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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 섬에서 범인을 잡는 게임 - (9)

삶은계-란 2023. 7. 9. 21:24

※ 이 글에는 슈퍼 단간론파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이깟 개만도 못한 사과로 용서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하지만...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안 하면... 내, 내 성이 풀리지 않는다고...! 칫, 한심하네... 겨, 결국 폐만 끼쳤잖아...
- 쿠즈류 후유히코, 초고교급 야쿠자
옛부터 '죽자, 죽자'하는 사람치고 죽은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사령관께서 '나는 할복하겠다'라고 말씀하신다면, 저는 부관의 책임상 우선 형식적으로라도 말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령관께서 책임을 정말로 실삼하고 계신다면, 조용히 배를 가르십시오. 아무도 방해하거나 말리지 않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배를 가르십시오. 이번 작전은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 후지와라 이와이치, 무타구치 렌야의 부관, 임팔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뒤

 

0. 히나타를 제외한 슈퍼 단간론파의 최후 생존자(최생)은 솔직히 그리 인상 깊지 않다. 소우다는 전형적인 리액션 담당이고 소니아 역시 마찬가지다. 오와리는 솔직히 인상 깊기는 한데... 좋은 의미는 아니다. 그렇게 된 이유라면 역시 5챕터에서 죽은 코마에다와 나나미의 비중이 크고 6챕터에서 나에기 일행이 재등장하는 게 크다. 그러니까 6챕터까지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자연스럽게 어중이떠중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가장 좋은 의미로 인상 깊은 최생이 있다면 바로 쿠즈류 후유히코다.

 

1. 초고교급 야쿠자, 쿠즈류 후유히코는 쿠즈류파라는 야쿠자의 후계자였다. 그는 야쿠자의 후계자답게 부족한 것이 없었는 듯했다. 그러나 그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함께해 왔던 그의 히트맨이었던 페코야마를 마음에 품고 있었지만 그녀에게 솔직한 감정을 말하지 못했고 누구보다 소중한 여동생인 나츠미가 있었지만 그녀는 어느 날 살해당했다. 분노한 쿠즈류는 우연히 나츠미를 죽인 자를 알아냈고 쿠즈류는 야쿠자답게 그자를 죽였다. 그러나 그 뒤로도 쿠즈류의 공허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고 어쩌면 이것이 쿠즈류를 절망의 길로 이끈 것일 수도 있다. 

 

 그러던 쿠즈류는 나에기 일행에게 체포되어 신세계 프로그램으로 끌려갔고 거기서 입학 전의 기억으로 살인 수학여행을 시작했다. 물론 입학 전이라고 성격이 좋았던 건 아니라서 시작하자마자 자기는 죽일 수 있다면 독자 행동을 선언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2챕터에서 모노쿠마의 동기였던 트와일라잇 신드롬 살인 사건을 플레이한 쿠즈류는 여동생이 살해당했다고 코이즈미가 공범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일단 모노쿠마가 사기를 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던 쿠즈류는 코이즈미에게 진실을 물으려 했지만 쿠즈류가 그렇게 구니 도리어 코이즈미는 쿠즈류를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자 쿠즈류는 코이즈미를 죽여 여동생의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 뒤, 정성 들인 트릭을 꾸미기 시작했다. 먼저 코이즈미와 친했던 사이온지를 기절시켜 비치 하우스에 보관시킨 뒤, 비치 하우스에 들어온 코이즈미를 때려죽인 다음 사이온지에게 죄를 덮어 씌운다는 너무나도 간단한 트릭이었다. 

 

 그러나 쿠즈류는 막상 트릭을 꾸미고 코이즈미를 대면하니 마음속도 싱숭생숭해서 그냥 코이즈미를 죽이지 말 까라는 생각도 들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고민은 코이즈미의 팩트폭력에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쿠즈류는 바로 야구 방망이를 들어 코이즈미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매의 눈으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페코야마가 쿠즈류를 막은 다음, 대신 코이즈미를 죽여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상황에 쿠즈류는 당황했지만 페코야마의 말을 듣고는 일단 모든 뒤처리를 페코야마에게 맡겼다. 

