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2010년대 게임계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오픈월드였다. 그러나 오픈월드의 기반은 그 이전부터 있어왔다. 울티마, 엘더스크롤, GTA는 오픈 월드의 개척자이자 선구자로서 오픈 월드라는 장르를 발전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해왔다. 그리고 2011년,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의 발매 이후, 소수 게임의 전유물이었던 오픈 월드는 얼마 안 지나 대세 장르가 되었다. 스카이림, 그리고 얼마 뒤에 나온 GTA 5는 오픈 월드 열풍을 이끌었고 무수히 많은 오픈 월드 게임이 출시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출시된 오픈 월드는 대부분 공장에서 찍혀서 나온 듯한 양산형 오픈 월드였다.
소위 유비식 오픈 월드라 불리는 양산형 오픈 월드는 처음에는 뛰어난 그래픽과 스토리, 그리고 많은 서브 퀘스트로 사람들에게 호평받았다. 그러나 오픈 월드라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부족한 상호 작용 그리고 지나치게 많으면서도 몰개성 한 서브 퀘스트와 이벤트들, 그리고 처음 나왔을 때 이후 발전이 없는 양상을 보고 사람들은 양산형 오픈 월드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피로가 가시화되었을 때쯤, 나온 게임이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일명 야숨이다.
1. 그렇다면 야숨의 오픈 월드는 무엇이 달랐을까? 기본적으로 야숨의 오픈 월드는 기존의 베데스다나 락스타가 추구하는 오픈 월드와는 다르다. 이들과 비교하면 야숨의 오픈 월드는 오히려 유비식 오픈 월드에 더 가깝다. 대표적인 예가 유비식 오픈 월드를 상징하는 뷰 포인트다. 유비식 오픈 월드에서는 주변의 맵을 밝혀주는 뷰 포인트가 있는데 야숨에도 시커 타워라 불리는 뷰 포인트가 있다. 그러나 야숨은 유비식 오픈 월드에서 몇 가지를 제거하는 것으로 엄청난 혁신을 이룩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맵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유비식 오픈 월드는 맵에 덕지덕지 수집 요소를 놓았고 무수히 많은 수집 요소를 찾는 것은 즐겁기는커녕 피곤하기만 했다. 그러나 야숨은 이 수집 요소를 없애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물론 수집 요소를 없앤다는 게 진짜로 없앴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지도상에서 무수히 많은 물음표를 없애 깔끔한 맵을 만든 것이다. 이는 야숨의 탐험을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았다. 기존의 물음표로 가득한 맵을 탐험한다는 것은 넓은 오픈 월드를 돌아다닌다는 개념보다는 점과 점 사이를 다닌다는 개념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과정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또는 있었던 흥미로운 상황들은 무시당했다. 물음표를 지우는 것이 우선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음표가 없어지면 모든 것이 바뀐다. 기존의 지루하기만 했던 물음표들은 여정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되어 플레이어를 즐겁게 한다. 대표적인 예시가 코로그 씨앗이다. 사실 코로그 씨앗 같은 콘텐츠는 유비식 오픈 월드에도 흔히 있는 수집 요소로 전형적인 물음표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야숨은 이 코로그 씨앗을 물음표로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숨김으로써 코로그 씨앗을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유비식 오픈 월드의 퍼즐과 비슷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코로그 씨앗도 지겨운 수집 요소가 아니라 여정의 즐거운 과정이 될 수 있었다.
사당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처음부터 사당의 위치를 공개했다면 사당 역시 지겨운 수집 요소 1에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야숨은 사당의 위치를 처음부터 보여주지 않으면서 플레이어가 우연히 돌아다니다가 사당을 찾게 만들었고 이는 사당을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만들어 조금 더 흥미로운 수집 요소로 만들었다. 메인 퀘스트를 위해 일직선으로 직진하다가 갑자기 사당 센서가 울린다. 근처에 사당이 있다는 걸 안 플레이어는 사당을 찾으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코로그 씨앗 퍼즐을 찾는다. 코로그 씨앗 퍼즐을 해결한 다음 다시 사당 쪽으로 가다가 이번엔 몬스터 캠프를 본다. 몬스터 캠프를 정리하고 템을 맞춘 다음 다시 사당으로 향한 다음 퍼즐을 풀어 하트나 스태미나 조각을 얻는다. 그리고 사당을 깨고 나오자 다시 사당처럼 생기는 무언가가 나타난다. 이것들이 연쇄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야숨의 오픈 월드의 미학이다.
하지만 야숨의 오픈 월드가 단순히 맵에서 수집 요소를 감추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야숨의 오픈 월드가 맵에서 수집 요소를 감추는 게 전부였다면 이렇게까지 명작이라 칭송받을 리가 없다. 야숨을 완성하는 또 다른 요소는 바로 상호 작용이다. 이 상호 작용은 크게 2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자연물끼리의 상호 작용이다. 야숨의 자연물은 일종 속성에 따라 상호 작용을 하는데 이는 처음 하는 사람이 이해하기 쉬우면서 깊이도 있다. 기본적으로 불은 물에 닿으면 꺼지고, 얼음은 불에 녹고, 물에 전기가 닿으면 감전되고, 금속은 전기를 끌여들인다. 그리고 이 상호 작용은 맵 전체에 적용되어 게임을 방해하기도 하고 돕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비가 올 때 다수의 몬스터와 만나면 자신의 컨트롤을 믿고 정면 돌파를 하는 선택지도 있다. 하지만 뭉쳐있는 적들 사이에 금속 무기를 던진다면 번개가 쳐 단방에 몬스터들을 쓰러뜨릴 수 있다. 반대로 비가 오는 날에는 평소와 달리 높은 곳을 올라가기가 힘들다. 비가 와서 절벽에 매달려도 미끄러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가 오는 날에는 평소에 했던 절벽 등반 대신 우회로를 찾거나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는 등의 행동을 해야 한다. 이처럼 자연물의 상호 작용은 야숨을 플레이하는 동안 내내 적용되며 조금 더 다채로운 오픈 월드를 만든다.
