정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던 퓨전 데스티니도, 아나콘다도 아니라 디바인 가이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물론 퓨전 데스티니도 준제한에서 제한이라는 처분을 받기는 했지만 모두가 퓨전 데스티니나 아나콘다, 특히 아나콘다의 금지를 예상했기에 충격적이었다. 이런 금지를 보고 모든 사람들이 디바인 가이의 금지 원인을 가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나콘다는 울트라 레어라서 금지 시 귀한 울트라 레어 가루를 환급해야 한다. 그러나 디바인 가이는 고작 레어라서 흔해빠진 레어 가루만 환급하면 되었다. 그러니 코나미가 눈 가리면 아웅 식으로 디바인 가이를 금지했고 디드라군의 시대는 계속될 것이라 생각했다.
놀랍게도 그 생각은 완벽히 빗나갔다. 먼저 퓨전 데스티니가 한 장으로 줄어들어 패에서 깡으로 디드라군이 나오기는 힘들어졌고 자연스럽게 디드라군에 접촉하기가 어려워졌다. 또, 디바인 가이의 금지로, 디드라군의 융합 소재에서 나오는 후속의 위력이 줄어들었다. 공짜 2장 드로우라는 강력한 후속은 다른 융합 소재들은 제공하지 못했다. 그나마 이에 근접했던 융합 소재로는 디아볼릭 + 디나이얼 가이로 링크 소재 3개 소환이 있긴 한데 얘네는 융합 소재를 3장이나 넣어야 한다. 즉, 패에 잡히면 골치 아픈 호감패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디드라군의 위력은 자연스럽게 떨어졌다.
거기에 메타도 디드라군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데스피아나 루닉, 후완다리즈 등 디드라군을 안 넣는 덱들의 전성기가 시작되었고 거기에 묘지의 카드를 바로 덱으로 되돌리는 이시즈 파츠, 묘지의 빛/어둠 몬스터를 제외하는 비스테드의 등장으로 디드라군은 더 이상 불사조처럼 살아나지 못했다.
그 이후 디드라군은 한동안 비티어 덱들의 용병으로 근근이 살다가 이제는 그 자리마저도 위협받고 있다. 디드라군보다 훨씬 뽑기도 쉽고 손에서 노는 융합 소재도 필요 없는 에스:피 리틀나이트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웬만한 덱이라면 디드라군보다는 리틀나이트가 더 좋기 때문에 디드라군은 이제 대부분 덱에서 빠지는 추세다. 그리고 오직 디드라군의 원래 주인, 히어로만이 디드라군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3. 사실 디드라군은 히어로를 위한 지원이었다. 유희왕 최고의 인기 덱, 히어로의 티어 상승 및 새로운 에이스, 이게 원래 디드라군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디드라군은 너무나도 강력했기에 히어로뿐만 아니라 모든 덱에 들어가 버렸고 그 결과 오프에서 히어로의 핵심 융합 카드, 퓨전 데스티니가 금지당하는 참사를 맞고 말았다. 히어로를 살리기 위한 카드는 히어로를 죽여버렸다. 지금은 다행히도 퓨전 데스티니가 풀리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마듀에서 디드라군은 히어로의 든든한 에이스이다. 퓨전 데스티니가 금지당하지도 않았고 히어로가 디드라군 때문에 꺾이지도 않았다. 디바인 가이가 금지를 가긴 했지만 원래 그 카드는 히어로 덱에서는 쓰지도 않았다. 분명 디드라군은 전성기에 비하면 몰락하긴 했다. 그러나 어쩌면 이는 몰락이 아니라 제자리로 돌아간 것일지도 모른다. 원래 디드라군이 있어야 할 자리로 말이다.
디드라군은 여러 가지 교훈을 사람들에게 남겼다. 코나미는 흑드라군에 이어 이번에도 과거에서 배우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했고 테마 에이스가 용병으로 팔려나가면 안 된다는 공감대를 심었다. 그래서인지 이후에는 테마 에이스가 용병으로 팔려나가도록 범용성을 극대화하는 경우가 줄어들었다. 적어도 마듀에서는 빙검룡 미라제이드 정도만 그랬다. 하지만 언젠가 코나미는 분명 새로운 실수를 할 것이고 새로운 드라군이 탄생할 것이다. 과연 다음 드라군은 어떤 테마에서 탄생할까? 이를 기대하면서 이번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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