 

 그 뒤, 쿠즈류는 학급재판에서 사이온지에게 죄를 덮어씌우며 페코야마의 죄를 감추려 했으나 이는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페코야마는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페코야마가 지목당하자마자 자신은 쿠즈류의 도구이므로 사실 진짜 살인범은 쿠즈류라는 논리를 들이대자 순식간에 공은 쿠즈류에게 넘어갔다. 만약, 그가 자신의 범행이라고 인정한다면 쿠즈류가 단독으로 탈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쿠즈류는 결국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는 것을 포기했고 결국 페코야마의 처형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페코야마에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한 쿠즈류는 갑자기 처형을 막기 위해 처형장에 난입했다. 모두가 놀랐지만 모노쿠마는 그런 걸 신경 쓸 위인이 아니므로 깔끔하게 무시한 채 쿠즈류도 같이 처형시키려 했다. 그러나 페코야마는 죽는 순간까지 쿠즈류를 보호했고 결국 쿠즈류는 눈을 하나 잃는 선에서 일단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설사 목숨은 건졌을지언정 쿠즈류를 향한 시선은 좋지 않았다. 결국 막타만 페코야마가 친 거지 사실상 밑준비를 혼자서 다 한 것은 맞으니 그랬다. 특히, 코이즈미와 제일 친했던 사이온지의 시선이 최악이었다. 그녀는 쿠즈류를 경멸하며 사과할 자격도 없으니 나가 죽으라고까지 했다. 그러자 쿠즈류는 진짜로 할복을 해버렸다. 진짜로 할복을 한 모습을 보지 모두가 당황했다. 다행히 응급처치를 한 덕에 목숨은 건졌지만 충격적인 광경을 본 다른 학생들은 모두 쿠즈류가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그 뒤, 쿠즈류는 완전히 갱생하였다. 비록 머리가 엄청 좋은 편은 아니어도 추리를 나름 도와주기도 하고 잡일도 가장 먼저 솔선수범하며 했다. 심지어 3챕터에서 거하게 트롤링을 하고도 정신 못 차리는 오와리에게 충고 겸 조언도 해주는 등 사람이 완전히 바뀌었다. 비록 마지막에는 나머지 학생들처럼 버스를 타긴 했지만 쿠즈류는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2. 쿠즈류라는 인물이 갖는 가장 큰 문제점이라면 바로 성정과 환경의 불일치였다. 쿠즈류의 성정은 갱생 전에도 솔직히 엄청 나쁜 편은 아니다. 페코야마를 처음부터 도구가 아니라 사람으로 바라본 것이나 가족을 소중히 여긴다든가, 코이즈미를 죽이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꽤 망설였다는 것만 봐도 쿠즈류의 성정 자체가 폐기물인 것은 아니다. 문제라면 쿠즈류의 성장 환경 그 자체다.

 

 한국의 조폭이 있고 이탈리아에 마피아가 있다면 일본에는 야쿠자가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범죄조직이며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곳이다. 그러므로 평범한 사회에서 필요한 덕목과 범죄조직에서 필요한 덕목은 다르다. 그래서 쿠즈류는 평범한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 대신 무법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만을 배웠고 이것이 쿠즈류를 망쳤다. 여동생을 죽인 범인의 단서를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 상식적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발견한 단서를 경찰에게 넘겨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경찰이 멍청하거나 또는 범인에게 매수를 당해서 단서를 날려먹고 검거에 실패한 뒤에야 복수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쿠즈류는 망설임 없이 그 범인을 죽였는데 이는 쿠즈류가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곳에서 자랐음을 낱낱이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처음에 쿠즈류는 코이즈미와 대화로 오해를 풀려고 했고 이를 위해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쓰는 필체라든가, 어휘가 죄다 야쿠자 스타일인데 누가 이거를 진정한 대화로 생각하겠는가? 누가 봐도 협박이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자신의 편지를 받고 온 코이즈미가 자기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며 용서를 구할 것이라 생각하는 쿠즈류의 생각은 어떻게 보면 순진하기까지 하다. 

 

 그런 쿠즈류가 변한 것은 페코야마를 잃은 뒤였다. 쿠즈류에게 페코야마는 물론 속으로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야쿠자로서의 환경을 상징하기도 한다. 즉, 페코야마가 죽고 야쿠자라는 환경에서 벗어난 뒤에야 쿠즈류의 선한 성정이 발휘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사과한답시고 할복을 하는 걸 보면 환경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쿠즈류는 야쿠자답지 않은 행동을 보이며 자신이 바뀌었음을 보여줬다. 특히 오와리에게 조언하는 장면은 남을 도와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쿠즈류의 모습과 그 조언도 못 알아먹는 오와리의 답답한 모습을 대조시켜 더욱 쿠즈류의 변한 모습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쿠즈류는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데 성공했다.

 

3. 그런고로 솔직히 쿠즈류는 분명 잘 만든 조연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주연 캐릭터들의 비중에 밀려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못했어도 적어도 극의 깊이와 입체감을 더하는 역할을 분명 맡았다고 생각한다. 맨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히나타를 제외한 최생 중에서는 제일 훌륭한 캐릭터라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쿠즈류를 제외한 나머지 최생들은 역시 미미했다. 소우다와 소니아는 뭐 그래도 유쾌한 개그캐 1, 2는 했으니 그렇다 쳐도 오와리는 참... 답이 없다. 전편의 최생들은 모 캐릭터를 제외하면 하나같이 호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래도 역설적으로 최생들이 별로니까 쿠즈류가 더 빛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