물론 상호 작용에는 자연물의 상호 작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튜토리얼이라 할 수 있는 시작의 대지에서 링크는 시커 스톤을 얻는 데 이 시커 스톤의 기능 하나하나가 새로운 상호 작용 역할을 한다. 시커 스톤의 기능에는 리모컨 폭탄, 마그넷 캐치, 타임 록, 아이스 메이커가 있다. 리모컨 폭탄은 옛날 젤다에서도 볼 수 있던 친숙한 폭탄이고, 마그넷 캐치는 금속 물체를 원거리에서 움직이는 기능, 타임 록은 한 개체의 시간을 멈춘 다음 충격을 줘 원하는 방향으로 보낼 수 있고 아이스 메이커는 말 그대로 얼음 생성기다. 이 4가지 기능은 위에서 말한 자연물, 그리고 개체와 어우러지며 새로운 상호 작용을 만들어낸다.
리모컨 폭탄을 예로 들어보자. 리모컨 폭탄이라는 기능을 처음 받았을 때 누구나 몬스터들에게 폭탄을 던져서 잡는 방법을 생각할 것이고 이를 실행에 옮길 것이다. 그리고 이는 얼마간은 생각한 것처럼 작동한다. 그러나 강한 몬스터들은 폭탄에 맥없이 당해주는 것이 아니라 폭탄을 대놓고 링크가 있는 방향으로 뻥 차 폭탄 전술을 카운터 한다. 그러므로 플레이어는 폭탄 전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던져놓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용한다든가, 폭탄을 각개격파를 위한 적 분산을 위해 사용한다는 등 조금 더 까다로운 방법으로 응용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리모컨 폭탄뿐 아니라, 마그넷 캐치, 타임 록, 아이스 메이커 모두에 적용된다. 플레이어는 시커 스톤의 기능을 기초부터 고급 기능까지 계단식으로 익히며 자연스럽게 다양한 상호작용을 경험하고 다채로운 여정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필수불가결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내구도 시스템이다. 사실 야숨의 내구도 시스템은 호불호가 꽤 갈리는 시스템이긴 하다. 기껏 얻은 좋은 무기를 몇 번 휘두르지도 못하고 부서지는 기분은 솔직히 그리 좋지 않다. 그래서 야숨의 시스템 중 이 내구도 시스템까지 도입한 오픈월드 게임은 그리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야숨의 오픈 월드의 방점을 찍는 시스템이 이 호불호가 갈리는 내구도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이 내구도 시스템은 도대체 어떤 방면에서 야숨의 오픈 월드를 완성하는 것일까? 이는 크게 2가지 방면이 있다.
먼저 내구도 시스템은 탐험을 유도한다. 만약 야숨의 무기가 다른 오픈 월드 게임처럼 내구도가 무한이라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곳을 탐험할 동기가 떨어질 것이다. 어차피 있는 무기도 좋은데 굳이 새 무기를 찾아 하이랄을 떠돌아다닐 필요가 있을까? 많은 플레이어들이 그냥 적당히 좋은 무기를 얻은 뒤에는 메인 퀘스트만 클리어하다가 게임을 깨버릴 것이다. 그러나 무기의 내구도가 파괴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지속적으로 좋은 무기를 얻어야 할 필요가 생기고 이는 지속적인 탐험을 유도한다. 아무리 맵을 잘 만들어도 플레이어가 돌아다니지 않으면 소용없다. 야숨의 내구도 시스템은 플레이어에게 맵을 탐험할 동기를 만들어주는 셈이다.
두 번째 방면으로는 바로 상호작용의 장려다. 좋은 무기의 내구도가 무한이라면 적과 싸울 때 굳이 번거로운 리모컨 폭탄이나 타임 록 등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대놓고 그냥 좋은 무기로 들이대면서 싸우면 그만이다. 야숨의 전투가 무슨 소울라이크도 아니고 기존 젤다보다 어려워졌다지 그럭저럭 할만한 수준이다. 그러므로 야숨의 내구도가 무한이라면 좋은 무기가 없는 초반을 제외하면 상호작용의 비중은 퍼즐을 풀 때를 빼면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무기의 내구도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플레이어는 몬스터를 상대할 때 상호작용을 이용해 내구도를 아끼기 위한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러므로 야숨의 내구도 시스템은 비록 플레이할 때는 기분이 나쁘더라도 필수불가결한 시스템이다. 만약 수집 요소 제거, 상호작용, 내구도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야숨은 오픈월드의 혁신을 제시한 게임이 아니라 그냥 재미있는 오픈 월드 게임으로 남았을 것이다. 이 세 가지 시스템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오픈 월드의 혁신을 보여줬고 이것이 야숨을 단순히 재미있는 명작이 아니라 오픈 월드의 혁신, 오픈 월드를 뒤바꿔 버린 게임으로 만들어놨다.
2. 이렇게 야숨이 왜 걸작으로 남았는지 간단히 이야기해 봤다. 야숨은 기존의 양산형 오픈 월드가 가진 단점을 보완하고 이들이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이것만으로도 야숨은 걸작으로 남을 자격이 있다. 하지만 야숨에서 이야기할 것이 오픈 월드만 있는 건 아니다. 다음 편에는 오픈 월드 너머에 있는 야숨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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